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예카마엘 님의 서재입니다.

히포크라테스 1330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매일글쓰기
작품등록일 :
2023.08.29 14:36
최근연재일 :
2023.09.10 17:51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936
추천수 :
49
글자수 :
66,678

작성
23.09.03 16:06
조회
54
추천
3
글자
11쪽

1330 - 8

DUMMY

쾅!

2층에서 들린 요란한 소리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진료실로 올라갔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냐만은, 그 설마하던 우려가 터져버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게 내가 길모어씨에게 의사 선생님을 소개하는 건 안좋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언제까지 길모어씨의 연기를 보고 있으란거야."


"그건 그렇다지만... 안보이던 눈이 갑자기 보일리가 있나."


"그래도 한 번은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결정해야지. 우리가 의사인가?"


"어쩔 수 없지. 눈이 안보이는거야 그렇다쳐도 앞으로 더 나삐지지만 않으면 다행인거니까."


"게다가 방금 소리는 뭔가 걸려 넘어진 소리일거야. 길모어씨고 무턱대고 사람을 때릴리는..."


"맞아. 길모어씨도 생각이 깊은 분이라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우르르 2층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을 보며 얼이 빠지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길모어씨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어?"


"길모어씨가... 의사 선생님을 때렸어?"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일과 절대 기대하지 않던 일이 동시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앞으로 나서서 이 상황을 수습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 건 둘째치고,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않았기 때문이다.


"이 자식이... 다시 한 번 말해봐! 방금 나한테 한 말을 다시 한 번 말해보란 말이다!"


"얼마든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손자분은 천연두가 아닐 확률이 높아요. 아니, 천연두가 아닐거라고 확신합니다."


아인도 더는 참지 않고 바락바락 소리를 내며 항변했다.


"그렇다면 넌 내가 천연두에 걸리지도 않은 손자를 나병 환자들이 있는 수도원에 보냈다는 말을 하는거냐!"


"그러니 어서 빨리 가야하지 않습니까. 늦기 전에요!"


"감히... 어디서 사람을 바보취급하고 있어!"


"진짜 바보는 말해줘도 안듣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겠죠!"


"이 자식이!"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두르려는 길모어를 말리기 위해 몇 사람이나 달라붙어야 했다.


"아이고, 길모어씨. 이러시면 안됩니다."


"의사 선생님이시잖아요. 이러다 그냥 휙 하고 가버리시면 어떡하려고 그럽니까."


"아인 선생님도 잘못했다고 말씀드리세요. 지금이라도 오해를 풀고..."


"오해는 무슨 오해입니까."


아인은 더는 굽히지 않고 말했다.


"다른 분들도 길모어씨의 손자가 천연두가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아이의 얼굴에 붉은 발진이 떠올랐으니..."


"아이가 밤새 아파하며 긁는데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있어야지. 게다가 피도 철철나고."


"그래서 유명한 의사 선생님에게 데려갔더니 천연두라고 하셨었어. 분명해."


"그래요? 정말 그럴까요?"


지금까지 아인이 참은 이유는 길모어의 아픔이 가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가족을 잃은 슬픔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아직 살아는 있다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생이별을 당한 것이니 길모어의 아픔도 적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서둘렀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수정체를 제거하는 낭내 적출술로 무리하게 치료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의 치료는 된다지만 예후는 더 안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면 실수를 고쳐잡을 수 있다.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기에 서두른 것이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아인이 모두를 향해 되물었다.


"그 아이 이외에 이 성에서 천연두가 발진한 경우가 30년 내에 있습니까."


"그건 없지만..."


"그렇다면 그 아이 한 명만 천연두에 걸렸고, 나머지 모든 시민들은 안전한 상태라는 겁니까?"


"바로 격리를 했으니..."


"길모어씨는 천연두에 걸린 적이 있나요?"


길모어는 씩씩거리기만 할 뿐, 대답해주지는 않았다.

그것도 충분한 대답이라 할 수 있었다.

만일 천연두에 걸린 적이 있다면 바로 대답했을테니까.


"어째서죠?"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인은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져보았다.

어째서지?

천연두에 걸렸다고 하는데, 어째서 다른 시민들은 멀쩡할 수 있지?

천연두의 가장 큰 공포는 높은 전염성에 있다.

단지 환자 한 명을 격리했다고 나아질 질병은 절대 아니다.

그것을 단지 한 명의 환자를 격리함으로 끝낼 수 있단 건, 기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불가능한 일이다.


"제가 들은 이야기를 몇 번을 되뇌어봐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길모어씨는 손자분의 얼굴의 형태를 기억할정도로 만졌다고. 이상하지 않나요? 아무리 눈이 보이지않는다 한들, 손자분의 피부에 두창이 날 정도라면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그럼 대체 내 손자의 피부에 갑자기 발진이 일어난 건 뭐라고 설명할건가!"


아인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야 아토피겠죠."


이것 또한 길모어의 손자가 천연두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아토피 질환은 보통 유전적인 형질을 통해 전달된다.

그리고 아토피 질환에 동반되는 가장 흔한 질병이 바로 길모어가 걸린 백내장이었다.

아마도 길모어 또한 약간의 아토피 질환은 있을 것이다.

길모어의 경우 아토피 질환이 백내장으로 번진 것일테고, 손자의 경우 아토피 질환이 크게 두드러진 것이리라 판단했다.

이 외에도 단서는 있었다.


"아토피?"


둘러싼 사람들 중 한 명이 그게 뭐냐는 의미로 되물어왔다.

이것 또한 단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는 아토피라는 병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보통보다 피부가 과민할 뿐이다.'라고 진단을 내린다.

그렇다면 아토피가 심해 피부가 많이 손상된다면, 그것이 천연두로 보여질 수 있을 것이리라 판단했다.


"선천성 피부질환입니다. 맞아요. 제가 생각하는 진단은 그렇다지만, 아직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틀렸을 수도 있겠죠. 제가 길모어씨의 상처를 한 번 더 후벼파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상처를 지켜보느니, 치료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어 후벼파는 게 나을테죠."


"지금 너가 무슨 배짱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다만... 의사의 진단을 너가 번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햇병아리 의사 주제에."


길모어가 마지막 선을 넘었고, 아인은 그 선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렸다.


"의사가 신입니까!"


"..."


"길모어씨가 방금 전 제게 말씀하셨죠. 신이라도 된 줄 아냐고. 그렇다는 건 의사가 신이 아니라는 걸 길모어씨야말로 잘 알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의사가 신이라도 되는 겁니까! 의사도 틀렸을 수 있잖습니까!"


"그래..."


"의사의 진단을 무조건 믿지말란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어설프게 주워들은 지식보다는 전문적으로 배운 의사의 말을 믿는게 더 좋죠. 그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의사는 신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무조건 살려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을 무조건 죽으라고 할 수도 없단겁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손을 떨며 자신의 과오를 되짚어보는 길모어를 향해 아인이 소리쳤다.


"아직 늦지 않았을 겁니다. 천연두가 유행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 수도원에도 환자는 거의 없을테죠. 그래도 환경을 통해 전염될 수도 있으니 지금 바로 가야합니다. 그게 지금 길모어씨가 할 일입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길모어의 손자는 다행스럽게도 천연두가 아닌 아토피였다.

또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이 있었다.

수도원에 다른 환자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전부 아토피를 천연두로 오진받아서 온 아이들이었다.

덕분에 격리된 장소에서 천연두에 걸리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사정은 전부 불행이라 불러야 했다.


"망할 협회놈들... 이건 동맹에서 탈퇴하란 통보나 다름없지않나."


가장 큰 불행은 동맹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구실은 여러가지를 붙였다지만, 결국 직접적인 이유는 하나였다.

동맹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점이다.


"겨우 이정도 일 가지고... 오진을 잘못잡았을 뿐인데."


아인은 이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낄 정도로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레콥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아인을 탓하지 않았다.


"아니, 누가 대체 선생님을 탓합니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굳이 잘못을 잡는다면... 수도원에 가서 당장 손자 내놓으라며 주먹을 휘두른 길모어씨 잘못이죠."


"흠흠."


"근데 이펜, 자네도 도망치려는 놈 붙잡고 다른 아이들은 어딨냐고 했잖나."


"이 사람보게? 데롯. 자네는 그 의사의 잘못을 묻는다면서 동맹에 서한을 보냈잖아. 그러니 엄연히 따지자면 자네 잘못인거지."


"잘못된걸 잘못됐다고 말한게 뭐가 어때서 그래. 그렇게 따지자면 그 의사집에 가서 주먹 휘두른 놈이 누군데 그래. 그레드라고."


"리즐러씨. 좀 말려봐요. 이 사람들은 죄다 자기 잘못 아니라고 그러네."


"그러게 누가 그렇게 난리를 피우라고..."


"저 녀석 아직도 모르는구만. 리즐러씨가 동맹에서 이렇게 나올거라면 리즐러씨 공방의 물건은 일체 팔지 않겠다고 말한걸 몰라?"


"그럼 리즐러씨 잘못이구만."


"길모어! 이펜! 데롯! 그레드! 자네들 진짜 보자보자하니!"


다들 유쾌할 정도로 서로의 꼬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아인은 자신의 우려가 괜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다들... 괜찮으신 겁니까?"


"아무렴, 괜찮고 말고요. 이건 의사 선생님을 배려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도시에서 일어난 일 아닙니까. 우리가 실수한거고 선생님이 그것을 바로 잡았을 뿐입니다."


"다른 아이들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데오르피아 수도원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집에서 거부한 아이들도 있지만, 이 도시에서 그 아이들을 함께 책임지기로 했으니까요."


"결국 우리가 잘못한 건 없네. 근데 그 동맹놈들..."


"됐어. 어차피 동맹때문에 족쇄가 걸린 일도 한 두개가 아냐. 차라리 잘된거야."


"리즐러씨, 무슨 대책이라도 있습니까?"


리즐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길모어를 한 번 쳐다본 후 대책을 내놓았다.


"동맹에서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굳이 우리도 동맹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 다른 동맹을 찾거나, 우리 자치구역을 넓히면 돼. 마침 지난 해까지 양모가 잘 팔렸으니 시의 재정도 넉넉하거든."


"언제 그만큼 쌓아두셨수?"


"니 놈들이 축제랍시고 예산만 안뺐으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있을거다!"


"즐길줄 모르는 리즐러씨구만."


다들 그렇게 한 마디씩 꺼내며 이번 일의 마지막 소회를 접어두고 있었다.

그때 아인의 머리 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사람들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 사람들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일이다.


"다들... 제 이야기를 잠시만 들어봐주시겠습니까?"


"뭐든 말하시오."


길모어가 몸을 굽히며 가장 먼저 경청할 자세를 취했다.


"나는 앞으로 의사를 믿는게 아니라 당신을 믿을거요. 당신이 말한다면 신도 배신할 것이오. 그러니 뭐든 말하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할테니."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 혹시..."


아인은 역사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우두를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히포크라테스 1330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부 수정중인 내용 23.09.05 30 0 -
15 1330 - 15 +1 23.09.10 42 3 8쪽
14 1330 - 14 +1 23.09.09 37 2 8쪽
13 1330 - 13 +2 23.09.08 38 3 7쪽
12 1330 - 12 +2 23.09.07 54 4 19쪽
11 1330 - 11 +2 23.09.06 50 4 8쪽
10 1330 - 10 +2 23.09.05 50 3 14쪽
9 1330 - 9 +2 23.09.04 57 3 11쪽
» 1330 - 8 +2 23.09.03 55 3 11쪽
7 1330 - 7 +2 23.09.02 57 3 8쪽
6 1330 - 6 +2 23.09.01 65 3 14쪽
5 1330 - 5 +2 23.08.31 64 3 9쪽
4 1330 - 4 +1 23.08.30 66 3 8쪽
3 1330 - 3 +4 23.08.29 89 3 7쪽
2 1330 - 2 +1 23.08.29 96 5 10쪽
1 1330 - 1 +1 23.08.29 117 4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