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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보관소

마왕은 용사를 죽이지 않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판타지

RO4dh
작품등록일 :
2019.11.10 06:44
최근연재일 :
2020.05.11 18:00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22,234
추천수 :
931
글자수 :
280,874

작성
20.01.10 10:00
조회
336
추천
15
글자
8쪽

22화 - 공학자의 걸음걸이는 시시각각 변한다

DUMMY

잉크의 유통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클린트는 수도로 향했다.


파란 후드의 사내로부터 받은 정보는 사용했던 곳이 2주 전 수도 근방의 한 여관이었다는 것, 그리고 원본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였다.


너무나 빈약한 정보 탓에 제대로 된 조사가 불가능할 것 같아 더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지만, 사내도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남한테 허점을 보이기 싫어하는 그 녀석이 모른다고 순순히 시인할 정도면 정말로 모르는 것이겠지. 꽤나 높으신 분들이 신경쓰고 있다는 거겠군. 그 녀석 정도되는 위치에서도 자세한 내용은 모를만큼.'


정보가 비정상적으로 적다는 것 외에도 클린트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또 있었다.


'게다가 구태여 외부의 인물인 나에게 부탁했다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군. 내가 아무리 그 녀석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곤 해도 숨기고 싶은 사실이라면 외부인인 나를 이용하는 것은 꺼리는 게 보통일 텐데.'


클린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병이군. 아무리 수상한 점이 있다고해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시키는 일을 하는 것 뿐인데 말이지.'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의심들을 접어두고 발걸음을 재촉한 클린트는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제국의 수도. 테비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녀석 말로는 확실히 아이비라는 여관이었지?'


잉크를 사용한 편지의 발송자가 묵었다는 여관에 도착한 클린트는 여관의 문을 두드렸다.


"어서오십쇼. 숙박은 은화 10장, 쉬다가시는 거면 은화 5장입니다. 식사를 원하시면 한 끼에 동화 20장을 추가로 내셔야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요?"


"...식사는 필요없고, 이틀 정도 묵을테니 이틀치는 선불로, 더 머물게 되면 그 이후에 내겠소."


클린트는 정신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남자의 말을 묵묵히 듣다가 대답했다.

남자는 식사도 하지 않고 머무는 기간도 길지 않은 클린트에게 실망한 것인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돈을 건네받고는 방의 위치를 말로 대강 설명하면서 열쇠를 건넸다.


'접객수준이 엉망이군. 수도라서 그런지 가격도 비싸고...하긴 생각해보면 루브린에 있는 그 여관이 유별난 건가?'


클린트는 자신이 종종 묵는 여관에 대해 떠올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1년 전, 루브린 외곽에 생긴 작은 여관 라스베트. 그곳의 주인장은 나이는 어렸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타인의 눈치를 봐야하는 환경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뭐, 나에 대해 조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만 봐도 사람보는 눈이 있다고 해야하는 건지도 모르지.'


클린트는 안내받은 방으로 올라가 짐을 대충 한 쪽에 놓은 뒤 침대에 풀썩 누웠다.


'일단 잉크의 유통경로를 파악하려면 이 근처에 있는 공학품 상점을 뒤져야하나? 그런 단순한 경로였다면 그 녀석들이 이미 파악했을 테니 아예 실력있는 공학자를 수배하는 편이 빠르겠지만...'


클린트는 몸을 일으켜 짐 속에서 샘플로 받은 잉크를 꺼내 손에 들고 위로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며 생각에 잠겼다.


'열을 가하면 글자가 떠오르는 방식이라... 방식자체는 꽤나 오래된 것이지만, 마법을 이용한 것이 아닌 공학품이라는 점은 특이하군. 뭐, 그 녀석들이 바로 샘플을 만들 수 있었던 걸 보면 아예 새로운 기술은 아니라는 거겠지.


만약 그 기술을 그 녀석들이 독점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굳이 나한테 유통경로를 추적해달라는 의뢰를 하기보다 기술을 알고 있는 공학자들의 명단을 추려서 고문을 하든지 했을테니 독점하고 있던 기술은 아니었겠고...


굳이 뛰어난 공학자들 위주로 조사하라는 지시조차 없었던 걸 봐선 공학자들 사이에선 꽤나 흔한 기술일지도 모르겠군.'


한참 잉크병을 던지던 클린트는 잠시 손을 멈추고 잉크를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은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럼 어떻게 할까. 여기 여관 주인한테 공학자나 공학품 상점을 물어보고 거기에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비슷한 물건을 구해볼까? 아냐. 아무리 마법의 시대에 자주 사용했던 방식이라곤 하지만 만약 상대방이 유통경로를 숨길 생각이 있다면 이 방법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꼴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빨간 머리한테 미리 연락이나 넣어볼 걸 그랬군."


클린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괴팍한 공학자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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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럼은 뭔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골목을 걸었다

원래도 인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걸음걸이부터 느껴지는 분노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레드럼을 슬쩍 피해 지나갔다.


"망할 놈의 영감쟁이가! 대장장이면 대장장이답게 철이나 두드리고 있을 것이지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레드럼은 새벽같이 서쪽 평원으로 나가 카키에게 받은 반지를 실험해보고 매개와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공학품과 더불어 아티팩트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했던 자신도 처음보는 마법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에 레드럼은 흥분상태에 빠져 개량을 도울 대장장이를 찾았지만 대장간의 문은 닫혀있었다.


평소 대장간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레드럼은 대장간의 문을 부술듯 두드렸지만, 그 소리에 놀라 달려나온 근처 주민으로부터 대장간의 주인이 잠시 여행을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하니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다른 대장간에 맡기자니 들고 튈 것 같고...끄응..."


실험을 통해 반지에 매개를 더해 개량한 대략적인 설계도를 완성한 레드럼이었지만, 마나가 없는 카키를 위해서는 물리적인 부분부터 뜯어 고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대장장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4년 전에 신원보증같은 걸 해주는 게 아니었어. 망치라곤 생전 처음 잡아보는 양반이 대장간을 연 게 누구 덕인데 자기 마음대로 장사를 했다 안 했다 하냐 이말이야!"


레드럼은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금 분노를 표출했다.

4년 전. 아직 '붉은 공학자 레드럼'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어진 교제였지만, 그런 것은 레드럼에게 면책사유가 되지 못했다.


사실 이미 설계도도 갖춰있고 그마저도 공학적인 처리는 레드럼이 할 것이었기 때문에 대장장이가 담당하는 작업은 어렵지 않았지만, 반지와 매개는 비싸다는 말로도 부족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력보다 신용이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레드럼이 찾아온 대장장이는 실력은 부족했지만, 신용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에 이 작업에 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참 화를 내던 레드럼은 화가 조금 사그러들자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박수를 쳤다.


"내 정신 좀 보게! 그러고보니 일단 주인장한테가서 어떤 마법이 들어있는지 이야기해봐야겠구만! 뭐, 어차피 주인장이 뭘 고르든 나로서는 이득이지만!"


레드럼은 말을 마치고는 주머니에서 두 개의 반지를 꺼내 흐뭇하게 쳐다봤다.


'결혼식 선물이라 그런지 반지끼리 서로 위치를 탐색할 수 있는 마법이 담겨 있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용언 마법과 신성 마법이라니! 용사들이나 쓸 법한 희귀마법이 담겨있는 아티팩트를 루브린에서 여관을 하는 주인장이 어떻게 구한 건지 모르겠구만. 뭐, 나야 횡재했지만!'


그렇게 한참 반지를 만지작 거리던 레드럼의 발걸음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가벼워졌다.


"빌어먹을 노친네! 이참에 내가 대장장이 노릇까지 해버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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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 공학자의 걸음걸이는 시시각각 변한다 +9 20.01.10 337 15 8쪽
21 21화 - 지인의 가게를 방문할 땐 빈손으로 가면 안 된다 +10 20.01.09 342 14 7쪽
20 20화 - 초조한 여관 주인은 말 실수를 한다 +3 20.01.08 355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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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 모험가는 여관주인의 호의에 감사한다 +5 19.12.20 543 19 7쪽
11 11화 - 소심한 서장은 부하의 안위를 걱정한다 +5 19.12.18 579 17 7쪽
10 10화 - 자유 용병은 유능한 부하를 원한다 +5 19.12.11 590 23 6쪽
9 9화 - 모험가의 책은 어디서나 인기만점이다 +2 19.12.06 607 2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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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 그의 친구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4 19.11.19 807 3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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