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무게를 아는 자. - 프롤로그
한 사내가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채 높은 종탑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예쁘네. 아주.”
180cm는 넘는 건장한 사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수성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망월에 의해 드리운 음영과 깊게 눌러 쓴 후드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칙칙한 검은색의 복장과 그의 허리춤에서 은빛을 발하는 크기가 다른 두 자루의 권총을 보고 있자니 그에게서 이유모를 싸늘함이 느껴졌다.
사내는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서서 한동안 도시의 야경을 보다 천천히 자신의 목 언저리로 손을 가져갔다.
잠시 후 그의 손에 딸려 나온 건 다름 아닌 조그만 은색의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였다. 그저 장식용 액세서리 같은 모조품이 아닌,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함이 느껴지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손길이 보이는 십자가 목걸이였다.
“···.”
십자가를 유심히 보던 사내는 십자가를 억세게 쥐더니 이내 목걸이의 이음쇠가 끊어지도록 잡아당겼다. 사내의 힘을 이기지 못한 목걸이는 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에서 떨어져나갔고, 서로의 손을 놓쳐버린 목걸이의 줄은 그의 손에 매달린 채 흔들거렸다.
이음쇠가 떨어진 십자가 목걸이를 쥔 손을 지그시 보던 사내의 눈동자에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 비쳤다. 과연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 하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불타는 복수심. 그의 눈동자는 마치 온갖 감정과 생각들이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보는 것 같았다.
결국 사내는 결단이 섰는지 손에 쥔 십자가를 종탑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는 이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앎에도,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 어떠한 망설임이나 후회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다! 이단자가 여기 숨어있다!”
그때 사내의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전신을 경갑으로, 손에는 M1 팔게스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이었다.
군인의 외침에 사내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허리춤에서 작은 권총을 빼들어 군인에게 겨누었고, 군인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 작가의말
중학교 때 스토리랑 설정만 구상하고 방치해둔 유물을 꺼내 리메이크해서 올려봅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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