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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단테 님의 서재입니다.

더 팬 (The Fan)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완결

J단테
작품등록일 :
2019.01.07 00:40
최근연재일 :
2019.12.16 20:43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276
추천수 :
68
글자수 :
298,961

작성
19.12.07 05:21
조회
26
추천
2
글자
12쪽

대화 (1)

DUMMY

“오라버니, 오늘 사전 녹화 있었군요? 녹화는 무사히 잘 끝낸 거야?”  


앞가슴이 드러나 보일 만큼 훤히 패인 무대 의상을 입은 제니가 다니엘의 대기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대기실에 있던 제작진과 매니저, 댄서 모두가 그녀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정작 다니엘은 그녀를 보지 못한 듯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라버니!”


그녀는 다시 큰 소리로 다니엘을 불렀지만, 다니엘은 여전히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는 탁자에 긴 다리를 얹은 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을 뿐이었다.

 

“음악 듣고 있어요?”


제니는 사람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은 채 다니엘의 곁으로 가서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인기척에 놀란 다니엘은 감은 눈을 억지스레 뜬듯했다.


“제니···. 왔어요?”


“그래, 제니예요. 역시 오라버니는 음악이라면 죽고 못 사는군요? 저번에 오라버니 집에서 우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을 때도 오라버닌 여전히 음악을 듣고 있었잖아. 그렇지?”


제작진과 매니저, 댄서는 멀뚱거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다니엘은 그들의 눈빛이 수상쩍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저···, 제니?”


그러나 제니는 여전히 빙글거리며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다니엘의 입술에 살포시 갖다 대었다.   


“후후후. 잠깐만, 제니는 아직 말이 안 끝났어요. 오늘 오라버니와 내가 1위 후보라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겠죠? 과연 누가 1위를 할까? 물론 아직은 내가 오라버니에게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후후···. 아무려면 어때? 누가 1위를 하던지 관계없잖아, 우리 사이에?”


적막감이 흐르던 대기실의 분위기가 한순간 술렁대었다. 


그들은 얼마 전에 신문 일면을 장식했던 둘의 스캔들 기사와 곧이어 며칠 뒤 기사를 번복했던 기획사 대표의 기자회견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었다.


“제니, 왜 이러는 거죠? 이미 다 끝난 이야기 아닌가요?”


다니엘은 제니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뭐가? 뭐가 끝난 이야기인데? 끝은 오빠 혼자만 내는 거야? 그러면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는 거야? 끝이 나면. 끝이 나면 나는 뭔데? 나는 뭐가 되는 건데?”


제니는 다니엘에게 거의 악을 쓰며 소리를 쳤다. 


다니엘은 가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니···. 그만해요.”


“뭐···? 그만···, 그만 하라고?”


그녀의 눈에 가득 맺혀 언제 흘러내리는 것이 좋을까 하며 기회만 벼르던 물방울은 드디어 적기를 맞추었다는 듯 네오내오없이 미끄럼틀을 타기 시작했다. 


이정석을 비롯하여 대기실에 있던 사람은 이상하게 흐르는 분위기를 감지했던지 하나 둘 전쟁터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스태프와 댄서가 모두 나가고 마지막으로 이정석이 나감과 동시에 그는 급히 휴대전화를 열었다. 


마치 어머니의 지갑에 손을 댄 동생을 고발하려는 초등학생처럼 그는 동공을 크게 열고는 서둘러 몇몇 번호를 눌러대었다.


“이사님. 저 이정석입니다! 지금···, 여기에 제니 씨가 왔는데요. 상황이 좀···.”


‘상황이 좀, 뭐!’


박재현 이사의 날카로운 쇳소리가 확성기 마냥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이정석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잠시간 수화기를 틀어막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곧 휴대전화에 입을 바짝 대고는 속삭였다.


“이런 말씀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제니 씨가···. 제니 씨가 말입니다. 그녀가···. 아니, 그녀는···. 정말이지, 미친 게···, 네! 미친 게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뭘 그만하라는 거야? 시작은? 언제, 시작은 했었어? 한번 시작이나 해보고 그런 말을 해!”


무수히 흘러내리는 검은 눈물에 그녀의 두꺼웠던 가면도 점차 흘러내렸다.


“제니. 어서 가서 화장이나 다시 고쳐. 더럽고 흉해.”


대기실에 사람이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한 다니엘은 의자에 기대앉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냉소적 분위기를 풍기며 긴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그는 늘 다정하고 따뜻했던 다니엘이 아니었다.  


“뭐···? 뭐, 흉해?”


다니엘은 여전히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대답도 않은 채 이어폰을 가져가 귀에 꽂았다.


“다시 말해 봐! 내가 흉해?”


제니는 다니엘의 옆으로 달려가 그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휙 하고 빼내었다.  


“말해 봐! 말해 보라고! 내가 흉해? 응? 어서 말해! 말하라고!”


그녀는 빼앗은 이어폰을 부서지라 움켜쥐고는 바락바락 악을 써대었다. 


다니엘은 이어폰을 뺏긴 자세 그대로 수 초간 가만히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쭉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철썩!”


순간, 누군가의 손바닥이 보드라운 살결을 내갈기는 소리가 대기실의 허공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손바닥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다니엘이었다. 


그의 곱고도 매서운 손이 제니의 뺨따귀를 올려붙인 것이다. 


그녀는 사정없이 돌아간 고개를 왼손으로 감싸고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다니엘을 올려보았다.


“오라버니···.”


그녀는 점점 사라져가는 자신의 표정을 어찌 관리할 것인지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부를 뿐이었다.  


“오라버니···. 나야, 나 제니. 나에게 왜 이래? 진정 오라버니 맞아? 그 착한 다니엘 오라버니가 맞아?”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니엘은 도대체 저 표정은 인간이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만큼 차가운 눈빛과 말투로 그녀에게 독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야, 미친년아. 정신 좀 차려. 어린애야? 바보야? 아무리 미쳐도 그렇지. 꼭 이딴 식이어야 해? 사랑이 밥 먹여줘? 사랑이 돈 벌어주니? 암만 사랑이 좋다고 해도 네 할 일은 다하고 목을 매어도 매어야지! 왜 병신같이 현실 파악을 못 해? 고개를 돌려서 거울을 봐! 지금의 네 모습이 어떤가!”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대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그녀는 눈물을 훔쳐내었다. 


검은 눈물이 온통 번진 얼굴에는 거대한 속눈썹 하나가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있었다. 


마치 검덕귀신 같았다.


“자, 네 모습이 어때? 볼만하니? 예뻐? 즐거운 것 같아? 행복하다고 느껴?”


그녀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 이 바보야. 아무리 애원해도 절대 오지 않는 사랑을, ‘기다림’이라는 무책임한 단어로 방패삼아 즐기는 것이 지금은 마냥 행복할지 몰라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집착일 뿐이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가련한 너의 사랑은 기필코 독단적인 아집이 되어 소중해야 할 추억까지 좀먹게 되는 거라고! 젠장, 좋은 말로 했으면 알아먹어야 할 거 아니야! 별 또라이 같은 년한테 걸려서 이게 뭔 꼴이야···. 죽으려면 너 혼자 죽지, 왜 나까지 죽이려 들어. 에잇, 재수 없게.”

 

그녀는 흔들리는 눈망울을 크게 뜨며 눈망울보다 흔들리는 목소리를 작게 내뱉었다.


“이, 개새끼야. 꺼져버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나의 사랑을 집착으로 만들어. 너는···. 내가 아니잖아. 너는···. 내 사랑을 모르잖아. 내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니야. 세상 모든 사람의 그리움이 집착이 되고 아집이 될지언정, 내 사랑은 아니야. 내 사랑만은 영원불멸할 거야.”

 






“어이! 현. 대기하는 시간은 원래 이렇게 긴 거냐? 사람 하나 녹초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 힘든 짓거리를 여기 모인 사람은 거의 매주 한다는 거지? 나는 도무지 이해 불가능!”


“오늘은 사전 녹화가 있어서 그래. 오히려 이게 더 좋지 않은가? 덕분에 본 방송 들어가기 전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일정이 빡빡한 공개방송에서는 온종일 쫄쫄 굶는 것은 예삿일이야. 그런데 오늘은 어째 사전 녹화 시간이 빨라서 본 방송 사이에 간격이 많이 남는단 말이야. 이럴 땐 감사의 기도라도 드려야 해. 특히 너는 말이야.”


“엥? 왜 특히 내가 감사를 해야 하는 건데?


“바보야, 시간이 많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밥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는 것 아니야! 안 그랬으면 너 지금쯤 배고프다고 생난리를 치고도 남았을 걸?”


“헤헤, 그런가?”


“그래, 인마! 그러니까 너 조금 있다가 본 방송 녹화 들어가면 네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오빠를 응원해주라는 거야!”

 

“쳇, 나 말고도 응원할 대가리의 수가 떽떼굴떽떼굴한데 뭐가 아쉽다고 힘들어 응원을 하냐? 이제껏 먹은 밥그릇 수가 아깝다! 왜 기껏 애를 써서 배를 꺼지게 하고 그래? 참나···.”


“뭐? 응원을 안 해? 그건 절대로 안 된다. 평상시에는 응원을 안 한다 하더라도 오늘만큼은 해야 해. 내가 너한테 왜 밥을 사줬겠냐?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건 그래. 천하의 못된 현이 나한테 밥을 다 순순히 사주고 말이야. 왜? 무슨 이유인데? 특별히 큰소리로 응원하라 그러는 걸 보니 혹시 오늘이 무슨 중요한 날 이기라도 한 거냐?”


“하하하! 기대하시라! 오늘이 바로, 드디어! 우리 다니엘 오빠께서 5집 첫 1위 후보에 오르신 위대한 날이라는 말이지!”


“엥? 아직 본 방송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너는 그 사람이 1위 후보라는 것을 어떻게 안 거지?”


“감각 없기는. 이봐, 당연히 사전 조사를 했지! 누리꾼의 투표로 인해 지금 우리 오빠가 1위 후보에 올랐다는 말씀이야. 야, 정말 대단하지 않냐?”  


“그럼 다른 1위 후보는 누군데?”


“그야, 뭐. 누구겠어? 재수 없는 제니지···.”


“킥킥. 야, 제니면 그냥 제니지, ‘재수 없는’ 제니는 또 뭐냐?”


“몰라. 걔는 그냥 싫어. 아무런 이유 없이···.”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너의 낭군님과 스캔들이 났다는 게 이유 아니냐?”


“사실 그런 것도 있긴 한데 그냥 느낌이 이상해. 그 여자 생각만 하면 진저리가 나.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은 것처럼 다랍고 끈적끈적해.”

 

“글쎄? 단지 느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분명한···, 이유?”


“제니는 너보다 예쁘다, 제니는 너보다 날씬하다, 제니는 너보다 돈이 많다, 제니는 너보다 인기도 많다. 고로, 제니는 너보다 잘났다!”


“야! 너 죽을래?”


“아직! 흥분하기는 일러! 더 남았거든. 킥킥, 제니는 너보다 다니엘과 친···. 아, 아니다, 너는 다니엘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에헴! 제니는 제 혼자서 다니엘과 대단히 친하다! 제니는 다니엘과 같은 기획사 소속이다! 고로, 둘은 서로 전화번호도 알 것이며 어쩌면 진짜 사귀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며칠 전의 스캔들도 둘이 진짜 사귀는 것이기 때문에 기획사에서 급하게 막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때? 나의 추리력이. 근사하지 않아?”


“······.”


“어라, 현? 너 내 말 다 안 듣고 뭘 그리 뒤적거리니? 뭐라도 찾고 있기라도 한 거야?”


“응. 필, 찾고 있어. 네 얼굴 거죽이 많이 두꺼워진 것 같아서, 손 좀 봐주려고 말이지. 음···. 여기에 넣어뒀던 것 같은데, 어디 갔지?”


“어이쿠! 킥킥. 잘못했다, 잘못했어. 장난 좀 쳐본 것뿐이야! 너 재미있게 해주려고.”


“넌 그따위 말장난이 재미있냐! 엉? 재미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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