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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죄용춤 님의 서재입니다.

활극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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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밥에관심
작품등록일 :
2016.08.23 05:15
최근연재일 :
2016.08.23 19:25
연재수 :
2 회
조회수 :
458
추천수 :
10
글자수 :
8,514

작성
16.08.2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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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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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1. 이혼통보를 받다.

DUMMY

이야기는 좀 더 과거로 돌릴 필요가 있다.


===========


최책, 이라는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천형을 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때 그는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인생을 살았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불혹이라는 나잇줄에 접어들었다.

40대 부부가 으레 지나는 통과점을 최책도 겪고 있었다. 바로 아내와의 별거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잘못은 아내의 우울증에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아내는 점점 최책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짜증만 부렸던 것이, 곧 사사건건 모든 것을 남편의 잘못으로 돌리기 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편의 약점이라면 무엇이든 말싸움의 주제로 올랐다. 설령 그것이 민감한 문제라도 상관없었다. 그의 살가죽을 찢고 끄집어내어, 기어코 그 안에 흐르는 핏물을 맛봐야 성에 찰 것처럼 아내는 혈안이 되어 최책을 몰아세웠다.


폐경기일 수도 있고, 아이에 대한 교육관이 달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남편보다 못났다는 열등감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몇날 몇일을 폭음으로 지새우는 건 예삿일, 집중력은 점점 떨어지고 심지어 딸아이에게까지 폭언을 일삼을 때도 있었다. 그 때는 최책마저도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럴때면 아내는 퍼뜩 뛰어올라 쩔쩔매다 술에 취한채로 남편과 딸을 껴안고 흐느끼는 것이였다. 연신 자기가 잘못했다고 주억거리며.


최책은 아내를 이해 하지 못한다 해서 인내심을 잃지는 않았다. 가장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게 아니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아내를 사랑했다. 이 모든게 부질없다고 흐느끼는 아내를 경멸하지도 않았다. 어린 딸에게 아버지를 이해해달라고 떼쓰지도 않았다.

아내와 딸은 천형을 견디게 해준 힘이었으니까. 그는 한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아내의 지아비로서, 딸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파국이 찾아왔다.


아침, 아내가 아무말 없이 최책이 일하는 곳으로 찾아왔다.이곳이 연회장이라도 되는양 등을 꼿꼿이 세우고 걷는 그녀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층 수가 바뀌고, 그녀는 내린다. 사무실에 들어서고 파티클 사이를 모델워킹하듯 걷는다. 목적지는 최책이 위치한 책상.

부지불식간 최책은 일어섰다. 우선 드는 기분은 당혹감이었다. 아내는 2주일간 집을 나가 한번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이어 실망감. 저렇게 까지 해서 최책을 집요하게 까내리려 하는 건가.

자신이 일하는 일자리에서 까지. 둥그런 안경렌즈 너머, 아내의 미소를 포착한다.

입술을 요염하게 일그러뜨리며 짓는 웃음은 최책의 심중을 뒤흔들 건수를 제대로 잡았을 때만 짓는 웃음이었다.


"재은이는 별일 없지?"

2주간 바깥은 싸돌아다녔으면서도 이제야 딸의 안부를 묻는다. 최책은 속으로 한 숨을 쉬었다.


"재은이는 괜찮아. 아버지가 내준 시설에서 몇일 머무르며 컴퓨터 기기 만지고 싶다길래-"


곧바로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 얼굴이 부어오른 것처럼 벌개진다. 아내는 곧장 말허리를 자르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최책을 비난했다. 주위에 시선이 있는 말든 상관없었다.


"당신! 내가 몇번이나 말했잖아! 우리 재은이를 아버님 과 관련된 어떤것이든 연관짓게 하지 말라고! 당신 아버님이 어떤 인간인지 몰라서 그래?"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최책을 찌른다. 남편의 말이 무엇이건 자신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됐다. 그리고 최책의 아버지도 그녀에겐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자신의 기분을 거스르는 부류.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그에게 벌을 줘야만 했다.

자신의 관점에서 타인을 재단해야만 하는 독선, 그리고 경멸. 그것이 아내의 무기였다.

아내는 아무 죄도 없는 남편에게 죄를 돌려야만 했다. 그녀가 겪는 고통을 당신도 사무치게 느껴야 한다며 악을 질러 대었다.


최책은 목소리를 조금 낮춰달라는 제스쳐를 취하며 한걸음 나선다. 아내는 한걸음 물러났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당신 말을 까먹었던 것은 아니었어. 그런데 방학 중이기도 하고, 당신이 밖에 나가있을 때 전화로도 몇번이나 얘기했었잖아. 재은이가 할아버지를 보고싶어 한다고. 그래서.."


남편의 애걸에 마음이 바뀐 것일까. 이제까지 악을 쓰던 아내가 갑자기 날카로운 숨을 내뱉는다.


"흐응"


퍼뜩 무언가를 깨닫고 자신이 다시 우위에 서기라도 한 듯 전의 의기양양한 태세.

아내는 자신의 퍼포먼스에도 의연한 최책의 태도에 한쪽 눈썹을 찡그러트렸다.


"그래. 당신은 항상 그러지. 사람 다 보이는 곳에서 나 병신년 만들고 있는 거잖아. 내가 뭔 짓을 하건 상관없다 이거아냐? "


최책은 일단 아내를 진정시키려고 다시 걸음을 움직였다.

허나 그 다음말은 최책의 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신은 딸, 재은이 친부가 아냐."

정적. 한창 울릴 사내전화도 지금은 조용해졌다.

한순간 최책의 머리가 백짓장이 되었다. 멀거니 서서 아내를 바라보았다. 애써 목소리를 낮추어 되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뭐?"


아내는 그것보라는 듯 깔깔 웃었다. 남들 앞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을 고백하는 수치보다, 남편을 벼랑끝 파멸로 밀고가는 기쁨이 더 큰 탓이였다.


"다 듣고서 모르는 척 빼는 표정 짓지마. 짜증날려고 하니까. 당신은 재은이랑 피 한방울도 안 섞인 남남이라고! 지금껏 호구병신짓한거야!"


감정에 북받친 아내의 뺨에는 불그스름한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됐다. 됐다고. 자, 이제 최후의 일보만 남았다. 그녀는 방방 뛰기라도 할 것처럼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럼.."

"응, 당신 몰래 바람폈을 때 임신한거야."


이미 엎질러진 물임을 아는 것일까. 남편을 쏘아보면서도 빙글빙글, 이제는 일종의 후련한 미소까지 쏘아붙인다.


최책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피가 머리끝까지 몰리고 폐가 압박 당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엿다. 호흡곤란 환자가 산소를 모으듯 팔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무게중심이 무너져 땅에 처박힐 것을 파티클 벽면에 기대어 겨우 버티었다.


벽을 잡은 손이 하얘진다. 잇사이로 악쓰는 소리가 나오려는 걸 참았다.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내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 머저리처럼 날 한번도 의심하지 않은 당신은 그저 ATM밖에 안되거든? 그거 알아? 당신 없었을때 몇번이고 딸이랑 친부랑 같이 여행나간거?"


말은 칼날이 되어 최책을 난도질 한다.


"당신이 노력했다고 생각해? 그 병신같은 이름처럼 당신앞에 길이 쫙 풀린 것 같냐고? 오늘 여기온 것도 당신이랑 영영 안녕할려고 찾아온거야. 남 헤아릴 줄 모르는 목석같은 인간이랑 사는게 얼마나 지옥같은 지 모르지? 당신이랑 사는 것도 이젠 지쳤어."


최책의 귓가에 그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딸 애도 내가 데려갈거야, 당신이 무슨 권리로 재은이를 키울 권리가 있겠어"

최책은 진땀을 흘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와중 그는 갸날프게 속삭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안돼..안돼.."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후려치고 때려눕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 것으로 만족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갔다.

한평생을 같이 살기로 기약한 남편을 내버려 두고서.


===================


무슨 정신으로 집에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다.

아내가 나간 직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달라붙어 뭐라 말했지만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자신이 뭐라 대꾸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두개골 속에는 아내의 말만 꽉차 도돌이표처럼 맴돌고만 있었다. 그 뻔한 말속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기라도 할 것처럼 몇번이고 되뇌기까지 했다.


시큐리티를 풀고 집안에 들어서자 엉망진창인 내부가 보였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끝없는 분노의 일부를 이 집에 까지 쏟아낸듯했다. 옷이며 바지며 최책이 흔적이 남는 것은 모두 찢어발기고 부수고 깨트렸다. 다행히 딸아이의 방은 건드리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분별이라는게 남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재은이의 방까지 건드렸다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방을 제외하면 부부 공동 소유물 중 멀쩡한 것이라고는 벽에 걸린 TV밖에 없었다. 아내가 절친한 친구에게 받았다며 소중히 여겼던 그 TV.


"........"


저 TV만 남겨놓고 간 이유는 뻔하다. 자기 아랫도리를 들락날락 거렸던 놈이 TV를 선물한 놈이라는 것이리라.

그 TV를 보는 것은 최책에겐 수치스러운 자기 인식이었다. 아내는 내내 최책에게 엿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불쾌감에 입술이 일그러진다. 최책은 손을 뻗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랜만에 감정의 봇물이 터질 뻔한 것을 참았다.


집안 꼴만큼이나 최책의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아내의 말에 짓눌린 것에 벗어나려고 하듯 연이어 한숨을 쉬었다.


"지치네"


기력을 잃었다해도 할 일은 해야한다.


이윽고 최책은 쓰레기 봉투를 꺼내고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벽지에 덕지덕지 그려놓은 립스틱 자국을 지우고, 찢어진 옷가지를 버린다.

바닥에 엎어놓은 냉장고를 세우고 깨진 유리조각을 깔끔히 치운다.

아내가 집안살림을 포기한 탓에 가사전반에도 능해졌던 것이 여실히 발휘되었다.


더러워진 집안을 깔끔히 정리하자 3시간이 지났다.

최책은 여기저기 찢어져 보풀이 튀어나온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딸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이 쓰라려진다. 내 핏줄이 아니라고? 그게 어때서. 최책이란 인간은 그런 사사로운 것에 연연할 만큼 못된 인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안해졌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삭힌 분노가 다시 솟는다. 소파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창 커갈 아이 앞에서 도대체 무슨 꼴을 보여주는 거지, 아내는? 왜 제 기싸움에 재은이를 이용하난 말이다.

그것도 친부에게 억지로 데려가면서 까지.


웅웅.

스마트 폰의 진동음에 불쾌감에서 벗어난다. 아까전부터 제발 확인좀 하라며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던 스마트폰.

확인하자 쌓인 메일만 수백통. 부재중 전화도 방금 것을 포함해서 100통 가까이 되었다.

걱정하는 것이 대다수고 술 사줄테니 나오라는 전화였다. 진지하게 자살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장문의 음성메시지도 있었다.

그나마 괜찮은 삶이라고 해야하나. 책임감을 가지고 살라는 바람에 조금은 부합한 것일까. 하지만 해명하는 것은 다음이다.

일단은 딸에게 전화. 부재중전화로 넘어가길래 다시 한 번 전화. 역시 받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지금 전화하면 냉철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아서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다음으로 최책은 외부출장 중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통을 덜어보고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문제에부재 중 전화로 넘어갔다. 상황을 요약한 이메일을 짧게 보냈다.

문자 착신.

[결혼 할 때부터 마음에 안들었어. 재은애미는 나도 첨부터 싫었다. 싫은티를 팍팍내지 않더냐. 잘됬네 <^^/ ]


최책은 읽고 피식 웃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

딸, 재은이에 대해 대해 문자로 묻자 곧장 대답이 날아온다.


[재은이는 걱정마렴. 따로 사람을 붙여놨으니까 걱정할 건 없어. 안에서 컴퓨터기기 만지작 거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니까 밖으로 싸돌아 다니진 않을거야. 물어보니까 내가 내준 빌딩서 일주일은 지낸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몇 분뒤, 다시 메일이 착신했다.


[...알고보면 좋은 일 아니겠니. 어쨌거나 네 천형(天刑)이 재은이 한테 이어지지 않은 셈이니.]



천형.

그 말은 최책의 영혼 밑바닥에 있는 뭔가를 세게 잡아 당겼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듣는 말. 최책이라는 인간의 내부에 충격을 주고 약동하기 시작하는 말.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운명처럼 발신음이 울렸다.

심판의 날처럼.

어디 한번 엿먹어 보라는 것처럼.


무시했다.

띠링,

헌데 계속울린다

띠링,띠링,띠링

스마트폰은 진동도 벨소리도 잠금을 해놨을텐데

띠링,띠링,띠링,띠링

아, 스마트 폰이 아니군.

양복 안쪽, 최책이 따로 채워놓은 홀스터. 거기서 울리는 소리였다.


이것은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신호이자, 무조건 받아야 하는 전화다.

왜 하필 지금이야, 하고 궁시렁 거릴 여유도 없다. 사고의 레일을 갈아끼워야 할 때다. 이 전화에 비하면 양육권이니, 이혼문제니에 관한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머리의 잡념을 지우고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다.


"예, 최책입니다"


[바비 냅이 당신이면 도움이 된다고 해서요]


[이제 도울 사람이 당신밖에 없습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최책은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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