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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님의 서재입니다.

02 서발과 도깨비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ccamagui
작품등록일 :
2022.10.30 23:32
최근연재일 :
2023.03.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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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6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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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0214 꽃재비 림태수

DUMMY

0214 꽃재비 림태수


'쌍...'


수 십번의 댓거리와 땅접기로 그는 많이 지쳐있었다. 잎이 우거진 떡갈나무의 중간 높이 쯤의 굵은 가지 위에 앉아 나무 등걸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경계하는 그의 눈빛은 지쳐있는 육체와는 달리 날카롭게 빛난다. 아직은 쫓아오지 못했는 지 느껴지는 낌새가 없다.


"후우... 그 간나들은 뭐야?..."


포승을 벗어나려 비틀었던 오른 팔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시간이 있으며 나아질 것이지만 왼손으로 어깨에서 부터 주물러 본다. 별 효과가 없다.


'잠도 없나? 아니지... 숫자가 많으니 돌아가면서 쉬는 걸지도 모르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자신을 마치 짐승몰이 하듯이 몰아 부친다.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어찌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숫자로 몰아붙이는 것에는 장사가 없었다. 지난 이틀간 쉴 틈없이 몰아붙이는 그들 때문에 잠은 고사하고 이렇게 쉴 수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자기들 물건을 내가 갖고 있다고? 이것의 원래 주인들인가?'


다 헤어져 너덜거리는 넝마나 다름없는 겉옷 안에 방금 세탁한 듯한 하얀 옷이 언듯 보인다.

아버지의 정강이 뼈와 함께 부모님이 남겨준 선물, 어린 그의 이불이었던 덮개. 어머니가 도란도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이 처음 이 계곡에 정착해서 텃밭을 일구다가 묻혀있는 옷을 발견했다고 했다. 땅 속에 뭍혀 있다가 나온 것 답지않게 깨끗한 옷이 신기했다고 했다.

부모님이 입기에는 너무 작아 보여, 어린 그의 이불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불로 사용하면서 싸고 있는 것을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주는 것을 알게 되어 여름에는 상하기 쉬운 음식을 싸 두는 것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림태수, 양강도 꽃재비.


그가 지금 있는 이 계곡을 떠났던 것은 두 해 전이었다.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과 섞여 살 수 없었던 그의 부모가 그와 함께 이 깊은 계곡으로 숨어들어, 수 년을 살았던 곳이다. 아버지는 항상 사람들을 경계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인가로 내려갈 때는 혼자 내려갔었다. 인가로 내려가려면, 잡목과 가시넝쿨이 우거진 숲을 헤치며 나아가야했다. 그가 처음으로 계곡을 떠났을 때, 왜 그 동안 아버지가 마을을 갔다 오는 데 사흘이나 걸렸는 지 알 수 있었다. 길이 없는 숲 길을 지나 인가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는 데만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


"머리 검은 짐승은 믿을 것이 못 된다이."


아버지의 뛰어난 손재주 덕분에 커다란 바위를 뒤에 두고 지은 너와집은 세명 뿐인 가족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불을 피우면 사람들에게 위치가 알려질까봐 불을 놓지 않고 순수하게 어머니의 노동력으로 일궈낸 작은 텃밭에서 감자나 고구마 등을 키워 식량을 충당했다. 연기 없이 불을 피우기 위해 나무는 미리미리 준비하여 충분히 마르면 사용했다.


"우리처럼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섞일수록 손해야. 그러니 사람이 보이면 피하고 숨어, 알았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그렇게 가르쳤고, 어린 태수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계곡이 세상의 전부였다. 아버지가 계곡 밖으로 나가 사나흘이 지난 후 돌아오실 때는 옷이며, 신발이며, 어떻게 만들었는 지도 모르는 맛있는 먹거리를 들고 왔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계곡의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태수가 열세살이 되던 해 겨울이었다.

그날은 어머니를 도와 텃밭에 묻어두었던 고구마를 캐고 나서, 사흘 전에 밖으로 나가신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이었으므로, 오시면 뜨끈한 고깃국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이맘 때쯤 나타나는 오리를 잡으러 가족들의 식수를 제공하는 물가로 갔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새총과 물가의 반짝이는 조약돌이면 충분했다. 그날따라 운이 좋았는 지 살이 올라 통통한 오리를 두 마리나 잡게되어 신이 났었다.

그가 너와집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은 누구에게 맞았는 지 온통 상처투성이로 누워 있는 아버지와 옆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였다. 항상 두 손 가득 들고 왔던 옷가지도 먹거리도 없었다. 저렇게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몸으로 예까지 온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버지의 부러지고 부서진 입으로는 어머니가 정성드려 만든 고깃국도 삼키지 못했고, 밤새 열이 올라 끙끙 앓았다.

그리고 다음 날 밤, 잠들어 있는 그를 깨운 아버지는 간호하다 잠든 어머니를 깨우려는 그를 말렸다.


"태...태수야, 아바지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좋았겠지만 세상 일이란... 태수야. 어린 네게 어머니를 맡기고 가게 돼서 정말 미안하다."

"아... 아바지..."


그는 아버지가 마지막 남은 삶은 태워 자신에게 유언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에 눈물이 고여 볼을 따라 흐르지만 울 수는 없었다. 어린 태수는 막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들을 수가 없을 테니까.


"태수야. 어머니를 제외한 누구도 믿지 말아. 이 세상의 사람들은 우리를 받아주지 않는다. 이제 나 대신 인가로 나가 물건을 구해 올지도 모르겠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으며, 미리미리 너를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야 했는데..."

"..."

"부디, 어머니와 행복하게 지내다 와라. 네 어머니를 부탁한다. 아버지는 먼저 가야할 것 같다."

"..."


부어올라 앞이 보이는 지도 의심스러운 눈 두덩이를 타고 아버지의 피가 섞인 눈물이 보였다. 왜 그래야 하는 지 몰랐지만, 그의 손이 아버지의 부러져 퉁퉁 부어오른 손을 잡았다. 아플텐데 자신의 손을 맞잡고 힘을 주는 아버지의 손이 어린 태수는 가슴이 아팠다.


"... 걱정마..."


열 세살의 태수가 메여오는 목을 쥐어짜며 겨우 대답했을 때, 아버지의 손에 힘이 빠져나갔다.


"크윽... 큭큭... 크으윽"


태수는 어머니가 깰 가봐 숨죽여 울었다. 입술을 깨문다. 아직 따뜻한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누가 그랬는지 알아내서 똑같이 해 줄거야...'


어린 태수는 그렇게 다짐했다.

한 참을 울어 그렇게 속이 시원해 질 때쯤 산속의 새벽이 오고 있었다.



초겨울의 새벽은 싸늘했다. 닷년전이었지만 자신을 찌르고 달아 난 꽃재비를 그는 기억한다. 팔기 전에 그 녀석의 가시를 어떻게 해보려고 자신의 방에 들였었다. 어차피 중국에 팔려가면 엉망이 될 일이니 상관없었다. 그 녀석에게는 아홉살 난 아들이 있었고 아들을 지키려는 그는 말을 잘 듣는 꽃재비였다. 남자는 지킬 것이 있으면 약해진다. 그래서 안심하고 그 녀석의 가시를 취한 것이 화근이었는 지 모른다.

그는 그 꽃재비의 습격으로 정신을 잃고 깨어났을 때, 자신이 한 쪽 눈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찔린 복부와 얼굴의 고통을 잊을 정도로 분노했고 부하들을 풀어 그 가시버시와 아이를 육개월이 넘게 찾았었다. 백두산으로 들어간 것은 확실했는 데 끝내 찾지 못했었다.

거의 오년이 다 되어가니 국경을 넘었는 지 찾지 못할 거라 반쯤 포기할 때였다. 장마당에서 물건을 훔치고 있는 녀석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반쯤 죽여 놓고, 그 녀석의 가시와 지금쯤 돈 값을 할 정도로 자라 있을 아들을 마져 잡아 팔 생각이었다. 부하들의 매로 반쯤 죽어 있던 녀석이 도망쳤고, 한편으로 잘 되었다는 생각에 그의 흔적을 쫓았다. 투덜대는 부하들을 반반한 가시와 값 나갈 만한 아들이 있다는 것으로 달래며 흔적을 더듬은 지 닷새째가 되가는 새벽이었다.

잠깐 쉬며 숨을 돌릴 요량으르로 주변의 수풀을 정리하여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있었다.


"캬아아아!... 흑흑흑..."


이런 깊은 산 중에서 들을 수 없는 사람의 울음소리. 한쪽 눈을 잃고 나서 기분 탓인지 점점 예민해지는 그의 귀에 겨우 들리는 소리였다.


"그만 포기하고 내려갑시다. 이러다 산사람이 죽갔소. 그 간나이 제 가시에게 가지도 못하고 어디서 뒈졌을 지도 모르잖소."


한 녀석이 괜히 주변의 잡목을 중국식 대도를 휘둘러 툭툭 자르며 투덜거린다.


"쉿... 가만 있어보라."

"형님. 뭐가 들리오?"

"쯥.. 사장님..."

"아...아... 사장님, 뭐가 들리오?"


고개를 들어 집중하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미소로 벌어진 입 안으로 금니 하나가 반짝인다.


"찾았다. 이쪽이다. 가자..."


그가 먼저 일어나 잡목을 쳐내며 나아가자 쉬고 있던 부하들이 각자의 대도를 들고 그를 따른다. 우거진 잡목과 가시넝쿨을 헤치고 얼마를 갔을까. 그들 앞에 잘 관리된 텃밭과 등을 커다란 바위에 대고 있는 너와집이 나타났다.


"어쭈, 손재주가 좋다더니 잘 꾸며놓고 살고 있었네. 크크크"

"이야..."


그를 따라온 부하들도 우거진 숲으로 둘러쌓인채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작게 감탄한다.

너와집 문앞에는 낡은 옷이지만 정갈하게 입고 머리를 곱게 여민 여인이 나무로 만든 의자에 나와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수풀을 헤치는 소리는 조용한 산골이란 점을 고려할 때 소란스러웠을 것이기에 그들이 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은 버시를 잃은 슬픔과 원망, 분노가 섞여 붉어져 있었다.


"크크크, 네 버시는 죽었나부지? 그 놈도 참... 쯔쯔쯧, 가만히 있었으면 죽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이야. 나도 손해야. 잘 치료하면 몇 푼은 받을 수 있었을 것인데... 괜히 객기를 부려서..."

"..."


그의 부하 하나가 제념한 듯 말이 없는 여인을 지나쳐 너와집 안으로 들어간다.


"퉷!, 사장님 그 놈만 죽어 있고 아무도 없는데요."


쪼그려 앉아 바닥에 무엇인가를 끄적이던 그는 부하의 말을 듣고 여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는?"

"..."

"아는 어디다 숨겼어?"

"..."


가시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기만 한다. 짜증이 난 그가 일어나 머릿채를 잡아 흔들어도 별 반응없이 그를 쳐다보기만 한다.


"아를 찾아! 얼마 못 갔을 것이다."


그의 부하 서넛이 사방으로 흩어져 수풀을 헤쳐 들어갔지만 금새 돌어온다.


"사장님, 도저히 숲이 넓고 우거져서 도리가 없수다."

"흠..."


짝!


가시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핏물이 베어 나온다.


짝!짝!짝!


화가 난 그의 싸대기로 얼굴이 금새 엉망이 되었지만 가시의 앙다문 입은 열리지 않는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그를 노려 볼 뿐이었다.


"이 쌍간나..."


제 풀에 식식거리던 그가 부하들을 돌아본다.


"여기 다 태워! 지가 배고프면 내려오겠지... 그때, 잡으면 된다."


그들은 너와집에 불을 놓고, 텃밭에 묻어 두었던 감자며, 고구마를 자루에 담아 챙기고는 그녀를 끌고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그들이 놓은 불로 너와집이 완전히 타서 재가 될 때까지, 그들은 텃밭에서 가져온 감자와 고구마를 불에 구워 먹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심때가 될 때까지 주변을 뒤지던 그들은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양 발목을 묶었다.

태수는 너와집 뒤편의 바위 위쪽에 만들어 놓은 은신처에 숨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혹시 몰라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죽더라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 태수는 무슨 짓을 해도 항상 자기편이었던 어머니의 처음 보는 서슬 퍼런 명령을 어길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어린 태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덩치가 있는 여섯의 장정을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손에는 자신의 키 만큼이나 커 보이는 큰 칼을 들려 있었다. 어머니가 무사하기만을 빌며 수풀 사이로 어뜻언뜻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독기 어린 눈에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똑같이 해 줄거야... 똑같이 해 줄거야... 똑같이 해 줄거야... 똑같이 해 줄거야... 똑같이 해 줄거야...'


그들이 어머니를 끌고 자신들이 온 흔적을 따라 산을 내려갈 때 태수는 그들을 먼 발치로 쫓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구해야 했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가로 내려 온 이들이 산 가장자리의 담장으로 둘러 쌓인 이층 양옥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 들어가기가 겁이 났던 어린 태수는 양옥집이 잘 보이는 중턱의 수풀에 몸을 숨겼다. 이미 해가 넘어간 초겨울의 저녁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어린 태수에게 견디기 힘든 추위를 가져왔다. 태수는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내일 다시 와서 지켜볼 것이다.

완전히 타버린 너와집 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않았다. 불에 완전히 타버려 뼈가 들어난 아버지의 시신이 보였다. 다시 눈물이 솟구친다. 가만히 아버지의 시신에 다가간다.


"아바지... 어마이는 내가 꼭 구할거야. 적정하지 말고 잘자."


어린 태수는 아버지의 시신을 어루만지다. 정강이 뼈를 집어들어 끌어안고 울었다. 밤으로 향해 가는 계곡은 점점 추워졌고, 태수는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은신처에서 밤을 지새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굶은 태수는 허기를 달래 줄 무엇이라도 남아있을까 싶어 잿더미를 뒤적이다 어릴 때 덮고 잤던 하얀 이불을 발견했다. 그 불길 속에서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이불은 봉긋하게 무엇인가 감싸고 있어 풀어보았다. 삶은 감자 대 여섯 알이 들어 있었다. 허겁지겁 감자를 집어 씹어삼키던 태수는 다시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잡혀갔는데 배가 고프다고 감자를 씹고 있는 자신이 서럽다.


"똑같이 해 줄거야! 으아앙! 악!악! 똑같이 해 줄거야! 으헉!헉!"


밤이 깊어가는 조용한 계곡에 어린 태수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응?"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에 눈을 뜬 태수는 달라진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온 몸을 타고 흐르는 힘이 느껴졌다. 사방팔방에 온갖 작은 동물들의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추위를 막아줄 거란 생각에 덮고 잤던 이불,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너무 작아 덮고 있는 동안 발이 자꾸 바깥으로 나가는 바람에 잠결에 몸을 끼워 입었나 보다. 막상 입고보니 작지않고 몸에 딱 맞았다.

정말 희안한 옷이었다. 분명 자는 동안 발이 삐져나와 그 추위로 뒤척일 정도로 작았었는데 몸에 딱 맞는 다는 것. 분명, 온 몸을 휘감고 있는 힘도 이 옷 때문일 것이다. 살며시 나뭇잎을 걷어내자 저 아래 보이는 너와집의 잔재들이 보였다. 뛰어내릴 수 있을 것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품고 잤던 아버지의 정강이 뼈를 품안에 갈무리했다.


"엇!"


품안에 넣은 정강이 뼈의 부피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손을 다시 집어넣어 잡히는 정강이 뼈를 꺼냈다가 다시 넣어본다. 이 옷은 정말 물건이었구나. 어린 태수의 눈이 호기심을 반짝거린다.


"신기해..."


자신감을 믿고 뛰었다.

목표한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십수미터는 되는 높이다. 열세살의 어린 태수가 뛰어내릴 수 있는, 아니 사람이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자신이 뛰어내린 바위의 끝, 은신처를 돌아보았다. 몸안에서 솟구치는 힘은 무엇이든 부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어머니를 잡아간 장정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래, 산신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거야. 똑같이 해 줄꺼야...'


잿더미 속에서 어머니가 덮고 자던 넝마이불 찾아냈다. 신기한 옷 덕분에 춥지는 않았지만 하얀 옷이 너무 튀어보였기에 반쯤 타버린 어머니의 넝마이불을 그 위에 걸쳤다. 태수는 어제 보았던 양옥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잡목이든 가시넝쿨이든 무시하고 내달렸다. 그러다가 몸을 타고 흐르는 힘을 내어 앞에 걸리는 것을 미리 걷어내며 달렸다. 한나절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십여분 만에 도착했다.

철로된 대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밀었다.


와장장창!


여닫이문이었나 보다, 그대로 부서지며 마루가 훤히 드러난다.


삐이익!

"아침 댓바람부터 뭔 일이..."


맞은 편의 방문이 열리며 내복차림의 한 사내가 고개를 내밀다가 무너진 현관문과 환자복같이 온통 하얀색 옷을 입은 어린 소년을 보고 눈이 커진다.


"뭐이가? 너 뉘기니?"

"내 어마이 어딨니?"

"뭐?"


소년의 물음. 사내는 잠시 무슨 일인지 갈피를 못 잡는다. 차림새를 보아 꽃재비는 아닌 듯했다.


"문을 다 부숴놓고... 어디서 온 아새끼네?"

"내 어마이 어딨니?"


짜증을 내며 일어서는 사내를 무시한 태수는 헤어진 신발을 신은 채로 천천히 마루를 밟고 다가간다.


"어... 어... 이 종 간나..."


사내가 커다란 손을 들어 태수를 때리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태수가 사내의 가슴을 치는 것이 먼저였다.


우당당탕! 쿵!

"커억!"


방문을 부수며 날아간 사내가 방안 맞은편 벽에 부딪치며 무너진다. 울컥하고 피를 솓아내는 것이 폐를 다친 듯하다.


"으악! 야! 뭐이가?"


방의 안쪽 문 뒤에서 다른 사내가 내복차림으로 놀라 소리치며 나오다 들어오는 태수를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발길질을 한다. 천천히 걸어 들어가던 태수는 상채를 흔드는 것으로 이를 피하고, 보지도 않은 채 벌래를 쫓듯 오른손을 흔들어 힘을 뿌렸다.


우웅.

퍼버버버벅!


뿌려진 힘에 직격당한 사내는 상반신이 터져나가며 엄청난 핏물을 뿌렸다. 그 핏물을 온전히 덮어 쓴 태수는 닦을 생각도 하지않는다. 아버지에게 한 것과 똑같이 해줘야 하는 데, 아무래도 힘부림은 아직 익숙치 않아 몸부림에 비해 조절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에서 두 명의 사내가 더 튀어나온다. 두 사내는 부서진 현관문과 방문을 통해 보이는 피칠갑을 한 태수를 보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두 사내는 빠르게 마루 한 켠에 세워 두었던 중국식 대도를 집어들고 태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하합!"

"이런 썅!"

"잠깐!"


이 층과 연결된 계단을 내려오던 외눈박이가 그들을 멈춰세웠다. 그들이 멈추지 않았다면 다리를 부러뜨렸을 것이다. 태수는 어차피 다 죽이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뒤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낌새를 통해 보지 않아도 느낄수 있었다.


"내 어마이 어딨는 지 아니?"

"으으으...쿨럭!"


피칠갑을 한채 감정없는 눈으로 처음 그를 때리려 했던 사내 앞에 선 태수가 다시 물었다. 사내는 이미 눈이 풀려 한 웅큼의 피를 토해냈다. 천천히 쪼그려앉은 태수는 그 사내의 손을 잡더니 가만히 힘을 준다.


뚜둑! 드드득!

"으아아아아아악!"

"아니? 모르니?"

"크흑!"


사내의 손이 섬뜻한 소리를 내며 곤죽이 되어 갔다. 그 고통에 사내가 비명을 지르다가 끝내 정신을 놓았다. 사내의 손을 던지듯 내려놓은 태수가 일어섰다.


"..."

"꿀꺽!"


그 사이 방문 밖까지 내려온 외눈박이 사내가 이마를 찡그린다. 대도를 쥐고 양 옆에 서 있던 두 사내가 긴장으로 마른 침을 삼킨다. 자기 가슴깨 정도 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로 물들었지만 앳돼 보이는 얼굴. 무심한 눈빛. 하지만 엄청난 파괴력,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셋이서 덤벼도 저 아이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외눈박이 사내는 생각했다.

두 명의 장정을 무력화시키는 데 채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외눈박이 사내의 가늠은 어서 달아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 외눈박이 눈에 칼 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대도를 들고있는 그의 부하들도 겁을 먹고 있었다.

장마당을 돌며 꽃재비들을 잡아다가 팔아먹고 살아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다. 왠만한 일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단을 갖고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이가 어른 둘을 가볍게 제압한 너무나도 기괴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오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


'...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온거이가...'

"... 아... 아, 너... 넌... 뉘기니?"

"..."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태수는 천천히 눈을 돌려 그를 본다.


"내 어마이 어딨니?"

"그걸 어째 우리에게 묻니?"

"어제 산에서 데리고 왔잖아."

"산?..."


"사장님... 크큼... 그... 가시 아들...?"

"...?!"


옆에 서있던 부하 하나가 긴장으로 잠긴 목을 깨우고는 그를 돌아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 사이 방안을 힐끔거리던 다른 사내의 대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방문을 통해 보이는 방 안은 핏물에 절여진 이불과 죽은 듯 움직임이 없는 사내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다. 그 사내의 곤죽이된 왼손에서 꿀럭꿀럭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사람이었던 것이 벽을 향해 던져진 토마토처럼 벽을 따라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후우... 후우... 이이이잇!"


츄와와와와왁!

퍽!


핏발이 선 눈으로 방 안을 힐끔거리던 사내의 대도가 시퍼런 날빛을 날리며 태수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외눈박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태수의 몸이 미끄러지듯 대도를 휘두른 사내의 안 쪽으로 파고드는 것 같더니 대도를 쥔 사내의 아래팔이 꺽이며 피를 품었다.


챙그렁!


"크아아아악!"


뒤늦은 비명과 함께 칼을 휘둘은 사내가 꺽인 팔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갔다. 태수는 여전히 외눈박이를 보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워워워..."


찰라였다. 사내를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건 재앙이다. 상황을 파악한 외눈박이가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태수를 진정시키려 한다. 현관문이 부서져 겨울 아침 찬바람이 들어오는 데도 외눈박이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어제 잡아온 가시는 다른 꽃재비들과 함께 새벽에 연변으로 보냈다. 거기서 적당한 주인을 만나면 팔리게 될 일이었다.


"... 네 어마이는 오늘 아침에 연변으로 갔는데..."

"연변? 거기가 어디니? 여기서 머니? 어마이가 왜 거기로 갔니?"

"돈 벌러... 어마이가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내가 직장을 알아봐 줬거든..."

"그럴리가 없는데... 내가 여기 있는데..."


태수가 고개를 숙이며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약속한 것은 두 가지다. 그 중에 아버지가 말한 것이 우선이다. 그 후에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을 하면 된다.

외눈박이는 머리를 굴린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장정 셋을 장난감 부수듯이 한 이 괴물과 댓거리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 셋이나 상했다.



연변 조선족 자치구 연길시 외곽. 양복입은 외눈박이와 넝마를 덮어쓴 아이를 태운 차가 상가건물 앞에 멈췄다. 아이는 많은 큰 건물이 길을 따라 서 있는 모습이 신기한 듯 두리번거린다. 운전석에서 내린 외눈박이가 문을 열어 아이가 내리기를 기다린다.


"내... 내리라... 다 왔다."


외눈박이는 이 아이가 무섭다. 양강도를 떠나기 전에 이미 죽어버린 한 명과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부하에게 한 짓이 외눈박이를 질리게 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팔, 다리를 자근자근 으깻다. 그러다 정신을 잃으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으깼다. 입을 천으로 막아 큰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하고는 그렇게 서 너시간을 그렇게 부하들이 고깃덩이가 되어가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마지막에는 얼굴뼈를 부쉈다.

왠만한 일에 내성이 생긴 외눈박이지만 토기가 올라와 마당 한구석에서 욱욱거리고 있는 사이 아이는 하나의 시체와 세 개의 고깃덩이가 있는 집에 불을 놓았다. 불을 놓기 전에 꺼내온 집에 있던 삶은 감자를 씹으며 불구경을 하던 아이는 피에 절은 반쯤 타버린 넝마이불과 함께 입고 있는 모든 옷을 벗더니 밖에 입고 있던 환자복을 들어 핏물을 가볍게 털어내고 먼저 입는다. 그 위에 벗어 놓은 헐어빠진 옷을 걸치고, 끝으로 반쯤 타버린 넝마이불을 덮어썼다.

아이가 다가와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외눈박이는 이제 아이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굴려 빠져나갈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공포에 젖은 외눈박이는 조금이라도 더 살기위해 아이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여기네?"

"... 으응... 안에 네 어마이가 있을 거이다... 저기... 나... 나는 살려주라..."

"..."


국경을 막고 있던 군인들을 고깃덩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보고나서 국경을 넘어 네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를 대면 수십번을 사정했지만 가타부타 대답이 없다.


"들어가자."


외눈박이를 앞세워 들어간 건물에도 어머니는 없었다. 오늘 아침 양강도에서 꽃재비들을 트럭에 태워 연길로 온 사내가 말하길 오다가 자살했다고 한다. 걸리적거려 오는 길에 버리고 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태수는 폭주했다. 아버지와의 유일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죽기 직전까지 혼신을 다해 자신에게 부탁한 약속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이 어린 태수를 폭주하게 만들었다.


그 날 백두산 주변의 국경을 넘나들며 인신매매를 일삼던 조직 하나가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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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서발과 도깨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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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218 백두패 한어른 23.03.07 23 0 26쪽
17 0217 어제의 돌마루 23.02.26 14 0 26쪽
16 0216 돈찌와 유끼메 23.02.20 15 0 25쪽
15 0215 백두패 매화무리 23.02.13 22 0 26쪽
» 0214 꽃재비 림태수 23.02.06 19 0 26쪽
13 0213 도깨비 내꼬마다이 23.01.28 22 0 24쪽
12 0212 태산패 제갈태룡 23.01.24 20 0 26쪽
11 0211 담비요괴 여지루 23.01.10 21 0 24쪽
10 0210 태산패 이원장로 23.01.01 22 0 27쪽
9 0209 라지기르 쌈마온까르 22.12.27 18 0 25쪽
8 0208 모울루싼 쎄하니야 22.12.18 19 0 25쪽
7 0207 도깨비 요마대왕 22.12.11 23 0 24쪽
6 0206 영주패 돌하르방 22.12.04 20 0 24쪽
5 0205 태산패 표운장주 22.11.28 22 0 25쪽
4 0204 야마또 도꾸가와 22.11.20 22 0 25쪽
3 0203 백두패 태백선인 22.11.13 25 0 24쪽
2 0202 태산패 태천신인 22.11.06 24 0 21쪽
1 0201 백두패 혜원선사 22.10.30 48 0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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