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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萬若)

아카데미 인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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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온
작품등록일 :
2021.05.19 18:56
최근연재일 :
2021.05.25 23:53
연재수 :
3 회
조회수 :
174
추천수 :
12
글자수 :
11,155

작성
21.05.2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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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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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뭐야, 내 몸 돌려줘요 (1)

DUMMY

“선배!”


······.


“에반 선배?”

“으으음······.”


몸이 가볍게 흔들린다.

흐릿한 정신이 말끔해진다.

그와 동시에 귀를 간질이는 여린 목소리가 느껴졌다.

이마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골이야······.”

“아, 정신이 들었구나!”


그렇게 눈을 뜨자.


“괜찮아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응시하는 강아지 상의 금발 여성이 보였다.


“와, 쉬뱅.”


놀라서 욕이 튀어나와버렸다.


“쉬뱅?”


손 한 뼘 정도의 공간도 채 나지 않을 만큼 얼굴을 가까이 하고 있는 그녀.

어째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날 선배라 부르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녀는 물어볼 틈도 주지 않았다.


“쉬뱅이 뭐예요?”

“네?”

“쉬뱅이 뭐냐구요.”

“아니, 놀라서 잘못 말했어요.”

“흐응, 갑자기 웬 존대? 몸 괜찮아졌으면 빨리 일어나기나 해요, 선배.”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홀린 듯이 그 손을 잡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


‘나 차에 치이지 않았나?’


교통사고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그 장면이 다시 한 번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못이 박힌 것처럼 빠릿하게 기억난다.

낮부터 졸음 운전을 하는 미친놈.

그 새끼 때문에 통증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후우, 그 미친 새끼.’


차와 부딪히며 뼈가 우그러지고 아스팔트에 쓸리며 살이 찢어지는 고통.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잃었던 거 같지만.

아무튼.

사람이 교통사고가 났으면 당연히 병원에 있어야하는 게 아닌가.


‘근데 여긴 어디지?’


둘러보면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방이었다.

침대가 있긴 했는데, 잡동사니들도 있어서 병실처럼 보이진 않았다. 흔한 자취방 같은 느낌이 강했다.


“아직 아파요?”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니,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내 이마에 손을 대며 물었다.

갑작스런 접촉에 조금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정면으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몸이 욱신거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벼워진 듯 했다.


“아프진 않아요.”


하지만 걱정을 해주는 건지 막무가내인지 모를 그녀는 내 대답을 가볍게 넘겨버렸다.


“열은 이제 안 나는데?”

“······?”

“혹시 머리가 지끈거리세요?”

“아뇨. 아픈 건 아니라니까요?”

“이상하다······.”

“저기요. 물어봤으면 사람 말 좀 들어요.”


나는 손발을 흔들며 멀쩡함을 피력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자기 할 말만 중얼거렸다.


“에반 선배, 최근에 몸이 안좋다거나 하셨어요?”

“전 에반이 아니라 강준혁인데요?”

“뭐라는 거야 진짜. 조금만 기다려봐요.”


그렇게 금발녀는 의사를 불러온다며 자리를 떴다.

결국 나는 방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뭔데 이거.’


여긴 어디길래. 내가 어떻게 왔길래. 이름 모를 금발 미녀가 간병을 해주고 있지?

몰래카메라인가?


‘아니,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상식적으로 누가 교통사고 당한 사람한테 몰카를 하겠나.

아무리 게임 상에서 서로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동방예의지국이라 해도 그건 좀 쌉에바였다.

게다가 몰카일 때 나올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게 정말 몰카였다면, 그 여자는 아마도 충무로 국민배우였을 것이다.

아님 말고.


“흐음.”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 같은 집돌이가 언제 그런 미녀한테 걱정을 받아보겠어.

여기는 병원이고, 조금 색다른 식으로 운영되는 곳일 뿐이다.

그 금발녀도 의사를 불러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곳이 병원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지.

다시 생각해보니 나쁘지만은 않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던 그때.

기막힌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아, 과제!’


내 청춘을 갖다 바쳐야만 하는 악마같은 존재.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다만, 기한이 하루 남은 과제였으니 아마 지금쯤 펑크가 났을 것이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번 학기 학점은 조졌구나.

이럴 거면 그냥 제사 지내러 가는 건데. 제사도 못 지내고, 과제도 못 끝내고.


‘어휴, 내 인생이 뭐 그렇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인생.

의도치 않게 사고가 났으니 불가피한 일이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인 채 휴대폰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리려 했다.

말도 없이 강의를 불참해버렸으니 늦게나마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려고.

그런데.


“······응?”


주머니가 없었다.

당황해서 입은 옷을 확인했다. 병실 옷도 아니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옷도 아니었다.

비싸보이는 츄리닝이었다.


“뭐야?”


다급히 주변을 확인했다.

하지만 휴대폰은 물론이고 같이 챙겼던 담배갑과 지갑마저 온데간데 없었다.

병원이라면 휴대하기 용이한 물품은 주변에 놔둬줄 텐데.

설마 차에 치였을 때 떨궜나?

아니면 그 금발녀가 가져갔나?

이런 썅.


“하아, 진짜 왜 이러냐.”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뭐가 됐든지 그 금발녀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려야겠다.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오게 된 건지는 제대로 설명을 들어야겠으니.


그렇게 그녀를 기다릴 겸 방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벽에는 목검이 세워져있었고. 바닥에는 잡동사니들과 검은색 악기상자 같은 게 떨어져있었다.

구석에 놓여진 선반에는 메달이나 상장 같은 게 올려져 있었으며, 그 옆에는 고풍스러운 전신 거울도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병실은 아니었다. 누군가 숙식을 해결하는 곳 같은 느낌.


‘병원이 아닌가? 가만 보니 기숙사 같기도.’


나는 도대체 무슨 상이 이렇게 많나 싶어, 상장과 메달이 수없이 줄지어있는 선반에 다가갔다.

그리고 조금 훑어봤는데······.


[최연소 검려(劍挔) 상]

[최연소 검랑(劍狼) 상]

[제143회 제국종합검술대회 3위]

[제144회 제국종합검술대회 1위]

[무제검술학(武帝劍術學) 상]

[제145회 제국종합검술대회 1위]

[최연소 검호(劍虎) 상]

[아르비온 언월상]

[제146회 제국종합검술대회 1위]

[제147회 제국종합검술대회 1위]

.

.

.


아무래도 이 방의 주인은 개쩌는 경력의 소유자인 듯하다.

대부분 칼이나 무술에 관련된 상인 것 같은데. 벽에 세워진 목검도 그렇고, 방주인은 검도를 하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함부로 나대다간 쥐어터질 게 분명했다.

그러다 선반 구석 쪽에 눈에 띄는 물건이 보였다. 자연스레 팔을 뻗어 손에 쥐었다.


‘이건 누구지?’


금장식 테두리의 액자.

그 속에 담긴 선홍빛 머릿결을 가진 청년.

흔히 보이는 아이돌보다도 잘생겨서 나와 연이 없을 것만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그가 익숙했다.


‘아는 사람인가?’


에이 시펄.

알긴 뭘 알아.

아이돌 닮아서 그런 거겠지.

억지로 떠올리는 것을 포기했다. TV 같은 데서 봤을지도 모른다. 넓은 선반을 꽉 채울 정도로 상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나와 비교되는 남자였다.

한숨을 내쉬며 옆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못생김이 여전한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어?”


그런데 왜.


“뭐야.”


아까 본 액자 속 청년이.


“뭔데 이거.”


거울에 비치는 걸까.


-쾅! 와장창!


당황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라이트펀치를 날렸다.

거울이 깨지는 경쾌한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이 돌아왔다.

고통도 같이 왔다.


“어악, 존나 아파.”


그러고 보니 오늘, 뭔가 많이 이상했다.

조금 더 굵어진 목소리.

평소답지 않게 가벼운 몸.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로 높아진 시야.

돈 아깝다고 사본 적도 없는 고급 트레이닝복.

날 에반 선배라고 부르는 이름 모를 여자.

방금 있었던 상황을 돌이켜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나와 맞는 게 없었다.


‘대체 무슨······.’


몸을 더듬거렸다. 돌 같이 단단한 근육이 내가 원하는 대로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츄리닝을 슬쩍 들춰보자, 평생동안 가져본 적 없는 왕짜 복근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뜨헉.”


오진다.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밖에 안하는 내가 조각 같은 몸매라니.


“응?”


프로틴이 절실해 보이는 몸을 조금 더 살펴보니, 예전에 칼에 베여서 생긴 흉터가 사라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없어?”


혹시 몰라 어깨 부분에 손을 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에 입은 화상 때문에 튀어나온 돌기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없······ 어?”


그럼 설마······!

인상을 찡그린 채 바지의 거시기 부분을 쬐끔 벌렸다.

그리고.

뇌를 강타하는 충격과 공포와 경악!


“······오, 미친.”


내 평생의 수치.

허벅지부터 시작해 엉덩이까지 이어진 큼지막한 몽고반점이 씻은 듯이 없어진 것이다.

오히려 애먼 것의 크기가 더 커진 것 같았다.


“허······.”


뭔가 이상하다.

아니 이상한 건 진즉에 눈치챘다.

다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갑작스럽게 벌어지니 사고가 따라가질 못하는 것 뿐이었다.


······.


볼을 힘껏 꼬집어보았다.

찝힌 고통이 생생했다.

꿈은 아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진실이라면.


지금의 나는.


‘나’가 아니었다.


“뭐야 시발······.”


내 몸 돌려줘요.




* * *




“아픈 데 없는 거 맞죠?”


세리아.

내가 에반의 몸으로 깨어나자마자 눈을 마주친 첫 번째 사람.

이름을 물어보진 않았지만, 데려온 의사와 서로 대화하고 있을 때 잠깐 엿들었다.


-으음, 멀쩡한디?

-에? 그럴 리가요! 갑자기 저한테 존댓말을 쓴다니까요? 머리 다친 거 아니에요?

-세리아.

-네?

-그 나불대는 입 좀 닫아보그라.


확실히 그녀는 좀 말이 많긴 했다.

그리고 지 말만 했다.


“안 아파. 걱정 붙들어 매. 아까는 장난친 거였어.”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익숙치 않았지만, 지금 존대를 해서 괜한 의심을 사는 것보단 나았다.

다행히도 세리아는 내 어색한 말투를 지적하지 않았다.


“후······. 아무튼 조심하세요. 오늘 갑자기 쓰러지셔서 놀랐어요.”

“그래?”

“네. 교수님도 걱정하시더라구요. 선배는······ 유망하니까요. 건강에 무슨 이상 있는 거 아니냐고 의사한테 거의 멱살 잡듯이 물어보셨어요.”


유망하다는 말.

처음 들었음에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 보았던 트로피들 내용을 보니, 척 보기에도 대단한 사람 같기는 했다.

그보다 교수님이라니?

그러고 보니, 세리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계속 선배라 부르고 있었다.

설마 지금 나는 대학생 신분인 건가?


“아, 오늘 나 들어야하는 강의가 있던가?”


슬쩍 운을 띄워봤다.

그러자 세리아가 콧대를 세우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흐흥, 선배도 이런 구석이 있었네요. 이럴 줄 알고 선배 시간표도 외워뒀었다구요.”


아니, 보통은 안 외우지.

에반 이 새끼······ 잘생겨서 여자한테 인기가 많았구나.


“그래?”

“네, 한 시간 정도 뒤에 가츠웬 교수님의 무기학이네요.”

“그렇구나.”

“가시려구요? 오늘은 쉬시는 게 좋지 않아요?”


세리아는 눈썹을 말아올렸다. 걱정된다는 표정이었다.

생각해보니 사람 많은 곳에 굳이 가봤자 들킬 가능성만 농후해진다.

그래.

안 가야지.


“그러게, 오늘은 좀 피곤하네. 방에서 쉬려고.”

“그쵸? 그게 좋아 보여요. 선배 심심하실 테니까 옆에서 말동무나 해드릴게요. 어차피 남은 강의도 없으니까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나 오늘 좀 피곤해서 자려고.”

“음, 그래요? 알겠어요.”


천만다행이었다.

말 많은 사람은 대하기 힘들다. 더불어 내가 에반이 아니라는 걸 들킬지도 모른다.

그보다 휴대폰 같은 건 없나?


“세리아, 혹시 휴대폰 있어?”

“······네?”


반응을 보니 없는 게 확실했다.


“응,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잘 가.”


나는 손을 살짝 흔들어보였다.

세리아는 멈칫하고 눈을 굴리다 금방 웃어넘겼다.


“푹 쉬어요, 선배.”


-끼익, 철컥.


문이 닫히자 방안이 부스스 어두워진다.

말 많은 꾀꼬리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나는 인위적으로 찾아온 고요한 밤에 휘말려, 천천히 침대로 돌아가 몸을 누였다.


그리고······.


“시발.”


진짜로 좃됐음을 감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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