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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마엘 님의 서재입니다.

초전도체를 발명한 날, 좀비가 창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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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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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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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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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역에서 총 8대의 차량이 부딪히지 않는 수식을 구하시오.

DUMMY

김호영과 임수재의 궁금증은 풀렸다지만, 권수현의 궁금증은 해결되지 못했다.

지하에서 튀어나온 구체의 좀비에 대해선 두 학생에게도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 하나를 통해서도 몇 가지의 유추는 가능하지."

"그냥 괴물이 튀어나왔다, 아닌가요?"

"그건 하나의 결론일 뿐이야. 그 결론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확장되지 않나."


권수현은 조심스레 지하로 내려가며 강의를 이어나갔다.


"첫번째는 그런 변이가 '현재진행형'으로 발생 중이라는 것.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 글쎄요."

"아마도 녀석들은 '적응'중이거나, 혹은 '진화'중 일거야.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녀석들은 변화를 꾀하고 있어."

"적응과 진화의 차이는 뭔가요?"

"적응은 환경에 맞추는 것이고, 진화는 환경을 넘어서는 것이지. 그렇다면 녀석들의 변화는 진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군."

"저희한테는 안좋다는 거죠?"

"적으로 본다면 최악이지. 하지만..."


권수현은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아이처럼 미소지으며 말했다.


"연구자로서는 최고이지 않나."

"교수님!"

"알아, 알아. 좋아할 일이 아니란거. 하지만 포지티브한 사고방식만 가지고 있으면 뒤쳐지는 법이야. 이런 상황에서 그런 기대조차 없으면 어디에 기대하란건가."


권수현의 마인드 컨트롤은 서바이벌의 기본적인 요소이자, 가장 중요한 자기 관리법과 동일했다.

탐험 중 오지에서 낙오된 사람, 불의의 사고로 고립된 사람, 납치된 사람 등의 구조가 필요한 사람들의 생존기에서는 하나같이 같은 증언을 하고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을 즐길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권수현은 교수이자, 현재 생존한 학생들의 리더격인 사람이었다.

언제까지 불운과 불행을 탓하며 방어적인 모습만을 보이면 안된다.

그럴거라면 차라리 자신을 마인드 컨트롤해서, 생존하기 위한 희망을 만드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보다 더는 좀비가 없는 모양이군."

"근데 냄새는 장난아닌데요."

"며칠동안 시체가 방치되었을테니까."


배출되지 않고 고여버린 시체썩은 냄새는 독이나 다름없었다.

권수현과 두 학생은 가장 먼저 방독면과 방독복을 찾아내서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시간을 길게 끌 수는 없다.

전기가 보충되는 시간은 길지는 않을 것이다.

세 남자는 즉시 신림역의 통제실로 들어가 상황판을 살폈다.


"가능하겠나?"


임수재는 상황판을 향해 혼자서 중얼거리며 자신이 할 일을 확인했다.


"어, 우선은 팬터그래프 제어판을 찾아야 하는데..."

"팬터그래프?"


김호영의 질문에 임수재는 혼잣말하듯이 대답했다.


"집전기에요. 모든 전기 기관차는 팬터그래프를 통해서 트롤리선과 연결되거든요. 기관차 위에 달린 레일같은 전선 있잖아요? 그게 트롤리선이에요. 그 트롤리선에 흐르는 전류를 팬터그래프가 추진기로 전송시키는거죠. 쉽게 말하면 팬터그래프만 제어할 수 있으면 죽어있는 기관차의 컨트롤이 가능해요. 그런데 대체 그게..."

"하나씩 다 해보지."


시간이 부족하다면 차라리 과감하게 전부 해보라는 권수현의 응원에, 임수재는 반색을 띄며 대답했다.


"정말 다 해봐도 되요?"

"그래. 망가트려도 좋으니까 뭐든 다 해보게."


공학부 학생에게 '망가트려도 좋다.'는 제어를 푼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권수현은 몰랐을 것이다.

그 말은 임수재의 제어를 푸는 마법의 주문이기도 했다.


"나중에 청구들어와도 전 모릅니다!"


그리고는 익숙한 미소를 띄며 제어판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 저 오늘 저 미소, 두번째 보는건데요."

"옳은 전염이군. 자네도 뭔가 마인드 컨트롤할 수 있는 계기가 있으면 좋겠군."

"하아. 이런 상황에서도 낙천적인 교수님이랑 수재가 신기한거에요."


그렇게 한 발 물어서려던 김호영을 임수재가 질문으로 붙잡았다.


"형, 신림에서 종로까지 몇 정거장이죠?"

"2호선이니까 종로까지는 바로 안가. 가장 가까운 역이라면 을지로3가고, 어... 16정거장이네."

"교수님, 꼭 을지로3가까지 갈 필요는 없죠?"

"종로랑 가깝다면 아무 역이나 상관없지."

"그렇다면 아현까지는요?"

"괜찮네. 그런데 이동경로를 줄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건가?"

"네."


임수재는 제어판의 모든 버튼을 한 번씩 눌러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 아무리 전기를 흐르게 한다고 해도, 트롤리선으로 방전되는 전기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요. 지금 여기서 억지로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지만 20분이면 방전되면서 끊겨버릴거에요. 지금 전기로 기관차를 달리게 한다는 표현보다는 기관차를 민다라고 표현해야 해요."

"현재 공급되는 전기의 힘만으로 밀어붙인다는 거군."

"맞아요. 그나마 다행인게, 만일 2호선이 아니었다면 이런 방식조차 통하지 않았을거란 거에요. 2호선부터 4호선까지는 직류 방식으로 움직이는데, 다른 노선은 교류 방식으로 전기가 흐르거든요. 그러니 SIV와 ARF를 찾아내기만 하면 운행이 가능한거죠."

"만일 교류방식의 기관차였다면?"

"교류는 전력 손실을 줄이기 좋다는 장점이 있는데, 어차피 이미 손실분이 새어나갈텐데, 이제와 손실을 줄여 뭐하겠어요. 그냥 구멍난 장독대일 뿐이지. 아 찾았다. 이게 보조정류기네. 그렇다면 다음 선이 현재 정차한 기차의 전원 장치니까... 형! 지금 내려가서 기관차에 불 들어왔나 봐줘요!"

"혼자 가면 위험할 수 있으니, 같이 가도록 하지."

"안되요, 교수님."


제어판을 살피던 임수재가 교수의 방호복 끝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지금 기본적인 제어는 컨트롤 해놨어요. 이제부터가 중요해요. 만일 제대로 송전이 되고 있다면 밑에 정차된 기관차에 불이 들어올겁니다. 하지만 만일 불이 들어오지 않거나 제어판이 먹히지 않는다면..."


임수재는 침을 크게 삼킨 후, 최악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설령 기관차를 움직이더라도, 다른 역, 다른 장소에서 정차중인 기관차와 부딪히며 사고가 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어떤게 필요한가."

"계산대로라면 3분 후, 제어판에 불이 들어올 겁니다. 그때 교수님은 전체 제어판을 살펴봐주세요. 그리고 제어판에 불이 들어온 순간, 다른 정차된 기관차들이 동시에 운행되도록 한 후에 운행을 시작한 신림역의 기관차에 탑승하셔야 해요."


그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임수재는 식은 땀을 흘려야 했다.

듣기만 하던 김호영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며, 왜 긴장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차라리 교수님보다 내가 제어판 누르고 달리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

"형... 이건 단지 운행버튼만 누른다고 달릴 수 있는게 아냐."

"그러면?"

"형, 지금 2호선에 서있는 지하철이 몇 대일거같아? 우리가 가는 길목에 좀비사태때 정차한 지하철 차량만 7대는 될거야. 그 지하철이 어디에 서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어. 제어판에 불이 들어오면 알겠지."

"그래, 그것들도 다 운행된다면서."

"그렇다면 형, 혹시 2호선의 모든 역이 내리는 방향이 다른건 알고 있어?"


그제야 김호영은 이 제어가 얼마나 힘든 연산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신림에서 아현까지는 12정거장.

그 사이에 정차한 다른 지하철의 위치를 파악한 순간, 그 7대의 지하철이 한 방향으로만 운행되도록 몰아야 한다.

그래야 신림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이 멈추지 않고 아현까지 달릴 수 있을테니까.

만일 계산이 어긋나버린다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멈추지 않은 기관차가 다른 기관차와 부딪히게 될 것이고, 그 자리에서 3명의 남자는 두 기관차의 충돌충격에 의해 모두 즉사하고 말 것이다.


"알겠지?"

"12정거장에 놓여진 7개의 기관차들을 모두 한 방향으로만 설 수 있도록 해야하고, 각 역의 내리는 방향이 다른걸 고려한다면..."


김호영이 말하는건 복합연산의 수식이었다.

각각의 정차가 가능한 방향을 바꿔야하고, 그에 따른 7대의 다른 기관차와 신림에서 운행하는 기관차의 방향을 서로 엇물리게 바꿔야 한다.

그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만 한다.

그것도 신림역의 지하철은 운행을 시작할테니 3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최적의 루트를 구해야만 한다.


"교수님! 가능..."


권수현을 부르려던 김호영은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이미 교수는 연산에 들어섰다.


'기억을 떠올려보자. 신림에서 아현까지의 출구는...'


권수현은 지하철에 탄 기억을 떠올리며, 지하철에서 내리는 방향을 머리 속에 구현했다.

지금 권수현은 이미 지하철을 탄 것과 같은 생생한 기억이 그려지고 있었다.


'신림에서는 중앙. 왼 쪽. 신대방은 양쪽으로 오른 쪽. 대림까지는 동일. 신도림에서는...'


신도림의 정차는 3방향. 경우의 수가 늘어나버렸다.

하지만 연산을 멈출 이유는 되지 않는다.


"교수님, 지금부터 제어판 엽니다!"


전기가 들어오며 신림역 내부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 순간에 맞춰 권수현은 눈을 뜨며 연산에 들어갔다.


'왼. 오. 오. 오. 중. 오. 오. 오. 오. 왼. 오. 왼. 오. 몰아야 한다면 오른... 아니, 왼쪽이다.'


30초 경과.


'운행이 시작된 다른 기관차는 구로. 대림. 신도림. 문래. 당산. 합정. 홍대. 오른 쪽에 선 열차가 많아. 그렇다면 오른쪽으로 몰아버리고 왼쪽으로 운행을 개시한다. 그게 최적의 루트야.'


1분 20초 경과.


'다른 기관차가 운행방향을 틀고 신림의 기관차와 부딪히지 않으려면, 구로와 대림의 지하철은 운행을 아예 멈추는 것이 좋겠지. 대림은? 안돼. 운행불이 들어오지 않아. 문래도 마찬가지다. 전력이 부족한건가? 그렇다면 운행방향은 왼쪽에서 다시 구해야한다.'


1분 42초 경과.


'신대방에서 왼쪽으로 꺾은 후, 왼. 왼. 왼. 오. 왼. 왼. 왼. 오. 오. 왼. 왼. 왼. 그리고 각 차량의 방향은 신대방 차량부터 역으로 돌린다.'


"교수님!"


지하에서 권수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전기가 들어오며 운행이 시작되었다는 임시 차장 임수재의 외침이었다.

그 사이, 권수현은 제어판의 컨트롤을 통해 열차 차량을 최적화된 루트로 고쳐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2분 32초.


지하철이 조금씩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달려서 탈 수 있는 거리.

하지만 지금은 방독면과 방호복을 입고 있고, 안에도 많은 장비를 한 탓에 평소처럼 달릴 수는 없다.


"교수님! 슈토스발레를...!"


미리 지하철 안에 타고 있던 임수재가 소리쳤다.

하지만 지금 슈토스발레를 쓴다면 방호복이 찢겨져버릴텐데?

그 우려는 바로 해소할 수 있었다.

현명한 제자들은 바로 지금의 상황을 대비해, 먼저 내려온 시간동안 한 벌의 방호복을 더 찾아내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슈토스발레!"


몸을 등지며 슈토스발레를 쓰며 추진력을 얻었다.

순간 권수현의 몸은 마치 멀리뛰기하는 선수처럼 붕 뜨면서 개폐기능을 상실한 기관차 차량 안으로 들어왔다.


"후아. 후아. 이런 경험은 처음이구만."

"누구나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김호영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는 권수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무임승차가 처음이란 말일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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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개의 역에서 총 8대의 차량이 부딪히지 않는 수식을 구하시오. +1 23.09.24 40 0 12쪽
10 브러시리스 모터 23.09.20 49 1 11쪽
9 업그레이드 ver.2 23.09.14 61 0 13쪽
8 23일동안 좀비에게서 피해서 살아남기. 23.09.14 49 0 12쪽
7 이론파 김호영 23.09.13 61 2 12쪽
6 거짓말. 23.09.13 65 2 15쪽
5 그거야말로 제 전공분야입니다. 23.09.12 83 0 13쪽
4 23.09.12 180 1 11쪽
3 내가 뭘 만든거지? 23.09.12 156 2 12쪽
2 비상시국 선언. 23.09.11 110 1 13쪽
1 초전도체를 발명한 날, 좀비가 창궐했다. +1 23.09.11 159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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