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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고인물이 특전을 독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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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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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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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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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철과 기계의 섬 (2)

DUMMY

 “어우, 이런···.”


 이사수는 우두머리 링서크의 시체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난생처음 분해해 보는 몬스터가 30레벨도 넘는 엘리트 개체라니.

 살짝 손이 떨려왔지만 마음을 다잡고 해체를 시작했다.


 서걱. 서걱.


 형님인 성도혁과 강형석이 힘을 합쳐 잡은 몬스터가 아니던가.

 운 좋게 시체까지 남은 이상, 그 뒤처리는 자신의 몫이었다.


 ‘형님이 강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엘리트 몬스터까지!’


 최소 30레벨에 달하는 몬스터를 요리해 버리는 모습이 여전히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다.


 조금 전.

 성도혁의 패리와 마법 이후에도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완벽한 빈틈에 마법을 쏟아부었다곤 해도 고작 1등급의 마법이 아니던가.


 정신을 차린 우두머리 링서크는 특유의 긴 수염을 흩날리며 성도혁에게 달려들었지만, 그 손톱이 목표에 닿는 일은 없었다.


 카앙!


 여지없이 성도혁의 패리가 터져 나오며, 그 공격을 간단히 무효로 돌려버린 것.

 이후 주요 관절을 향해 또다시 1등급의 마법들이 휘몰아쳤다.


 그렇게 두 번째로 놈이 무력화된 순간.


 쐐애액!


 완전히 멈춰있던 우두머리 링서크의 두개골을 하얀 기운이 서린 화살이 꿰뚫었다.

 10초는커녕 놈을 완전히 무력화한 덕분에 최소한이 아닌 최대 위력의 마나를 집어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도축용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이사수의 곁에 강형석이 다가왔다.


 “해체할 만한가?”


 “철쪼가리가 없으니, 칼이 쑥쑥 들어갑디다. 질병에 오염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지유?”


 “기계화 질병은 숙주가 죽으면 더는 재질을 유지하지 못하지. 감염도 발생하지 않으니, 식용으로 써도 문제가 없다.”


 강형석은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이사수는 그 말에 살짝 몸서리를 쳤다.


 이계는 물론 현실에서도 몬스터 고기는 꽤 흔한 식재료가 되었지만, 조금 전 기계 발톱을 휘두르던 링서크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그나저나 해체 실력이 심상치 않군.’


 그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첫 도축이라며 막막해하던 것과는 달리, 그의 손은 숙련된 도축업자처럼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나.

 강형석은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임에도 꽤 신기하게 보일 정도였다.


 “근데 정말 고기만 가져도 괜찮아유? 꽤 부산물이 많을 거 같은디.”


 “너희가 없었으면 난 죽었을 거다. 그리고 오히려 고기말고는···.”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무는 강형석.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듯한 모습.


 이사수의 머릿속에 도시의 풍경이 떠올랐다.

 밥을 먹지 못했는지 삐쩍 말라 있던 도시의 주민들.

 분명 그것과 관계가 있지 싶었다.


 그래도 상관없는 것이, 적어도 먹을 거에 관련해서 그와 성도혁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또 혁이 형님이 가만히 있는데 굳이 내가 나설 이유도 없지.’


 저 멀리 떨어져서 칼을 손질하는 도혁을 슬쩍 바라본다.

 충분히 대화가 들릴만한 거리.

 배분에 불만이 있었다면 먼저 나서서 다가왔겠지.


 한참 도축이 이어지던 와중, 강형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는 방금 전투에서 저 청년이 뭘 선보인 건지 알고있나.”


 “으응? 불꽃이 팍 튀면서 공격을 쳐낸 거 아니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공격을 쳐낸 게 아니다. 그건 시스템이 분류한 일종의 현상. ‘패리’라고 하지.”


 “패리라. 그런 스킬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구먼유.”


 “그게 문제다. 저건 스킬이 아니니까.”


 이계에는 여러 종류의 패리가 스킬로 존재한다.

 섬광 패리, 철벽 패리 등.


 그러나 거의 모든 패리 스킬은 방패를 이용해야만 발동할 수 있다.

 극히 드물게 단검을 통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런 패리 스킬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모든 패리 스킬에는 전조 이펙트가 있다. 딱 봐도 함부로 공격을 갖다 대선 안 될 것 같은 기운이 장비를 뒤덮지. 그래서 얼마나 칼같은 타이밍에 스킬을 발동하는지가 관건이다···원래라면.”


 강형석의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성도혁의 검에는 전조 이펙트가 조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붉고 노란 패리 성공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지 않았는가.


 “저자가 발동한 패리는 분명 ‘시스템 패리’다. 이게 지금 뭘 말하는 건지 아나?”


 “우리 형님이 엄청나게 대단하다는 거 아녀유.”


 “아니, 이건 그런···.”


 엄지를 척 올리며 농담처럼 반응하는 이사수의 모습에 강형석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레벨은 잘 쳐줘도 20 정도일 것이다.

 검을 휘두르던 속도와 담긴 힘.

 무엇보다도 검에 마나가 하나도 담기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성도혁은 ‘시스템 패리’를 통해 놈을 무력화했다.

 랭커들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패리를, 아주 완벽하게 두번이나 연속으로 쓰면서.


 거기에 쏟아지던 1등급의 마력또한 그가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방금의 전투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그를 영입하기 위해 수많은 랭커 클랜이 접촉하려 할 것이다.


 ‘어쩌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런 기교를 보고나니 가볍게 다가가는게 망설여질 정도.

 그래서 그나마 좀 만만해보이는 이사수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후.”


 강형석은 한번 한숨을 내쉰 뒤, 자신도 멀찍이 자리를 잡고 석궁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섬이 격리되지만 않았더라면.”


 저런 재능이 이런 섬에서 묻히는 게 정말로 안타까웠다.


 하늘이 참으로 얄궂은 운명을 내렸다고.

 강형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



 사수가 도축해 둔 결과물을 보며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한데.”


 “으흐흐. 만족스럽구만유.”


 우두머리의 이빨, 손톱, 가죽, 피는 물론이고.


 [ 기계화 링서크의 신경 섬유 ]

 [ 메카니터스 증후군이 사라졌음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버린 신경. 매우 민감하고 빠른 마나 전달력을 보여, 희귀한 가공 재료로 사용 가능하다. ]


 극히 손상되기 쉽고, 그 순간 상품성이 사라지는 신경 섬유를 완벽하게 분리해 내지 않았나.

 신예의 둥지에서 배웠다고 해도 처음부터 이리 완벽하게 일을 마칠 줄은 몰랐다.


 [ 대략 1900지르를 좀 넘길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경 섬유의 가격만 절반을 넘습니다. ]


 도축 기술 하나로 거의 100만 원이 넘는 추가 이득을 가져왔으니 어떻게 칭찬하지 않을 수 있겠나.


 처음 약속대로 고기는 모두 강형석 씨에게 넘기고, 우린 다시 도시로 향했다.


 “부산물은 어떻게 할 건가.”


 “일단은 가지고 있으려고 합니다.”


 “마음대로 하게.”


 그의 입장에선 어차피 이 섬을 나갈 방법도 없는데 가지고 있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

 하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발칸델 섬에 팔아야지.’


 하우징에 등록된 거점은 섬이 격리 상태가 된다고 해도 빠져나갈 수 있다.


 과거 레닉수스 시절, 하우징의 등장으로 격리는 그저 경험치와 새로운 보스가 등장하는 이벤트로 전락했었다.

 그 시스템을 미리 열어버린 내게도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도 난감한 상황이긴 하지. 거점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건 오직 하우징의 주인 뿐이니까.’


 안타깝게도 내가 발칸델로 향하는 문을 연다고 해도 사수는 통과할 수 없다.


 거점 등록을 통해 몇 명이든 섬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비공정 같은 이동 수단의 의미가 사라지고 만다.

 그 섬에 거점을 가진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니까.


 결국 하우징이 있어도 이 섬의 격리 상황을 해제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도시에 돌아오고 나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바로 식량 배급소였다.

 강형석은 들쳐메고 온 자루 중 하나를 배급소 안에 내려놓았다.


 “링서크 우두머리요.”


 “오, 오오···.”

 “실하고 튼튼한 것이, 수프로 만들면 3일은 나눠 먹겠군···!”


 거대한 몬스터의 고기를 보며 기뻐하는 주민들을 뒤로한 채 우린 다시 밖으로 나왔다.


 “돈은 받지 않으시는군요.”


 “도시가 이렇게 됐는데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는 배급소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이곳도 본래는 시민 회관이었지. 메카니터스 증후군이 도시의 식량고와 논밭마저 휩쓸어버리기 전에는 말이야.”


 “비축해 둔 식량까지 감염됐단 말입니까?”


 “그래. 덕분에 이렇게 도시 전체가 수렵에만 의지하고 있지. 하지만 알다시피 몬스터의 사체는 쉽게 남지 않아.”


 처음 기계화 입자가 퍼진 날, 비축해 뒀던 식량이 모조리 기계화되어 먹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메카니터스 증후군은 땅까지 감염시켜 자라던 곡식마저 기계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도시 전체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게 된 것.


 ‘이상하지? 땅과 곡식은 생명체가 아니잖아.’


 [ 예. 불가능하진 않습니다만, 논밭과 보관해둔 식량까지 하루만에 감염된 것은 뭔가 이유가 있어보입니다. ]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치료소’였다.

 수십 명의 인원들이 바닥에 깔린 이불과 덮개에 몸을 대충 20명 남짓 되는 인원들이 바닥에 깔린 허름한 이불이나 덮개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메카니터스 증후군의 진행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인다.


 우리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손과 팔, 다리에 기계 부품이 덕지덕지 붙은 남자였다.


 “영감님. 그 사람들은 누굽니까?”


 “격리를 뚫고 들어온 초보자들이다. 신예의 둥지에서 이곳에 바로 날아왔다는군.”


 “예?! 그게 가능합니까?”


 고통도 잠시 잊을 정도로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나와 사수를 향해 안쓰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 시선은 곧 강형석 씨가 어깨에 두른 고기로 향했다.


 “오, 그 툭 튀어나온 수염은 링서크 아닙니까? 그것도 우두머리급 같아 보이는데.”


 “맞네. 이 청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을지도 모르지.”


 “영감님, 농담도.”


 그는 고기를 건네받곤 익숙하게 식당으로 향했다.


 “강형석 어르신.”


 “그냥 영감님이라고 부르게. 함께 사선도 넘지 않았나.”


 강형석의 시선은 이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예, 영감님. 영감님의 동료분들도 저기 계십니까?”


 “···동료. 동료라.”


 그는 씁쓸하게 코웃음을 치곤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함께 끝을 맞이하기로 한 친구들을 어찌 동료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나. 날 두고 먼저 간 놈들도, 여기 있는 친구들도. 모두 동료지.”


 허공을 바라보는 영감님의 눈동자는 먼저 간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저기, 영감님···. 저 사람들은 감염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거에유? 이대로···.”


 이사수는 충격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 절반이 금속판으로 뒤덮여있는 사람, 손가락 끝부터 어깨까지 전부 기계화된 손을 끌고 다니는 사람 등.

 채 말을 다 하지 못했으나, 이대로 있으면 죽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려 했겠지.


 인터넷이나 아카데미에선 그저 ‘개척자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정도로만 설명한다.

 이렇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무게는 사뭇 다를 수 밖에 없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계화가 멈춘 상태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진 모르겠지만.”


 “···멈췄으면 다행 아닌가유?”


 “꼭 그렇지만도 않아.”


 속이 쓰린지 가방에서 다시 술병을 꺼내는 강형석.


 “저 기계가 뭐 생각대로 움직여주면 모르겠다만, 꿈쩍도 하지 않아. 몸이 통째로 짐덩이가 된다는 말이다. 그럼 큰 문제가 생기고 말지.”


 꼴깍, 꼴깍.

 흘러내린 술방울을 소매로 닦는다.


 “눈총과 분노. 지금 이들에게 두려운건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이야. 도시의 주민을 포함해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가 말한 상황이 바로 이해됐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주민들은 어떻게든 기계화되지 않은 풀이나 나무껍질, 열매 같은 것들을 캐올 수 있어. 그리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 이놈들은 가만히 누워 식량만 축내는 밥벌레 아니겠나.”


 “돈도 의미 없었겠군요.”


 “그래. 이 섬은 2계층 초입 치곤 상당히 부유한 편에 속했다. 사냥이 쉬우니 개척자들도 대체로 주머니가 두둑했고. 하지만 지금 이 도시는, 돈을 산더미처럼 갖다줘도 감자 하나 구할 수 없어.”


 그는 입구 근처를 가리켰다.


 “나는 매일 이 입구 앞에서 잠을 잔다. 입이 줄어들길 바라는 과격한 주민이 새벽에 두어 번 난동을 부렸거든.”


 가벼운 의미의 난동은 아니겠지.

 치료소 앞까지 온 사람들이, 도시의 중요한 수렵꾼인 그를 떠올리게 하기 위해 불편한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미우십니까?”


 “뭐? 아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감각을 아는데 내가 어찌 주민들을 미워하겠나.”


 굶주림이야 말로 가장 원초적인 고통이었다.

 이성을 마비시키고 의식 밑바닥 본능까지 불러 일으키는 고통.


 어느새 술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한숨을 길게 내쉰 그는 흐릿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도시 인구에 비해 몬스터 수렵은 턱없이 부족해. 점차 아사자가 나오겠지. 죽음도 이미 각오했네. 바라는 건 딱 하나야. 그냥, 지구에 있을 내 가족들에게 내가 무사하다고 전하고 싶어.”


 “···.”


 그 마음은 잘 안다.


 미래에 끌려갔을 때, 나 역시 내가 무사하다는 것만이라도 전해졌으면 했다.

 그 절실한 감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들었으면 충분했다.

 나는 사수에게 밖으로 가자고 손짓했다.


 “혹시 이 근방에는 여관밖에 없습니까? 혹시 좀 더 넓은 다른 시설이 있다던가.”


 “뭐, 시설이 불만이냐?”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더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해서요.”


 “어차피 여관에선 돈도 안 받는데 특이한 놈이군. 사람 없는 집의 문은 다 열려있으니, 괜찮다 싶으면 들어가서 자리를 잡아도 된다. 누가 뭐라 하겠나.”


 “감사합니다.”


 바깥을 빠져나오며 사수와 눈이 마주쳤다.


 일단은, 그래.


 이 마을에 활기부터 되찾아주도록 하자.



**



 “초보 개척자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지, 원.”


 석 달 만에 방문자가 와서일까, 강형석은 쓸데없이 꺼내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 꺼낸 자신을 자책했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에, 누가 들어도 유언 같은 소리를 지껄이다니.

 나이를 먹으니, 감성적으로 되어버린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는 시스템 패리를 사용하는 성도혁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사실 그의 본래 직업은 평범한 개척자가 아닌 흑오 클랜의 스카우터였다.

 3계층에 올라가 본 적도 있는, 레벨 41의 개척자.


 다만 스카우터 역할을 위해 경험치를 몰아받은 편이기 때문에 싸구려 연공법에 특성이나 스킬도 부족하다.

 레벨에 비해선 전투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

 그럼에도, 이 섬의 개척자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도 그를 잡으려 했을 텐데.’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성도혁은 반드시 랭커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인재일 것이다.

 그래봐야 이젠 다같이 끝을 향해 달려갈 뿐이지만.


 몇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부엌 안에서는 꽤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아, 아저씨! 영감님 아저씨!”


 “영감님은 이름이 아니라니까.”


 코흘리개 꼬맹이 한 명이 치료소로 들어온다.

 메카니터스 증후군에 걸린 개척자를 보고도 겁 없이 들어오는 모습.

 그와 자주 이야기를 나눠주는 붙임성 좋은 원주민 꼬맹이였다.


 분명 요리 냄새를 맡고 왔겠지.

 수프 한 그릇 내어줄 권한 정도야 충분히 있다.


 “녀석. 이 냄새를 못 참···.”


 “이리, 이리로!”


 “응? 아니, 이 녀석아. 무슨 일이냐?”


 그의 손을 잡더니 허겁지겁 어디론가 끌고 가는 모습.

 어린아이에게 매정하게 대하는 성격은 아니다 보니, 강형석은 꼬맹이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는 근처였다.

 무언가 이상했다.

 주민들은 기묘한 활기를 띠며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수군덕거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헤치고 집 앞에 당도하자 활짝 열린 문 안으로 집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이건, 도대체?”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엄청난 양의 식자재였다.

 쌀자루, 말린 어육과 소고기가 한쪽 벽면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진열되어 있고, 반대쪽 테이블에도 다양한 통과 상자가 가득했다.

 각종 신선한 과일과 야채가 작은 바구니에 담겨 가지런히 놓여있기까지 했다.


 그 사이로 이사수가 무언가 뚝딱뚝딱 만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판자 몇 개를 모아 허술하게 세워지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임시 가판대처럼 보였다.


 “아, 영감님!”


 “자네가, 자네가 이곳을···? 이것들을 도대체 어디서···!”


 “으음.”


 웃는 얼굴로 볼을 긁적거리는 성도혁의 모습.


 “혹시 아공간 특성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당연히 들어본 적 있었다.

 ‘인벤토리’ 특성을 가진 극소수의 개척자들.

 작게는 방 하나 정도의 크기에서 크게는 창고 하나를 가지기까지 하는 특성은 대규모 교역을 바라는 기업에서 1순위로 영입하려하는 인재들이었으니까.


 베테랑 개척자에게 설명은 그걸로 충분했다.


 “자네···. 자네···.”


 그의 손끝이 떨려온다.



**



 “돈의 의미가 순식간에 사라진 도시라.”


 거꾸로 말하면 이 도시와 개척자들에겐 돈만큼은 넘치도록 남아있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그 휴지 조각에 가치를 만들어줄 힘이 있다.


 뒤에서 나온 이사수가 가판대를 집 앞에 내려둔다.

 그러곤 내부에 쌓인 곡물과 채소 상자를 들어 올린다.


 영감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 도시를 둘러싼 절망을 꼭 치워버리고 싶어졌다.

 그러니 너무 심하지는 않게.

 사람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만.


 그래, 딱 그 정도만 할까.


 쿵!


 상자가 가판대 위에 놓인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크게 외쳤다.


 “열 배! 이전 시세의 딱 열 배만 받겠습니다! 물물교환도 환영합니다!”

 “어서 옵쇼!”


 극도의 기근에 시달리던 도시에서 작은 시장이 문을 열었다.

 무려 석 달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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