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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 님의 서재입니다.

신수들과 무인도에서 힐링합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하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2.14 17:59
최근연재일 :
2024.03.19 23:50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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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155
추천수 :
4,208
글자수 :
203,718

작성
24.02.2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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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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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글자
11쪽

은혜 갚는 학 (2)

DUMMY

골드를 설득하는 일은 언제나처럼 진행되었다.


“또 나를 부려먹는겐가! 또!”

“부려먹는다니, 부탁하는 거야 골드야. 골드 왕족의 장손인 골드 네 솜씨면 베틀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잖아~”

“나도 매일 작업하는 건 힘들단 말일세.”

“...스파크 쉘 지금 한 가득 잡아놨거든? 이걸로 국물 우려내면 아주 진~할 거야. 오늘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겠지.”

“오.”


버럭 버럭 화를 내다가도 내 말에 바로 표정이 바뀌며 손을 비비는 골드. 작은 혀가 낼름, 하고 그 귀여운 코를 핥으며 입맛도 다셔준다.


“하지만 나도 요즘 요리하는게 조금 힘들어지는 거 같네.”

“에헤이, 힘들다고 못한다는 건 아니지 않나.”

“그치?”

“그럼!”


이렇게 설득은 언제나처럼 성공했다. 역시 우리 골드가 최고야. 이번에 조개 국물 옥수수 죽 만들면 너부터 줄게.

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베틀을 만드는 작업이 생각보다 그리 쉽게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으음, 아니에요. 바디는 원통이 아닙니다.”

“방금 자네가 둥글게 만들라 하지 않았나?”

“둥글게, 그리고 마치 상현달처럼 길게 만들라고 했지요.”

“그러면 원통을 반으로 자른 모양이군.”

“그건 아닙니다. 그러니깐-....”


골드가 베틀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백학에게 설명받으라고 했더니, 작업하면서 둘이 쉬지 않고 투닥댔다.


“에에잇, 설명을 좀 쉽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이보다 더 어찌 쉽게 하라는 건가요? 이걸 알아듣지 못하는게 더 신기합니다만.”

“이보게, 인간! 이 신학이 하는 말 좀 해석해주게!”

“임호인씨! 이 조그마한 분에게 제 설명 좀 풀어주세요!”


그 싸움 사이에 낀 것은 다름 아닌 나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 초승달을 두 개 합친 느낌으로 만들라는 거 같은데... 여기 바닥에 그려줄게. 백학씨, 이런 모양 말하는 거 맞죠?”

“예에, 그겁니다.”

“이런 거면 이런 거라고 진즉 잘 설명해주지 그랬나!”

“저는 최대한 쉽게 설명해드렸는데요?”


친하게 지내면 좋겠는데 처음부터 이러면 어쩌니.


“에헤이, 됐어 됐어. 거기까지 해. 둘이 이번으로 13번째 싸움이거든? 좀 싸우지 말고 서로 배려하면서 작업 좀 하자.”

“그걸 다 세고 있었나! 대범하지 못하게!”

“그걸 일일히 세고 계셨나요? 가슴 속에 원한을 하나하나 새겨넣어봤자 다치는 건 본인의 가슴 뿐이시랍니다?”


...사실은 둘이 친한 거지? 싸우는 척 하면서 나 괴롭히는 거지?


“에헤이, 됐다. 자 일단 밥이나 먹고 계속 합시다.”


나는 막 만들어낸 조개국물 옥수수죽을 골드 앞에 내려주었다.


“오오, 드디어 요리가 다 됐나!”


감탄하며 손을 슥슥 비비는 골드. 그러더니 품 속에서 짠 하고 조그마한 나무 숟가락까지 꺼내들었다.

내 새끼 손가락 반마디 길이만한 골드 전용 숟가락이었다.


“네 숟가락도 만들었네?”

“자네가 잘 쓰는 거 보고 흉내를 내봤네. 얼마나 편할지 궁금하군.”


그렇게 태도부터 자세까지 완벽하게 준비한 골드는 신중하게 죽을 한 그릇 떠먹었다.


“우물우물-....”


입에 죽을 넣고 눈까지 감은 뒤 오물거리며 맛을 보는 골드.


“어때?”


내 질문에 골드가 눈을 퍼뜩 뜨고는 외쳤다.


“최고일세! 국물 맛이 몹시 농후해졌군! 도, 도대체 이 짭쪼름한 듯한 그윽한 맛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아, 모르는가. 그것은 감칠맛이라고 하는 것이다.

강가에서는 조개를 한 마리만 끓였기에 제대로 우려내지 못한 맛이지.


“마음에 들어하니 나도 기쁘네. 자, 애들아 다 먹자!”

“컹컹!”


내 말에 로보를 필두로 애들이 ‘마침내!’라고 외쳤다.

조개국물 만들면서 맛있는 냄새 풀풀 풍겼는데도, 골드에게 먼저 줘야한다는 말에 얌전히 기다리던 애들이다.


“.......”


그렇게 애들에게 다 옥수수 죽을 퍼준 다음, 백학에게도 그릇을 내밀려던 나는 흠칫했다.


‘백학한테 이 그릇을 줘도 괜찮나?’


지금까지 골드에게 부탁하여 만들어놓은 그릇은 다 평범한 그릇들 뿐이었다. 원반 모양에 펑퍼짐한 모양 말이다.

나나 원래 식구들에게는 이 그릇으로 충분했다. 나 빼고는 다 입 대로 먹으니깐 납작해야만 했지.

하지만 백학에게는 이 그릇이 불편할 지도 모른다.

이솝 우화에도 나오지 않는가? 여우가 두루미를 대접한답시고 납작한 그릇에 음식을 담으니, 두루미가 음식을 잘 못 먹고 고생한 이야기 말이다.


“왜 그러시는지요?”

“어 그게....”


골드한테 부탁해서 호리병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야하나? 근데 지금 베틀 만드는 중인데.


“설마 저는 안 주시겠다, 그런 건가요? 식구가 아니라 손님이니 먹을 것에서 차별을 두겠다?”

“나 그렇게 매정한 사람은 아니거든!”


나는 재빨리 백학 앞에도 그릇을 하나 놓아주었다.


“그릇 불편할까봐 그런거야. 봐 봐, 네가 쓰기에는 지나치게 평평하지?”

“지나치게 평평...? 아뇨, 불편할 거 없습니다만?”


그 말과 함께 긴 부리로 그릇을 싸악 훑으며 옥수수 죽을 한 입 먹어주시는 백학.


“.......”


잘 먹네. 나 고민 왜 했지.


“오오? 이거 맛있군요.”


옥수수 죽 한 입 먹은 백학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런 맛은 처음입니다. 정말이지, 오오, 조개향이 풍부한 가운데 이 구미를 당기는 그윽한 맛, 거기에 부드럽고 고소한 옥수수까지....”

“그치? 맛있지?”

“네에. 수고를 들이니 정말 맛있어지는군요. 옷값으로 제안하실 만 합니다. 제가 몰라뵀군요.”


백학은 감탄과 칭찬, 거기에 정중하게 사과까지 이어갔다.


“이런 재주가 있으실 줄이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더니....”

“큭큭, 내가 요리 못하게 생겼나봐?”


반 쯤 농담 삼아 찌른 질문에 백학이 조용해졌다.

그 부분에서 입을 닫으면 안 되지, 야.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말문이 막혀버렸던지라.”

“너무하네.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었던 거야, 도대체.”

“그게....”


백학이 눈동자만 움직이며 내 몸 전체를 힐끗 스캔했다.


“지금 입고 계신 옷이 너무나도... 그....”

“아.”


그제서야 나는 백학의 심정을 이해했다.

지금 내 옷은 스파크 쉘들과의 연전 덕분에 완전히 걸레가 된 상태. 당장이라도 버려야만 할 거 같은 누더기를 입고 있으니 미덥지 않아 보일 만도 해.


“이게 원래 이런 옷이 아니야. 스파크 쉘을 잡다보니 다 찢어졌지... 너한테 괜히 옷을 부탁하는게 아니야.”

“그러셨군요. 저는 그 옷이 임호인씨의 패션이신 줄 알았습니다.”

“이런 누더기가 패션일 리 있겠니?”

“그래서 참 야만적이고 이상한 분... 이거 실례, 참 특이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지요.”


이 자식이 진짜... 점점 속마음을 잘 드러내는 거 같은데.

나도 마음을 담아 잠시 노려봐줬으나, 옥수수죽이 제법 맛있었는지 백학은 시선 하나 느끼지 못하고 열심히 그릇을 비울 뿐이었다.


“아우웅~”


심기가 불편해지는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시호였다. 이제 손을 쓰는게 익숙해진 건지, 그릇을 들고는 내 품에 쏙 들어와 앉아 주특기인 볼 부비기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응응, 시호야 왔니?”

“웅!”


그런 시호를 쓰다듬어준 다음, 그대로 나도 죽을 먹었다.


“우리 시호 이제 숟가락도 잘 쓰네~?”

“웅!”


조금만 가르치면 금세 해내다니, 애가 참 똑똑하다. 나호나 골드, 백학을 보아하니 신수들은 기본적으로 다 똑똑한 거 같다만 얘는 조금 더 특별한 거 같아.

아니, 같은 게 아니라 특별한 거 맞을 거다. 스킬도 없는데 숟가락질 잘 하는 거 보니 틀림없이 그럴 거야.

골드? 골드는 원래부터 손재주가 있었잖아. 원래 잘하는 애가 잘하는 거랑, 못하는 애가 잘하는 건 다르지 음음.


“.......”


뒷통수가 조금 따가운 느낌에 눈길을 돌려보니, 백학이 나와 시호를 아주 몹시 너무나도 부럽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시호야, 맛있지?”

“웅!”


그래서 나는 시호를 내 품에 껴안고는 슬쩍 몸을 돌려주었다. 겨우 시호의 몸이 10% 정도 더 가려진 것만으로 백학은 마치 전재산이 10%는 날아간 듯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시호야, 백학씨한테도 가볼래?”

“허억!”


내 질문에 시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모르는 아줌, 아니, 신학족보다는 아빠 품이 더 좋다 이거다.


“역시 나랑 같이 먹는게 좋구나.”

“웅!”

“허어....”


배려도 해주면서 승리까지 했다. 역시 나한테는 시호밖에 없다.



***



그 날 저녁, 임호인의 집 안.

임호인의 초대를 수락하여 함께 집에 잠들었던 백학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


백학은 잠시 임호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임호인을 사이에 두고 자고 있는 시호로 시선을 돌렸다.


‘귀여워.’


임호인이 봤다면 괜히 놀릴 만한 표정을 지은채 흐뭇하게 시호를 바라보던 백학은 다시 임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흥미로워.’


그 눈동자는, 시호를 볼 때처럼 애정에 가득 차 있지는 않았지만, 제법 호의적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백학은 누가 깨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집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그녀를 맞이해주는 것은 보름달 빛에 반짝이며 자태를 뽐내는 베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완성된, 그녀의 두 번째 베틀이었다.


‘골드라는 자의 솜씨도 참 제법이네요.’


베틀을 쓱쓱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살펴보는 백학. 고향에 있는 자신의 반려도구보다는 조금 모자르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베틀이었다.

심지어 베틀을 처음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굉장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솜씨를 가진 기술자를 부린다라... 기술자라면 회유하는 것도 제법 힘들 터인데.’


임호인이라는 인간은 도대체 무슨 존재일까?

다양한 종족들과 교류하는 데다가, 묘한 기술까지 쓸 줄 알다니....


‘아이들이 저리 믿고 따른다면 결코 악한 자는 아닐 터.’


비단 그게 아닐지라도 본성이 착하다는 것은 얼추 짐작이 갔다.

첫인상은 최악이었으나 그 뒤에 바로 사과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걸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즉, 이 섬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선한 존재인 셈이다. 하찮고 사악한 몬스터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는 같이 있어도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도움이 되겠죠.’


이 섬에 온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신학도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믿을 만한, 그리고 선량한 존재와 함께 지내는 것이 몇 배나 더 생존에 좋을 것이다.


‘게다가 뭐, 본인이 말한대로 공을 들인 음식은 맛있었고 말이죠.’


좋아, 내일 아침에 식구로 받아달라 부탁을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선물이 필요하겠지.


‘누더기가 아닌 제대로 된 옷을 뽑아줘야겠지요.’


손님이나 ‘남’들을 위한 옷이 아니라, 식구들을 위한 ‘진짜 옷’을 말이다.

백학은 달빛 속에서 베틀 앞에 앉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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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숟가락 살인(?)마 (2) +2 24.02.26 4,175 120 12쪽
13 숟가락 살인(?)마 (1) +3 24.02.25 4,464 10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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