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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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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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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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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5.3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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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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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1쪽

오해

DUMMY

지원은 기르불을 찾는 걸 고민하지 않았다.

그 없이 어떻게 여정을 이어나갈 것인지를 고민했다.


애초에 그녀는 혼자서 불을 붙이는 기술을 가졌다. 불갈대를 조금 꺾어다 불쏘시개로 쓰면 그런 기술조차도 필요 없다.

지사리 동료가 주는 다른 안락함을 포기해도 행군을 계속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핵심인 기계장치와 찬호는 잃어버리지 않았다. 문제는 찬호가 버틸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의 체력과 근력은 지원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축축하고 비위생적인 행군은 그런 것과는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지원은 더 자세한 평가를 위해 찬호를 바라보았다.

찬호는 지원과 눈이 마주치자 잔뜩 겁에 질려 횡설수설했다.


“아니, 저는 진짜로,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거든요? 지원이 우리를 놔두고 갔으니까 안전하겠지 생각해서······. 아니, 그게 아니라, 지원 때문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요······. 제가······.”


그는 거의 헐떡이고 있었다. 지원은 그를 진정시켜야 했다.


“찬호,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기르불을 찾는 건 무모한 짓입니다. 어차피 저희 계획은 이곳에서 며칠 야영하는 것이었고, 재정비할 시간도 필요하니 지금은 잠자리를 준비합시다. 어쩌면 기르불이 잠깐 바람을 쐬러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고민할 시간은 많습니다.”


그렇게 달래자, 찬호는 진정했다. 침착을 되찾자 그는 지원의 설명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그게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알겠습니까?”


찬호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네.”


하지만 침울한 건 지원이나 찬호나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우중충한 표정으로 찬호가 가져온 대나무를 엮어내고 야영을 준비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 기르불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원은 자신이 예측 못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꼈다. 상황이 한 번 통제를 벗어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걸 그녀는 잘 알았다.


찬호는 기르불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무슨 나쁜 일을 당해 실종된 것이라면 그건 더 싫었다.


두 인간은 생각에 몰두하며 말없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저 멀리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명죽림의 환청도 없고 갈대 스치는 소리와 강물 소리뿐인 고요함 속이었기에 두 인간은 깜짝 놀라며 소리가 난 곳을 쳐다봤다.


“지원, 방금 그거!”

“올라가서 무슨 일인지 봅시다.”


지원과 찬호는 거의 나는 것처럼 빠르게 절벽을 기어 올라가 폭발이 일어난 남쪽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절대 자연적으로는 발생할 수 없는 구형의 안개와 연기를 목격했다. 두 인간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어떤 대화도 없이 의견이 모였다.


그들은 다시 절벽 밑으로 뛰어내렸다. 찬호는 지원의 지시에 따라 온몸에 냄새나는 진흙을 끼얹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총이 격발되지 않도록 탄창에서 총알을 전부 빼 버렸다. 감시 장비는 절벽 밑 바위틈에 숨겨두었다.


그들은 갈대밭 속으로 뛰어들었다. 혹시라도 마찰열이 생길까봐 최대한 강변을 끼고 달렸다. 순식간에 신발과 바지가 축축해졌다.


폭발의 원인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추방자들이 멍청하게 갈대들을 모아놓고 불을 붙인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기르불이 관련되었다는 직감을 버릴 수 없었다.


채 500m도 달리지 않아 그들은 직감을 보답받았다. 찬호는 저 멀리, 대나무의 머리끝에서 부자연스럽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저거 봐요! 기르불 아니에요? 기르불! 저희 여기 있어요!”


찬호가 크게 외쳤다. 다행히 목소리가 닿았는지, 기르불은 몸 일부를 인간의 손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것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소리 질렀다.


“오지 마!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찬호는 그 말에 의아해하면서 지원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지원의 얼굴은 평소의 냉정함과 무미건조함은 온데간데없고, 의아함과 당혹으로 어그러져 있었다. 그녀의 눈은 대나무를 붙잡고 있는 기르불을 보고 있었지만, 관심은 전혀 다른 곳으로 넘어간 것 같았다.

지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기 귀를 어루만지면서, 알 수 없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아저씨?”


그녀는 이제 기르불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 흐려진 시선은 눈높이까지 자란 불갈대 너머의 하염강을 향하고 있었다.


“지원? 뭐 봐요? 대체 지금······.”


찬호는 불안해져 질문했지만, 곧 그 답을 알게 되었다.

하염강. 살의가 가득한 명죽림과 불갈대 군락과는 달리 평화로운 흐름이 유유한 곳. 그 중앙에서 한 옥토끼가 천천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새나 곤충처럼 날갯짓하는 것도 아니고 이파리처럼 바람을 타는 것도 아니었다. 옥토끼는 몸을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털이나 귀가 흔들리지도 않았다. 옥토끼의 비상은 고요했다. 그 고요는 모든 소음을 뭉게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찬호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했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성대가 찢어지도록 크게 외쳤다.


“저게 왜 여기 있지. 기르불? 이게 무슨 일이에요!”

“나도 몰라!”


별로 도움 안 되는 말이었다.

그는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옥토끼에게 집중했다. 그리곤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탄창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는 갈대를 등지기 위해 물가로 첨벙첨벙 나아갔다.


허공에 아지랑이가 피어나 뭉쳐졌다. 찬호는 그걸 보자 장전을 멈추고 지원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옥토끼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옥토끼가 기르불에서 시선을 돌렸다. 갈대밭을 등지고 강물에 몸의 절반을 담구고 있는 두 인간이 눈에 들어왔다. 명백하게 적의에 찬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절대 살려보내지 않는다.>


찬호는 재빨리 손으로 약실을 감싸고 쐈다.


옥토끼는 허공에서 총에 맞고 뒤로 거꾸러졌다. 동시에 공기로 된 가시가 날아왔다. 찬호는 지원을 껴안고 갈대밭 틈새로 쓰러지듯 그것을 피했다. 그리고 여전히 혼란에 빠진 그녀에게 소리쳤다.


“정신 차려요! 지원, 뭔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저 옥토끼 화나 있어요! 이러다 죽겠어요!”


<죽여주마! 죽여주마!>


찬호와 지원은 독기어린 텔레파시에 자극받아 일어나서 달리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강변에서 차갑고 냄새나는 물과 진흙 한 바가지가 날아왔다. 두 인간은 다시 넘어졌다.


그들이 갈대밭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기르불은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다. 그가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츠카는 그에게도 공격을 가했다. 물론 형체가 없는 지사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고, 그가 몸을 기대고 있던 대나무를 염력으로 잘라버렸다.


기르불은 몸이 쑥 꺼지는 감각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 주변의 다른 대나무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츠카는 그것들을 일일이 다 베어냈다.


지원은 머리를 흔들면서 일어섰다. 찬물로 얻어맞으니 정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한편 찬호는 흙 묻은 손으로 눈에서 진흙을 닦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를 내버려 두고 지원은 옥토끼에게 소리쳤다.


“이봐요! 옥토끼! 당신 이름이 뭡니까? 왜 우리를 공격합니까?”


그러자 그 옥토끼에게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산만한 정신의 파동이 전해졌다. 광기 어린 웃음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지원은 대답을 듣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케도 옥토끼는 대답해주었다.


<츠카.>


“옥토끼 맞아요? 왜 이렇게 감정적이지?”


찬호가 의아해하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원 또한 의문을 가졌다. 츠카가 표현하는 감정은 옥토끼치고는 지나치게 격렬했다. 그래도 그녀는 그걸 물고 늘어지는 것보다는 다른 말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츠카. 저희는 당신에게 적의가 없습니다. 방금 제 동료가 발포한 건 당신이 먼저 저희에게 염력 덩어리를 날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츠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지원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보고 설득을 계속했다.


“혹시 영보교와 관련된 일입니까?”


이번에는 눈에 띄는 반응이 있었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카추샤? 아니면 가나?”


츠카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지원의 경험에 빗대어 보아, 상대를 하대하는 표정이었다.


<카추샤 두나. 그녀가 우리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


영보교의 수장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걸 보아 츠카는 영보교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지원은 한차례 안심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 여자가 비인간적인 짓을 물 마시듯이 저지른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지! 내가 본 놈 중에 그런 건 인간밖에 없었어!>

“당신은 그쪽이 아닌 것 같군요. 맞습니까?”

<그렇다면?>

“저희 역시도 그년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적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가 없다고······.>


츠카는 다시금 텔레파시를 멈추고 침묵에 들어갔다.

지원은 이걸로 소동이 일단락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

찬호가 엎드려 있는 걸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는 아주 익숙하고 결코 익숙해지지 못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지원이 목에서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답보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새파랬다. 그리고 찬호는 새하얘졌다. 지원이 목을 움켜쥐고 존재하지 않는 손을 떨쳐내려 허공에서 허우적댈 동안, 찬호는 총을 꺼내 츠카를 겨누었다.


그러자 츠카는 지원을 자신에게로 휙 끌어당겨 방패로 삼았다. 그녀는 끔찍한 소리를 내면서 하염강 위에 매달리게 되었다. 찬호는 신음을 흘리며 방아쇠를 당기려던 손가락을 가까스로 자제했다.


츠카가 지원과 찬호, 그리고 기르불의 머릿속에 대고 소리쳤다.


<이젠 지긋지긋해! 그 헛짓거리 때문에 베카린이 죽었다! 더는 놀아나지 않겠어.>

“알아듣게 좀 말해라 이 새끼야!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건데?”


기르불이 멀리서 소리쳤다.

츠카는 간단하게 답했다.


<날 속이려면 최소한 옷 정도는 바꿔입는 수고를 들였어야지. 멍청한 카추샤의 졸개들아.>


찬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와 지원은 추방자들에게서 전리품으로 약탈한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옷은 변명할 수 없이 완벽한 만칼리풍 옷이었다. 두 눈 뜨고 자세히 보니 가슴팍에 영보교의 표식, 3개의 정삼각형도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명죽림에서는 반쯤 넋을 놓고 있던 데다가 시야가 어두워서 알아채지 못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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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옥토끼와 인간과 지사리와 무괴 22.06.02 25 4 11쪽
6 한편, 아루신에서는······. +1 22.06.01 42 4 11쪽
» 오해 +1 22.05.31 39 6 11쪽
4 물 속의 불 22.05.31 49 10 9쪽
3 낙관은 사람의 아편이다. 22.05.30 54 12 12쪽
2 달빛 아래 야반도주 +1 22.05.29 97 23 22쪽
1 육체가 없는 지사리 +1 22.05.27 201 3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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