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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님의 서재입니다.

칼란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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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river
작품등록일 :
2021.10.12 00:11
최근연재일 :
2021.11.08 17:00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2,355
추천수 :
24
글자수 :
228,594

작성
21.10.12 03:11
조회
46
추천
1
글자
12쪽

<EP. 1> 2 - 2

DUMMY

고기를 보고만 있는 우리를 놈들이 가만히 바라봤다.


자신들의 성의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지켜보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의 목숨과 직결돼 있었다.



아버지가 고기를 한입 물어뜯었다.


아버지가 고기를 질겅질겅 씹었다.


놈들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몸을 기웃거려 아버지 뒤쪽의 우리를 지켜봤다.


어머니가 고기를 물어뜯지 않을 수 없는 이유였다.



“읍! 읍!”



대접받은 음식을 먹으며 헛구역질하는 어머니의 불손한 태도는 아버지의 넓적한 등판이 가려주고 있었다.


나도 몸을 수그려 고기를 입으로 가져왔다.


역한 누린내가 났다.


속이 메슥거리고 구토가 올라왔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아니, 참을 수 있었다.


수렁의 악취에 비하면, 그리고 그날 밤 우리가 겪게 될 다른 많은 일에 비하면,


이런 누린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놈들은 만족스러운 듯 시선을 거뒀다.



돌이켜보면 가엾은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놈들과 정면으로 대치 중이었다.


환한 불빛에 노출된 채 의연한 모습을 유지해야 했다.


자신의 목숨을 살리고 모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우리 목숨이 아버지 입에, 아버지 일거수일투족에 달려 있었다.


아버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슴을 펴고 앉아 꾸역꾸역 고기를 씹어 삼켰다.



그 와중에도 나는 틈틈이 놈들을 살펴봤다.


살펴봤다기보다는 구경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여고생 특유의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덕에 당신들은 거기 가만히 앉아 놈들의 생김새, 말투, 습성 따위를 전해 들을 수 있다.



옷가지 밖으로 드러난 놈들 피부는 앞서 언급했듯 검붉은 색이었다.


살찐 몸통과는 달리 어깨와 등줄기는 억센 근육으로 뒤덮였고 곱슬곱슬한 털이 수북했다.


해태상을 닮은 눈은 옆으로 찢어지고 툭 튀어나왔다.


눈꺼풀이 없는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드물게 눈을 끔벅거렸다.



그렇게 큰 눈을 가졌으면서도 정작 시력은 좋지 않아 보였다.


사물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물의 윤곽을 보는 것 같았다.


밤눈이 어두워서인지, 원래 시력이 나빠서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놈들은 차후에 곤충의 변이에 비견될만한 신체적 변화를 일으키는데, 그때 시력도 일신된다.)



놈들의 주둥아리는 좌우로 길게 찢어졌다.


앞니는 고르고 송곳니는 뭉툭했다.


입이 돌출된 탓에 조금만 입술을 움직여도 앞니가 드러나곤 했다.


송곳니가 입 밖에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기에서 살점을 발라낼 때를 제외하면, 놈들은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다.


추측하건대 송곳니를 드러내는 행위가 놈들 사이에선 결례인 듯했다.



놈들은 체격 차이만큼이나 표정과 행동에도 다른 점이 있었다.


무덤덤한 성향의 둘째와 달리 셋째는 어린애 같은 성향을 보였다.


곁눈질로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는가 하면, 상체를 기웃거려 뒤에 앉은 우리 모녀를 훔쳐보려고 했다.


셋째의 그런 행동은 경망스럽고 철딱서니 없어 보였다.


사람으로 치면 철부지 아이들 행동이었다.



그런 셋째를 제지한 건 둘째였다.


셋째가 경솔한 행동을 할 때마다 둘째는 놈에게 경고의 눈짓을 보냈다.


목에서 육식동물 같은,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냈다.


그럴 때면 셋째는 체벌을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어깨를 움찔하며 머리를 수그리는 것이었다.



첫째는 모닥불 뒤에 앉아 자리만 지켰다.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었다.


졸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닥불에 가려진 첫째의 모습은 벽에 드리운 그림자로 추정해야 했다.


불길이 한 번씩 일렁일 때마다 첫째의 검은 그림자가 온 벽을 집어삼켰다.



폐가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황토로 된 벽 구석에 나무막대기 세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나무막대기는 부지깽이처럼 가늘고 짧았다.


크기는 달라도 형태가 비슷한 것이 쓰임새가 같을 것 같았다.



짧은 침묵을 깨고 둘째가 물었다.


(지금부터 놈들의 발음을 우리 식으로 고쳐 전하겠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놈들이 한 번씩 질문해올 때마다 나는 간담이 서늘했다.


우리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질까 두려워서였다.



둘째의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아버지는 매번 숙고했다.


가능한 최적의 답변을 내놓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런 의도였다 해도 아버지의 답변 속도는 너무 느렸다.


한 번씩 대답할 때마다 30초 가까운 시간을 끌었다.


답변을 기다리는 내가 답답할 정도였다.



이번 질문에도 아버지는 한참 시간을 끌다 답했다.


“······북쪽······.”


기다렸다는 듯 둘째가 물었다.


“북쪽 어디.”


“······북쪽······ 끝······.”


아버지의 답변은 느리기도 했지만, 두리뭉실하고 모호했다.


스무고개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그런 답변이야말로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내놓은 그 모호한 답변들이 우리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놈들이 어떤 존재고, 어디서 왔고,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아는 게 없었다.


그런 존재가 불쑥불쑥 던지는 질문에 아버지가 어떻게 제대로 답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당시 아버지가 내놓은 두리뭉실한 답변 즉, ‘북쪽’이라는 답변은 가장 적절한 답이었던 것이다.



셋째는 호시탐탐 우리를 노렸다.


둘째 눈치를 봐가며 어머니와 나를 훔쳐볼 기회만 노렸다.


나는 둘째가 셋째를 더 심하게 꾸짖어주기를 바랐다.



“얼마나 남았나.”


둘째의 질문이었다.


이 또한 막연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용케 아버지는 둘째의 모호한 질문들을 잘 받아쳤다.


“우리가 끝이다.”



둘째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둘째 : 다 출발했다. 우리만 남았다.


아버지 : 우리도 간다.


둘째 : 같이 가자.


아버지 : 좋다.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통해 나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해 봤다.


또한, 그날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놈들과 겪었던 일을 수도 없이 되새겼다.


그 결과, 나는 놈들이 어떤 존재이고 어디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유추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유추한 바는 이렇다.



우리가 발을 들인 곳은 놈들의 집결지였다.


놈들이 또 다른 여정을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 말하자면 터미널 같은 곳이었다.


인간 세상의 터미널이 그렇듯 놈들의 터미널도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었다.


다양한 종족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둘째 외에도 둘째와 다른 종족(둘째의 입장에서는 이방인)들이 이용하는 공공의 장소였다.



온갖 종족이 모여들다 보니 터미널은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다툼은 단순한 말실수나 눈짓, 표정에서 시작됐고 종족 간 싸움으로 확대되곤 했다.


거대한 체구에 근육질의 어깨를 가진 놈들 간의 싸움은 서로에게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놈들이 이곳에 집결하는 이유는 다음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장시간의 여행을 위해 양분도 보충해야 했고, 무엇보다 여정을 함께 할 동반자를 찾아야 했다.


동반자가 될지도 모르는 존재와 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우리가 목숨을 부지한 이유였다.


놈들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겠다.



깊은 산속, 야심한 시간이라 해도 때는 한여름이었다.


더구나 우리 가족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걸터앉아 있었다.


온몸에 땀이 흘렀다.



땀을 좀 흘렸기로서니 무슨 대수냐고?


우리가 목숨을 부지한 건 우리 몸을 뒤덮은 위장막 덕분이었다.


수렁에서 묻혀온 똥과 거름, 시커먼 개흙이 우리 정체를 숨겨주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땀을 흘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불행한 징후는 이미 시작됐다.


틈틈이 아버지는 우리를 돌아보곤 했다.


모녀가 실신하지는 않았는지 확인도 하고 우리를 안심시켜주려는 의도였으리라.


그런데 아버지 얼굴에 언제부턴가 흰색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점들은 갈수록 늘어났다.


이마에서 시작해 눈가, 귀밑으로 번져갔다.


어머니에게도 징후가 보였다.


이마와 목에 하얀 피부가 드러나고 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었다.


우리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한편, 셋째는 고기 굽는 당번이었다.


셋째의 지척에는 함지박이 놓여 있었다.


익은 고기가 떨어지면 셋째는 함지박에서 새 고기를 꺼내곤 했다.



셋째가 새 고기를 꺼내 함지박에 대고 탁탁 때렸다.


핏물을 빼려는 것이었다.


고기는 사람 팔꿈치 아랫부분이었다.


체구가 작은 사람의 것이었다.


무언가를 움켜쥐듯 손이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 반쯤 오그라든 손은 피살자가 죽임을 당하던 순간 느꼈을 고통과 공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셋째가 함지박에 고기를 때릴 때마다 손목 부근에서 노란색 빛이 반짝거렸다.


팔찌나 시계 같은, 장신구가 채워져 있는 듯했다.


셋째에게 장신구는 고기 구울 때 걸리적거리는 이물질에 불과했다.


잠시 장신구와 씨름하던 셋째는 곧 방법을 찾아냈다.



셋째가 두 손으로 고기의 양 끝을 잡았다.


셋째가 두 손을 벌리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팔목과 손이 분리됐다.


장신구가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시계였다.


셋째가 분리된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와드득, 와드득······.


손가락 씹히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똑똑히 들려왔다.


살아생전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였다.



대뜸 아버지가 물었다.


“어디서 잡았나.”


둘째가 되물었다.


“이놈 말인가?”


“그래.”


“저 길에서 잡았다.”


“수놈 혼자였나?”



나는 뜨악했다.


놈들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마당에 놈들에게 질문을 던지다니?


그러다 놈들이 눈치채면 어쩌려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시계 주인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회사 동료로, 추첨에 당첨된 세 직원 중 하나였다.



둘째가 답했다.


“넷이었다.”


“다른 놈들은 먹었나?”


“배에서 먹을 거다.”



한가지는 밝혀졌다.


놈들은 배를 타고 떠날 작정이었다.



셋째가 손으로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놈들, 저기 있다.”


둘째와 셋째가 마주 보며 꿀꿀거렸다.


뭔가 음흉한, 못된 짓을 저지른 것 같았다.



나는 셋째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폐가의 우측, 흙담이 무너져 내린 곳에 장작더미가 쌓여 있고 장작더미 앞쪽에 거적이 깔려 있었다.


거적 밖으로 무언가 삐져나와 있었다.


알몸의 사람 하반신이었다.


두 쌍이었다.


피투성이였다.


기다란 물체가 종아리까지 흘러나와 있었다.


“우욱!”


구토가 올라왔다.


피비린내가 여기까지 풍겨오는 것 같았다.



그때 폐가의 안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수놈인 걸 어떻게 알았나.”



낮고 거대한, 선박의 뱃고동 같은 소리······.


첫째의 목소리였다.


그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묵직한 목소리보다 나를 두렵게 한 건, 첫째의 질문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을 끄는 것인지 답을 못 찾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고기에 채워진 건 수놈들 물건이다.”


아버지 답변에 첫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는 없었다.



긴 정적이 흘렀다.


앞선 정적들과 달리 이 정적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정적을 깬 건 둘째였다.


“왜 ‘이놈 혼자였나’, 라고 물었나?”


둘째의 말투에서 미세한 변화가 느껴졌다.


추궁하는 말투였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최대한 시간을 끌다 답변할 것이었다.


그러나 둘째가 여유를 주지 않았다.


캐묻듯 둘째가 말했다.


“이놈들이 여럿인 걸 알고 있었나?”


아버지가 손으로 거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면서 저것들을 봤다.”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답변에 문제가 있었을까?


거짓말이 들통난 걸까?


우리 정체를 눈치챈 걸까?


둘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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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P. 1> 2 - 5 21.10.12 34 1 11쪽
6 <EP. 1> 2 - 4 21.10.12 40 0 13쪽
5 <EP. 1> 2 - 3 21.10.12 42 0 12쪽
» <EP. 1> 2 - 2 21.10.12 47 1 12쪽
3 <EP. 1> 2 - 1 21.10.12 50 0 12쪽
2 <EP. 1> 1 - 2 21.10.12 48 0 13쪽
1 <EP. 1> 1 - 1 +2 21.10.12 111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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