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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디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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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디크
작품등록일 :
2016.04.25 15:56
최근연재일 :
2016.04.25 16:06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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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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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고스트 #1. 붉은 수선화

DUMMY

쏴아아아-

억수같은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이었다.

한여름이라서 그렇다기에는 다소 과하게 들이붓던 비는 마음먹고 가져온 커다란

장우산이 무색하게 멀끔한 정장바지 밑단을 금세 축축하게 만들었다.

흥건하게 고여있는 물웅덩이는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뿌린 소금처럼

물방울을 튕겨댔고 구두까지 축축히 스며들어 회색 양말의 색이

진하게 뒤바뀌었다는것을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다소 무겁지못한 주제로 입을 열기에는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발랄하지 않았다. 하기야 한 사람의 장례식이란 본디 그런것이다.

슬프답시고 어두컴컴한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나와 입을 꾹 다문채 발 밑 2M정도의 깊이에 파묻혀가는 목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이미 죽은 사람인데 조금이라도 밝게 보내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여기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아보이니

괜스레 눈에 띄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내가 알던 그녀는 이런 분위기를 굉장히 싫어하던 사람이었지만, 어쩌겠는가.

그걸 아는 사람은 이곳에 나뿐일텐데.

...아니구나. 아직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굳이 생각해내기는 싫었지만 과거 그녀와의 추억을 일부 공유한, 나와같은 사람이.

바로 나의 하나뿐인 친형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내가 형에게서 그녀를 빼앗았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해서 나서서 부정하지는 않겠다.

내 자신이 생각해봐도 그런 이미지를 지우기는 다소 힘든,

평범하지 못한 연애였으니말이다. 내 눈빛을 읽은건지 눈이 마주친 형이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팩,하니 돌려버린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와버렸지만 그런 나를 흘겨보는 숙모를 발견하곤

다시 입을 다문다. 그래. 그때가 생각난다.







"이게 뭐하자는거죠?"

내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은은한 분위기의

카페와는 대조되는 날카로운 톤의 음성.

다른 사람들이 슬쩍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만 그리 신경쓰지않는지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웅성이는 얘깃소리들에 묻혀 그녀의 씩씩대는 숨소리가 제자리를

잃어간다. 들썩이던 그녀의 호흡이 진정될때쯤 다시금 입을연다.

"죄송합니다. 제가 원하던 자리가 아니네요."

짧막한 한마디에 다시 그녀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7~80개에 달한다는 사람의 얼굴 근육이 단숨에 오그라들어버리자 꽤나 신경쓴듯 보이는

그녀의 화장도 자잘한 틈을 만들어냈지만 그런 표정을 짓는것조차 아깝다는듯 순식간에 어이가 떨어져나간 얼굴로 돌아온 그녀는 앞에 놓여진 반쯤 남은 카페라떼를

한입에 털어넣은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린다.

여자들이 신는 특유의 구두굽이 투명하게 비춰지는 바닥에 부딪히며

또각, 하는 소리를 내지만 그리 크지 않았다.

" ...네. 좋은 만남이었네요. 이제 가셔서 더 좋으신 사람 만나세요... 그딴 개같은 매너는

굳이 들고나오지 마시구요. 알았어요?"

미련없다는듯 자리를 뜨던 그녀가 반쯤 가다말고 다시 돌아와 목구멍에 담아둔듯한

말을 가래침처럼 뱉고 휑하니 카페를 나가버린다.

깊이 내쉬는 한숨이 폐부가 아닌 오므라든 항문에서부터 타고올라오는것처럼

더럽게 느껴졌다. 모처럼의 좋은 기회였는데 이렇게 날려버렸다는데에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낸다.

[네 말대로 그냥 앉자마자 차버렸어. 만족해?

이런 치사한 미션같은걸주는건 반칙아니었나?]

문자하기 무섭게 띠롱,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옆에 뜨는 저장명은 '튤립'.

매혹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기에 누군가는 애인이냐고들 물어보지만 그녀와 나의

관계는 육체적인 우정을 나누는 다소 무미건조하다 할 수 있는 사이에 불과했다.

지금도 서로의 미션을 클리어하지못하면 일주일간 금지, 라는 가혹한 벌칙을 매단채

이뤄지는 내기가 오가는 중인 단호한, 육체적인 소울 프렌드.

[아구, 잘했어. 오늘은 조금 빨리 만나줘야겠네. 얼른 일 끝내고 퇴근할게.]

마치 나를 애취급하는듯한 말투에 피식,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하지만 우리의 내기는 언제나 '쌍방'이다.

[무슨 소리야? 내가 안만나줄건데. 아직 내 미션은 클리어하지 못했잖아.]

[...치. 그걸 또 기억하고있었던거야? 알았으니까 좀 기다려봐. 나 아직 회사란말이야.]

회사라는 그녀의 말에 은밀한 쾌감이 등줄을 타고 흐른다. 내가 준 '미션'을 수행하기에 회사란 더없이 적절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내가 준 미션이니 내 생각에 따라 움직여줘야 더 맞는것 아니겠는가?

[회사인게 뭐 어떻다는거야? 내가 준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미션이잖아. 물론 이목이 적은곳에서 해야하긴 하겠지만...]

메시지에 읽음표시가 떴는데도 한참동안 답장을 못하는걸 보니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렇게 가끔 놀려줄때마다 보여주는 귀여운 반응이 여전히 나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덕분에 방금 기분을 망쳤던것도 가뿐히 날려버리고

오로지 그녀를 곤란하게 만드는데에 집중하게된다.

[왜? 못하겠어? 그럼 너도 마찬가지로 일주일동안 금지라고. 괜찮겠어?]

마치 재촉하는듯한 어투로 재차 메시지를 보내고는 답장을 기다린다.

보내자마자 읽음이 뜨는것을 보니 계속해서 답장을 고민하는 중인 것이리라.

7~8분쯤 흘렀다고 생각했을때쯤 그녀의 답장이 화면에 표시된다.

[...기다려봐. 지금 바로 하고올테니까. 하여간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거야?

온통 살색밖에 없는거아냐?]

퉁명스레 내뱉는듯한 답장이었지만 난 이걸로 족하다. 말만 이렇게 해놓고

여전히 붉은 얼굴을 어찌어찌 가리려 애쓰며 계단이든 화장실이든 눈에 띄지 않는곳을

찾아다니고 있을 그녀가 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훨씬 대담한 답장이 날아왔다.

확인하자마자 눈을 크게 뜨며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목울대를 매만지며 답신을 보냈다.

[뭐야...훨씬 야한 여자였잖아? 이렇게 훌륭하게 해줄거면서 내숭은 뭐하러 떨어댄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음탕해빠졌다고, 당신.]

기대치를 수도 없이 상회하는 결과물에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않고 문자를 보냈지만

그녀의 답은 짧게 돌아왔다.

[시끄러. 너 때문에 그런거니까 더 빨리볼거야. 저녁 6시반에 건대입구에서 만나.

카페에서 기다려.]

"푸흐...까탈스럽기는."

토라진 마틸다의 중얼거림같은 귀여운 반응이 오늘 밤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형이 애인과 300일째되는 날이라던데, 잘되가고 있으려나.

심심하던차에 잘됬다 싶어 전화를 한번 걸어본다.

언제나 바뀌지않는 지루한 컬러링이 귓가를 타고 흘러들어온다.

'아끼던 펜을 꺼내, 잠깐 생각하다 글을 써내려가...'

"...여보세요?"

특유의 낮은듯 안낮은듯한 굵직한 톤의 그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가라앉아있다.

보통 이럴때면 애인이랑 뭔가 틀어졌거나하는 좋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뭐야, 기념일 챙긴다는 사람이 목소리가 왜그래? 설마 못나온대?"

"응...아, 진짜. 이벤트까지 준비해놨는데 무슨 회사가 일을 그렇게 시켜먹는거야. 그것도 황금같은 금요일에! 평소에는 잘만 보내주고 왜 이런 중요한날에는 발목을 잡는건지...

짜증 확난다."

얼씨구 그래. 굳이 더 묻지않아도 목소리에서 깊은 빡침이 뚝뚝 떨어지는게 느껴진다.

"야, 오늘 술이나 한잔하자. 진짜 도저히 못견디겠다."

"응? 무슨소리야, 당연히 나도 약속있지. 황금같은 주말인데. 우리사이에 끈적끈적한

우애라도 바란거야 설마?"

능청스러운 나의 대답에 형은 신경질적으로 됐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모처럼의 애틋한 안부전화가 순식간에 신경 돋구는 놀림거리가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꼭 이 날을 기억해뒀다가 기념일에 차인 남자라고 두고두고 놀려줄거라

마음먹고는 그녀와의 약속장소인 건대입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 시각은 오후 두시.

지금가도 세시 반이 조금 넘어 도착하지만 남은 시간은

근처의 피시방에서 때울까싶어 먼저 가있기로했다.

괜히 늦었다가 지난번처럼 얼굴 몇초 보고 헤어지는 불상사를

다시 겪기는 싫으니 말이다.





** ** **





어쩌면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일수도 있겠다. 세미콜론 하나하나에 신경쓰는 신경질적인 추리소설작가 취미를 가진 애인과의 약속도 깔끔하게 무산시키고,

기분좋게 나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소울프렌드라고 볼 수 있는 사람과 보내는

달콤한 휴일의 전야제이기 때문이다.

'사이코인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헤어질때가 됬어. 아니, 이미 지난건가? 어쩔때보면

무섭기까지하다니까.'

문득 들었던 애인에 대한 잡념을 털어버리곤 다시 오늘밤을 향한 기대감에

촉촉하게 젖어든다. 감상적으로 말이다.

무슨 바람이 분건지 팀장의 바가지 긁는소리도 어제보다 더 잦아든 하루였고,

오후만되면 노도처럼 밀려들던 업무와 발주신청서류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항상 속 썩이던 후배는 갑작스런 병가에, 다른 팀에서 보내준 지원인력은 몸져누운

누구보다 훨씬 유능했고 덕분에 오늘 할당량은 일찌감치 끝마쳐서 퇴근만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기분도 좋겠다, 대담하게 소울프렌드에게 미션성공 문자도 보내주고.

물론 퇴근은 언제나 칼같이 시켜주는 회사였지만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는 기분이란

평소의 그것과는 확연히 색달랐다.

시계의 굵직한 시침이 5시를 가리키는 순간, 땡 하고 입으로 시계를 따라하듯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순간 팀장이 한 통의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엄습해오는 불길한 기운... 살금살금 사무실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팀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내 이름을 나지막히 부른다.

"...연화씨?"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이름이 불리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깨를 들썩여버렸다.

나쁜짓을 난생 처음해보다가 들켜버린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로

그녀를 천천히 돌아보며 대답한다.

"네, 왜..부르세요, 이쁜 팀장님?"

"헛수작부리지말고 다시 자리가서 앉아. 서른 다섯 아줌마한테 씨알이나 먹힐거같아?

지금 바로 일본 거래처에서 급하게 발주서만 보낸다니까 그거만 받아서

등록처리 해놓고가. 자재요청이랑 공장에 주문넣는건 나중에 해도되는거라니까 후딱

해치우고 같이 기분좋게 퇴근하자?"

아아,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그보다 당장 처리해도 한시간은 족히 걸리는

일일텐데 지금 시작해서 끝내고나면

내 약속시간은 어쩐단말인가? 게다가 늦었다는걸 빌미로 이것저것 시켜댈 그녀석을

생각하면 한숨만 푹푹 나온다.

'...아냐. 지금 이 컨디션과 저 멤버라면 할 수 있어!'

하지만, 불타는 의지로! 타오르는 청춘으로! 기필코 저 일을 30분안에 끝내놓고 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기운차게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 전원을 눌러 부팅시킨다.





** ** **





"...저런 개새끼가!!"

콰앙.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깨부술듯이 두들긴 한 남자의 주먹이 으스러질듯이 살갗이

찢어진채 검붉은 피를 콸콸 흘려댄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듯 모텔을 향해 걸어들어가는 한 커플을 보며

애꿎은 이만 부득부득 갈아대고 있을 뿐이다.

틀림없다. 수백번이고 봐온 그녀의 뒷모습이었고, 태어날때부터 봐온

재수없는 저 뒤통수.

"...감히 내 동생이랑 바람을 피워?"

이미 그의 머릿속은 여자를 향한 분노와 배신감이 절절하게 넘쳐흘러 새카만

양잿물처럼 뿌옇게 물들여진듯 보였다.

그 누구보다도 유별나게 그녀를 사랑해주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였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건 스토킹, 혹은 광적인 집착이라고밖에 판단할 수 없었다.

그녀의 핸드폰에 몰래 깔아놓는 사용기록 추적 어플리케이션이나 커플앱을 위장한 위치추적 어플, 선물을 가장한 cctv겸용 손목시계까지.

게다가 그녀의 집에는 곳곳에 폐쇠회로TV가 설치되어있었고 매일매일 빠짐없이

그 녹화본을 4배속으로 돌려보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추리 소설을 취미로 쓰는 그였기에 상상력은 무궁무진했고 그 상상력은 그녀의 평소

행실을 의심하는데에 일조하기까지했다.

회사일로 늦을때면 늘 다른 남자와 몸을 섞어대며 자신을 비하하고 있을거라 생각했고

회사에 출근해서조차 다른 남자를 꼬셔 아무데서나 불륜을 저지르는,

말그대로 소설 속 악역 여인처럼 그려졌다.

이쯤되면 불신지옥에 빠졌거나 피해망상이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었지만

그의 판단으로는 이건 그저 자신이 참고 넘겨주는 비밀스런 일과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자신의 연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하나뿐인 남동생과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해버린것이다.

분노한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 추리 소설 동아리의 인맥을 총동원해 완벽한 계획을

마련했고, 빈틈없이 짜여진 구획안에 놓인 사거리의 어느 4층 건물에서

여유롭게 레몬티를 즐기며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승용차에 몸을 싣는 중년인이 자신을 향해 수신호를 보내는걸 보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역시 이정도는 해줘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부웅-



엔진에 시동이 들어가는 소리가 달짝지근하게 남자의 온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아아-...

새빨갛게 물들여져 허리가 반으로 뒤꺾이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 내장을 토해내는

그녀의 모습은 대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그녀의 살점이 찢겨나가는 모습이 한시라도 빨리 보고싶다.

두 남녀가 길을 무사히 건너려는 직전이 보인다.

남자는 손가락을 움직여 신호를 보낸다.

붉은 승용차는 바퀴를 힘주어 회전시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작가의말

12pt로 읽는 것을 권장해드립니다.

모든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작성 중 19금 처리해야할 부분이있어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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