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호비 님의 서재입니다.

용사로 소환, 마왕으로 세계정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이호비
작품등록일 :
2020.08.14 22:41
최근연재일 :
2020.09.08 19: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41
추천수 :
0
글자수 :
259,532

작성
20.08.26 19:00
조회
15
추천
0
글자
39쪽

8. 모든 것은 계획대로 움직인다.

DUMMY

“잘 들어라, 지금 수배된 마왕의 수족을 생포하여 이송 중에 있으니 호된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물러설 것을 당부한다!”


최대한 이목을 집중 시켜야 한다.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지금 세간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가게를 나온 이후, 흑호는 보란 듯이 큰 소리로 거리 한 복판에서 그렇게 외쳤다.

그 목소리에 거리를 거닐던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흑호님,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공포심을 조장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베니루모는 흑호의 반응에 곤란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지만 세라가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마족이잖아요, 언제 날뛰게 될지 모르니 주변 사람들이 충분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흐음, 그것도 그렇지만, 그래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거기 너! 당장 모험가 길드와 왕국의 병사들은 물론 최대한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해라!”

“역시 과한 것은 아닐까요? 힘을 잃은 마족일 뿐인데 말이죠.”


흑호에게 지명당한 한 중년 남성이 겁에 질린 얼굴로 서둘러 달려 나갔다.

흑호가 분위기를 조장하면 조장할수록 인파는 더욱 북적이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무리를 지은 채 수배된 마족의 얼굴을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는 자들.

어린아이들을 서둘러 건물 안으로 피신시키는 부모의 모습.

수배지를 손에 쥐고선 얼굴을 대조해보는 자들.

각양각색의 반응들로 인해 점점 더 현장의 분위기는 과열되어져 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니루모의 모습을 알아보았고, 흑호와 세라의 모습을 눈에 각인 시켰다.


“저 두 모험가가 이번 마왕의 수족을 잡아들였다는데?”

“듣기로는 디랜드의 모험가라고 하던데, 다행이야, 다행.”

“내 살아오면서 저런 시커먼 머리를 가진 녀석은 처음 봐, 딱 봐도 마족처럼 보이네, 때려죽여버려야지 원.”


경악과 놀라움, 그리고 분노와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에 흑호는 만족스러운 걸음을 옮겼다.


‘그래, 좀 더 불타올라라!’


소문은 무섭게 퍼져나가 거리는 어느 새 마족을 붙잡아 들인 흑호와 세라에 대한 환희로 뒤바뀌었다.

그 심리는 점점 영웅을 맞이하는 분위기로 흘러갔고 양 거리를 줄지어 빼곡히 사람들이 줄지어 환대해주기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척! 척! 척!

금속이 대지를 박차는 소리와 함께 무기를 손에 거머쥔 상당한 무리들이 나타났다.

나이자프 왕국의 병사들이었다.


“베니루모! 마왕의 수족을 생포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병사들의 장으로 보이는 자가 대표로 나서서 묻자, 베니루모는 마러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확인 차 수배지를 마러의 얼굴에 들이밀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변에 포진한 인파를 물리치기 시작했다.


“이곳은 위험하오니 모두 물러나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곳은 위험하오니 신속히 자리를 이탈해주십시오!”


병사들의 장이 큰 목소리로 외치니, 다른 병사들도 황급히 인파를 향해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이번엔 길드의 모험가들이 뒤에서 무장을 한 모습으로 대거 나타나보였다.


“관리인, 마족을 생포했다고 하는데 진짜입니까?”

“여기 계신 디랜드의 모험가 두 분께서 말이죠.”


베니루모는 전신이 구속된 마러를 끌어당겨 보여 주었다.


“크르르···!”

“이 녀석이 마족···겉모습만큼이나 흉악한 녀석이군···!”


마러가 이를 갈며 노려보자, 모험가들은 치가 떨린다는 듯 입을 모아 똑같은 반응을 내비쳤다.

흑호는 그 광경을 보면서 속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이것도 다 계획을 위해서다.

한 모험가가 마러에게 시선을 거두고 흑호를 바라보았다.

범상치 않은 갑옷을 착용한 모습에 상당한 모험가임이 틀림없다는 듯 수긍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 이제 시작하면 될까?


왕국의 병사들과 길드의 모험가들, 수많은 인파들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이제 다음 플랜으로 넘어가도 되겠냐는 물음이었다.

흑호는 재빨리 주변을 훑어보았다.

왕국의 병사들은 신속히 인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며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모험가들도 베니루모와 흑호, 세라를 중심으로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저마다 건물에 삼삼오오 모여 이송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지금이 딱 적절한 순간이라 판단되어 마러에게 작전개시를 알렸다.


‘시작해!’


마러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 강력한 힘을 지닌 마족은 아니라고 한다.

때문에 이 정도의 무력을 상대로 무사히 연기를 펼치기엔 무리가 따랐다.

하지만, 목걸이에 봉인된 마왕의 마기를 일정량 부여받았다.

그 마기는 태초의 기운이었으며 현재 마계를 이루고 있는 마기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즉, 이곳에 모인 존재들로는 지금의 마러를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크르르르···!”

“이, 이봐! 저 마족 녀석 어째 상태가 이상하지 않아!?”


마러로부터 심상치 않은 마기가 방출되고 있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에 주변의 사람들이 긴장한 채 걸음을 멈추고 병기를 겨누기 시작했다.

주변의 일반백성들은 겁에 질린 채 자리를 박차고 피하기 시작했다.


“크크크, 그래 이 몸의 존재를 두 눈에 똑똑히 새겨라. 인간들의 공포는 곧 이 몸의 양식이 될 터이니, 그 힘은 마왕에 필적하는 공포로 군림하게 될 것이다!”


한 순간에 기운을 방출한 마러는 속박을 풀어헤치며 공중으로 급히 뛰어 올랐다.


“으, 으아아악!!! 마족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모두 서둘러 대피해주십시오!!!”


주변은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폭주한 마족이 날뛸 것이라 생각했기에 질서는 무너졌고, 비명과 공포심으로 지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마러는 기분 나쁜 검은 구체를 가슴 앞에 뭉쳐대더니 무차별적으로 주변에 뿜어대었다.

콰라라라락!!!

콰앙!!!!


“도, 도망쳐!!!”


마러를 중심으로 일대가 먼지구름이 일어났고 파편이 무수히 튀어대기 시작한다.

병사들과 모험가들은 대강 예상한 듯 신속히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나머지 인원들은 마러를 상대하기 위해 활을 겨누어 쏘아대었다.

하지만 마러를 향해 쏘아진 화살들은 검은 기운에 휩싸이며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기 바빴다.


“흐흐흐흐!!! 고작 이런 것으로 이 몸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태초의 마기 때문일까?

마러는 힘에 심취한 듯 주변을 사정없이 파괴해대었는데, 그 모습은 도저히 연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인명피해를 일으켜선 안 된다고 했잖아!’

- 흥, 걱정 마, 충분히 계산 하에 벌이는 거니까.


흑호가 보기엔 너무 과하게 느껴졌지만, 마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주변이 황폐해져 가는 광경을 실제로 접하니 박력이 장난 아니었다.

현실은 생각과 달리 큰 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로 리얼하다면 계획에 있어선 완벽하다고 봐야한다.

마러는 계획한 대로 주변을 파괴한 뒤, 흑호를 바라보며 외쳤다.


“이전과 달리 이번엔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군중의 공포는 곧 이 몸의 힘! 힘의 일부를 되찾게 해준 네 녀석에겐 감사를 표하며 이 자리에서 처절한 공포심에 허덕이며 죽여주마!”


쐐애액!!!

공중에 떠 있던 마러가 대사를 마치자마자 맹렬한 속도로 흑호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할 필요 없다.

이것도 전부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흑호는 악에 대항하는 용감한 모험가의 연기를 펼쳐보였다.


“네 녀석의 사악한 의지가 이 땅 위에 펼쳐지도록 내버려둘 성 싶으냐! 와라! 이번에는 네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 주···”


콰앙!!!!!

마러가 쓰러지는 것은 계획에 포함된 예정이었다.

단, 흑호에게 쓰러져야만 한다.

이렇게 대사를 채 끝내기도 전에 마러가 굉음을 내며 대지에 쳐 박혀선 안 된다는 말이다.


“크아아악!!! 어떤 녀석이냐!!”


후두둑!!!

움푹 파인 대지 속에서 마러가 기운을 두른 몸으로 크게 외쳤다.

예상외의 각도에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살짝 이성이 날아간 모습이었지만, 이내 다시 침착함을 되찾아 보였다.

하지만 누구지?

이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존재가 이곳에 있다?

게다가 태초의 마기를 지닌 마러를 날려버린 것도 모자라 타격까지 입혔다고?


“이 힘은, 안나 인가요.”


베니루모는 한 쪽 팔로 파편을 막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안나?”

“저희 길드의 최고 전력 중 한 명입니다. 임무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군요.”


그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곱씹어보니 안나라는 이름을 언뜻 듣긴 한 것 같았다.

마족을 아무렇지 않게 날려버릴 존재였다니,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했지만 흑호와 세라는 그 사실을 티내면 안 되었기에 진땀을 흘리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흙먼지 사이로 작은 체구의 소녀가 걸어 나왔다.


“생포보단 즉결처분해야만 함.”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소녀가 마러를 향해 중얼거렸다.

자신감으로 꽉 들어찬 모습, 겉모습과 달리 의지가 되는 짧은 한 마디에 언제 어떻게라도 끝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진다.


“크윽, 이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가 이곳에···”

“문답무용, 헬 하운드.”


소녀의 단호한 말과 함께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개의 형상이 마러의 양 팔과 다리를 구속하였다.

지옥의 개를 연상케 하는 모습답게 그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마러의 입으로부터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온다.

너무나도 처절한 소리에, 도저히 연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잠···”


지금 펼쳐지는 광경은 힘의 격차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건 마러가 한 소녀의 힘에 압도당하고 있다.

이대로 진짜 소멸되는 건가?

그렇게 되면 계획의 전반이 틀어지게 된다!

흑호가 황급히 개입하려 했지만 열기에 의해 접근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 소녀의 작게 다운 입이 열리며 끝을 고하듯 냉정한 단어가 흘러나온다.


“헬 라운지.”


마러를 속박하던 지옥의 불꽃을 두른 개들이 돌연 형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마러의 전신을 둥글게 감싸였고, 그 구체는 점점 내부를 압박해나가기 위해 줄어들기 시작했다.

구체가 작아짐에 따라 주변의 열기도 천천히 식어들기 시작했고, 이내 주먹만큼 작아진 구체는 위태롭게 피어오르는 촛불이 꺼지듯 흰 연기를 피어 올리며 사라져버렸다.

바람이 훑고 지나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대는 전쟁의 여파로 인해 식어가는 황무지처럼 변해있었다.

극단적인 전환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어안이 벙벙한 채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었지만, 안나라는 소녀와 안면이 있던 한 모험가가 환호를 터트리자 마족이 소멸되었음을 알리는 도화선이 되어 열광시키게 만들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마족을 소멸시킨 최강의 모험가.

그 타이틀 하나만으로, 피해로 인해 황폐해진 일대는 영웅을 추켜세우는 영광의 무대로 탈바꿈되었다.


“오오오오!!! 마족을 일격에!!”

“안나의 힘 앞에선 한 줌의 재도 남지 않는군.”

“사, 살았다!”

“저 소녀가 최고 등급의 모험가란 말이여?”


거리는 환희로 가득 들어찼다.

소녀의 힘을 의심하려드는 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계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무력만 존재하는 게 아닌 마법이라는 비상식적인 힘이 만연한 세계이니까.

이 자리에서 흑호와 세라만이 순순히 기뻐할 수 없었다.

마러는 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마족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소멸해버리다니.

허탈한 감정은 계획이 물거품된 것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설마 이런 결말을 낳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세운 계획에 의해 한 목숨이 소멸된다는 뜻은···


- 크크크크, 대단하군, 중간계에 이 몸의 수족을 소멸시킬 정도의 실력자가 존재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도다.

“응?”


흑호는 계획이 틀어짐과 한 존재의 죽음에 의해 양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런 그를 달래주기 위해 옆에서 부축해주던 세라는 뜬금없이 들려온 깊은 어둠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하지만 이것 또한 짐의 계획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기도록 하여라!


푸른 하늘에 남색의 기분 나쁜 구름이 몰려들더니 빛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마, 마러!? 살아있었구나!’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러는 살아있었다.

흑호는 마러에게 흉악하면서도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마왕의 모습을 주입시켜 놓았었다.

그리고 자신이 상상한 그 이상의 위압감을 보이는 모습으로 하늘을 가득 메운 거대한 존재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소멸된 것이 아니었다.

흑호와 세라는 태초의 기운이 마러의 소멸을 막아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계획은 물거품이 된 게 아니다.

두 사람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가짜 마왕을 올려보았다.

두꺼운 망토와 고통에 일그러진 해골이 박힌 갑옷을 입은 거대한 마왕이 수많은 인파를 내려다보며 대지를 울려대었다.


“마, 마왕!”


흑호의 그 한마디에 주변은 본능적인 공포심에 의해 섣불리 움직이려들지 않았다.

압도적인 포스의 마왕이 중간계에 강림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만으로도 여기 있는 자들은 저 자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려 들지 않았다.

흑호가 마왕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려드는 이는 분명 존재한다.

몇 몇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 들었다.

하지만 계획을 위해선 억지로 믿게 만들어야만 한다!

마왕은 자신이 강림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각인시키기 위한 행동을 취한다.

두 팔을 치켜들며 육성이 아닌, 공기를 이용한 전언을 이 땅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 절대적인 공포에 군림한 짐의 앞에 무릎 꿇지 못할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등한 중간계의 생물들이 짐이 군림한 마계에 발을 들이려한 죄는 재앙으로도 치루지 못할 것이며, 무지한 것들에 대한 대가는 세계정복으로써 혹독히 일깨워줄 것을 지금 선포하나니, 부질없는 희망을 안고 저항하려거든 철저히 하도록 하여라. 공포를 몸에 새기거든 무릎을 꿇고 짐을 경배 하도록 하여라.


크하하하하!!!

소름끼치는 웃음을 마지막으로 마왕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마왕이 사라지자 남색의 구름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마왕이 사라지고 난 이후는, 가히 파급적이었다.

엄청난 대혼란이 벌어진 것이다.

마왕이 직접 강림하여 중간계를 정복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 영향이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태가 긴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지만 흑호만이 만족한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


마왕이 세계정복을 선포한 뒤로 3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소문은 빠르게 타고 흐르며 대륙의 각 나라에까지 전달되었다.

시민들은 대륙 어딜 가더라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며 온종일 떠들어대었다.

국가에선 어떻게든 잠재워보려 노력했지만 압도적인 포스의 마왕을 직접 마주한 자들의 한 마디면 전부 무용지물이었다.

마러는 역할을 끝내면 그대로 마계로 돌아가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니 이곳엔 마족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흑호와 세라라는 디랜드 소속의 모험가만이 존재할 뿐이다.

마왕의 수족이라는 수배지도 이젠 거리 곳곳을 살펴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흑호는 마음이 영 석연치 않아보였다.

안나의 존재 때문이었다.

안나만이 아니다.

세실라네 할아버지나 베니루모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 모든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건 흑호와 세라에게 있어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을 남겨두는 응어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 부분을 캐내려하면 오히려 더 수상하게 여기진 않을까하는 생각에 두 사람의 입은 조용히 다물 수밖에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세라의 말에, 흑호도 납득이 가지 않는 납득을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속에 묻혀두었다.


“용무는 오늘로 끝이었나요?”


성문 밖으로 나오자 베니루모가 친히 배웅을 나와 있었다.

흑호와 세라는 피곤에 따른 육신을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왕가 놈들.”


흑호의 악의에 찬 말을 옆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들었을 테지만 애써 모른 척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흑호는 나이자프 왕가에 대한 깊은 울분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박용신이란 이름을 지워버리긴 했지만, 흑호라는 모험가가 되고 나서도 나이자프 왕가는 눈엣가시였다.


“후우, 역시 국가를 상대로 한 나라의 길드 관리인이 대변하는 건 어렵군요.”


흑호와 세라의 뒤로 뒤늦게 나온 인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그 인물은 앞의 두 사람과 달리 홀가분해 보였는데, 다름 아닌 바시스였다.

바시스가 왜 이곳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흑호에게 있어 할 말이 많았다.

베니루모는 흑호에게 있어, 살짝 고약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성격 그대로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비밀이 밝혀진 것인데, 알고 보니 바시스란 인물은 디랜드 모험가 길드의 관리인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반응은 참을 수가 없죠. 하하하.”


즐거움에 못 이겨 미소 지어진 저 면상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뒷수습을 도와준 게 있어 필사적으로 참아보였다.

나이자프 왕가는 이 모든 일의 책임을 흑호와 세라에게 떠넘겼다.

마왕의 수족을 굳이 생포한 이유에 대한 것이라던가.

그로 인해 마왕이 수도 나이자프에 강림하도록 한 죗값을 요구한 것이다.

나라의 혼돈을 야기한 모험가란 낙인을 찍으며 매도하도록 하는 정치질도 보였다.

하지만 이 불합리한 조건을 받지 않도록 베니루모랑 바시스가 선뜻 나서 도와준 것이다.

얄미워도 감사하게 생각해야하는 건 흑호와 세라에게 있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번 일로 양 국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그 누구도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은 힘을 모아야 할 때이지, 서로 검을 겨누어봤자 미소 짓는 건 마왕뿐이지 않겠습니까.”


바시스는 그렇게 말하며 흑호를 바라보았다.

대답을 강요하는 듯 보인다.

묘한 기대감을 내비쳐서 어쩔 수 없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 정도에서 마무리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자, 그럼 앞으로 두 분께선 어떻게 움직이실 겁니까? 마왕은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대륙은 전례 없는 불안에 휩싸인 채 종말이 다가온다며 입을 맞춰 대답하는 와중이지 않습니까.”


베니루모의 말에 흑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곧장 대답해주었다.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지, 마왕의 세계정복을 저지한다, 그 뿐이야.”

“그거 참 의지가 되는 한 마디군요, 저희 모험가 길드에선 두 분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베니루모와 바시스는 서로 용무가 있다는 것으로 이만 헤어졌다.

마왕의 세계정복을 저지한다.

현 대륙의 의지는 그렇게 모아지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림자에 숨어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마들이 따로 존재한다.

흑호는 전말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그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여야만 한다.

진짜 음모를 막기 위해서 이제부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심리전을 펼친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로의 모습을 숨긴 채 속고 속이는 전쟁을···

앞으로 진실을 알고 있는 아군들을 모아야만 한다.

이 세계가 멸망하면 지구가 다음 목표가 된다는 말은 아무래도 좋았다.

해야 할 일은 매 한가지, 이곳에서 죽든 아무것도 모른 채 지구에서 종말을 맞이하든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해본다.

모험가 흑호로서의 새로운 삶은 그런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


계획 실행에 앞서 마왕에게 들은 바로는 중간계 곳곳에는 진실을 아는 아군들이 저마다 정체를 숨긴 채 적의 계획을 저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의지를 큰 틀로 묶어 말하자면 세계수의 일원이라는 모양이다.

마왕은 흑호와 세라에게도 이제 똑같은 한 일원이라고 말해주었다.

세계수의 일원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마족, 요정, 계승자, 수인족이 현재의 전부라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그리 좋지 못한 상황에 놓인 세력들이 존재하는데, 바로 요정들과 수인족이라고 한다.

요정의 경우, 힘의 원천이 되는 세계수가 사라짐에 따라 요정계란 배경 자체가 타락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행방불명된 요정여왕을 중심으로 대륙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수인족이 처한 상황에 비하면 그나마 좀 나은 상황이라고 한다.

수인족의 영토는 현재 타락한 요정계의 땅과 맞닿은 곳에 위치한 탓에 아직까지도 분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요정들은 그래도 터를 옮기며 살아갈 수는 있지, 수인족들은 전란의 중심지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

현재는 엘프와 드워프들이 수인족과 연합을 이루어 막아내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 사실은 인간들이 문명을 이룬 곳까진 소식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중간계의 가장 큰 전력이라 여겨지는 드래곤은 몇 백 년 전의 전쟁 도중, 의견이 크게 갈리는 바람에 지금은 없는 전력이라고 봐야했고 천사들 또한 여신 아리아가 지구라는 무대로 옮기고 나서부턴 족적을 찾을 수 없다고 전해진다.

여러모로 중간계는 힘이 합쳐지지 않은 채 적의 수중에 놀아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들의 대부분은 타천사에 의해 정신지배를 당해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 정신지배란 것이 인간의 어두운 일면을 파고드는 모양이라 그들 나름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탓에 진실을 전파한다는 게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건강한 정신이 깃든 인간에겐 타천사의 마수는 뻗지 못한다.

현 상황에선 이런 인간들을 전력의 축에 끼워 넣는 것이 하나의 숙제로 여겨지고 있다.

어떻게 세계의 의지로 끌어들일지, 그것은 온전히 흑호를 포함한 진실을 아는 자들이 이끌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즉, 앞으로의 여정은 수인족의 구원과 요정여왕의 행방 그리고 건강한 정신을 지닌 인간들을 이끌어 세계의 의지를 일깨워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흑호님의 대답 중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거라면 전 언제라도 따를 준비가 되어있어요.”


금제의 영향으로 세라는 흑호의 말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지만 믿고 따르겠다는 의지는 곧 세계의 의지로 이어진다.


“고마워, 그럼 우선은 우리들이 향할 곳은···당장 수인족의 영토가 되려나?”


가짜 마왕이 등장했었던 거리는 한창 보수를 진행하고 있어 시끄러움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활력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비록 가짜 마왕이 세계정복을 선포했다고는 하지만 오늘,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움직인다.

지금의 이들에겐 그것 하나면 된다.


“수인족들의 영토는 알려지지 않은 영역 중 한 곳이에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요?”

“세라가 그렇게 말한다면 생각을 달리 해야 할 수도 있겠군. 우리들은 특별히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모험가 흑호라는 새로운 삶을 쟁취해낸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힘까지 얻어낸 것은 아니다.

손에서 불을 뿜어내거나 한 번 휘두른 창에 적들이 낙엽처럼 쓸어낼 수 있는 괴력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갑옷 흑호에는 다른 어떠한 능력이 깃들어 있으리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저 동의 C급인 모험가이다.

평범한 두 사람이 앞으로의 여정에 무사하리란 생각을 가져선 안 되는 것이다.

손에서 불을 뿜어낸다고 생각하니 안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지막지한 위력을 지닌 마법이었다.

마법이라고 하면, 지구에서 온 흑호에겐 신기하다 못해 신비로운 힘 중 하나이지 않은가.

그 힘을 깨울 칠 수만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텐데.


“헬 하운드!”


손을 앞으로 뻗으며 안나가 말했던 것처럼 외쳐보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흑호님···”


머쓱해진 흑호는 자신의 투구를 긁적이며 민망함을 느꼈다.


“목소리에 기운을 담아야 함.”


그때, 어딘가에서 명량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쏙 꽂혀 들어왔다.


탁!

돌연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착지했다.

흑호의 배꼽보다 살짝 위에 오는 키의 은빛 소녀, 안나였다.

안나와는 지난 며칠 동안 꽤 친분을 쌓았다.

가짜 마왕이후로 안나쪽에서 자연스럽게 접근을 해왔기 때문인데, 주로 세라를 보기 위함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늘 위로 뚝, 떨어지는군.”

“흑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눈에 잘 띔. 그 전에 목소리에 기운이 담겨 있지 않음.”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 안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두 사람이 멀뚱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자, 안나는 답답한 듯 눈썹을 살짝 치켜뜬 채 다시 말했다.


“따라하는 거임, 헬 하운드!”


화륵!

안나의 한 쪽 손에 불길을 머금은 작은 개 한 마리가 재주를 부리며 나타났다.


“자! 따라하는 거임, 헬 하운드!”

“헬 하운드!”


안나의 어이없는 요구에 흑호는 마지못해 따라 외쳤지만 역시나 변화는 없었다.


“헬 하운드! 목소리에 기운을 담아야 함!”

“으음···헬! 하운드!!”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게 아님! 헬 하운드!”

“헬!!! 하운드!!!”

“기운을 담는 거임! 헬 하운드!”

“그러니까 그 기운이 뭐냐고.”


흑호는 뒤늦게 안나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선 힘없이 물었다.

소녀는 손에 쥔 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물더니 잘 들으라는 듯 손짓으로 두 사람을 가까이 부르며 대답했다.


“우물우물, 기운은, 우물우물, 기운임.”

“기운 빠지는 대답인건 알겠네···”


흑호는 더 이상 상대할 필요 없다는 것을 느끼곤 지나쳐가려 했다.

하지만 안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지간히 심심했던 모양이라 생각한 세라가 상냥한 어조로 갈 길이 바쁘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역시 먹히지 않았다.


“마법은 흑호가 아닌 세라한테 재능이 보임.”

“제가요?”

“세라, 너도 나처럼 창피 당하지 말고 가자.”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말은 이 세계에 사는 인간들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몰라도, 세라는 눈을 빛내며 안나에게 되물었다.


“정말 제게 재능이 있는 건가요?”

“내 두 눈엔 확실히 보임.”

“세라.”


흑호가 다시 불러보아도 세라는 듣는 둥 마는 둥 안나에게 향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하아.”


흑호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곁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재능이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마법은 발현되지 않음, 하지만 안나는 장담할 수 있음. 세라에겐 마법에 대한 재능이 느껴짐.”

“어떻게 하면 마법을 터득할 수 있나요?”

“처음에는 마나를 깨닫는 것부터임, 하지만 이 난제는 이미 극복함. 내 두 눈에 마법적 재능이 있다는 확신을 지닌 세라가 보임.”

“네! 전 믿어요!”

‘믿는 것 하나로 재능이 싹튼다니, 무슨 사이비 종교도 아니고···’


안나는 남은 빵을 한입에 털어 넣고서는 세라의 한 쪽 팔을 들어 직접 지도해주듯 중얼거렸다.


“믿음이 있다면 그 다음은 발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보여야함.”

“네, 발현하고자 하는 의지 말이죠?”


세라의 가면 너머로 흥미진진해하는 감정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흑호는 강 너머 불구경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의지를 내보이면 바라는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거임.”

“네! 형상화 했어요!”


가면을 착용하고 있지만 집중을 하는 얼굴이 언뜻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을 기운이란 그릇에 담아 신체에서 분리하는 감각을 가져보는 거임.”

“으음!”

“좀 더 강렬히 내보이는 거임!”

“네! 으으음!!”

“내 두 눈에는 보임! 지금 그 감각을 육감으로 느끼는 거임!”

“으으으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흑호는 하품을 쩍 해대었다.

세라는 어째서 모르는 걸까, 안나의 심심풀이에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생각은 흑호만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주변에서도 어느 새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몇 사람들은 하던 일을 놓고 잠시 쉴 요량으로 응원까지 보내오기도 했다.


“힘내 아가씨, 할 수 있다고!”

“그래, 최강의 모험가가 지도해주는데도 안 되면 그것만큼 쪽팔린 것도 없으니까!”


안나의 의도대로 세라는 보기 좋게 거리의 볼거리로써 거리에 웃음꽃을 만개시켰다.

최강의 모험가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어도 겉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이다.

이 광경을 어떤 누가 흐뭇하게 안 바라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존재가 있다면 유일하게 흑호 뿐이다.


“으으음!!!!”

“육감적으로 느끼는 거임!”

“육감적으로!!!”

“헬 하운드라고 기운을 담아 말하는 거임!”

“헬 하운드!!!”


화르르륵!!!!!

언제 끝내나 지켜보고 있던 흑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재능은 얼어붙을 재능이란 생각으로 일관하던 흑호를 향해 지옥의 불길을 두른 거대한 개 한 마리가 흉흉한 이빨을 들이밀며 덮쳤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임!”

“아! 알겠어요! 흑호님 보셨어요? 저 마법을···아아아!! 흑호님!! 어, 어, 어떻게 해요!!”


세라의 손에서 생성된 헬 하운드는 흑호의 투구를 잘근 씹으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법을 발산한 기쁨도 잠시, 세라는 뜻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며 안절부절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안나의 양 어깨를 흔들어대었다.


“괜찮다, 당황은 했지만 뜨겁진 않으니까.”


속으로는 진땀을 흘린 흑호였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선 팔짱을 낀 모습 그대로 대답해주고서야 세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라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웃으며 구경하던 이들도 흑호의 한 마디에 놀랐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던져대었다.


“그나저나 세라에게 마법의 재능이 있었다니, 이건 또 새로운 발견이군.”

“내 두 눈은 속일 수 없음.”

“그래, 그 두 눈에 비친 내겐 재능은 보이지 않고 말이지.”


안나가 한 손을 휙 젓자, 흑호의 투구를 깨물던 헬 하운드는 사라졌다.


“막 눈 뜬 세라는 병아리랑 같음, 병아리는 헬 하운드를 사용하지 못함, 안나가 도와줘서 가능했던 거임.”

“그렇겠죠? 하지만 저도 마법은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인거 맞죠?”

“당연함, 방금 전의 감각으로 단련하면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게 가능할거임. 세라는 그 재능을 지니고 있음.”


뜻밖의 계기를 통해, 세라는 앞으로의 여정에 큰 가능성을 내비쳤다.

기연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세라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큰 전력이 된다.


“감사해요, 살면서 제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상상으로도 못했는데.”

“그런 세라에겐 앞으로 단련을 요하기에 특별히 선물로 주겠음.”


안나는 품속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마법의 주머니라도 가지고 다니는 걸까, 상당한 두께의 책이 아무렇지 않게 나타났지만 세라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딱 보기에도 엄청 귀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런 값어치를 지닌 책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주다니, 세라는 처음엔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안나의 끈질긴 요구에 결국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낡은 책 한 권을 소중히 품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괜찮음, 두 사람의 여정에 아리아의 은총이 깃들기를 바람.”


안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자리를 벗어나려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흑호가 안나의 앞을 막아섰다.

흑호에게 있어 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무슨 꿍꿍이지?”

“···꿍꿍이 없음. 이건 순수한 호의임.”

‘순수한 호의라고?‘


흑호에게 있어 순수한 호의란 행동은 있을 수 없었다.

상대방에게 바라거나, 요구할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 자신의 것을 베푼다는 것은 꺼림칙할 뿐이다.

그런 꺼림칙함을 가짜 마왕 이후로 줄곧 느껴왔다.

세실라네 할아버지는 손녀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친다면 대강 이해할 순 있었다.

하지만 전후사정을 모른 채 입을 맞춰준 베니루모나 바시스의 호의, 그리고 세라에게 마법적인 재능을 일깨워준 것도 모자라 평범해 보이지 않는 물건까지 선뜻 건네준다?

이상하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안나의 호의는 그런 의심으로 똘똘 뭉친 흑호에게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었다.


“흑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음.”

“피차일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 않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임? 안나는 단순히 마왕으로부터 대항할 힘을 보태준 것 밖에 없음, 마왕은 이 세계에 당당히 선전포고를 내렸음. 흑호는 동료인 세라가 강해지면 안 된다는 이유를 가진 것처럼 보임.”

“그, 그건···!”


일생일대의 실수!

알 수 없는 호의의 능구렁이에 빠진 탓에 눈앞의 소녀에게 논리적으로 반박당하고 말았다.

흑호의 전신으로부터 땀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흑호는 마왕의 앞잡이였다, 그런 거임?”

“그럴 리가! 누구보다도 이 세계가 평화로워지길 바라는 한낱 모험가일 뿐이다!”

“장난이었음. 마법적 재능이 없다고 말한 것을 마음에 담아둔 탓에 안나를 괴롭히려는 것이지 않음? 안나는 그런 사소한 감정은 신경 쓰지 않음.”

“그, 그래, 뭐 나도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해버렸네.”

“그럼 세라, 수련은 게을리 해선 안 됨. 세라가 강해질수록 마왕 저지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새겨두고 정진하길 바라겠음.”

“네! 감사해요!”


-----


흑호와 세라가 서둘러 길을 나서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안나의 곁으로 베니루모가 웃음을 띤 채 다가와 물었다.


“안나가 직접 재능을 주입시켜 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연스럽지 못했음?”

“아뇨, 매우 자연스러워서 만족할 따름입니다.”


베니루모의 확답에 안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두 사람의 여정을 우리들은 철저히 비밀리에 도움을 주어야만 함, 오늘은 그 첫 걸음임.”

“첫 걸음이라, 제가 느끼기로는 도약에 가까운 도움이었습니다만.”

“흑호는 비범하다 생각함, 이계의 존재는 태생이 틀린 탓에 마나를 깨우치지 못함. 하지만 세라에겐 깨우쳐 줄 수 있음.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든 의심을 받았을 거임, 방금처럼.”

“정말이지, 그 말대로입니다. 설마 마왕 대행이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다니, 덕분에 마왕을 저지한단 논리로 적은 물론 당사자 또한 의심 하지 않도록 재능을 부여할 수 있었으니 말이죠.”


시너지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흑호의 이번 계획은 안나의 지혜마저 뛰어넘는 한 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펼칠 그들의 활약이 예상조차 가지 않는다.


“이번 건으로 두 사람의 여정에 힘을 보태준다 해도 자연스럽게 행할 수가 있게 되었음.”

“덕분에 저희들의 리스크도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으니, 흑호에겐 감사할 따름입니다.”

“운명이 선택한 존재임. 당연한 거임.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디저트로 배를 채우는 거임!”

“그 전에, 안나. 잊어버린 것이 있지 않습니까?”


디저트를 먹을 생각에 신이난 안나의 머리를 움켜쥐며 베니루모는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안나, 잊은 것 없음.”


당당하게 말했지만, 베니루모는 고개를 저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침묵을 지키는 베니루모의 모습에 그제야 안나는 아! 하는 짧은 외마디와 함께, 생각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바실리우스를 언급한다는 걸 빼먹었음.”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디저트는 듣지 못한 걸로 하겠습니다.”

“······.”


-----


이름 모를 섬의 해저동굴 어딘가.

푸른 암석들이 동굴 내부를 신비롭게 비추는 광경이었지만, 자연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인위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든 공간처럼, 바닥은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동굴 내벽마다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보이는 각종 거대한 실험용 도구로 보이는 것들이 즐비해 있었다.

동굴의 깊이는 매우 깊어 한참을 걸어도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파직!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는 동굴 내부의 가장 안 쪽에서 울려 퍼진 소리였다.

생물이 내는 소리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파직!

일정한 간격을 두고 똑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반복해댄다.


파박!

이윽고 일정 리듬을 간직하던 소리가 패턴을 부수며 격하게 동굴 내부를 울려대었다.


“잘 안되네.”


허름한 책상 앞에 누군가 머리를 숙인 채 앉아있었다.

고도의 집중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옆에서 희미한 빛을 내고 있는 수정구의 반응을 이제야 확인한다.

그 존재는 한참 만지작거리던 작은 구슬을 뒤로 던져버렸다.

남성에게 있어 그 구슬은 그리 귀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이후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기지개를 키며 손가락을 튕겼다.

빛을 내던 수정구로부터 거대한 화면이 허공에 나타났다.

남성은 흥미로운 듯 화면에 비친 정보를 바라보다 벌떡, 일어나더니 생각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까, 까먹고 있었네···이 반응은 틀림없이 내가 만든 목걸이에 대한 거였지? 잠깐, 수정이 반응을 보였다는 건.”


수정이 보여주는 화면에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목걸이를 손에 쥔 채 흔들어대는 마계의 마왕 미니엄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드디어 되돌아온 모양이네. 어디보자,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남성의 태도를 보아 시간개념이 크게 뒤틀린 듯 보였다.

한 곳에 오랫동안 몸을 담고 있었던 모양인지, 어지럽혀진 물건들 사이에서 가장 최근 것으로 보이는 양피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양피지는 남성의 부하가 작성한 정기 보고서 중 하나였다.


“음, 안나 녀석, 끈질기게도 찾아왔었네. 뭐 이건 됐고 어디 보자···”


정성스레 작성된 보고서는 채 3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만에 어질러진 물건들 틈새로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지금의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시간 개념으로 보였다.


“흐음, 안보이네···에이 적잖이 시간이 흘렀겠지. 자세한 건 마계로 가서 들어볼···까했는데, 생각해보니 금서 아직도 녀석들한테 있던가?”


이쯤 되니 남성은 귀찮음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머리를 털어대며 될 대로 되겠지, 란 심보로 다시 탁자 앞에 앉아 중얼거렸다.


“필요해질 때면 알아서 잘 찾아오겠지.”


그러자, 한 쪽 웅덩이에서 조용히 한 생명체가 떠오르며 질문을 던졌다.


“접근하는 자들은 어떻게 처리 할까요.”


“어, 미니엄이 목걸이를 되찾은 모양이니까···마족만 제외하면 되겠지.”

“마, 마족만 말입니까?”


웅덩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생명체는 난감한 듯 되물었지만, 다시 책상에 고개를 처박은 남성은 대충 대답하며 물러나도록 지시했다.


“어···뭐, 마족 말고는 그냥 적으로 간주하고 처리해.”

“그, 그렇지만 예의 그 실버 드래곤은···”

“어···안나?, 뭐···드래곤들은 따로 갈라서기 시작했다면서, 상관없어···그냥 적당히 상대해주다가 보내.”

“정말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돌아가란 명령에도 부하가 돌아가지 않으니 남성의 손짓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귀찮게 하는 벌레를 쫓듯 휘둘러대는 모습에 생명체는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정말 명령대로 따르면 되겠습니까!?”

“아···그렇게 하라니까···너도 봤잖아···목걸이는 미니엄에게 돌아갔다···그럼 이곳에 접근하는 녀석들 중 마족이외의 존재는 다 적이다 적. 알겠냐? 아! 제국의 마족들은 적이니까 처리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남성의 부하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갔고, 남성은 서랍에서 예의 작은 구슬을 꺼내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견주람의 비밀···조금만 더 분석하면 알 것 같은데 말이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동굴 내부는 파직, 하는 일정 리듬을 탄 소리가 다시 울려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사로 소환, 마왕으로 세계정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용사소환은 연중하게 되었습니다. 20.09.08 25 0 -
공지 월 ~ 금 / 오후 7시로 변경되었습니다. 20.08.18 16 0 -
17 17. 금제의 공백인형 20.09.08 12 0 35쪽
16 16. 크레이프 윗 클린 남작의 저택 20.09.07 10 0 28쪽
15 15. 제 1형 [ 백호의 형태 ] 20.09.04 33 0 37쪽
14 14. 흑과 백의 공간 (2) 20.09.03 19 0 28쪽
13 13. 흑과 백의 공간 (1) 20.09.02 20 0 29쪽
12 12. 검은 손 반니움 20.09.01 19 0 29쪽
11 11. 메르제의 고집 20.08.31 13 0 32쪽
10 10. 조합사 빌 데니움의 의뢰 20.08.28 13 0 29쪽
9 9. 세계수의 흩어진 일원 20.08.27 16 0 36쪽
» 8. 모든 것은 계획대로 움직인다. 20.08.26 16 0 39쪽
7 7. 나는 죽어야만 한다. 20.08.25 19 0 32쪽
6 6. 신이 선택한 인간이다 20.08.24 22 0 34쪽
5 5. 동의 C급이라는 가장 낮은 모험가의 첫 의뢰. 20.08.21 56 0 29쪽
4 4. 이번엔 모험가가 되었다 20.08.20 54 0 34쪽
3 3. 발톱을 들이밀면 어금니를 내보여라 20.08.19 35 0 31쪽
2 2. 이것이 용사의 힘이다. 20.08.18 59 0 42쪽
1 1. 용사로 소환되었다. 그런데… 20.08.17 125 0 3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