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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마엘 님의 서재입니다.

히포크라테스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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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8.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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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3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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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330 - 5

DUMMY

1330년.

이 시대의 의사는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그것도 단순한 '특수한 직업을 가진 지식인'의 대우와는 확실히 달랐다.


시대상으로 엮어보자면 당시 프랑스는 두 개의 계층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하나는 명예만 있을 뿐, 세습이 이어지며 가진 권리가 점점 줄어드는 귀족.

또 하나는 오랫동안 가문 대대로 직업을 이어오며 그 기술과 재산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 시민들.


첨예한 대립이 없었을 뿐이지, 귀족과 시민의 대립은 오랫동안 이어져왔고 저울은 점점 더 시민들을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시민들은 자신들을 지배해온 지방영주들의 통치를 벗어나고자, 국왕, 혹은 그에 준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을 찾아가 자치권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법을 제정할 수 있는 권리, 재판을 할 수 있는 권리, 무역을 할 수 있는 권리까지 매입하며 '독립된 도시'로서 영향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흔히들 아는 부르주아라는 단어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단어다.

부르주아. 직역하자면 '성 안에 사는 시민'이라는 의미로, 독립된 도시의 성 안에서 사는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연히 성 안에 살기 위해선 그에 준하는 지식, 혹은 기술이나 재산이 있어야 했다.

보통은 대대로 그 자리에서 상권을 이어받아온 가문이나 기술자들이 그러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이외에도 시민협회의 승인 하에 외부의 사람들이 성 안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사기도 했다.

다만 그럴 때엔 막대한 금액을 도시에 기부해야만 했다.


물론 특별한 예외도 있었다.

예를 들어, 권력은 없어졌지만 그곳을 오랫동안 통치해온 가문의 후손들이 있다.

부르주아는 굳이 그들의 기득권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고, 대우를 해줌으로서 그들을 점점 더 침식시켜나갔다.


두번째 예외는 '동맹으로부터 그 권리를 인정받은 사람'이다.

각각의 도시가 모든 수급과 공급을 쥘 수는 없는 법.

이에 일부 도시들은 다른 도시들과 동맹을 맺어 자신들의 무역권, 영역권 내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각자 배분했다.

이 권리는 종류가 상당했는데 어떤 사람은 무역만 가능한 반면, 어떤 사람은 포교도 가능했다. 더 나아가 '동맹의 치안'을 목적으로 특정 도시에서 '동맹의 법안'에 따른 재판이 가능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와 같은 권리서를 획득한 사람들은 해당 도시의 성 안에서 거주가 가능했다.


세번째 예외는 바로 의사였다.

의사가 예외직업이 된 이유는 조금 특별하다.

우선 그때까지 의사란 직업은 권력층의 소유물이나 다름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누구보다 오래살고 싶다는 희망이다.

그 희망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의사였고, 그런 과정을 통해 의사는 권력층만을 상대하는 특수한 직업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연금술 또한 의술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귀족들의 권리가 점점 줄어들면서, 그들이 가진 재산도 조금씩 줄어들었고 그들은 가장 먼저 '영원한 생명'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직업을 잃은 의사, 혹은 더이상 보수를 받지 못한 의사, 의술사고에 의해 몸을 숨겨야만 하는 의사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만 갔다.


부르주아들은 그런 의사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들에게 성 안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내어줬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권은 물론, 때론 현물을 직접 내어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부르주아들은 어째서 의사들을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포섭하려고 했을까.

단순히 의술이 권력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렇지만은 않다.

아무리 의술이 권력의 소유였다한들, 남 몰래 사람들에게 의술을 펼치는 의인도 있었고, 경험의 축적에 따른 민간대중요법을 더 신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조금 더 속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계산이 깔려져있음을 알게된다.


"그야 당연하지 않겠나. 오랫동안 귀족들 곁에서 보필해왔던 사람들이야. 어쩌면 가문의 집사보다도 더 잘 알테지. 몸에 종기가 몇 개 나있는지도 다 알테니까."


"흠. 그런 이유때문에 동맹에선 의사들의 포섭에 그렇게까지 적극적이란 말이지?"


"그렇지. 너가 귀족이라고 생각해봐.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의사를 더 신뢰하겠어? 아니면 자신에게 고용된 사람을 더 신뢰하겠어?"


"의사도 고용되는 건 매 한가지 아닌가."


"그게 아니지. 막말로 우리 카페 가문(프랑스 국왕 가문)이 플랜태저넷 가문(영국 국왕 가문)에서 일하던 유능한 집사를 고용하겠나? 절대 안하지. 플랜태저넷이라면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잖나. 하지만 의사는 그렇지가 않아. 유능하기만 하면 국적을 가리지않고 받아들인다고."


"하긴 그건 그렇겠네. 실력만 있다면야."


두 남자는 술잔을 잠시 내려놓고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의사는 귀족의 사정이나 비밀을 다 알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 의사를 포섭하기만 하면 그 귀족이 어디가 아픈지, 언제까지 살런지, 숨겨둔 자식은 몇명인지, 장원에 숨겨둔 보물은 없는지를 다 알 수 있단거지."


"호오. 그럴싸한데?"


"그럴싸는 무슨. 내가 협회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야. 뜬 소문이 아니라, 진짜 그런 사정때문에 의사를 포섭하려고 안간힘을 쓰는거래도."


"알았어, 자네 말이 맞다고 하지."


반문하던 남자는 술로 입술만 적신 후,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저 성 밖에 있는 그 의사분은 어디 귀족을 모시던 사람이래?"


"그게 말야. 아무리 말을 해도 전혀 말씀을 안하시네. 자기는 그런 쪽이랑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딱 선을 그으시던데?"


"귀족을 모시던 사람이 아닌거야?"


"그야 모르지."


"의사가 맞긴 한거야?"


"그건 맞아. 무조건 맞아. 내가 이펜한테 속은게 워낙에 많아서 이번에는 안속으려고 했는데, 진짜야. 진짜 의사분이셔."


"네 말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나도 너한테 속은게 한 두번이 아닌데."


"이펜은 너한테 속은게 한 두번이 아니라고 하더라. 나참. 여튼 그 분은 진짜 의사야. 날 딱 보기만 했는데도 어디가 아픈지 단박에 짚어내시더라니까."


"그건 나도 말할 수 있겠다. 항상 왼쪽 발을 저니 왼쪽 발이 아픈걸테고, 눈썹을 찌푸리는 버릇도 두통때문에 나온거겠지."


"아니, 그런 정도가 아냐. 그 분이 어느정도냐면...."


바로 그때였다.

나무 술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누군가하고 봤더니 이 마을의 목수장인 길모어였다.


"어우. 깜짝이야. 길모어씨 아니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니들이 술 맛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잖나."


"네? 이게 무슨 술맛 떨어지는 이야깁니까. 지금 성 안은 새로 왔다는 그 의사때문에 얼마나 난리법석인지 아십니까? 협회에서도 어떻게든 접촉할 기회만 보고 있다고요. 저기 당장 시장만 가봐도 알걸요. 두 명이서 이야기를 나누면 꼭 그 의사 이야기가 오가고 있단걸요."


"망할. 대체 의사따위가 뭐라고."


길모어 레이블레머.

이 마을의 목수길드의 길드장이며, 장인(마에스트로)칭호를 받은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최근들어 나이를 먹으며 힘이 빠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길모어의 명성까지 힘이 빠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길모어가 더이상 작품을 만들지 못한단 이유로, 이제까지 유통되던 길모어의 작품에 로얄티까지 붙어서 매매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성 안에 사는 사람들 중, 의사를 성 안에 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중 한 명이었다.

사실 반대표가 없었더라면 아인은 진즉에 성 안에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격렬히 반대했다.


"아니, 의사를 왜 그렇게까지 싫어하십니까?"


"당연히 싫지. 사람 목숨을 가져다가 자기들 맘대로 죽네 사네 결정하는 것 자체가 싫단 말이다. 의사가 죽는다고 말하면 다 죽나? 웃기시네. 오히려 안죽어야 할 사람이 의사가 죽는다는 선고를 내려서 죽는 경우가 있겠지."


"또 그 이야기십니까. 그건 어쩔 수 없었다니까요. 그러지말고 길모어씨도 한 번 가봐요. 진짜 의사랍디다. 실력이 여간 뛰어난 게 아니라던데."


그 말은 실수였다.

길모어가 가진 아픈 과거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치부한 남자의 말 실수였다.

남자도 자신의 말 실수를 금세 깨닫고 입을 닫았지만, 이미 들어버린 귀까지 닫아버릴 수는 없었다.


"진짜 의사? 훗. 진짜 사기꾼이겠지. 좋아. 가보지. 나도 너한테 한 번은 속아넘어가주지. 대신에 만일 그 녀석이 진짜 의사가 아니면."


쾅!

길모어는 술판을 나무망치로 내리찍으며 소리쳤다.


"그 놈은 나한테 죽는다. 알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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