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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렴 님의 서재입니다.

종말(終末)의 레플리카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퓨전

가렴
작품등록일 :
2015.01.25 02:55
최근연재일 :
2015.02.06 04:22
연재수 :
9 회
조회수 :
2,391
추천수 :
6
글자수 :
32,828

작성
15.01.28 03:49
조회
189
추천
1
글자
9쪽

1. 고래와 소녀와 불량정령

DUMMY

순간 맹렬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늘을 뒤덮을 듯 커다란 불꽃이 사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레이븐은 양 팔을 활짝 벌린 채로, 선언하듯 엄숙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 승객 여러분들. 여기서부터는 선로 변경입니다.”


~~


우어엉!!


고래가 우는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이 들썩거리고, 주위에 보이는 모든 건물들이 부서지고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세상이 멸망한다는 말세에나 보일 법한 그 광경에, 제드는 레이븐을 향해 소리쳤다.


“너,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후후. 제드 크로아티.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이것은 초대입니다. 전지의 마녀와 노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될 장소로의 초대! 과연 당신이 제 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요? 과거로부터 이어진 그 수많은 고난들을 뛰어넘고서? 기대 되는군요. 정말로 기대가 됩니다. 당신은 이런 제 기대를 충족시켜 주셔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미친 소리냐고!”


제드는 참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던 불씨들을 사방으로 폭사시켰다. 무너져 내리는 돌기둥과 건물 조각들을 최대한 피해가 덜 가는 방향으로 처리해내면서, 그는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웃음짓고 있는 레이븐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제로!”


- 이중영창(二重詠唱), 갑니다!


분위기를 파악 한 듯, 별다른 투정 없이 제로는 곧바로 응답해왔다. 순간 오라가 증폭된다. 마치 따뜻한 물이 몸 전체로 퍼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고, 전신에 뿌듯한 충만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선명하게 느껴지는 충실한 고양감.


오오오오….


무언가를 느낀 듯 그레이트 웜의 머리 부분이 그가 있는 쪽을 향했다. 두 개의 머리, 그리고 그 곳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수십 쌍의 눈들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을 느끼며 제드가 몸 안 가득 채워진 오라를 구체화시키는 언령(言令)을 외우기 시작했다.


“천마가 이끄는 하늘의 불꽃. 영성의 혼이여. 지금 이 자리를 빌어 나의 부름에 응답하라!”


- 하늘을 태우는 불꽃. 지저의 용암 아래 숨 쉬는 태고(太古)의 의지여. 지금 이 부름에 그대의 원(怨)을 담아 외치노니!


한 사람과 한 정령의 외침이 조화를 이루며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소리의 울림은 마력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일정 수위에 도달한 마력의 흐름은 새로운 자연계의 현상을 불러일으켜 사위를 뒤덮기 시작한다.

그리고ㅡ


내리쳐라, 심판의 불꽃화살!

(The Flame Arrow of Judgement)


제드의 주변에 모여있던 불씨가 허공에 모여들어ㅡ 거대한 그림자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화살이라기에는 무척이나 커다란, 빛의 군집체였다. 한쪽이 뾰족하게 날이 서 있는 그 주홍색 불꽃이 허공을 이지러트리며 나타나더니 무너진 가옥 더미 위에 올라 앉아있던 레이븐을 향해 내리꽃혔다.


푸화악!


불꽃이 그 주변을 뒤덮으며 순간 붉은 섬광이 터져 올랐다. 주변에 맞닿던 잔해와 부스러기들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면서 기화되고 있었다.


오오오!


그레이트 웜이 포효했다. 과연 온 몸이 부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는, 제아무리 특급 재해 지정된 뮤턴트라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었던 듯 했다. 아니, 설사 용암 속에서 목욕을 한다는 전설 속의 화룡 아그니스였다고 할지라도 저 초열지옥 속에서는 살아나올 수 없으리라.

그렇게 자신했다. 하지만ㅡ


“ㅡ재미있군요.”


그 불꽃 속을 태연히 걸어나오는 레이븐의 모습에, 제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로브 한 자락도 타지 않은 태연한 모습으로 이글거리는 작염(灼炎)가운데 서 있었다.

후드 사이로 보이는 레이븐의 입가가 희미한 곡선을 그렸다.


“후후후, 과연. 지금의 당신이라도 이 정도는 가능하다 이거군요. 그렇다면ㅡ”


- 주인님, 위험!


순간 제로의 짧은 경호성이 제드의 뇌리를 울렸다. 그 의미를 채 이해하기도 전에, 제드는 몸을 덮쳐오는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파각!


“크윽?!”


순간 주변을 맴돌던 불씨가 크게 흔들리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 자동으로 반응해서 튕겨낸 불씨가 아니었다면 분명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고 당했을 터였다.


그리고ㅡ


“화현(火現)의 결계도 꽤 건재하고. 흐음. 생각보다 꽤나 멀쩡한 모습이군요?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이 녀석, 정말로 나를 알고 있는 건가?!’


놀라움을 감추며 제드가 몸을 움직였다. 피하는 그의 걸음걸음마다 불꽃이 피어올라 마치 땅에서 피어오르는 꽃처럼 족적을 남기고 있었다. 미세한 불꽃의 방출로 속력의 증가를 꾀하고 적들을 견제한다ㅡ 제로가 블레이즈 로드(blaze road)라고 이름 붙인 기술이었다.

귓가를 속삭이는 듯한 레이븐의 감탄사가 뒤를 따라붙었다.


“오호라.”


“칫, 언제까지 그렇게 재미있을지 한번 볼까!”


순간, 그의 손 안에서 주홍색 불꽃이 꼬리를 물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내 작은 원반처럼 몸을 굳힌 그 불꽃 조각을 집어든 그는, 곧이어 그것을 뒤를 향해 망설임 없이 날려버렸다.


콰콰쾅!!


폭음이 울려퍼졌다. 넝마가 되어버린 건물의 잔해를 부스러트리면서, 그가 던진 불꽃은 주변을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순간 뇌리에서 제로의 경호성이 울려퍼졌다.


ㅡ 주인님!


“나도 알아!”


피어오른 불꽃과 흙먼지 속에서, 일순간 잿빛 섬광이 터져나왔다. 재빨리 왼쪽으로 피해낸 그는 다시 한 번 불씨를 굳혀 그것을 레이븐 쪽으로 날리는 한편 화현의 결계를 더욱 강화했다. 아니나 다를까,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다시 한 번 그를 덮쳤다.


콰드득!


“큭, 젠장! 이거 정말 성가시네!”


“아하핫! 당신, 거북이 같아서 재미있군요? 자자, 어서어서 머리를 들이 미세요.”


“이게!”


조롱하는 레이븐의 목소리에 발끈한 제드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주변을 휘돌고 있던 불꽃을 떼어 내던졌다. 그 순간ㅡ


"어?"


-어라?


하늘과 땅이 뒤바뀐다.


파각!


“커헉?!”


순간 레이븐의 소매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뻗어 나왔다. 피할 수 없는 빠르기. 제드는 그것에 복부를 얻어맞고는 수 미터를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 주인님?!


뇌리에 제로의 다급한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레이븐의 목소리와 함께였다.


“대충 손대중 했으니 죽을 정도는 아닐 겁니다. 뭐, 약해져버린 당신이라면 그것마저 위험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때는 애초에 당신이 그 정도였을 뿐이라는 뜻이니, ‘그 분’께서도 별 말하지는 않으시겠죠.”


저벅저벅. 멀어지는 발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야, 멈춰! 거기 서라고! 제드는 그렇게 속으로 외쳤지만, 아쉽게도 그 말은 입 밖으로 터져나와 울림이 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그가 맞은 단 한방에 얻은 데미지가 너무 컸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길.”


그 작은 목소리는 이내 울림이 되더니, 검은 그림자가 사라질 때 쯤 분명한 외침이 되어 사위로 울려퍼졌다.


“제길, 제길, 제길! 제기라아알!!”


쿵, 쾅! 콰드드득!


순간 온 몸을 덮치는 충격파. 고래가 추락해서 땅 위로 내려앉는 자그마한 부유감. 그런 것들을 느끼며, 제드는 덮쳐오는 무력감과 고통 속에서 의식을 잃었다.


~~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 속.


그곳은 다른 여느 숲과 다를 바 없는 고요한 곳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녹음으로 푸르른 다른 숲들과 다르게, 모든 것들이 붉게 물들어 있다는 점 뿐.


“음?”


그 붉은 숲을 가로지르던 인영 하나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짝이는 흑청색 눈동자. 그리고 흑갈색의 찰랑이는 단발머리.

그 위에 비죽 솟은 검은 짐승의 귀가 순간 쫑긋거린다. 인간의 귀로는 들리지 않을 법한 먼 거리의 소리가, 그녀의 예민한 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폭음, 비명, 짐승의 울음소리, 단말마.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엮여 귀를 찌른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풀벌레 우는 소리와 산새 지저귀는 소리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멈춰있는 이 곳과는 정 반대였다.

소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조금 늦었나 보네요.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그녀는 잠시간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더니 이내 귓가를 긁적이고는 귀찮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군요. 조금 더 속도를 내보도록 할까요?”


스르륵.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녀의 몸이 스러지듯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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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 붉은 숲의 일그러진 짐승 15.02.06 262 0 8쪽
8 2. 붉은 숲의 일그러진 짐승 15.01.29 324 0 8쪽
» 1. 고래와 소녀와 불량정령 15.01.28 190 1 9쪽
6 1. 고래와 소녀와 불량정령 15.01.26 334 1 7쪽
5 1. 고래와 소녀와 불량정령 +1 15.01.26 313 0 7쪽
4 1. 고래와 소녀와 불량정령 15.01.26 163 1 9쪽
3 1. 고래와 소녀와 불량정령 15.01.25 172 1 8쪽
2 1. 고래와 소녀와 불량정령 15.01.25 347 1 9쪽
1 1. 고래와 소녀와 불량정령 15.01.25 27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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