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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사생아가 살아남는 법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드라마

완결

아케레스
작품등록일 :
2022.10.30 04:51
최근연재일 :
2022.12.20 21:07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14,669
추천수 :
284
글자수 :
191,186

작성
22.11.15 18:05
조회
270
추천
5
글자
10쪽

EP. 5 사부, 미안합니다. (5)

DUMMY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세릴다가 입을 다문다.

마나가 일렁인다.


그녀가 대련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성백이 눈을 부릅떴다.

피에 젖은 시야가 붉다.


쿠웅-


가벼운 걸음이 천둥처럼 느껴진다.


성백은 손에 쥔 목검을 놓았다.

랑닉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변수가 필요했다.


이를 악물고 내기를 끌어올렸다.

대련 내내 쥐어짜인 하단전이 비명을 질러댔다.


“쓰읍.”


천무진기가 혈도를 타고 흐른다.

혈을 지나갈 때마다 증폭되고, 증폭되고, 증폭된다.


그즈음, 세릴다의 목검이 그어진다.

그녀는 랑닉이 그랬던 것처럼 어깨를 노려왔다.


성백이 상체를 틀어 어깨를 뒤로 뺐다.

콰지직- 대련장 바닥이 박살 났다.


세릴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대련이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성백이 목검을 피하는 순간이었다.


타닷-


성백이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보법.

아니, 보법을 가장한 잽스텝.


세릴다가 놀란 고양이처럼 몸을 뒤로 날린다.

성백은 쫓아가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성백의 천무진기는 혈도를 타고 흘렀다.


두근-


심장에 고인 마나가 천무진기에 반응한다.

성백은 그것들을 가만두었다.


자세를 수습한 세릴다가 다시 달려든다.


두근-


마나 일부가 머리를 두드린다.

대부분은 천무진기와 섞여 혈도를 타고 질주한다.


쿠웅-


세릴다가 진각을 밟는다.

흐르는 구름처럼 유유한 궤적이 성백의 상체를 대각선으로 그어온다.


목검은 아직 휘둘러지지 않았으나, 성백은 그 궤적을 이미 읽었다.


투웅-


성백이 진각을 밟았다.

몸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잔뜩 증폭된 천무진기가 오른 주먹에 모였다.

맞아도 좋으니 한 대 시원하게 갈겨줄 생각이었다.


오크와 인간의 신형이 겹쳤다.


“..!”


성백이 주먹을 뻗었다.

천무진기가 맹렬하게 터져 나왔다.


세릴다의 동작을 완벽하게 읽고 준비한 카운터.

놀란 그녀의 동공이 확장된다.


그 순간.


“여기까지 하지.”


터업-


늙은 오크가 성백의 주먹을 잡았다.

반대 손에는 세릴다의 목검이 잡혀 있었다.


찰나의 순간, 대사부 카지르가 둘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왜..”


멈춘 겁니까.


목이 쉬어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하나 대사부 카지르는 대답했다.


“그대로 뒀으면 죽었다.”

“하.”


성백이 무릎을 꿇었다.

랑닉이 다가와 성백을 부축했다.


“사부, 미안합니다.”

“...”

“이겼어야 했는데.”


성백이 정신을 잃었다.

랑닉이 그를 보곤 피식 웃었다.


“네가 이겼어. 멍청한 녀석아.”


죽을 뻔한 건 성백이 아니라 세릴다였다.


EP. 5 사부, 미안합니다. (完)


--


대사부 카지르는 대련을 무승부로 판정했다.


수준 낮은 오크들은 늙은 오크가 성백을 배려했다고 여겼다.

반면 몇 안 되는 고수들은 스승이 제자 앞에서 체면을 차렸다고 생각했다.


내기는 랑닉의 승리로 돌아갔다.


“말해두었으니 창고에 들러서 가져가거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성백은 사흘 동안 앓아누웠다.

그리고 이만 금짜리 청천단을 소화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요양했다.


“네 단전에는 과해. 나중에 하는 게 어떠냐?”

“이만 금짜리 영약이에요. 팔 수 없다면 당장 먹겠습니다.”

“고생할걸.”

“세상사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압니까. 도둑이라도 들지 모르잖아요.”


외부에는 비밀로 했기에, 오크들은 성백이 한 달 동안 앓아누운 줄 알았다.


사실 랑닉과 카지르, 성백을 제외하고도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성백의 거처를 청소하는 프랑스 소녀 클로리스였다.


“이제 괜찮아요?”

“괜찮아졌어. 너 인마. 쉬지 말고 뒷방 쓸어. 하나도 안 쓸었지?”

“어제 쓸었는데.”

“먼지는 하루면 충분히 쌓인다. 그리고 여기도 제대로 안 닦였어. 봐. 물을 적당히 짜서 밀어야지. 그렇게..”


성백은 클로리스에게 청소를 가르치는 데 재미를 붙였다.

의외로 무언가 가르치는 게 성백의 적성에 맞았다.


그에 관해 이야기하자, 랑닉은 무공을 가르쳐도 좋다고 말했다.


“정말 알려줘도 돼요?”

“구결만 안 알려주면 돼.”


가르치는 만큼 배운다.

랑닉은 소녀를 가르치며 성백이 성장하길 기대했다.


청천단을 소화하느라 단전을 쉬게 해야 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클로리스는 뛸 듯이 기뻐했다.


“무공을 배우면 나도 성백처럼 강해질 수 있겠지?”

“그건 어렵지.”

“헤헤. 성백은 만화에 나오는 히어로 같아.”

“히어로?”


히어로.

초능력을 타고나고, 그 힘을 선행에 사용하는 엄청난 사람들.


“예전에 엄마가 보던 미국 잡지 만화가 있거든.”

“궁금하네. 나중에 나도 보여줘.”

“그건 성백 하는 거 보고.”

“뭐야?”

“오늘처럼 깨끗한 방 다시 청소시키면 안 보여줄 거야.”

“그건 진짜 더러운 방이었어, 클로리스. 아무튼 내일부터는 좀 일찍 나와.”


랑닉의 예상대로, 성백은 가르치면서 배웠다.

심지어 랑닉이 온갖 정신을 쏟은 6개월보다 클로리스를 가르친 석 달의 성장세가 가팔랐다.


그리고 딱 석 달째 되는 날.


“사부.”

“왜.” “어머니를 만나고 와야겠습니다.”


성백이 선언했다.

랑닉은 반대했다.


“배움에는 때가 있어. 너는 지금이 그때다.”


가파른 성장세를 바람 삼아 하늘을 날아야 한다.


“사부. 약속했잖아요.”

“가지 말라는 게 아니야. 조금만 더 하다 가라고.”

“아뇨. 저는 지금 가야겠어요.”


울란바토르에서 다시 만난 이후, 성백은 한 번도 랑닉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

자신을 제자로 삼아야겠다며 억지를 부리는 오크에게 오히려 마음을 열고 싹싹하게 굴었다.


둘은 친해졌고, 이제 랑닉은 성백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얼마나 유쾌한지.

얼마나 사려 깊은지.

얼마나 성실하고, 근성이 있는지.

또 서림과 현지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도.


결국 스승이 제자에게 졌다.


“그럼 갔다 오자.”

“사부도요?”

“너 혼자 아프리카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성백은 체감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었다.

구 영국 지역에도 미군의 공습이 있었고, 아프리카 국경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하루에도 수십 번 일어난다 했다.


“여기서야 천무학관의 제자지만, 아프리카 국경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거다.”


랑닉은 그날 저녁 천무학관의 대사부 카지르에게 가서 일정을 통보했다.


“안 된다. 사부가 겉으로 돌면 학관 분위기가 흐트러져.”

“몰라요. 전 갑니다.”


정말로 ‘통보’였다.


--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날이 생각난다.


만신창이가 되어 가까스로 서 있는 인간.

무정하게 검을 휘두르는 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피에 젖은 눈동자가 나를 얼마나 벗겨냈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하지.”


대사부의 목소리가 머리에 울렸다.


“왜..”

“그대로 뒀으면 죽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랑닉의 제자 성백은 운류검을 완벽히 파훼했다.

단 한 번의 대련만으로.


충격에 빠진 세릴다는 폐관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그날의 대련을 수백, 수천, 수만 번 되감았다.

대련에서 패배한 이유를 되짚었다.


공력도 세릴다가 심후했다.

검술은 월등히 앞섰다.

때리는 쪽보다 얻어맞은 쪽이 더 지쳤을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졌다.

성백이 마지막에 보여준 경지는 세릴다가 닿지 못한 영역에 있었던 거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었을까.


폐관은 석 달이나 이어졌다.


대련을 되짚는 과정에서 운류검의 성취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지막 순간의 성백을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세릴다는 폐관을 깨고 대사부 카지르에게 갔다.


“성취는 있었느냐?”

“부족합니다, 사부님.”

“향상심은 가상하나 그것 역시 욕심이다. 과하면 없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성백과 대련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백은 아프리카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허락해주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수제자란 놈이 저리 천방지축이라 내 속도 속이 아니다.”


랑닉은 다섯 살에 천무학관에 입관했고, 열일곱 살에 제 스승을 꺾었다.

저보다 약한 스승 밑에서 10년을 참았으니, 어쩌면 일이 이리되는 것도 당연했다.


최연소 사부 자리를 내어주며 목줄을 잡아보려고도 했지만, 이제는 제자를 키워내는 것까지 제 스승을 따라잡아 버렸다.


학관을 물려줘야 할까.

아니면 분가를 시켜야 할까.

나이와 혈기를 생각하면 둘 다 너무 이른데.


늙은 오크가 남몰래 고민하는 것도 모르고, 세릴다가 당돌하게 물어왔다.


“저도 가겠습니다.”

“어디를?”

“아프리카요. 그렇지 않아도 수행이 필요했습니다.”


평소였다면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라며 잘라냈을 것이다.

하지만 카지르는 그녀의 눈을 보고 말았다.


향상심으로 이글거리는.

건강한 열의로 가득 찬 눈.


세릴다는 랑닉과 다르니 말리려면 말릴 수 있었다.

그러나 말리는 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서 물어보거라.”


세릴다는 거리낌 없이 랑닉을 찾아갔다.


랑닉은 대사부가 허락했다는 말을 듣고는 거절하지 않았다.


“사부. 그 정도는 저랑 상의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너랑 둘이 여행하려고 생각하니 칙칙해서 숨이 막혔다.”


랑닉은 파리에 연인이 둘이나 있었다.

심지어 가볍게 만나는 여자를 합치면 다섯이 넘었다.


“학관 제자는 안 건드리신다면서요.”

“눈으로 보는 것 정도야.”

“사부. 박즈 형 기억나세요?”

“얼간이 엘프?”

“이제 보니 그 형이나 사부나 다를 것도 없네요.”


성백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릴다의 몸을 떠올렸다.

그녀의 건강하고 탄탄한 몸매는 확실히 예술 작품에 가깝다.


..현지와 헤어진 지 너무 오래된 모양이다.


두 남정네는 여행을 준비했다.


오크 화폐와 현물 금.

옷가지와 식량.


챙길 것이 많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너, 검이 없구나?”

“목검은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하나 사자.”


그런데 성백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성백. 떠나?”


그가 거둔 프랑스 소녀, 클로리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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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P. 8 엇갈림. (2) 22.11.26 170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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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P. 7 지브롤터, 탕헤르, 카사블랑카. 그리고.. (3) 22.11.23 207 5 11쪽
23 EP. 7 지브롤터, 탕헤르, 카사블랑카. 그리고.. (2) 22.11.22 203 5 10쪽
22 EP. 7 지브롤터, 탕헤르, 카사블랑카. 그리고.. +2 22.11.21 225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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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 5 사부, 미안합니다. (5) 22.11.15 271 5 10쪽
16 EP. 5 사부, 미안합니다. (4) 22.11.14 259 7 11쪽
15 EP. 5 사부, 미안합니다. (3) +1 22.11.12 268 6 11쪽
14 EP. 5 사부, 미안합니다. (2) 22.11.11 291 5 10쪽
13 EP. 5 사부, 미안합니다. 22.11.10 31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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