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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단테 님의 서재입니다.

더 팬 (The Fan)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완결

J단테
작품등록일 :
2019.01.07 00:40
최근연재일 :
2019.12.16 20:43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275
추천수 :
68
글자수 :
298,961

작성
19.11.28 21:57
조회
27
추천
2
글자
20쪽

쇼케이스 (2)

DUMMY

“꺄아아악!”


관객들은 너나 할 것도 없이 한꺼번에 비명을 질러대었다. 


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비릿한 피의 향기가 코끝을 적셔왔다. 


하지만 비릿한 피의 쓴맛도 쓰라려 오는 마음의 고통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정말 애인이 있나요? 그게 누구죠?”


최세길 기자는 눈빛을 빛내며 재차 물었다. 


다니엘은 옅은 보조개를 피우며 재그시 웃었다.


“제 애인, 바로 여기 이렇게 앉아들 계시잖아요. 나의 그대들.”


“꺄아아악!”


다니엘의 말 한마디에 관객은 울고 웃었다. 


현은 이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저 사람은, 정말이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비록 돌차간이었을지언정 그를 미워할 뻔했던 자신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모두 사랑하고 이해해주어야 했을 자신이 그를 원망하려던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 저 사람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나 역시 ‘팬’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절대, ‘집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니엘은 환성을 보내는 관객을 향해 그윽한 눈빛을 보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항상 그대들을 저의 ‘애인’이라고 생각해요. ‘애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잖아요? 당연히 저의 ‘애인’은 그대들, 우리 팬임이 분명한 거죠.”

 

관객은 물론이고 여자 제작진과 여기자까지도 다니엘의 온화한 미소에 매료될 뿐이었다. 


다니엘은 관객의 눈을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맞추어가며 이야기했다.


“사실 어제 굉장히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어요. 새 앨범의 음원이 온라인상에 불법으로 유출된 거죠. 누구의 잘잘못이라고 따지기 전에 많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참으로 힘들게, 그리고 온 정성을 다하여 만든 앨범이라 우리 그대들이 가장 먼저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었거든요. 한참을 상심하고 있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온라인상에 모이신 그대들이 힘을 모아 함께 불법 음원을 신고하고 계신 거였어요. 정말이지···.”


“아···!”


현은 다시 오른손으로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감동의 비명이 새어나올 뻔했기 때문이다. 


알고 있었다. 


다니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밤이 새도록 현이 불법 음원을 막고자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 역시도 그는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시금 눈물이 나오려 했다. 


가슴 속에 따뜻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제발 눈물만은 아니었으면···. 


다니엘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만일 자신이 운다면 여리디여린 다니엘 역시 따라 울지도 몰랐다. 


현은 그런 다니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다니엘 역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던지 목소리가 살짝 떨려오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 그대들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오신 그대들은 물론이고 각종 영상으로 제 이야기를 접하신 그대들도 있으실 거예요.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게요. 불법 음원 유출로 말미암아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여전히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많은 그대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제가 알기에는 우리 그대들, 음반이 정식으로 발매될 때까지는 제 음악을 불법으로 듣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고 해요. 오늘 제 정규 5집 음반은 모두 그대들의 것입니다. 소중한 저의 영혼이 담긴 음악, 그대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요. 이젠 마음껏 듣기로 해요! 내 애인들아, 정말로 사랑한다!”

 

“꺄아아악!”


극장은 관객의 함성으로 터져나갈 듯했다. 


그의 말 마디마디를 놓칠세라 바쁘게 손가락을 놀리며 노트북을 두들겨대던 기자들 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질문을 던졌던 최세길 기자는 무슨 이유였던지, 묘하게 굳은 표정으로 눈썹만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웃지 않은 또 한 사람, 그녀는 바로 현이었다. 


현은 도저히 웃음이 나지 않았다. 


웃음은커녕,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다니엘의 마지막 이야기.‘내 애인들아, 정말로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현은 숨이 막혀왔던 것이다. 


다니엘은 분명히 자신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이 많은 사람 중에 오직 자신만을 보았다. 


이제껏 딴 곳만을 쳐다보다가, 오직 사랑한다는 이야기에 자신, 현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드디어 그의 진심을 현에게 전달해주었던 것이다!  


“자, 그럼 혹시 관객 분 중에 다니엘 씨에게 질문하실 분이 있으시면 손을 들어주세요!”


“와아아, 저요! 저요!”


수많은 소녀가 너도나도 손을 흔들었다.


“자 그럼 맨 앞에 교복을 입은 친구, 어서 다니엘 씨에게 질문하세요.”


“다니엘 오빠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하하하, 이상형이요?”


다니엘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는 표정이 너무도 천진난만하여 관객은 아마 아기 천사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면 저런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절 다니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도 현은 생각하고 있었다.


‘질문이 저게 뭐야, 저런 것은 일반 인터뷰 기사에서도 알 수가 있잖아! 쇼케이스의 공식적인 질문이면 수많은 사람이 보는 기사로 나갈 텐데···. 생각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오빠의 음반에 홍보될 수 있는 질문을 해야지, 저런 바보 같으니라고!’


다니엘은 질문한 소녀를 바라보며 다정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이상형 같은 건 따로 없는 걸요. 어릴 때는 예쁘고 착한, 뭐 이렇게 구체적으로 정해두었었는데 이젠 딱히 이상형이라기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형이 되는 거 아닌가요?”


“에이, 그거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인 방송용 멘트가 아닌가요? 하하. 다니엘 씨도 솔직히 예쁜 여자 좋아할 거 아닙니까?”


사회자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질문했지만 다니엘은 손을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정말 아니랍니다. 예쁘기만 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니겠죠. 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예술을 진정 사랑하는 그대였으면 좋겠어요. 문학과 음악, 영화와 미술 등을 함께 보고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대라면 진정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그런 그대가 언젠가는 꼭 나타나주시겠죠?”


“아, 그렇군요. 하지만 다니엘 씨가 워낙 스캔들이 없는 분이고, 사생활도 깨끗하시니까 혹시 남자를 사귀는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아요, 하하하···.”

 

갑자기 극장 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사회자는 순간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는 자신의 말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기라도 했던지 얼른 말을 돌렸다.


“아···. 저, 혹시 다른 팬 분 중에서 질문 있으신 분, 얼른 손들어 주세요!”


순간 현은 자신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올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네, 그럼 중간에 계신 숙녀 분께 마이크 넘겨 드릴게요.”


사회자는 현을 가리키며 제작진에게 마이크를 전했다. 


장내의 모든 이목이 현으로 집중되었다. 


자연스레 사회자와 다니엘의 시선도 현으로 향했다. 


현의 심장이 다시금 요동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가슴에 선연히 새겨짐과 동시에 그의 눈빛은 이마를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마이크가 서서히 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다니엘이라는 오롯한 마수에 빠져 손을 들고 말았지만 어떠한 질문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도, 생각할 수도 없던 현이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가고 있었다.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반사되었고 오직 다니엘, 그의 눈빛만이 각인될 뿐이었다. 


또한, 그 눈빛에 현의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저, 저기···. 화장실은 어디···?”


“와하하하!”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장내의 관객은 물론이고 기자까지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으하하하, 화장실이래!”

 

장내의 사람은 모두 배를 잡고 자지러졌다. 


분위기를 눈치 챈 사회자가 말했다.


“우리 팬 분이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고자 개그를 하신 거군요. 정말 재미있으신 팬 분이십니다. 이 질문에도 대답을 해야 하나요? 하하하.”


현은 그제야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자신의 정수리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로소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도대체 다니엘이 자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여리고 예술적인 감성이 풍부한 그는 자신을 보고 난 왜 저런 바보 같은 사람을 팬으로 두는지에 대한 자책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


현은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보며 비웃는 것 같았다. 


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처량하기 짝이 없는 자신을 어떻게든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저의 팬 분 정말 귀엽지 않나요?”


응? 지금 이 목소리는 다니엘의 목소리인데···?


현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다니엘이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고 있었다.


“보세요, 저의 팬은 저를 닮아서 유머감각도 최고거든요.”


다니엘이 현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혹시나 부끄러워 혼자 괴로움에 몸서리를 치지나 않을까, 그는 현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와아아···.”


관객은 다니엘이 여성 팬을 옹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움과 시샘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니엘···.’ 현은 애써 입 모양으로 다니엘을 불렀다. 


크게 부르고도 싶었지만 부를 수가 없었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그간의 사랑과 애증이 함축되어 지금 다니엘의 이름을 부른다면 장내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이성도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그의 품에 안길지도 몰랐다. 


당연히 그럴 용기쯤은 있었겠지만 이건 용기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방해할 수는 없다. 


다니엘의 5집 앨범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석상에서 헤살을 부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만일 자신이 그러한 행동으로 다니엘의 행사에 물의를 끼친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결단코 용서할 수 없는 처사일 터였다.


그보다도 현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수십 초간 계속해서 다른 곳에 시선을 주지 않고 오직 현, 한 명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다니엘의 눈빛이었다. 


현은 또다시 온몸이 뜨거워져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주 어릴 적에 보육원에서 초콜릿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초콜릿도 이렇게 녹아내렸었다. 


뜨거운 물 안에 통에 든 초콜릿을 넣었는데 그 초콜릿은 물이 뜨거워지자마자 흐물흐물 녹아내려 나중에는 끈적끈적한 갈색 물이 되고야 만 것이다. 


아마 지금의 현도 그 초콜릿처럼 곧 녹아 사라져버리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은 눈을 크게 떴다. 


조금이라도 다니엘의 눈빛을 담고 싶었다. 


기억하고 싶었다. 


훗날 다니엘을 이 세상에서는 더는 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조금이나마 기억할 수 있게 말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지만 지금 이 눈빛 하나만은 영원했으면 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다니엘 씨의 5집 타이틀인‘집착’의 무대를 보여주시죠!”


사회자의 힘찬 소개말과 함께 강렬한 비트가 흘러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린 비 오는 이 길 속에 나는 걷고, 걷고 또 걸었지, 너를 찾아서.

깊은 밤, 고요하고도 적막한, 그 한 가운데서 문득 들려오던 너의 목소리.

지운 난, 소유하지도 떨치지도 못할, 늪 한 가운데서 절대 헤어나지 못할 너의 그림자.

내 느린 발걸음은 오늘도 너를 좇는다.

 

머리는 지웠대도 가슴이 재우질 못해, 마음은 비웠대도 심장이 보내질 못해···.  

세상에 힘겹게 잘린 너 없는 내 날개에 그리움이란 홀로 과거 속에 남은 어리석은 현재란 미련의 집착들.

아니, 그것은 서슬 퍼런 집념들···.

 

불면증이야말로 스스로를 고초에 빠트리는 최선의 방법.

끊임없이 사육의 채찍질을 퍼붓는 자신(自身)의 피의자는 바로 나.

우울병의 극대화.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의 꿈, 그리고 너.

알고 있니? 네가 무심히도 걷어찬, 넌 기억조차 없는 돌부리.

그 돌부리가 꿈꾸는 인생의 도착지가 바로 너란 걸.”







“수고했다.”


박재현 이사가 다니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니엘 씨, 다음에는 기자와의 인터뷰가 있으니 준비되시면 곧바로 자리를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코디네이터는 다니엘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분첩으로 찍어 누르며 다니엘을 소파에 앉혔다. 


다니엘은 눈을 살짝 감으며 이정석 에게 말했다.


“정석. 난 지금 커피가 그리워요.”  


“커, 커피요? 네, 알겠습니다.”


이정석은 이리저리 주위를 헤매며 커피 자판기를 찾다가, 결국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그런데 자판기가 없는데요? 태워 드릴까요?”


“야, 이 자식아! 다니엘은 ‘브랜드 커피’밖에 안 먹는다는 것을 아직도 몰라?”


박재현 이사의 쇳소리가 또다시 이정석을 움찔하게 했다.


“죄, 죄송합니다. 금방···, 사오도록 하겠습니다.”


“너 혹시라도 커피에 설탕 같은 거 타려면 그따위는 꿈도 꾸지 마. 설마 다니엘이 단것을 싫어한다는 사실까지 모른다고 할 건 아니겠지?”


“네, 네. 잘 알겠습니다.”


이정석은 얼른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매일같이 듣는 박재현 이사의 호통 소리에 얼이 다 빠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소심한 성격이 박재현 이사 때문에 훨씬 더 소심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현. 우리는 좋은 말로 해도 충분히 다 알아들어요.”


다니엘의 한마디에 박재현 이사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때 대기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안녕, 오라버니?”






순간 무대 조명이라도 비추어지는 듯 대기실이 환해졌다.


“야, 제니. 네가 여기 웬일이야?”


“어머, 이사님. 뭐 못 올 곳이라도 왔나요? 우리 다니엘 오라버니 쇼케이스인데 당연히 제니가 와봐야죠.”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너 오늘 화보 촬영은 어쩌고···.”


제니는 박재현 이사를 무시하고 다니엘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쇼케이스 잘 봤어요. 너무 멋지던데?”


다니엘은 제니의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터뷰 시작할까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기사를 좋게 써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겠어요?”


“그래, 하하하. 다니엘, 그럼 지금 바로 인터뷰 시작하지. 하하하.”


박재현 이사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방 쩌렁쩌렁하게 웃어젖히며 다니엘을 뒷문으로 안내했다.  


“오라버니! 너무한 것 아니야?”


다니엘은 그제야 제니를 쳐다보았다.


“보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뭐가 되냐고! 나, 제니야. 제니가 오라버니를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자꾸 모르는 척 하기야?”


박재현 이사는 제니에게 무어라 소리를 치려 몸을 움직였다. 


그때 다니엘은 박 이사를 저지하며 제니에게 말했다.


“나중에 전화해요.”


제니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진짜? 알았어. 오라버니, 그럼 꼭 내 전화 기다려야 해요!”


박재현 이사는 다니엘의 등을 밀어젖히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둘이 사고라도 쳐봐, 어떻게 되는지···.”

 

“하···. 그나저나 커피는 도대체 어디에 가서 사야 한다는 말인가.”


이정석은 중얼거리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남들은 직장에서 ‘선배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후배놈’의 군기를 잡을 이 나이에, 동갑인 ‘다니엘 님’의 커피 심부름이나 하다니 인생이 썩 재미없다고만 느껴졌다. 


그때 막내 코디네이터가 밖으로 막 나가려는 이정석의 옷깃을 붙잡았다.


“저기요, 정석 씨.”


“네?”    


“커피 전문점까지 가지 마시고요, 밖에 나가면 다니엘 팬들이 모여 있을 거거든요? 선물을 많이 들고 있을 텐데, 그거 그냥 다 모아오시면 돼요. 그리고 선물 중에는 다니엘이 즐기는 브랜드의 커피도 있을 거니까 그거 바로 가져다주시면 아마 좋아할 거예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선물 중에 커피가 있을지는 확실치 않을 텐데···.”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녀의 말은 정확했다! 


팬의 선물은 다니엘의 이름이 크게 적힌 플래카드에서부터 형형색색으로 포장한 각종 상자까지 다양했을 뿐더러 그중 가장 많은 선물이 바로 커피였던 것이다.


“꺅! 매니저 오빠다! 오빠! 우리 다니엘 오빠 언제 나와요?”


“매니저 오빠, 이거 꼭 우리 다니엘 오빠한테 전해주셔야 해요!”


“오빠, 제 이름은 정미예요, 정미! 우리 오빠에게 정미가 준거라고 말씀해주세요!”

 

소녀들의 아우성에 이정석의 귀가 다 얼얼해져 오고 있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꼭 전해줄게요.”


“저기요. 오빠, 이건 되게 비싼 선물이거든요? 이것도 꼭 다니엘 오빠에게 전해주세요.”


체크무늬의 교복을 입은 소녀가 빨간색 포장지로 두른 조그마한 선물을 내밀며 말했다.


“네, 네. 알겠어요. 선물 모두 다니엘 씨에게 잘 전달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꺄아아! 매니저 오빠 정말 최고예요! 감사합니다!”


이정석은 기뻐하는 소녀들을 보니 마치 자신의 팬을 본 양 마음이 흐뭇했다. 


비록 자신을 보러 온 팬은 아니었지만 늘 자신과 함께하는 가수의 팬인 만큼 곧 자신의 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정석은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서 다시 대기실로 내려왔다.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내려갈 때는 계단이 꽤 가파른 것 같았다. 


계단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내려가던 이정석은 그만 선물 꾸러미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이고, 참···. 꼭 하는 짓마다 실수 하나씩을 달고 사네.”


이정석은 혀를 끌끌 차며 다시 선물들을 모았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오빠, 이건 되게 비싼 선물이거든요.’


아까 체크무늬 교복을 입은 소녀가 건넨 물건이었다. 


이정석은 궁금증이 만개했다. 


‘살짝 한번 뜯어볼까?’


그래, 뜯어서 내용물이 무언지만 살펴보고 다시 붙여 놓으면 되지 않느냔 말이다. 


이정석은 조심스레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아니, 이럴 수가······!”

 

이정석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포장 안의 내용물은 바로 고가의 시계였다. 


대략 칠백만 원에서 천만 원 가까이한다는 고가의 명품 시계. 


이 시계는 이정석도 무척이나 갖고 싶었지만 워낙에 비싼 가격 때문에 항상 망설임에 그치고 말았던 물건이었다.


“그 소녀가, 혹시 재벌 3세쯤 되었단 말인가?”


이정석은 의문에 휩싸였다. 


아무리 잘사는 집안의 막내 딸내미였다손 치더라도 저렇게 고가의 선물은 받는 사람조차 부담스러울 터였다.


‘그럼 네가 대신 가져!’


이정석의 마음속 악마가 속삭였다. 


아니, 생각해보건대 악마가 아닐지도 몰랐다.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소녀의 마음과 선물을 받고서 부담스러워 할 다니엘의 마음을 둘 다 만족하게 해주는 길은, 네가 희생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거라는 천사의 소리일 수도 있었다. 


이정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혹시나 CCTV가 자신을 찍고 있다면 무척이나 곤란할 터였다. 


다행히도 이 건물에는 CCTV 같은 것은 없는 듯했다. 


이정석은 얼른 시계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포장지도 꾸깃꾸깃 구겨서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것은 분명히 자신의 욕심 때문에 벌인 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가수와 팬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하려는 매니저인 자신의 봉사 정신일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오늘따라 인생이 참으로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도대체 왜였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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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팬 사인회 (4) 19.12.03 27 2 15쪽
19 팬 사인회 (3) 19.12.03 22 1 10쪽
18 팬 사인회 (2) 19.12.03 20 2 12쪽
17 팬 사인회 (1) 19.12.02 29 1 12쪽
16 스캔들 (3) 19.12.01 47 1 14쪽
15 스캔들 (2) 19.12.01 22 1 12쪽
14 스캔들 (1) 19.12.01 19 1 13쪽
13 팬 (2) 19.11.30 23 1 9쪽
12 팬 (1) 19.11.29 22 2 14쪽
» 쇼케이스 (2) 19.11.28 28 2 20쪽
10 쇼케이스 (1) 19.11.28 22 3 14쪽
9 선물 (3) 19.11.23 26 3 7쪽
8 선물 (2) 19.11.20 28 2 11쪽
7 선물 (1) 19.11.19 25 2 11쪽
6 다니엘 (2) 19.11.18 29 2 11쪽
5 다니엘 (1) 19.11.16 32 3 15쪽
4 현 (3) 19.11.16 32 2 8쪽
3 현 (2) 19.11.15 36 3 11쪽
2 현 (1) 19.11.15 60 3 13쪽
1 프롤로그 19.11.15 21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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