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군대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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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나와 석훈이는 그 자리에서 경직되어 버렸다. 석훈이는 석훈이대로 나는 나대로 사형선고와 같은 말. 경직되었던 석훈이의 얼굴이 그새 분노로 바뀌어갔다.
“어째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거지?”
석훈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자 바로 내 얼굴을 노려보았다. 이제 선임이고 뭐고 그딴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이아미상병님?”
“몰라! 나, 나도 모르는 일이야!”
이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난 과도하게 고개와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녀석의 표정이 하도 일관적이다.
“소연씨. 왜 그러세요? 제가 뭐라고, 갑자기 이런 말을 하시는 거 에요?”
내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도움이 절실하다. 난 애원하는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번 외박 이후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다시 만나 뵙고 싶었는데 면회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아놔! 그런 말은 하지 말란 말이야! 잠시 석훈이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녀석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었다.
“그래! 고기 집에서 잠깐 화장실 갔다 온 후야! 뭔가 좀 수상하다 했어! 그때지? 그때 이아미상병님이 너한테 작업 건거지?”
“오, 오해야 석훈아! 난 절대 소연씨에게 작업 같은 건 걸지도 않았어. 난 결백하다고!”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시청하는 기분인데?”
내가 한참 후임인 석훈이에게 쩔쩔 매고 있자 옆에서 지켜보던 신우민병장은 팔짱을 끼고 이 장면을 너무나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소연씨! 전 절대 소연씨에게 작업 건 적이 없잖아요!”
“이아미상병님 말이 맞아. 작업 같은 거 안 걸었어.”
내가 애원하자 그녀는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그제야 난 안도의 한 숨이 나왔다.
“그치? 석훈아 나 작업 같은 거 안 걸었다니까.”
“오히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너랑 헤어지려고 그러던 나에게 헤어지지 말라고 그랬던 사람이야. 오직 자신밖에 모르고,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데로 움직이는 속 좁고 유치한 너에 비해 이아미상병님은 남을 위할 줄 아는 가슴 따뜻한 남자야.”
가슴 따뜻하긴 개뿔이! 단지 살고 싶어서 그랬던 것뿐이야.
“저……. 저기 소연씨?”
“나도 이제 지쳤어. 어린애같이 구는 너의 응석 받아주는 것이 지쳤다고.”
“소, 소연아.”
“지금 난 어린애 같은 너보단 기댈 수 있는 어른 같은 이아미상병님의 넓은 어깨가 필요하다고.”
점점 최악의 상황에 치닫고 있다. 녀석의 표정은 점차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표정은 점차 확고해져갔다.
“석훈아. 내가 다시 거듭하여 말하자면 이건 절대 내 의사와 상관없는 이야기야. 응? 석훈아! 정말이야. 내 말을 믿어줘.”
아 정말 나도 울고 싶다. 울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왜 석훈이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지 전 모르겠어요.”
그녀가 다시 무슨 말을 꺼낼 듯싶어 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더 이상 하지 말라고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아미상병님. 아니 저보다 한 살 더 많으시니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가 지금 저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신지 잘 알고 있지만 기다릴게요. 그깟 1년. 석훈이 전역하는 거 기다리는 것보다 더 짧은 시간이잖아요. 전 충분히 기다릴 수 있어요.”
야, 이 년아! 네 년은 1년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겠지! 난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짐작 할 수도 없단 말이다!
“너……. 그 말 진심이야?”
녀석은 독기 품은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그래. 진심이야.”
“너 지금 한 말 뼛속 깊이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
아 시벌 이 말이 나와 버렸다! 그리고 녀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면회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난 끝까지 따라가 설득을 해야 할 것 같다.
“소연씨 이쯤해서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배웅은 못해드리겠네요.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오빠 이름으로 면회신청 할 게요!”
면회장을 빠져나가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시벌. 지금 내가 하루를 더 살지 이틀을 더 살지 모르는 판에 면회는 무슨!
“석훈아! 난 절대 아니야. 네 여자 친구 건드릴 생각 없으니까. 나한테 기회를 줘라. 응? 내가 다시 돌려놓을게.”
서둘러 석훈이에게 다가가 설득을 시작했다. 하지만 석훈이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이 말만 중얼거렸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이 말은 일석점호 시간이 다가와서도 이어졌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야, 지금 석훈이 뭐라 중얼 거리는 거냐?”
일석점호 보고를 해야 하는 김무연 상병이 묻자 그 옆에 있던 호진이가 석훈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잘 안 들리는데 말입니다.”
“놔둬라. 오늘 저 녀석 여친한테 차였거든.”
옆에서 지켜보던 신우민병장이 자기일 아니라고 낄낄거리면서 말했다. 난 지금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는데…….
일석점호가 끝나고 취침시간이 왔다. 매트리스와 포단, 모포를 깔고 취침소등이 되었다. 난 긴장감에 잠을 설치다가 틈틈이 석훈이 녀석을 쳐다보았다. 석훈이 녀석은 아직까지 날 어찌할 생각은 없었는지 쥐 죽은 듯이 잠이 들고 있었다. 하긴 오늘 저 녀석 근무도 없는데 어찌하진 못하겠지? 하지만 앞으로의 일에 불안감을 느끼며 잠을 설치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답답한 기분이 들어 잠에서 깼지만 어째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가위라도 눌린 것일까? 난 눈을 떠서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광기에 젖은 석훈이의 얼굴. 그 녀석은 미친 듯이 내 목을 조르고 있었고, 그에 대해 난 저항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컥, 커억…….”
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깨워보기 위해 발악을 해보려했지만 점차 내 의식은 흐릿해져갔고, 결국 다시 눈을 뜰 때는 이미 훈련소로 와버렸다.
“으아악! 날 좀 내버려 둬!”
또 다시 내 비명소리가 입소대대 전체를 채워나갔다.
-당신은 갈굼받기 위해 입대한 사람. 당신의 짬 속에서 그 갈굼받고 있지요. 당신은 구타받기 위해 입대한 사람. 당신의 짬 속에서 그 구타 받고 있지요. 입대부터 시작된 조교들의 갈굼은 우리의 자대를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자대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갈굼받기 위해 입대한 사람. 지금도 그 갈굼 받고 있지요. 당신은 구타받기 위해 입대한 사람. 지금도 그 구타 받고 있지요~~~~(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개사버전)
이 소리는 자대로 전입 온 이아미 이병을 위해 선임들이 노래를 불러 주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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