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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아공간

죽어도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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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工)
작품등록일 :
2013.01.10 00:30
최근연재일 :
2013.03.22 23:40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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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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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글자수 :
39,955

작성
13.01.1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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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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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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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죽어도 군대 - 2

DUMMY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경계초소가 아니었다. 하얗게 밝은 공간, 그리고 따뜻하면서도 이질적인 기운이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나른해지는 이 느낌. 여기는 어디지?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빌딩 로비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정장차림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편안했지만 창백해 보이는 얼굴. 문득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난 이곳에 오기 전 상황을 떠올렸다. 그래, 분명히 난 빌어먹을 녀석한테 총을 맞았어. 생존할 확률이 거의 없는 치명적인 심장에 말이야. 그럼 여긴 저승인가? 아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어딘가를 나가는 것을 보니 저승의 문턱이 더욱더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난 죽음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일단 저승으로 가는 줄을 섰다. 이젠 빠져 나갈 구석도 없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람들은 저승으로 가는 문을 지나치기에 앞서 문 옆에 있는 데스크에서 문지기와 어떤 대화를 하고 있었다. 살아생전에 관한 신상조회라도 하는 것일까? 그럼 난 어떤 사람으로 나올까? 살아본 인생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은 평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하나, 하나 빠지면서 결국 내 차례가 되어버렸다. 앞선 사람들처럼 난 데스크 앞에 서서 양복차림에 중후한 느낌이 풍부한 노신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노신사 뒤쪽에 달려있었던 경광등이 깜빡거리면서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뭔가요?”

난 움찔해서 약간 뒤로 물러섰다. 뭔가 부정적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 살아생전에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설마 지옥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때 노신사는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이 이번년도 777만 7777번째 사망자입니다.”

노신사가 말하자 내 뒤로 저승길을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까지 박수를 쳐주었다. 777만 7777번째라……. 행운의 숫자 7이 7번 연속 되는 숫자이다. 하지만 다 죽은 마당에 이런 축하를 받아도 다 부질 없는 것이 아닐까? 난 머쓱하게 웃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살아생전 이렇게 무언가에 뽑힌 경험이 한 번도 없었는데 죽고 나서 이런 것에도 뽑혀보네요. 다 부질 없는 일이지만…….”

“부질없다니요. 이것보다 더 한 행운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노신사는 데스크 위로 볼펜하나와 종이하나를 올려놨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그가 대답해주었다.

“저희는 매년 777만 7777번째 사망자를 대상으로 부활 이벤트를 해주고 있습니다.”

“부활요?”

난 노신사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지가 않았다. 이미 총에 맞아 심장이 날아가 버린 사람을 다시 살려 놓으면 가히 충격적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 물론 당신이 염려하는 일은 생기기 않을 것입니다. 단지 죽기 전 상황으로 돌려주는 것뿐이거든요.”

“그럼 이미 죽을 상황을 알고 있으니, 그 순간을 피해서 남은 인생을 다시 살아가라, 이런 뜻인가요?”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살았다! 먼저 든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다시 죽기 전 상황으로 돌아가서 최호진을 갈구지 않는다면, 그럼 난 다시 평범하게 군 생활을 하고 전역을 하게 될 것이다. 난 너무 기쁜 나머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죠? 저 정말 살 수 있는 거죠?”

“물론이죠. 자, 이건 부활에 필요한 서류들입니다. 사망한 후,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몇 가지 필요한 정보들이 있거든요.”

“예. 암요. 그래야죠.”

난 즐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어 서류 안에 들어있는 사항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름 이아미. 성별 남자. 생년월일 1988년 4월 27일생. 사망당시 직업은 군인. 사인은 후임이 K-2로 갈겨서 죽어 버렸음.’

난 차분히 문항 하나, 하나씩 채워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문항. 거기서 잠시 멈췄다.

“소망하는 최소 생존 날짜를 적어 주십시오?”

그 문항을 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다 최소 생존 날짜를 적으면 그 날짜만큼 생존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는 말인가? 그럼 백 살 까지라고 쓸까? 아냐, 너무 속 보이는 대답이잖아? 살려 주는 게 어딘데 굳이 백 살까지 살지 않아도 감지덕지이지. 암~ 그렇고말고.

“음……. 그럼 뭐라고 적지?”

난 볼펜 끝을 깨물면서 생각했다. 내가 언제까지 살면 좋을까? 잠깐, 이 문항이 조금 이상한데? 난 이 문항에 함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말이죠. 최소 생존 날짜를 적었는데, 그 날짜가 지나면 바로 죽어버리는 건가요?”

난 노신사에게 질문을 했다. 그가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절대 그럴 일이 없습니다.”라고 답해주었다.

“아~ 그렇군요.”

난 짧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다면 부담 없이 이 문항을 적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 생존 날짜는 전역할 때까지.”

너무 욕심 부리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지만 최소한 살 만큼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대답은 단 하나. 역시 군 생활을 끝낼 때까지는 살아야 인생이 만족스럽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서류 하단에 서명을 하고 노신사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품안에서 돋보기안경을 꺼내어 그것을 쓰고 내가 작성한 서류를 살펴보았다.

“군부대 안에서 죽었네요. 상심이 컸었겠어요.”

“그래도 다시 살려주신다니 다행이죠.”

그리고 노신사는 계속 내가 쓴 서류를 꼼꼼히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미소 지었다.

“최소 생존 날짜를 전역할 때까지라고 적어주셨네요?”

“예……. 혹시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아닌데?”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노신사를 쳐다보며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머쓱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명하게 써주셨어요.”

그리고 그는 내가 적어준 서류를 4등분으로 접어서 자신의 품 안에 집어넣었다.

“서명까지 한 상태이기 때문에 번복할 수는 없습니다.”

“예.”

“오른쪽 문은 저승으로 향하는 문이기 때문에 다른 문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노신사는 왼쪽 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쪽에 있는 문. 이쪽으로 나가셔야 다시 부활하실 수 있습니다.”

“그냥 가면 되나요?”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줬다.

“네. 안에 들어가면 강한 빛에 노출되기 때문에 잠시 눈을 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빛이 사라질 때 눈을 뜨면 다시 부활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아~ 그렇군요.”

난 조심스럽게 왼쪽 문으로 걸어갔다. 이승으로 향하는 게이트.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꿈꿔 볼만 할 텐데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은 전혀 내 발걸음에 동요되지 않았다. 가든지 말든지 네 알아서 해라는 식의 반응들이었다.

천천히 왼쪽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재질의 미닫이문은 저 밖의 세계가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궁금증을 일게 만들었다. 난 그 문을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시선을 돌려 저승길로 향하는 영혼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내 모습은 안중에도 없었다.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영혼들은 간단한 서류작성과 함께 저승으로 향해 들어갔다.

“수고하십시오.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난 아무런 반응도 없는 그들을 향해서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미닫이문을 밀었다. 나무재질이라 얕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단 묵직했다. 문이 점점 벌려지면서 그 틈 속에서 강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자연히 내 눈이 감겼다.

틈이 어느 정도 벌려 지자 그 안으로 내 몸을 맡겼다. 강한 빛은 따뜻한 온기를 담고 있었다. 난 잠시나마 포근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의 희망. 내 손을 떠난 문은 점점 닫혔고, 그렇게 나는 완전히 저승과 격리되어 버렸다.

점점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온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환하게 비추고 있던 빛까지도…….

이제 부활이 완료된 것인가? 난 천천히 눈을 떴다.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연병장.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수많은 남자들. 그들은 하나같이 사복을 입고 있었지만 머리를 짧았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였던 것 같다.

“어떻게 된 거지? 여긴 어디야?”

확실하게 우리 부대는 아니다. 그럼 도대체 어느 곳의 어느 연병장이지? 노신사는 분명 죽기 전 상황으로 시간을 되돌린다고 했었다. 그럼 이 곳 역시 내 기억 속에 남아있어야 할 공간이다.

그런데 사복! 사복이 꺼림직 하다!

“설마…….”

문득 이 장소, 상황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게 되었다. 착잡했던 그 순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던 그 순간. 바로 입대 날이었던 것이다! 난 상병인데, 그래도 그 동안 군 생활 1년은 했는데 다시 하란 말이야?

“으아악!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주변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난 비명을 질러댔다.


-멀가중 멀가중 멀중가중! 안전클립 제거, 수류탄 핀 뽑고 투척준비! 투척! 호 안의 수류탄! 호 밖의 수류탄! 위 끈! 아래 끈! 중간 끈! 까스! 까스! 으아악 시팔! 조교고 나발이고 문열어줘! 나 나갈꺼야!

(이 소리는 논산시 연무읍 죽평리에서 어느 군바리가 군 생활을 다시 하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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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죽어도 군대 - 9 +11 13.01.17 4,424 25 9쪽
8 죽어도 군대 - 8 +2 13.01.16 4,544 20 12쪽
7 죽어도 군대 - 7 +1 13.01.15 4,841 23 8쪽
6 죽어도 군대 - 6 +2 13.01.14 4,869 21 8쪽
5 죽어도 군대 - 5 +11 13.01.13 5,578 28 13쪽
4 죽어도 군대 - 4 +1 13.01.12 5,736 23 7쪽
3 죽어도 군대 - 3 +8 13.01.11 6,117 27 8쪽
» 죽어도 군대 - 2 +7 13.01.10 6,816 26 10쪽
1 죽어도 군대 - 1 +12 13.01.10 9,832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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