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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포차

개미굴 속 향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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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루
그림/삽화
한보루
작품등록일 :
2024.03.21 19:22
최근연재일 :
2024.04.13 17:51
연재수 :
3 회
조회수 :
45
추천수 :
0
글자수 :
18,896

작성
24.03.21 19:24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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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환생

DUMMY

태어날 때부터 나는 냄새에 민감한 아이였다.

학교 친구를 보면 눈으로 보기 전부터 냄새로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그러한 후각을 타고난 아이.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재능이었지만, 그리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비가 올 때면 반지하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퀴퀴한 곰팡이 썩는 냄새에 밤잠을 설치거나.

세탁되지 않은 옷을 입는 날이면 참을 수 없는 악취에 수업 시간에 옷을 벗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였으니까.


특히, 술에 절어 사는 아버지와 마주할 때면 코앞에서 펼쳐지는 구역질 나는 분자들의 향연에 얼굴이 펴질 날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곱지 않은 시선이 늘어갔다.


“넌 왜 나만 보면 그렇게 얼굴을 찌푸리냐?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말해 봐.”

“냄새가······.”

“뭐? 말 다 했냐, 너?”


같은 반 아이들은 물론,


“덕수야. 너, 친구들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그런 건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야. 알겠어?”

“네······.”


학교 선생님과 운동부 선배들.


“너 우리한테서 땀냄새 난다고 체육관 오기 싫다고 했다며? 개새끼가, 뒤질라고!”

“나는, 그, 그게 아니고······ 악!!”


가족부터 친척들,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어이구~ 우리 손주 왔니~? 이 할미가 안아보자!”

“싫어요! 할머니 냄새나요!”

“그게 할머니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덕수야!! 얼른 죄송하다고 사과드려, 어서!!”


문제아, 민감한 아이, 버릇없는 아이.

그 모두가 날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의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냄새나는 걸 냄새난다고 말했을 뿐인데······.’


나이가 들어 중학생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남들에게 냄새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싫어도 참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기숙사에서도.

군대에서도.


다행히 인터넷에서 ‘향수’라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좀 나았다.

강렬하고 향긋한 냄새가 불쾌감을 줄여주었으니까.

비싸서 자주는 못 썼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서는 재능을 살려 화장품 회사에 취직했다.

조향사로.

회사에서는 꽤 대접을 받았다.

내가 만든 화장품이 여자들한테 인기라나.


‘웃기는 일이지. 평생 냄새 때문에 고생했는데, 커서는 냄새 맡는 직업으로 돈 벌어먹다니 말이야.’


능력을 인정받은 뒤로는 여러 곳에서 컨텍이 들어왔다.


그래서 담배 냄새도 만들고, 치약 냄새도 만들고, 아, 당연히 향수도 만들었다.

그거 아는가? 과자에도 향 첨가제가 들어간다는 거?


덕분에 돈 벌 구석은 꽤 많았다.

과거의 악몽을 지나간 추억쯤으로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역시 상처받은 마음엔 금융 치료가 최고라니까~’


하지만 내가 가진 재능은 결국 내겐 축복보단 저주에 더 가까웠던 모양이다.


쏴아아아, 쿠르릉, 쿵!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덕수 씨~ 비 오는데, 우산 챙겨 가세요~”

“우산 안 가져왔었는데, 감사합니다~ 잘 쓰고 내일 돌려드릴게요!”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봐요~”


맡지 말아야 할 냄새까지 맡아버렸으니까.


킁킁!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비 냄새에 섞여 온 비린내가 내 관심을 끌었다.


‘음? 피 냄새? 근처에 누가 다친 건가?’


난 스스럼 없이 냄새의 근원지로 걸어갔다.


“거기 누구 다치셨습니까~?”


어두운 밤거리에, 폭풍우로 정전까지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골목을 돌았다.


쿠르릉, 쿵!! 지익, 직ㅡ!


간간이 떨어지는 낙뢰의 빛과 냄새에 의지해서.


“혹시 도움 필요하세요~?”


그러다 골목을 돌자마자 나는 무언가가 크게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쿵ㅡ!!! 지직, 지······.


인적 없는 외딴 골목 너머에서.

의식이 없는 여자를 질질 끌고 가는 남자.

우비를 쓰고 있었지만, 체격으로 남자라는 건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어지는 순간, 다시금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다 확실하게.

비와 피 냄새에 섞여 흐릿했지만, 쇠 냄새가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남자의 손에 웬 군용단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보았고, 직감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이런, x발!”


나는 곧바로 등을 돌려 미친 듯이 내달렸지만.


탁, 탁, 탁탁탁탁탁탁타박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ㅡ!!!


남자의 달리기 속도는 내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수준이었고, 평소에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는 나는 순식간에 놈의 손아귀에 옷을 붙잡혔다.


“잠까ㅡ”


그 뒤의 일은 설명하지 않아도 뻔하리라.


푹!! 푹! 푹! 푹푹, 푹푹푹푹푹푹푹!!!


나는 죽었다.

27살의 여름에.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웬 아이의 몸에서 환생했다.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이 가진 채로.


***


갓난아이의 몸으로 환생한 나는 부모로부터 엘라이오솜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애칭은 ‘엘’


처음 눈을 떴을 때는 그러한 사실도 전혀 몰랐지만, 몇 주 지내는 동안 그게 내 이름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확신한 순간 안도했다.


‘그나마 정상적인 이름이네. 전생에선 덕수였는데. 여기선 좀 멋진 이름으로 살 수 있겠어.’


말을 익히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반년이 채 지나기 전에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이후로 나는 이 세계에 관해, 많은 것들을 보고 익혔다.


이곳이 내가 살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것.

심지어 기사와 마법, 왕과 귀족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라는 것을.

그리고 이 세계에서 난, 기사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닥 기쁘진 않았다.


“지옥같았지, 시발.”


더럽게 가난한 가문이었으니까.

심지어 이놈의 몸은 전생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민감한 후각을 지니고 있었다.


“전생에선 벽에 핀 곰팡이 때문에 고생하더니, 환생해서는 치즈에 핀 곰팡이 때문에 잠을 설칠지 누가 상상이나 했었겠냐고~ 개 같은 거. 어휴!”


덕분에 나는 전생에서 어릴 적에 겪었던 고통을 그대로 답습했다.

열악한 환경에 더러운 물건들, 옷, 농사일로 땀에 절어있는 사람들.

고통뿐인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6살이 되던 해에 그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냈다.


***


그건 내가 아버지, 크라우트에게서 기사 수행을 받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내가 지금부터 너에게 알려줄 것은 단전에 코어를 만드는 법이다.”

“코어요?”

“그래.”

“그게 뭔데요?”

“코어란, 배 아래에 마나가 살 곳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할 수 있지. 그래야 기사다운 몸을 만들 수 있고, 또 검술도 수련할 수 있다.”

“마나는 뭔데요?”

“잘 듣거라, 엘. 마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신의 권능과도 같다. 몸에 마나가 살 곳을 만들어주는 것은 신의 권능을 그 몸에 들이는 것과도 같지.”

“기적······.”

“그렇다, 엘. 니가 너의 몸 안에 코어만 만들 수 있다면, 강대한 힘과 육체, 기적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거다. 환상적인 일이지?”

“그럼 그 코어라는 걸 만들면 마법도 쓸 수 있게 되나요?”

“음······. 마법을 쓰는 마법사는 우리와 좀 다르단다. 그들은 심장에 써클이라는 걸 만들지. 우리가 부리려는 기적은 몸을 다루는 기적이다.”

“몸을 다루는 기적······.”


마나와 기적. 코어와 써클의 존재는 내게 있어서 한 줄기의 구원과도 같았다.


‘마나만 다룰 수 있으면 향수도 만들 수 있으려나?’


이 향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 말이다.


“배워보겠느냐?”

“네! 배워볼래요!”

“그럼 마나를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보자꾸나. 너라면 아주 쉽게 익힐 수 있을 거다, 엘. 천재인 너라면······.”


그가 내게 알려주려던 것은 몸을 강하게 만드는 것과 검술이었겠지만, 마법을 배울 수 없었던 내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꼼수를 부려서라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코어를 만들면 몸을 다룰 수 있게 된다고 했지? 그럼······ 몸을 써서 냄새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몸에서 나는 체취를 어떻게든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람도 몸에서 냄새를 만들어내니까.

만약 몸에서 나는 체취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외부의 냄새를 중화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어떻게?’


물론, 그게 생각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에게서 코어와 마나를 다루는 법에 대해 수련하던 나는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니, 배웠다.

그에게서.


“기본적으로 마나는 흐르는 것이다. 마법사의 마나는 핏줄을 타고 흐르고, 기사의 마나는 신경을 통해 흐르지. 신경은 근육을 움직이고, 근육은 몸을 움직이니, 곧 너는 강력한 신체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신경을 타고 흐른다고요?”

“그래, 신경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냐?”

“그건 몸을 움직이는······. 관······ 아니, 길이죠? 온몸에 뻗어 있는.”

“하하! 정답이다, 엘!! 역시 우리 장남이야! 넌 천재다, 천재!! 이제 겨우 여섯 살인데, 그런 것까지 머리로 이해하고 있을 줄이야! 넌 가문을 빛낼 기사가 될 수 있어!!”


이 세계에서 신경이라는 단어를 듣게 될 줄은 몰랐기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덕분에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마나라는 게 실제로 몸에 있는 기관들을 타고 흐르는 실체가 있는 무언가라면, 그럼 다른 길로도 통할 수 있는 건가?’


인간의 몸에는 혈관과 신경 말고도 다른 길이 더 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은 명확했다.


‘내분비계라든가? 그거라면 호르몬도 조절할 수 있고, 땀샘도 통제할 수 있잖아!’


강한 기사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좋아하는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시도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길을.

구원받을 길을.


‘좋아. 한 번 해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방법밖에 없다면 해보기라도 해야지!’


그리고 이윽고 그날이 찾아왔다.


“이제부터 내가 너의 몸에 마나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엘. 그것들을 잘 인도해서 신경을 타고 흐르게 하거라. 그리고 최종적으로 도착할 곳은 바로 여기, 단전이다.”

“네! 알겠습니다!”


크라우트가 아직 7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기대감이 어려있었다.

그 또한 내게서 가문의 구원을 바라는 듯했다.

3살이 채 되기 전부터 말을 할 줄 알았던 아이.

4살에는 책을 읽고, 5살에는 이미 자신과의 대화에서 부족함이 없었던 아이.

6살에 마나를 깨우친 아이.

그런 천재에게서, 그는 가문의 미래를 보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문제아였는데, 여기선 생판 다르네. 좀 미안한걸······. 내가 기사가 되는 데에 흥미 없다는 걸 알면 실망하겠어.’


하지만 나는 남이 나에게 실망하는 것에 익숙했고, 끔찍한 냄새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간다, 엘. 넌 분명 좋은 기사가 될 수 있을 거다.”


나는 한껏 기대 어린 표정으로 크라우트가 내게 쏟아붓는 마나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했다.

그가 그걸 눈치채는 데는 한순간도 걸리지 않았다.


“뭐 하는 거냐, 엘? 거기가 아니다! 거긴 길이 아니야!!”


하지만 한 번 시작된 단전 만들기를 도중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만약 여기서 크라우트가 마나 주입을 중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못해도 페인.

잘못하면 죽음이다.


‘찾아라, 분명 길이 있어!’


시작한 이상 무조건 길을 찾아내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

나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길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마나를 움직여 몸 속을 뒤졌다.


“엘! 엘!! 지금 뭘 하는 거냐, 엘!!!”


그렇게 얼마나 몸 속을 뒤적거렸을까.

나는 마나가 몸속에서 날뛰며 목숨을 끊어놓기 직전, 하나의 길을 발견했다.

혈관과는 다른.

신경과도 다른.

전혀 다른 길을.


‘찾았다! 여기야!’


나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찾아낸 길로 마나를 인도했고, 몸을 일주했다.


“엘!!! 멈추거라, 엘!!!”


이윽고, 내가 새롭게 개척한 길로 몸을 일주한 마나는 단전으로 돌아와 폭발했다.


화아아아악ㅡ!! 파앙!!


직후, 아랫배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코어였다.

희열감에 저절로 몸이 달아올랐다.


“하, 하하······. 됐다! 성공했어!!”


성공으로 기뻐하는 내 모습을 크라우트는 망연자실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이 지옥같은 냄새에서 해방이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엘······.”


***


실망감으로 얼룩져 있던 그때의 크라우트가 지금 뇌리에 떠오른 건 아마 우연이 아니리라.

나는 벌써 몇 년이나 더 전에 보았던 그 표정을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의 크라우트가 지금의 나같은 기분이었겠지?”


그야, 그때 그의 기분이 지금에 와서야 처절하게 절감되었기 때문이겠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희망이 절망으로 뒤집히는 감정 말이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 세계에는 악취보다도 더 끔찍한 것들이 많다는 걸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구구구구구구!!


나는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굉음을 느끼며, 마을을 바라보았다. 산중 턱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정경은 한 눈에도 비참했다.


활활활활ㅡ! 쿵! 쿵! 끼기에에에에ㅡ!!


불타는 밀밭을 뛰어다니는 거대한 곤충들의 무리가 마을을 송두리째 박살 내고 있었으니까.


“그냥 기사나 될 걸, 빌어먹을.”


그리고 나는 여전히 냄새에 시달리고 있었다.


끼기, 기긱······.


지독하리만치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자이언트 앤츠의 개미굴 앞에서.


기기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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