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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수 님의 서재입니다.

돌아온 사이코패스는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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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기영수
작품등록일 :
2024.05.08 14:22
최근연재일 :
2024.05.13 12:2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25
추천수 :
2
글자수 :
68,592

작성
24.05.0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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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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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멸망의 탑(1)

DUMMY

푸르렀던 하늘은 잿빛으로 변했고, 건축물들이 있어야 할 곳엔 그저 황무지가 된 메마른 땅만 존재했으며, 인기척은커녕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어!”


하지만, 멸망한 북한을 넘어 멸망의 탑이 뿌리 세운 중국으로 이동한다면, 제법 많은 인파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각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왔는지,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보이고 들렸다.


“뭔가 오랜만에 사람들을 마주하니, 에너지가 생기는 기분이네요.”


지우는 그리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흘 만에 보는 사람들이었기에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사흘 동안 길잡이 엄인용 선배와 서로 의지하며, 발바닥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걷고 또 걸었던 시간만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탑을 등반하러 오는 등반자들이 있나 보다.”


한편, 길잡이도 오랜만에 보는 활기찬 모습에 사뭇 들뜬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멸망한 세계에서도 등반하러 온 정의로운 용사들이라 그런지, 엄청 듬직해 보였다.


듬직한 체형과 총기 가득한 눈빛.

왠지 이들 중 정상까지 등반할 사람이 존재할 것 같은 기대감도 생겨났다.


“제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잔말 말고 오시죠.”


하지만, 그들과 반대로 탑 등반에 실패하고 돌아서는 이들도 보였다.


그들의 눈빛은 죽어있었고, 상처 입은 녀석들도 많이 보였다.


등반에 실패한 등반자들을 보면, 없던 두려움도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욱 보기 힘들었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가족들.

탑 등반에 실패하고 죽은 등반자들은,

장례 또한 치르기 힘들었다.


탑을 높이 올라간 등반자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시신을 갖고 나오기 힘드니 말이다.


그래서 등반자들은 탑에 올라가기 전,

가족들에게 자신의 유품을 전해주는 풍습이 있었다.


“파덜···”


때마침 아버지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오열하는 외국인 딸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맴돌았다.


남은 유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려올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재수 없게! 여기서 울고 지랄이야!”


하지만, 실패한 가족들의 울음은 등반을 준비하는 등반자들에겐 듣기 싫은 비명과도 같았다.


유가족들의 눈물이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찾아올까.

뭐,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아이잖아요!)

“닥쳐! 뭐라는 거야. 나 영어 못 알아들어!”

(아이가 안쓰럽지도 않냐고요!)

“씨바. 가만 보니깐, 남편 뒤진 것 같은데, 찍찍찍 시끄러운 아이마저 잃게 해줄까?”


저렇게, 선을 넘는 자들만 생기지 않으면 말이다.


“똥이 드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합니까?”


그러나, 같이 온 길잡이 엄인용 선배는 고개를 저으며 가던 길이나 계속 가자고 속삭였다.


하긴, 지우가 나선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내 몸에 있는 김유신을 꺼내면 모를까.


아! 오히려 김유신이 나오면, 유가족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도 있겠네.


지우의 몸에 깃든 녀석은, 저 녀석보다 더한 사이코패스이니 말이다.


지우는 할 수 없이 불의를 참았다.

아니 참아내야 했다.


“커억.”


아이를 때리는 저 못된 짐승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


X 표시처럼 생긴 문양이 가슴팍에 박혀있는 거로 봐선, 그 유명한 4대 조직 프로스트의 등반자일 것이다.


4대 조직은 김유신이 정상에 오른 후, 세계를 지배했을 때 만들었던 어둠의 조직이었으며, 아직까지도 명실상부 가장 강한 조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4대 조직의 한 명을 맞서 싸우려 들다니.

불과 사흘 전, 무섭다며 질질 짜던 청년이 맞는지.

엄인용 길잡이는 의문이 들었다.


“용감한 거야? 멍청한 거야?”


아이를 때린 저 프로스트 조직의 물음과 같이 배지우의 행동은 어디로 튈지 몰랐다.


“아무리 듣기 싫어도 아이를 때리는 건 아니죠···.”


하지만, 막상 지우 자신도 나서기는 했지만,

두려운 건 매한가지.

다리가 엄청나게 후들거리는 중이다.


“씨바. 한국말을 쓰는 거 보니, 같은 동포인 것 같은데, 신경 끄지?”

“그러기엔, 신경이 쓰이네요.”

“하···. 오늘 참. 일진 더럽네.”


지우보다 50cm는 더 커 보이는 떡대의 등반자가 등에 달고 있었던 도끼를 쳐들었다.


“한국인이라 모르나? 이 문양의 뜻을?”

“4대 조직 중, 어둠이라 불리는 프로스트. 잘 알죠.”

“너는 또 뭐냐?”

“저는 이 청년의 길잡이입니다.”


어찌 됐든 길잡이의 일은 동행자가 목적지에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이니, 엄인용도 이 일에 나섰다.


“어린 것들이 쌍으로 지랄이네.”

(저 등반자가 유가족을 폭행합니다. 도와주세요!)

“뭐야! 너 영어 할 줄 안다고 유세냐?”

(도와주세요! 용감한 등반자 여러분들)


길잡이가 유창한 영어로 주변에서 구경하던 등반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맞서 싸우지 못하면, 동료를 만들어라.

그것이 엄인용 길잡이가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던 철학이었다.


(무슨 일이야, 친구?)

(우리가 도울 게 있을까?)


길잡이의 도움 요청은 예상대로 잘 먹혔다.

멸망한 세계에도 탑을 등반하러 온 등반자들에겐 정의가 디폴트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 애 한 명 울렸다고 범죄자 취급이네!”


한편, 점점 구경하는 등반자들이 많아지자, 자칭 프로스트라 주장하던 아저씨는 씩씩대며 자리를 떠났다.


범죄자 취급이 더러워서 떠난다고 주장하지만, 누가봐도 쫄아서 튀는 녀석의 뒷걸음질이었다.


그건 그렇고, 하던 건 해야지.


“지우님, 정의로운 건 알겠는데, 굳이 나서지 맙시다. 뭐, 구원자의 영혼이라도 불러내려 그랬어요? 오히려 그러면 저를 비롯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어요.”

“... 경솔했습니다.”

“크흡, 뭐, 그래도 시원하긴 하네요.”


길잡이는 지우에게 뭐가 첫 번째인지 알려주려 했다.

하지만, 길잡이의 조언에 잔뜩 기가 죽은 꼬락서니에 마음이 또 약해졌다.


그래서 그저 탑 등반 전, 헤프닝이라 생각하며 지나갔다.


***


그렇게 또 이틀.

죽어라 걷고 또 걸었다.

이젠 총기 가득한 등반자들의 눈빛도 많이 죽어있는 상태다.


“춥고, 덥고, 습하고, 기후변화가 왜 이렇게 제멋대로인지.”

“탑에서 나온 마물들 때문이겠지요.”


멸망의 탑으로 전진하면 할수록, 기후변화는 심각하게 바뀌며 두 사람을 괴롭게 하였다.


“빈집이었으면 좋겠네요.”

“예?”


한편, 더위에 죽어가던 지우가 갑자기 몰아치는 눈보라에 외투를 껴입으며 말했다.


“초인이나 사천신왕이 멸망의 탑에 없을 때! 제가, 아니, 김유신 구원자가 정상을 찍으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니깐요.”

“...”


길잡이는 지우의 얘기에 고개를 떨구었다.

대모님께 그가 멸망의 탑을 가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멸망의 탑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예?”

“일단, 10층 단위로 쿨타임이 있어요.”

“쿨타임이요?”


멸망의 탑을 오르려면, 최소 10주는 넉넉히 잡아야 했다.


10층 단위로 올라갈 포탈이 생기는 시간은 일주일이니 말이다.


멸망의 탑, 정상 층수가 100층.

그러니 아무리 일주일마다 10층씩 올라가도 10주란 시간이 소모된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리고 멸망의 탑엔 사천신왕과 초인뿐만 아니라, 여섯의 마왕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마왕이요?”

“미국의 등반자 파월의 58층 기록이 현재 세계 신기록인 건 알고 있으시죠?”

“예.”

“58층부터 마왕이 출몰한다고 하더군요.”


기한이 지났음에도 사천신왕과 초인과 다르게 마왕들은 멸망의 탑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선대들이 적은 기록엔 멸망의 탑에 강력한 마력을 뽐내는 여섯의 마왕이 존재한다고 적혀있었다.


오히려 사천신왕과 8명의 초인이 선대들이 적은 기록엔 적혀있지 않았었다.


“그러면, 그 반대로 마왕은 없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왕이 존재하던 탑은 김유신이 모두 공략했으니 말이죠.”

“말했잖아요. 58층까지 올라간 파월의 기록서에 마왕을 만난 기록이 있다고.”

“아···. 맞네요.”


지우는 길잡이의 답변을 듣고 땅이 꺼저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최소 10주 동안 여섯의 마왕을 죽이고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러는 동안, 사천신왕과 8명의 초인도 멸망의 탑에 올 수도 있죠.”

“한마디로 다 해치우고, 정상까지 올라가라?”

“예.”


길잡이의 말에 또다시 지우의 안색이 노래졌다.

하긴, 듣기만 해도 버거운데,


그걸 직접 실행해야 하는 사람이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냐 만은, 세계의 평화를 다시 되찾을 방법은 이것 뿐이기에, 길잡이는 말이 없어진 지우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다음날이면, 도착이겠는데요?”


한편, 이렇게 대화하는 동안, 벌써 멸망의 탑 가까이 도착했다.


길잡이는 밤이 깊었으니, 마지막 남은 거리는 내일 일찍 일어나서 걷자고 제안한 후, 텐트를 펼쳤다.


“내일은 중요한 날이니, 얼른 주무십쇼.”

“예···.”


대답과 다르게 밤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긴 지우가 보였다.


길잡이 엄인용은 생각이 많아진 지우가 이해가 됐기에, 대모님이 절대 금기라고 했지만, 배낭에 몰래 챙긴 캔맥주를 지우에게 건넸다.


“내일 중요한 날인데 이거 마셔도 괜찮겠어요?”

“어차피 멸망의 탑에 들어가면, 구원자님 영혼으로 바꿀 건데요. 뭘.”

“그래도···. 숙취 때문에 영혼 뒤바뀜이 제대로 안 되면요?”

“그러면, 하루 정도 더 쉬고 들어가면 되죠.”

“그래도 돼요?”

“네. 그래도 됩니다.”


여기까지 왔지만, 길잡이는 지우에게 조급함까지 주고 싶지 않았다.


가뜩이나 무지막지한 책임감으로 힘든 상태일 텐데 말이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대하듯, 지우도 자기 목숨을 소중히 대할 권리는 있기에 말이다.


“와, 저 처음 술 마셔봐요.”

“엥?”


더구나 지우는 오늘 마시는 술이 처음이란다.


“인생 완전히 허비하셨네요.”

“선배님도 알다시피, 사찰에선 음주가 금지라.”

“하핫. 그래서 저는 본가에서 살았잖아요.”

“부럽네요. 헤헤.”


술은 이상한 힘이 깃든 것 같았다.

아무리 멸망한 세계라도

술 한 잔만 걸치면,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용기도 생겼다.

과도한 술은 화를 부르지만, 적당한 술은 희망과 용기를 부른다.


15년 동안 어디 가서 얘기하지 못했던 진심을 토로할 용기도 말이다.


“들어보니깐, 가문 사람들이 지우님을 엄청나게 못살게 부렸다고 했던데, 저처럼 다른 곳에서 지내고 싶지 않았어요?”

“... 한 번도요.”

“진짜?!”

“예. 힘들긴 했지만, 사찰 밖으로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길잡이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더 궁금하기도 전에, 지우가 오늘 술 마시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금방 진실을 토해냈지만 말이다.


“사실 어머니가 사찰에서 기다리면, 꼭 데리고 올 거라고 약속했거든요.”


흐음. 생각보다 사연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15년 동안 한 번을 저 보러 온 적이 없어요. 너무하죠?”

“...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렇겠죠? 사찰 사람들은 제가 얼마나 못났으면 어미도 버린 자식이라 손가락질했었거든요, 어머니의 말 못 할 개인 사정이 있었겠죠?”


지우는 술에 취한 둣, 바닥에 누워 밤하늘을 보았다.


“그동안 엄마가 절 찾으러 오지 않아도 원망하진 말자고 다짐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할래요. 저 엄마 엄청나게 원망해요. 진짜 엄청!”


그리고 술기운에 용기 삼아 어머니를 원망하였다.


잿빛이 가득한 하늘.

오늘따라 유달리 흐릿하게 보였다.

아마도 그건 흐르는 눈물 때문이겠지.


지우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길잡이는 이번엔 지우가 울보라고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다.


“건배할까요?”

“좋아요. 선배님.”


오히려 길잡이는 지우의 아픈 속사정을 묵묵히 들어준 채, 그저 캔맥주를 서로 부딪치며 건배를 제의했다.


그렇게 마지막 밤도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


“들어갈게요, 저.”

“영혼 뒤바꿈이나 숙취가 심하면 바로 나오세요.”


다음날 비밀도 공유한 사이가 된 두 사람은 드디어 멸망의 탑에 도착하였다.


어느새 두 사람은 정이 들었는지, 멀리서 보면 우애 가득한 형제라고 불려도 무방한 모습이었다.


“초입은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저따위도 12층까지는 등반했습니다.”

“... 고마워요. 선배님. 이제, 들어갈게요.”


[멸망의 탑에 입장하였습니다.]


마지막 배웅을 끝으로 그렇게 지우는 멸망의 탑에 드디어 입성하였다.


여전히 길잡이 엄인용은 지우를 걱정하였지만, 멸망의 탑에 들어간 지우는 일순간에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하. 오랜만에 들어오네. 이 지긋지긋한 탑.”


탑에 들어서자마자, 지우가 아닌 김유신의 영혼으로 뒤바꿈 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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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망의 탑(1) 24.05.08 31 0 13쪽
4 한 줄기 빛 24.05.08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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