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호비 님의 서재입니다.

용사로 소환, 마왕으로 세계정복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이호비
작품등록일 :
2020.08.14 22:41
최근연재일 :
2020.09.08 19:0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542
추천수 :
0
글자수 :
259,532

작성
20.08.18 21:30
조회
59
추천
0
글자
42쪽

2. 이것이 용사의 힘이다.

DUMMY

“마지막은 내가 장식할거니 적당히 팔 다리만 양단해놔!”

‘미친 놈!’


울창한 숲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여 어두웠고 그 속에서 왕자의 광기서린 명령을 받은 병사들의 모습은 흡사 굶주린 야생 동물 같았다.

박용신과 세실라를 사냥하지 않으면 본인들이 물어 뜯겨 죽는다.


‘이 녀석들, 단번에 달려드는 게 아니라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잖아.’


아무래도 용사로 소환된 존재이기에 병사들 입장에서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양이었지만 투구에 가려진 안광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내비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이딴 곰인형을 휘두른다고 해서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을 리 없고!’


병사들의 포위가 점점 좁혀들수록 박용신과 세실라도 더욱 밀착되어갔다.

여전히 겁에 질린 세실라였지만 더 이상 주저앉아보이진 않았다.

그 떨림이 밀착된 전신으로부터 전해져온다.

포기하지 말자는 말에 일말의 희망을 품었을지 모른다.

나약해질지 모르는 마음은 서로에게 기댄 육체에서부터 다시금 다잡아가며 투지를 끌어올린다.


‘곰인형아! 곰인형아!! 부탁 좀 한다! 제발 숨겨진 힘이 있기를!!!’


병사들과 박용신 그리고 세실라의 거리는 이제 손에 들린 무장을 휘두르기만 해도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

한 병사가 검을 치켜든 순간!

박용신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잘근 깨물며 세실라를 한 쪽 팔로 끌어안아 한 바퀴 빙글 돌듯 곰인형을 크게 휘둘렀다!


퍼억!!!

목숨이 위태롭던 순간 워낙 급했던 탓에 행해진 보잘 것 없던 일격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박용신의 귀와 손으로 둔탁한 사운드와 저릴 정도의 타격감이 전해져왔다.


‘뭐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 세계로 왔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이해의 범주는 벗어난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검을 치켜들었던 병사가 바닥에 널브러졌다는 것이다.

포위망에 구멍이 생겼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살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뛰어요!”


박용신은 세실라의 손목을 거세게 잡아당기며 그 틈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용사라면 당연히 저항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곧바로 날카롭게 벼린 검을 상 중 하에 걸쳐 휘두르고 찔러대었다.

이런 연계는 병사들이 평상시 훈련은 물론, 실전 경험 또한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왕자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박용신이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이는 탓에 기적처럼 공격이 닿기 전, 한 병사의 품에 양 팔을 들어 교차한 뒤 파고들어 포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뭐 하는 짓들이야!! 당장 붙잡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왕자가 팔짱을 풀며 역정의 목소리를 내었다.

병사들은 그 모습에 살짝 움츠러드는가 싶더니 이내 박용신과 세실라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고, 몇 병사들은 서둘러 활을 들어 겨누었다.


빠드득!

도망치는 용사의 등을 바라보며 왕자는 어금니를 갈았다.


‘대체 뭐야 저건!’


용사 박용신의 손에 들린 것은 곰인형이 아닌 가시가 박힌 투박한 곤봉이었다.


‘곰인형의 형태는 같잖은 속임수였나.’


박용신이 곰인형을 휘두르는 순간, 가시곤봉으로 변하더니 병사를 날려버렸다.

쓰러진 병사는 끙끙 앓는 곡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왕자는 그 병사를 내려다보며 경멸어린 표정과 함께 목에 검을 찔러 넣었다.


“커···! 커억···!!”

“쓸모없는 녀석.”


살인이라는 행위가 아닌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는 것과 같은 모습에 박용신에게 활을 겨누던 병사들이 침을 삼키다 이내 시위를 놓았다.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는 몇 개의 소리와 함께, 왕자에게 지목당한 병사는 마차를 끌던 말에 올라타 추격을 이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드리워진 숲이라 박용신과 세실라의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둘의 근처에 있던 나무에 팍! 박히며 초라한 결과를 낳았고 왕자의 불쾌지수는 점점 높아져만 갔다.


“이 몸을 언제까지 이곳에 있게 할 작정이지? 당장 사지를 잘라 데려오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


“허억! 허억! 괜찮아요?”

“아, 네···! 용사님은 괜찮으세요?”


살 수 있을지도 모를 그 좁은 틈을 향해 죽을 듯이 달린 박용신은 겨우 숨을 고르며 주위에 경계를 가졌다.

근력이면 몰라도 체력이라면 군대에 있었을 때나 자신 있던 박용신이다.

몇 년 만에 진짜 안간힘을 다해 달린 것이다.

그에 비해 세실라는 박용신보다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따돌린 게 아니에요. 잠시 숨 좀 고르고 곧바로 빠져나가죠.”

“네, 용사님.”


넓게 트인 공간이 아니라서 살았다.

왕국의 이면을 감추기 위해 선택된 장소가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목숨을 연장시켜 준 것이다.

마차가 들어서기 위해 잘 다듬어진 길이 아니어서 상당히 난잡한 환경 속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안심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수풀과 나뭇가지, 나뭇잎 등을 밞는 소리와 작은 동물들의 경계심에 의한 움직임으로 병사들이 얼마큼 접근하고 있는지 파악이 가능했다.

박용신은 그러한 정보를 놓치지 않으며 겨우 숨을 진정시켰고, 이내 신경은 자신의 손에 들린 가시곤봉으로 향했다.


‘곰인형이 이걸로 변한건가? 어떤 원리로?’


하지만 궁금증은 여기서 끝내야만 했다.

병사들의 추격은 계속 되고 있다.

옆에 있는 세실라는 여전히 불안감에 휩싸인 채였다.

그건 박용신도 마찬가지였지만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얻고 있어 힘을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세계에 대해 무지한 상태이니 세실라라는 존재는 큰 힘이 된다.


“이 숲을 빠져나가려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고 계세요?”

“죄, 죄송해요. 저도 이 곳은 처음 와서···”


용사의 물음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푹 숙여 보인 세실라였지만 박용신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선 움직이도록 하죠, 이곳에 머물러 있다간 언제 붙잡힐지 모르니까요.”


“네, 용사님.”


박용신의 흔들림 없는 모습에 세실라도 조금씩 용기를 얻어가는 모양이다.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구걸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제는 살기 위해 희망을 불어넣은 모습이다.


“빠져나갈 곳을 모르니 우선은 포위해오는 병사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죠.”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으면서,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최대한 멀리, 그리고 서두르는 두 사람.


‘숨기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어쨌든 이 영역은 저들의 홈그라운드니까. 살아남으려면 움직이면서도 생각하자···!’


반 지하의 작은 방에서 지낼 때, 이보다도 더 힘든 날이 있을까 했지만 현재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정말 안락한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박용신이었다.

오늘 만큼 살고자 버둥거린 적이 있었던가?

온전한 평온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목숨자체가 위협받는 생활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남을 속여 서슴없이 목숨을 노린다.

살아남기 위해선 지구에서의 도덕적상식과 안일함은 버려야만 한다.


‘그래, 혹시 지금이라면···’


서둘러 움직이던 박용신은 자신이 쥐고 있는 가시곤봉을 스리슬쩍 내려다보았다.

외형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곤봉.

투박하면서도 손잡이 부분은 누군가 사용한 이질감이 느껴지고, 무거울 법하지만 손에 들고 있는 박용신이 느끼기에는 깃털만큼이나 가볍게 느껴지는 무기.


‘내 바람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분명 숨겨진 힘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


용사라며 소환된 박용신이다.

지금 자신이라면 미지의 힘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아니! 그런 안일함은 버리기로 했잖아!’


하지만 추격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투두두, 거리며 대지를 연신 두드려대는 소리는 말발굽 소리 같았다.


“용사님! 이대로는···!”


뒤따르고 있던 세실라는 박용신의 옷소매를 움켜쥐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불안함으로 인해 연신 긴장으로 굳은 얼굴.

박용신은 다시 한 번 입술을 잘근 씹었다.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현실은 도박에 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의한 무의식적 행동이었다.


‘···1등은 바라지도 않는다, 2등···아니 적어도 3, 4등만이라도!!’


그래,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황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를 목숨 건 도박.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도박을 통해 기회를 얻고자 마지막으로, 기대를 거는 박용신이었다.


-----


“젠장! 이딴 말도 안 되는 작전에 투입되어서!”


도망친 용사와 시녀의 흔적을 쫓던 한 병사가 신경질적으로 손에 쥔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향했다.

자신만이 아니었다.

각자 간격을 둔 채 저마다 전진하는 병사들의 표정과 몸짓에는 개개인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용사를 추격하라는 왕자의 명령이라던가, 미쳐버린 왕가에 대한 충정심 등.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온화했던 인품의 왕과 그의 자식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러려고 왕궁의 병사로 지원한 게 아니란 말이야···”


병사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들어차 보였다.

언뜻 괴로워도 보이는 그 표정은 차마 동료나 다른 이들에게는 보일 수 없었다.

다들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기우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왕궁의 모든 것이 서서히 변해버리고 말았다.

다들 이질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함구할 수밖에 없는 찝찝함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 충정은 대체 무엇을 위함인지에 대해서.

그에 대한 극은 이번 건을 토대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의견이 맞지 않는다 하여도 용사를 처단하라니.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자신과 용사의 자질을 타고 있음에도 마왕토벌을 거절한 용사에 대한 미움.

어릴 적 꿈을 엿보던 소년은 커서 검을 쥐게 되었고, 이내 자신이 꾸었던 꿈을 꿈꾸는 소년을 지키는 존재가 되었다.

수풀을 베어내는 이 검은 용사의 등을 향하고 있는 것과 매 한가지.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아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찝찝함을 넘어 복잡했다.

용사로의 본분을 던진 용사라던가.

용사를 서슴없이 죽이려드는 왕가라던가.

이 세상을 위한 옳은 일은 대체 무엇일까?

선과 악이 대립하는 세상 속에서, 지금 이 행동은···


‘용사님도 너무 하시지···이렇게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등에 짊어지시고도···!’


검을 휘두르던 병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용사라고 불리지만 곰인형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심히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이 곧 자신의 동료를 날려버린 곤봉이 되고 나서는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이 복잡한 심경은 어찌해야만 할까.

그런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마왕토벌에 임하지 않겠다고 말한 용사.

그런 용사를 왕국의 체면을 세운 뒤 음지에서 죽이려는 왕가.

그런 용사를 죽이기 위해 명령에 따르는 자신.


‘결국 힘 있는 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거야.’


벌레 죽이듯 일말의 감정도 없이 동료의 목을 베던 왕자.

그런 왕자를 보고도 달려들기는커녕 보고만 있던 용사.

그 어떤 결정권도 주어지지 않은 힘없는 자들.

어쩔 도리 없는 기로에 선 우리들은 무얼 보고 버텨야만 할까?

그러한 생각까지 미치자 병사는 검을 늘어뜨렸다.

축 쳐진 어깨와 대지를 향해 떨어뜨린 고개.

이제는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아들이 살아갈 세계다.

그 순진무구한 두 눈동자에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비춰질지에 대한 비애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 너는 충분히 자질을 타고난 것 같구나.


흠칫!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병사는 고개를 황급히 들어 올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다른 동료들은 용사를 쫓기 위해 앞을 향하고 있었고, 자신은 멈춰선 만큼 상당부분 거리가 벌려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귓가에 대고 바로 속삭이는 느낌을 받은 병사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란 단어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며 전신으로 퍼져나가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그때, 자신의 눈앞으로 검은 깃털 하나가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건, 검은 깃털?”


근처의 하늘에서 검은 새라도 날아다니고 있었던 걸까?

병사는 손을 들어 그 깃털을 잡으려고 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깃털을 향해 손을 가까이 가져다대는 순간만큼 이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손가락으로 그 검은 깃털을 집으려는 순간!


바스락!

자신의 근처 수풀에서 나는 소리에 병사는 서둘러 정신을 차린 뒤 검을 치켜들어 곧장 휘둘렀다.


쉬익!

수풀 속에서 나타난 존재는 다름 아닌 가시곤봉을 손에 쥔 채 달려드는 용사였다!

그 눈빛은 틀림없는 적의, 용사라 불리는 존재의 눈빛은 절대 아니었다!


-----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박용신은 걸음을 돌렸다.

세실라와는 어쩔 수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잘만 된다면 둘 다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추격해오는 병사들을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던 박용신은 맨 가장자리의 한 병사가 우뚝 멈춰선 것을 발견했다.


‘뭐지? 혹시 날 본건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지울 수밖에 없었다.

발견했다면 곧바로 주위에 알렸을 테니까.

하지만 박용신에게 있어 이것은 큰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무리에서 멀어져가는 사냥감을 목표로 삼는 것은 자연의 섭리와도 같다.

왜 갑자기 멈춰선 것인지는 몰라도 박용신은 조심스럽게 그 병사를 향해 거리를 좁혀나갔다.

정신이 완전히 다른 곳에 박혀있는 듯 보였는데, 박용신은 습격이 가능할 만큼 가까워진 뒤 가시곤봉을 고쳐 쥐었다.

한 번의 심호흡과 심신의 안정을 위해 두 눈을 잠시 동안 질끈 감았다 떴다.

마음을 다잡은 뒤에는 일말의 망설임은 필요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박용신에겐 반드시 죽는다는 선택지 밖에 없는 것이다.


‘간다!’


바스락!

무언가를 집으려던 병사가 흠칫! 놀라며 이내 두 손으로 검을 꽉 쥐며 곧장 박용신을 향해 휘둘렀다.

엄청난 반사 신경이었다!

도저히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는 움직임과 속도다.

호기롭게 달려들던 박용신은 아차! 하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급히 한 쪽 팔을 뻗었다.

정신을 팔고 있었다고는 해도 정신 나간 왕자의 곁에서 심신을 갈고 닦은 병사이다.

결코 평탄하지 않을 생활을 보낸 훈련받은 정예의 신경을 얕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검과 곤봉이 부딪히면 소리가 나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면 습격은 무용지물이 되고 자신의 도박은 그걸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곤봉을 휘둘러 갑옷 위를 내려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팔 하나 정도는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병사는 그런 용사 박용신의 결단을 비웃듯, 내려 베는 검의 기세에 더욱 날카로움을 세우며 그대로 양단해 버리겠다는 의지를 실어보였다.

그 찰나의 순간 박용신은 생각했다.

팔이 잘려나가고 나서도 녀석의 입을 틀어막고 붙잡을 수 있을까?

찰나였지만 그것은 망설임이었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기어코 결단력이 흔들려버린 것이다.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닌 인간이기에 하는 실수!

하지만 살아생전 검을 하사받고 훈련과 실전을 쌓은 병사에겐 그런 실수는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어정쩡하게 곤봉을 휘두를까 하는 욕망과 그렇게 되면 계획이란 이름의 도박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목숨 건 결단이 저울질되던 탓에 태클은 실패하여, 병사의 검은 박용신의 팔에 닿았다.

하지만!


‘···!! 베어지지 않았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병사의 검이 박용신의 팔에 닿았음에도 베어 넘기지 못한 것이다.

병사도 적잖이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박용신과 병사의 시선이 교차하는 짧은 시간동안 승기를 낚아챈 쪽은 박용신이었다.

수많은 훈련과 실전을 통해 잘 갈고 닦은 검은 인간의 팔을 베어 넘길 수 있다는 결과를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병사이다.

이렇게 베어지지 않는다는 결과는 병사에게 있어 오류와 다를 바 없었다.

그에 비해, 이 세계에 오고 나서부터 믿을 수 없는 경험을 계속 겪은 박용신에게 또 한 번의 믿기 힘든 경험 따위는 금방 수습할 수 있는 정신력을 선사했다.

병사도 분명 금방 가다듬고 검을 고쳐 쥘 수 있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늦었다.


‘도박이 먹혔다!!’


고통은 물론 팔은 잘려 나가지 않았다.

그 기세를 몰아 박용신은 서둘러 병사의 투구를 벗겨내어 입을 틀어막았다.

안면이 뚫려있는 형태의 투구였지만 벗겨내지 않고서는 틀어막긴 힘들었기 때문이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판단덕분에 병사는 더욱 놀란 모양이었다.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닌 뜬금없이 투구를 벗겨내어 입을 틀어막다니, 병사에게 있어 이런 행동 또한 있을 수 없었다.


“조용히, 가만히만 있으면 죽이지는 않겠어.”

“으읍.”


병사의 입을 틀어막고 서둘러 넘어뜨린 뒤 두 다리로 병사의 양 팔을 짓눌렀다.

박용신은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귀에 대고 속삭였고 병사는 알겠다는 뜻에서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여보였다.


‘서, 성공이다!’


침착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박용신의 심장은 터질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병사의 입을 틀어막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자신이 떨고 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힘을 꽉 주어 속여 보였다.

지금 이렇게 입을 틀어막은 팔이 바로 병사의 검에 베일 뻔 했던 팔이다.

상처하나 없이 멀쩡하다니 지금도 믿을 수 없는 박용신이었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고,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병사도 곁눈질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팔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저항은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지도 몰랐다.

병사의 저항이 수그러들자 그제야 박용신은 틀어막은 입을 놓아주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손에 쥐고 있던 가시곤봉이 옅은 검은 빛을 내보였는데, 박용신은 혹시 자신의 팔이 멀쩡할 수 있었던 건 이 곤봉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납득 갈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렇게 옅은 검은 빛을 내고 있는 타이밍이 참으로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이 곤봉이 내가 입은 피해를 흡수해주었다곤 밖에.’


다행이다.

박용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이런 힘이 숨겨져 있었다니, 이건 진짜 몸소 부딪혀보지 않으면 깨닫지 못할 능력이 아닌가?

정말 용사가 사용하는 무기의 성능이 아닐 수 없었다.

외형은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말이다.


‘피해를 곤봉이 대신 흡수해준다면 여기서 살아나갈 확률이 높아졌다고 봐야지.’


피해를 얼마나 흡수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팔이 잘려나갈 정도의 일격을 흡수해준 것만 보아도 좀 더 여유로울지 모른다.


‘그런데, 뭔가 힘이 솟구치는 느낌은 내 착각인가?’


흥분 상태에 달해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박용신은 그것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금세 판단했다.

힘이 솟구치는 방향성이 묘하게 달랐기 때문인데 그건 바닥에 떨어진 투구를 보고 알아차렸다.

벗겨내기 위해 다소 힘을 주었다곤 하지만 철제 투구를 찌그릴 정도의 악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박용신은 그 찌그러진 투구를 주워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힘을 주어 찌그러진 부분을 펴보였는데, 눈으로 보고도 놀랄 정도로 어렵지 않게 원상복구 시켰다.


“······.”

“······.”


그 광경을 목격한 존재는 단 둘, 박용신과 여전히 움직임을 봉쇄당한 병사뿐이다.


‘이, 이런 힘을 내가?’


괴력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왜냐하면 힘을 들여도 모자랄 판에 어렵지 않게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병사도 침을 꿀꺽 삼키며 놀란 표정을 어떻게든 감춰보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가시곤봉으로부터 옅은 검은 빛이 사그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박용신의 전신으로 솟구치던 힘 또한 자취를 감추듯 사라져버렸다.


-----


눈앞에서 용사를 놓친 왕자의 심기는 가히 절정에 달해 있었다.

금단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처럼 손톱을 물어뜯거나 어금니를 가는 등 안절부절 못하는 불안 증세를 계속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평온한 정원에 내려앉은 파랑새처럼 흐트러짐 없는 부동의 자세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왕자의 수호기사였다.

아무리 변해버린 왕자라 하여도 이 수호기사에게 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이 수호기사가 지닌 강함 때문이니까.

왕자가 모든 병사를 내보내고도 한가로이 이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수호기사 한 명의 힘에 병사 수십이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수호기사의 힘은 막강함을 넘어 일종의 상징으로도 불린다.

수호기사 10명이면 망국의 왕이라 할지어도 절대수호가 가능하다란 말이 있다.

지키기 위한 검을 뽑아드는 존재들.

그러한 목적 외엔 절대 검을 빼 들어서는 안 된다는 맹세를 한 기사들이다.

그 중 한명이자 왕자의 최측근에서 수호할 것을 명받은 기사가 바로 레이플람이다.


강함을 인정받아 작위를 물려받은 이후의 삶은 수호기사로서 지키기 위한 때가 아니면 검을 빼들 수 없었다.

만족했다.

수호기사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한 그는 가히 왕국의 천재로 불릴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았었다.

수호기사에 머무르기엔 아쉽다거나, 안타깝다는 평가가 떠돌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만족했다.

경험을 좀 더 쌓고 연륜과 지식을 겸비한다면 충분히 차기 대장군의 위치에도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그에게 있어선 욕심에 불과했다.

본인이 지닌 그릇의 크기는 잘 알고 있었다.

대장군의 위치에서 모두의 짐을 짊어진 자신은 언젠가 파멸해버릴 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힘을 추구한 본인은 오로지 수호기사로서 수호해야만 할 존재를 위해 검을 뽑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만 한다면 확실하게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켜낼 수 있다.

자신의 본분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러한 맹세가 흔들리고 있었다.

만족하고 자긍심을 가지게 만들었던 맹세가 어느 순간부터 족쇄처럼 다가왔다.

지금 지닌 이 강함의 끝을 보고 싶다.

이것은 순수한 갈망.

그것만이 레이플람이란 남자의 존재 이유.

모든 것은 이 검은 깃털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나서부터.

전부, 단 한 순간의 갈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부동의 자세로 왕자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레이플람은 자신의 품 안에서 검은 깃털 한 장을 꺼내 바라보았다.


“레이플람, 뭘 멍하니 있는 것이지? 방심을 틈타 녀석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몸을 지켜내 보이도록!”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뒤 왕자는 마차에 올라탔다.

수호기사 레이플람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한 채 검은 깃털을 품 안에 넣고선 혼잣말로 대답했다.


“그렇게 된다면 지키기 위한 검을 뽑아 상대해야만 하겠군.”


조용히 내뱉은 그 대답은 본인의 검게 물든 순수한 승부욕에 대한 대답이었다.


-----


“좋아, 다행이 사이즈는 맞네.”


습격한 병사의 갑옷을 뺏어 입은 박용신은 발가벗겨진 채 넝쿨에 포박당한 남성을 내려다보았다.

설마 군대에서 포승줄을 묶었던 게 도움이 될 줄이야.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듯, 박용신은 어울리지 않는 옅은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죽이지는 않아도 포박은 어쩔 수 없잖아.”

“으읍···!”

‘뭐라는 거야.’


재갈까지 물려놓았기 때문에 포박당한 병사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일을 벌이기로 한 이상 사소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멀리 사라진 다른 병사들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일단 다행이네, 저쪽은 세실라가 몸을 숨기고 있는 방향과는 다른 곳이니 한 동안은 괜찮겠어.’


이 정도면 시간도 충분히 박용신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수적으로나 뭐로 보나 이쪽이 열세인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단 하나 승기가 있다면 왕자의 목숨을 이쪽 수중에 두게 만드는 것.

터무니없는 계획일지 모르지만, 포박한 병사를 습격하면서 알게 된 능력으로 인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은 않았다.


‘설마 이렇게나 편리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박용신은 병사의 검을 손에 쥐며, 다른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가시곤봉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다른 한 손에 들려있는 것은 로켓 목걸이였는데, 박용신은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으로 짧게 정리를 가졌다.


‘아무래도 이 로켓 목걸이가 본래의 형태인 모양이고, 내가 바란다면 예의 가시곤봉을 불러들일 수 있으며, 곤봉의 능력은 육체에 가해진 피해의 흡수와 흡수한 피해를 육체의 힘으로 변환하는 능력 정도로 봐야겠지.’


짧게나마 실험을 통해 증명을 한 박용신이었다.

가시곤봉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작은 생채기를 내보려고 했지만 모조리 가시곤봉으로 흡수되어버렸다.

그에 따른 활력과 힘이 육체에 전해졌으며, 반대로 곤봉을 쥐고 있지 않을 땐 능력은 일절 발현되지 않았다.

즉, 이렇게 로켓 목걸이의 형태를 하고 있을 때의 박용신은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왕자에게 접근을 해야만 한다.

용사를 포박했다는 전갈을 알리는 병사로 연기를 해야 하니 딱 좋은 형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움직여볼까.’


불편한 갑옷을 입고 있는 게 갑갑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다짐한 박용신이다.

곤봉의 능력덕분에 상처 없이 습격할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망설임은 버리기로 했잖아.”


지금부터 만날 상대는 사람 목숨 따위는 우습게 보는 왕자이다.

한순간의 망설임은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만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임해야 한다.


-----


“무슨 일이지.”


눈에 익은 마차가 보이며 이윽고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남성이 갑옷을 착용한 병사, 박용신을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어보였다.

차가운 말투였지만 그 속에 담긴 어조는 무미건조하여 자칫 서툰 연기를 했다간 금방 탄로 날 것 같았다.

박용신은 언젠가 본 듯,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뒤 대답했다.


“도망친 용사를 포박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마차 안에 있던 왕자가 희소식에 고개를 내밀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상당히 격양되어 흥분에 들어찬 목소리와 방정맞은 몸짓은 옅은 그림자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예, 움직일 수 없도록 사지의 힘줄을 끊어 데려오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군! 이번만큼은···!”


기쁜 듯이 말을 내뱉던 왕자의 말이 갑자기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박용신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젠장, 설마 들킨 것은 아니겠지?!’


왕자가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오면 손에 움켜쥐고 있는 로켓 목걸이를 가시곤봉으로 변환시켜 인질로 삼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왕자의 말이 끊어지고 행동을 주춤거리자 불안해지기 시작한 박용신이었다.


“같이 있던 시녀는 어떻게 했지?”


차가우면서도 차분하게 내려앉은 목소리, 상대의 허점을 드러내기 위해 캐물어보는 것 같은 말투지만 여전히 무미건조한 어조.

왕자의 옆에 서있는 남성의 목소리였다.


“시녀, 말씀이십니까.”

“왕자님께선 시녀는 처리하라 하셨다.”

“그 자리에서 바로 처리하였습니다.”


박용신은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할수록 긴장과 식은땀으로 인해 먼저 말라죽을 것 같았다.

초기 증상은 입안이 점차 말라가고, 정신을 바짝 차리자는 다짐은 몽롱해져만 간다.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른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압박감에 못 이겨 정체를 드러낼 것만 같은 순간의 연속이 이어져갔다.

그때, 남성의 입으로부터 결정타가 흘러들어왔다.


“이상하군, 어째서 시녀의 목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지?”

“···!!”


그 대답에 박용신은 본인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앞에 있는 남성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을 막은 남성의 태도에 수긍하며 왕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였다.


“그렇군, 네 녀석 감히 이 몸을···”


스르릉!

왕자는 뒤로 물러나며 이를 갈았고, 옆에 서 있던 남성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뽑아 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용사.”

‘쳇!! 이 녀석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혀를 차며 박용신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뒤로 서둘러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왕자도 마차 안으로 들어갔고 남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모욕, 역시 참을 수 없군! 레이플람 이 몸을 지키기 위한 검으로써 녀석에게 죽음을 선사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레이플람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검게 물든 것처럼 보였지만, 박용신은 그걸 알아차릴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서둘러 가시곤봉을 떠올려 목걸이를 변환시켜보였다.


“물건을 자유자재로 부리는군. 용사의 힘은 그것만이 아닐 터, 수호기사 레이플람 나이자프 왕국의 수호기사로서··· 상대하지.”


파박!

갑옷이 아닌 제복을 입은 그의 움직임은 날렵했다.

그것은 마치 자신에겐 공격은 닿지 않는다는 무언의 자신감처럼 보였다.


‘빠르다!’


깡!!!!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박용신은 반사적으로 그의 일격을 가시곤봉으로 막아보였다.

우연 또는 운, 무의식적으로 발한 초인적인 반사 신경이 빛을 발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막았다.


‘혹시 몰라서 스스로 피해를 입혀 곤봉에 흡수시켜둔 게 도움이 되었어!’


알고 보니 가시곤봉에 피해를 흡수시켜, 그에 따른 육체 능력으로 변환시켜 반응한 것이었다.


‘일반 병사의 일격은 흡수시켰을지 몰라도, 수호기사? 아무튼 그런 녀석의 일격까지 완전히 흡수 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야, 어떻게든 스스로 피해를 입혀 변환시킬 수밖에!’


박용신은 레이플람의 일격을 막은 동시에 가시곤봉을 비틀어 서로의 간격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런 뒤 정신을 집중시켜 곤봉의 손잡이에 가시가 돋아나도록 이미지를 떠올렸고, 이내 곧바로 곤봉에 반영되었다.

촘촘하면서도 날카로운 가시들이 손잡이에 돋아나, 쥐고 있는 손바닥을 사정없이 압박하며 찔러대고 있었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자극이 육체의 능력으로 변환되어 활력과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악력에 의해 가시는 더욱 파고든다.

그렇게 축적되는 에너지는 배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었다.


‘몸에 축적되는 에너지에 따라 부작용을 보일수도 있으니, 적절히 조절하며 싸울 수밖에 없어.’


과하다 싶을 때는 손잡이의 가시를 빼고, 필요할 땐 다시 돋아나게 하는 식의 싸움을 해야만 한다.

어렵겠지만 살기 위해서는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용사는 용사인가?! 설마 레이플람의 일격을 막아낼 줄이야!”


마차에서 지켜보던 왕자는 놀라움과 동시에 주먹을 말아 쥔 손을 떨어대며 분함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어보였다.


“역시 용사. 이번에는 기사가 아닌 본래의 나로서 진심을 발휘하도록 하지.”


꿀꺽!

수 미터 떨어진 상대에게 들릴 리 없겠지만, 침을 삼킨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박용신은 곧바로 헛기침을 해보인 뒤 곤봉을 양손으로 쥐어보였다.

그로인해 자극이 두 손으로 전해졌고, 변환된 자극은 육체 능력의 향상을 불러일으켰다.

호흡은 점차 안정되어가고 정신은 맑아지며 시야가 넓어진다.

게다가 대상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며 몸은 점차 가벼워지지만, 전에 없던 힘이 감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호르몬처럼 분비되는 것이 느껴진다.


‘정신적인 부분의 향상도 곤봉의 능력인가?’


덕분에 박용신도 목숨을 건 상황 속에서 서서히 차분하게 주시할 수 있었다.

마치 수호기사 레이플람처럼.


‘기세가 바뀌었군. 이제야 제대로 상대할 셈인가.’


눈앞의 용사가 흐트러진 호흡을 곧바로 가다듬은 것을 느낀 레이플람은 그제야 진심으로 자신을 상대한다는 착각을 가졌다.

그도 방심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보석의 힘으로 소환된 자는 필시 용사의 자질을 타고난 인재들.

그런 인재들이라면 수호기사 본인의 힘도 웃돈 존재란 뜻이다.

그 힘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정말 그들이 자신보다 뛰어난 힘을 지니고 있을까? 하는 의문들.

이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한계까지 부딪히며 느껴보고 싶다.

지금의 자신은 수호기사라는 명목을 내비치고 있을 뿐.

욕망에 의해 막 본분을 벗어던진 한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간다.”


또 한 번 레이플람이 뛰어들었다.

첫 일격은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기본적인 검술이었다면, 이번에는 날렵한 움직임에 더해 변칙이 섞인 검술이었다.

가슴팍까지 끌어당긴 검을 거리가 좁혀진 찰나의 순간에 아래로 늘어뜨리며 어깨로 박용신의 자세를 무너뜨려보였다.


“···!!!”


설마 초 근접해 올지 몰랐던 박용신은 잠시 당황하여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자세는 무너진 상태!

그 상태에서 레이플람이 짧은 발놀림으로 한 번 더 근접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거리를 벌리려드는 박용신의 움직임을 예측한 것처럼 발등을 지그시 밞아 봉쇄한 것이다.


‘뭣···?!’


등골로부터 섬뜩한 기운이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기사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는 레이플람의 공격.

정식이 아닌 변칙과 틈을 파고든 그의 수는, 역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수호기사란 가면을 벗어던진 한 마리의 육식동물과도 같았다.


스앙!

레이플람의 검이 그대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훑고 지나갔다!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자세가 무너지고 움직임까지 봉쇄당한 박용신이, 레이플람의 날카로운 공격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피했다고 해도 완벽하지는 않을 터, 그의 검신은 일반적인 검보다도 훨씬 날카로운 빛을 머금고 있었고 길었다.

하지만 레이플람은 믿기 힘든 광경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베어낸 것은 박용신이 착용한 갑주가 전부이지 육체는 멀쩡했기 때문이다.


“닿았지만 닿지 않았다는 건가.”


레이플람은 감탄스럽게 말을 내뱉었지만 박용신은 달랐다.


‘미, 미친!!! 가시곤봉의 능력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레이플람이 놀란 것 이상으로 놀란 박용신이다.

물론 겉으로는 내비치지 않기 위해 담담한 척 연기를 흘리고 있었다.


“나, 날카롭네, 그 검.”


갑옷이 베어졌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두 동강난 철제 갑옷.

어떻게 하면 저런 얇은 검으로 베어낼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러한 일격도 가시곤봉은 피해를 흡수해보였다.

박용신의 육신엔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활력과 힘이 솟구친다.

그것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방대한 힘이!


“···그런가, 용사란 역시 수호기사의 위치에 달한 자의 힘을 웃도는 것인가.”

척!


“지금 뭐하는 거지?”


갑자기 레이플람이 자신의 검을 거두어들었다.

박용신은 주체할 수 없는 힘으로 자신감이 더욱 늘어난 상황이었는데, 타인이 보기에는 오만해 보이는 말투처럼 느껴졌다.

당연하게도 곤봉의 능력에 의한 향상 때문에 정작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크게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 투지, 확실히 전해졌다. 패배를 인정하지.”

“레, 레이플람! 뭐하는 짓이냐! 수호기사라면 수호기사답게 사명을 다하란 말이다!”


박용신과 레이플람의 목숨 건 결투를 지켜보고 있던 왕자가 역정을 내며 마차 안에서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왕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말든 레이플람은 다시 검을 뽑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박용신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입을 연다.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되어 왔다.”

“······?”

“하지만 오늘 용사인 그대와 검을 나누고서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뭐라는 거야?’


뜬금없이 혼잣말을 내뱉는 레이플람 때문에 박용신은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한낱 수호기사에 머물렀던 것은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지, 오늘을 계기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군.”


레이플람이 돌연 품속에서 검은 깃털을 꺼내들더니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검은 깃털?’

“용사, 그대와는 다른 장소에서 자웅을 겨룰 수 있길 바라지.”

“뭐라고?”


그렇게 레이플람은 그 말만을 남긴 채 숲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박용신은 의미심장한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고, 마차에 대기하고 있던 왕자는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까지 연신 소리를 질러대었다.


“레이플람!!!! 레이플람!!! 어딜 가는 것이냐!!! 네 녀석의 본분은 이 몸을 지키는 것이 아니더냐!!!!”


그 울부짖음은 분노로 시작해서 상실과 허탈로 이어져갔다.

지금 이 자리에 남아있는 존재는 힘이 끓어오르는 박용신과 전세역전 된 왕자 둘 뿐이다.


‘어쨌든 일생일대의 도박이 성공했다고 봐야겠지?’


오늘만큼이나 위험천만하면서도 짜릿한 경험은 없었다고 자부하는 박용신.

하지만 이런 느낌은 레이플람의 일격을 곤봉이 흡수하여 육체와 정신의 능력이 향상된 덕분에 나타난 일시적인 감정과 기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곤봉이 잠재한 이 능력은 정말 위험한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향상된다면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레이플람에게 도리어 달려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오늘처럼 적이 스스로 물러나는 상황 속에서, 변환된 에너지의 양에 따라 기복이 천차만별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건 참으로 다행이다.

어쨌든 지금의 박용신은 자신감을 넘어 약간의 오만이 내비친 상태.

성큼 걸음을 옮겨 왕자의 마차에까지 다가가 박용신은 그대로 곤봉을 휘둘러 마차의 지붕부분을 날려버렸다.


콰드드드득!!!!

“히, 히익!!!!!!!”


엄청난 괴력에 의한 파괴력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겨지지 않았다.

박용신도 이 순간만큼은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왕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우스꽝스러운 비명을 입 밖으로 내었다.


‘이게 레이플람이라는 수호기사의 힘···’


철로 만든 갑옷을 깔끔하게 두 동강 낼 정도의 검술을 구사하는 기사 레이플람.

그 힘을 검이 아닌 가시곤봉으로 내었으니 마차는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것 마냥 풍비박살 난 모습이었다.


“요, 용사여! 그대의 힘 잘 보았네···이 모든 것은 그대의 힘을 알아보기 위한···”

“알아보기 위한?”


하얗게 질린 왕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으며 얼버무리려 했지만 박용신의 분노로 얼룩진 얼굴에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서 이게 다 연기였다? 그따위 거짓말을···!!!”

“히익!!! 자 잠깐!!!!”


우뚝!

가시곤봉을 치켜들며 내려치려던 순간 박용신은 입술을 깨문 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은 왕자의 말에 의해 멈춘 것은 아닌 듯 보였다.

무언가 많은 것을 생각하는 듯.

복잡하면서도 분하고, 인정할 수 없으면서도 결국 저지를 수는 없는.

그런 감정의 기복이 파도의 형태로 치고 들어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녀석은 내가 죽이든 살리든 어떻게든 쫓아오겠지, 하지만 뜻하지 않게 말려든 세실라는···하지만 이런 인간의 탈을 쓴 악마를 용서하기엔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어···!’


뿌드득!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왕자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온갖 제안을 서슴없이 퍼부어대었다.

그러한 말은 박용신에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가고, 이 가시곤봉의 힘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죽어버렸을 것이다.

힘을 가졌다고 해서 대상을 살리거나 죽인다는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 녀석들은 어떻게든 박용신을 쫓을 것이다.

왕자를 살리든 죽이든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게 분명하겠지, 하지만 함께 말려든 세실라는 어떤가.


‘내 한순간의 선택에 의해 그녀에게 어떤 피해가 갈지도 몰라.’


그렇다 할지라도 이런 비열한 왕가 녀석들을 용서할 순 없었다.

이 선택은 앞으로의 대응을 위한 선택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손쉽게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분명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박용신은 치켜든 가시곤봉을 거두었다.

그 모습에 왕자는 안도의 한숨과 표정을 지으며 한시름 놓아보였지만 박용신은 억압적인 태도로 물었다.


“나가는 길은?”

“···나, 나가는 길 말인가?”

“뜸들이지 말고 말해.”

“세가지의 색상 중 파, 파란 깃발들이 꽂혀있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숲을 빠져나갈 수 있네.”

“만약, 거짓이라면 세상의 끝에 숨어있다 해도 반드시 찾아내 끝을 봐줄 테다.”

“거,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야!”


확답을 들은 뒤에야 박용신은 표정을 풀었다.

그 얼굴을 확인한 왕자도 그제야 안심하는 듯 보였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 너 같은 녀석이랑 같은 취급되는 건 이쪽에서 사양하겠지만···”

“···뭐, 뭐?”

“타인의 목숨을 노렸으면 이 정도는 감안했다는 거겠지.”


부웅!

콰직!!!!

“끄아아아악!!!!!!”


박용신은 말을 끝마치자마자 가시곤봉을 치켜든 뒤 그대로 왕자의 양 다리를 향해 휘둘렀고 왕자는 숲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대었다.

본래 목적이라면 왕자를 납치하여 숲을 빠져나갈 심산이었지만 곤봉의 능력이라면 이러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부상을 입은 왕자가 숲에 홀로 남겨져있다면 추격은 잠시 접어둬야만 할 테니까.


“끄, 끄으으윽!!!! 이 자식!!!!”


방금 전까지 목숨을 구걸하던 녀석이 이를 드러내며 고통에 얼룩진 얼굴과 비명을 쏟아내었다.


“그게 네 본성이라는 거겠지.”


박용신은 진짜 질린다는 표정으로 가시곤봉으로 마차를 재차 부수었다.


“이 정도면 시간은 좀 더 벌 수 있겠지.”


하체가 분질러진 왕자다.

마차가 부서졌으니 이후 복귀할 병사들이 말에 태운다한들 자극에 의해 새겨질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자연스럽게 시간은 지체 될 것이다.

그 틈에 서둘러 숲을 빠져나가 도망쳐야만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곤봉의 능력으로 육체 능력을 향상시켜 빠르게 도망칠 수밖에.’

“끄으윽!!! 두고 봐라, 으으윽···이 몸을 죽이지 않은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그땐···”


서둘러 가려던 박용신은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대충 대답한 뒤 길을 떠났다.


“그때 가서 보자, 다음번엔 네 두 팔이 될 줄 알아라. 언젠가 왕가 놈들에 대한 복수도 잊지 않고 싹 다 갚아 줄 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사로 소환, 마왕으로 세계정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용사소환은 연중하게 되었습니다. 20.09.08 25 0 -
공지 월 ~ 금 / 오후 7시로 변경되었습니다. 20.08.18 16 0 -
17 17. 금제의 공백인형 20.09.08 12 0 35쪽
16 16. 크레이프 윗 클린 남작의 저택 20.09.07 10 0 28쪽
15 15. 제 1형 [ 백호의 형태 ] 20.09.04 33 0 37쪽
14 14. 흑과 백의 공간 (2) 20.09.03 19 0 28쪽
13 13. 흑과 백의 공간 (1) 20.09.02 20 0 29쪽
12 12. 검은 손 반니움 20.09.01 19 0 29쪽
11 11. 메르제의 고집 20.08.31 13 0 32쪽
10 10. 조합사 빌 데니움의 의뢰 20.08.28 13 0 29쪽
9 9. 세계수의 흩어진 일원 20.08.27 16 0 36쪽
8 8. 모든 것은 계획대로 움직인다. 20.08.26 16 0 39쪽
7 7. 나는 죽어야만 한다. 20.08.25 19 0 32쪽
6 6. 신이 선택한 인간이다 20.08.24 22 0 34쪽
5 5. 동의 C급이라는 가장 낮은 모험가의 첫 의뢰. 20.08.21 56 0 29쪽
4 4. 이번엔 모험가가 되었다 20.08.20 54 0 34쪽
3 3. 발톱을 들이밀면 어금니를 내보여라 20.08.19 35 0 31쪽
» 2. 이것이 용사의 힘이다. 20.08.18 60 0 42쪽
1 1. 용사로 소환되었다. 그런데… 20.08.17 125 0 3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