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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넨서 님의 서재입니다.

성악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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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넨서
작품등록일 :
2019.10.16 00:25
최근연재일 :
2019.10.30 08:20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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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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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수 :
29,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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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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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성악의 신 - 001화

DUMMY

완은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성악에 깊게 몰두하기 시작했다. 성악을 대표하는 나라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라는 기본적인 지식도 알게 되었다. 강렬한 태양과 열정이 느껴지는 이탈리아, 서정적이며 감미롭고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독일, 이지적이면서도 음정에서 색채를 느낄 수 있는 프랑스. 같은 유럽이었지만 음악의 성격은 무척이나 달랐다.


허나, 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빌헬름이 준 명함에 있는 번호는 독일 유선 번호였기 때문이었다. 완이 독일로 유학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의 가르침을 받기 어려웠다.


“무슨 소리냐. 대뜸 성악이라니.”


완의 아버지, 김기현은 숟가락을 들다가 마저 내려놓았다. 기껏 대학교에 입학하고 잘 다니는 줄 알았더니 20살이나 된 아들 입에서 성악이라는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요. 아버지가 늘 그러셨잖아요. 돈을 좇지 말고 꿈을 좇으라고, 그러다 보면 언젠간 돈은 다 따라오게 되어있다고.”


기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자신이 늘 완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빠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냐?”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랐지만,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준 아들.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뒷바라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기현의 월급으로 음악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완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대학 입학할 때까지 사교육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었다. 성적표를 받고 때때로 불안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공부에 아버지의 피와 땀이 섞인 소중한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요. 도와주지 않으셔도 돼요. 단지, 아버지께 허락을 구한 거예요.”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음악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다. 유학을 다녀온 후, 귀국해서 대학 강사 자리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들이 그런 무모한 길에 뛰어든다고 선언하는데 부모 입장에서 이를 부추길 수 없는 노릇이다.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제가 아버지께 이렇게 무언가 하고 싶어서 말씀드리는 건 처음이에요. 아버지도 미술 못 하신 거 후회하시잖아요.”


지금이야 나이 팔십이 넘은 노모, 완, 그리고 작은딸 혜연이 유일한 가족이자 기현의 모든 것이지만. 그도 가장 이전에 한때 꿈이 있던 소년이었다.

기현은 어릴 적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꾸었었다. 실제로 그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만화방을 하시던 아버지의 가게에서 그림을 베끼며 화가가 될 날을 꿈꿨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기현은 미술부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아버지께 알렸다가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나한테 죽든지, 미술부에서 나가든지 하나만 골라라.’


그림쟁이는 굶어 죽는다는 이유였다. 당대는 동아리 활동할 때도 한 학년 차이라도 위계질서가 뚜렷했다. 동아리에서 탈퇴하기 위해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어쩌겠는가, 아버지는 평생 볼 사이이고 고등학교 선배들은 몇 년만 보면 되거늘. 기현은 동아리 선배들에게 팔뚝보다 두꺼운 각목으로 스무 대나 맞아야 했었다.

자신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완이 미웠지만, 그때 꿈을 좇지 않았던 것이 새삼 아쉬웠다.

미술을 했더라면, 사랑스러운 완도, 혜연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완은 상황이 달랐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래. 해 봐.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라. 내가 음악 쪽은 문외한이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감사합니다! 돈은 제가 알아서 마련해볼게요.”

“학교는 휴학하는 거냐?”

“네.”

“목표는 뭔데?”

“일단은 한국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에 입학하는 겁니다.”


빌헬름을 만나기 위해 독일로 갈 방법은 단 한 가지. 지금 상황에선 쉽진 않겠지만,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허락을 얻은 완은 성악 선생님을 찾기 시작했다.


#


완이 성악 선생님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본 곳은 성가대였다. 얼핏 성가대 지휘자가 성악을 전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긴 예배를 마치고 오후 성가대 연습까지 끝났다. 다른 대원들은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지만, 완은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망설이더니, 주섬주섬 악보를 챙기고 있는 승현에게 다가가는 완.


“지휘자 선생님!”

“어, 그래. 완아. 무슨 일이니?”

“성악을 시작하고 싶어서요.”

“취미로 하는 거니?”


지휘자 사례비로는 턱도 없는 생활비에 고민하던 승현. 완의 질문에 취미 레슨으로 돈이라도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요. 입시 레슨을 받고 싶어서요. 혹시 괜찮은 선생님 알고 계실까요?”

“입시? 갑자기 왜!? 대학교 잘 다니고 있는 거 아니었어?”

“맞아요.”


승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완이 다니는 대학이 취직 보증수표를 주는 곳은 아니었지만, 공부 좀 했다라는 인상을 주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성악을 시작하느니 무난하게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 안정적이었다.


“글쎄. 왜 성악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걱정되는구나. 이미 잘살고 있는데 왜 어려운 길을 택하려는 거니?”

“성악이라는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요. 조금 진부하게 들리시죠?”


완이 덧붙인 대로 진부한 대답이긴 했지만, 진심이었다. 빌헬름의 겨울 나그네가 머릿속에서 떠나갈 생각을 않았다.


“그래, 그럼 일단 나하고 간단한 테스트 좀 해볼까?”

“어떤, 테스트요?”

“내가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판단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가방을 마저 정리하더니, 피아노에 앉는 승현.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의 커버를 열었다.

C major 스케일로 피아노 선율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자, ‘아’ 발성으로 한 번 발성 해볼래?”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총 9번의 ‘아’.

승현은 아직 판단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흠, 음정이 너무 낮나? 목소리의 빛깔이 안 들리지 않는구나. 네가 테너였었나? 왜 여태까지 베이스에 있었던 거지?”


이번엔 손을 조금 옮기더니 F major 코드를 누르고 스케일을 쳐주었다.


“자, 시작.”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반음계씩 올리며 계속되는 발성. F#major, G major, G#major, A major, A#major. 어느덧 B major까지 올라왔다. 보통 남성이라면 이곳에서 Passaggio에 걸리게 된다. 하지만 완의 미성은 거침없이 계속 흘러나왔다. 어느덧 D4 major 스케일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그.

승현은 그가 G와 Ab 사이 음정에서 Passaggio 구간에 맞닥뜨린다는 발견했다.


‘턱.’


대답 없이 피아노 뚜껑을 덮는 승현. 완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크기로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올바르게 냈는지 따위는 알 턱이 없었다. 말없이 조용히 깊은 생각에 빠진 승현을 바라보자, 조금 불안하기 시작했다.


“완아.”

“네, 선생님.”

“너는 성악하는 게 낫겠다.”

“네?”

“넌 그냥 타고 났어.”


승현은 완의 목소리에 숨겨진 빛깔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음역 대에서 완의 목소리 빛깔은 흡사,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거목이 될 재능을 손댔다가 망쳐 버리진 않을까, 겁까지 날 정도였다. 레슨비 몇 푼 벌겠다고 양심을 팔 순 없었다.


“완아, 당장 시작하자, 일분일초가 아깝다. 천부적인 재능이야.”

“네?”

“성악, 배운 적 한 번도 없지?”

“없죠.”


승현에게 떠오른 사람은 자신의 스승 구성환이었다.

완에게 자신이 대학생 시절 가르침을 받은 선생님이라며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구성환이라는 선생님이셔, 내 이름 말씀드리면 아실 거야.”


완은 당황스러웠다. 천부적인 재능이라니.


“아직, 늦지 않았어. 원래 성악은 조금 늦게 시작하기도 하니까.”


남성의 변성기가 고등학교 전후로 나타나기 때문에 입시를 늦게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직 늦지 않은 것이다.

승현이 소개해준 구성환은 대한민국의 1세대 성악가. 돌연 얼마 전 은퇴를 선언하며 음악계에서 종적을 감추었고, 자신의 연희동 자택에서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


지이잉-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박승현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문자 남깁니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내고 있다.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고, 정말 엄청난 아이를 찾았습니다. 제가 가르쳤다 망쳐 버릴까 걱정돼 선생님께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아직도 제자 받고 계시지요?


성환은 오랜만에 온 승현의 연락에 기뻤지만, 그가 하는 말이 달갑지는 않았다. 이제는 후임 양성이니, 음악계 발전이니 거창한 목표에 집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승현의 문자에 굳이 답장하지 않았다.


뒤이어 성환의 아내 미정이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

고민이 가득한 성환을 발견하곤 걱정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글쎄, 승현이가 제자를 받냐고 묻는구먼.”

“승현이라면 그때 그 쪼그마하던 걔 말하는 거예요?”

“그렇지, 그 쪼그마하던 애가 벌써 서른다섯이야. 내가 승현이를 처음 거뒀을 때도 서른다섯이었는데.”


성환은 어엿한 어른이 된 승현을 떠올리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젊고 힘 있던 청년은 홀연 늙고 나약한 노인으로 변해있었다. 마음이 답답한지, 창밖을 바라보는 성환.


“근데, 웬 제자예요.”

“그러니까 말이야. 이제 남은 생은 조금 조용히 살고 싶어.”


미정도 성환의 말에 백번 공감하고 있었다. 유럽 어디든 그를 챙기다 보니 할머니가 다 돼 있었으니까. 어렴풋한 젊은 날을 회상하던 둘. 다시 한번 성환의 핸드폰이 요동쳤다.


지이잉-


“문자 온 것 같은데요?”

“나도 알고 있어.”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발견한 미정이 말했다. 성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핸드폰을 켰다.


- 안녕하세요. 선생님, 박승현 선생님께 소개받은 김 완이라고 전화 통화 가능하실까요?


“왜요? 누구예요?”

“후···.”


성환의 이마 주름이 짙어졌다.


***


만약, 승현의 부탁이 아니라면 성환은 완을 집에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자이면서도 아들처럼 자신을 잘 따랐던 승현. 오래전 성환이 라 스칼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공연하던 시점, 한국에 있던 아내 미정이 교통사고가 난적이 있었다.

성환은 연주 일정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 승현은 수업까지 빼가며 미정을 간호했다. 더군다나, 승현이 극구 완을 한번 보기만 해달라고 간청까지 했다.


“후, 어쩔 수 없지.”


띵동-


거대한 주택, 잔디가 깔린 대문 앞에 완이 서 있었다.


“안 계신가? 분명 여기로 오라고 하셨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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