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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님의 서재입니다.

01 잠들고 깨어나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ccamagui
작품등록일 :
2022.08.3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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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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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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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시

DUMMY

0108 시


찬과 뮈, 그리고 왓의 도움으로 몸을 갖게 된 낭은 왓의 도움을 받아 힘으로 되어 뜻으로 엮어진 식물과 짐승을 땅에서 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식물은 다시 왓이 관리하고 낭은 짐승을 관리하기로 했다. 낭은 두를 나누어 짐승에 깃들게 하여, 일우 몸의 새김에 따라 스스로 나아지고, 살아가고, 생산하고 이어지게 하였다.


낭은 두의 가장 큰 두 개의 조각을 미르와 해태에게 깃들게 하여 곁에 두었다. 항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땅은 뮈가 다스리는 넓은 호수로 인해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북쪽 숲은 미르가, 남쪽 숲은 해태가 다스리게 하였다. 낭은 남쪽 숲의 가장 높은 산에 고유영역을 만들어 그곳에 있었다.


뮈가 다스리는 옴의 항성계의 중간에 있는 넓은 호수는 북극과 남극에서 시작된 시내를 따라 물이 흘러들어 채워져 있었고, 시내와 호수에는 왓과 낭이 만든 다양한 식물과 짐승이 살게 되었다. 호수로 튀어나온 반도에 뮈의 고유영역이 있었으며 뮈는 풍족하여 만족하였다.


북쪽 숲 일우의 고유영역 근처에 왓의 고유영역이 있었다. 왓은 옴중에서 일우와 가장 친했고 함께 얘기하고 놀기를 즐겼다. 왓은 땅에 깃든 힘과 땅의 것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나무와 풀에 깃들어 성장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자란 나무와 풀들은 적당한 때에 옴과 짐승들에 의해 베어져 거처나 도구를 만드는 데 이용되었다.


남쪽 밤하늘 근처에 찬의 고유영역이, 북쪽 밤하늘 근처에는 곶의 고유영역이 있었다.


곶은 일우와 두가 보여준 싸움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고, 끝내 첫의 몸을 갈라 맘에 닿았다. 곶은 첫의 몸으로 망치를 만들고 망치에 첫을 깃들게 하였다. 곶은 해달에서 비롯된 불을 다루어 땅에서 난 것에서 새로운 쇠를 만들며 놀았다. 일우에게 선물한 나대가 곶이 만든 최초의 쇠이며 도구였다.


밤하늘 밖의 우주를 보며 항성계의 나아감을 다스리는 옴은 남쪽 밤하늘 근처에 고유영역을 가진 찬이었다.


처음에 옴들은 서로 연결되어 뜻을 나눌 수 있었으나, 이즈음에 객관화가 많이 이루어져 따로 놀았다. 낭을 제외한 옴들은 틀의 틈새로 얼의 새김을 얻은 일우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간혹 일우의 고유영역을 찾았다. 일우는 자신의 한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지만, 얼의 새김을 읽게된 후 그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경험과 지식으로 나아짐의 방향을 바꾼 옴들이 그것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기다려 주기로 했다.


옴의 항성계, 한집은 옴의 뜻에 따라 여전히 평안함과 편안함이 가득했으나 이제 옴들의 새로운 뜻에 따라 성장을 위한 몇 가지 불편함과 환희가 섞였다. 옴의 피조물과 조각들이 땅과 해달의 힘을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나아지기 위한 성향에 따른 먹이사슬, 각각 성장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 진화하기 위한 생식이 그것이었다. 이것들은 일우가 허락한 얼의 새김을 참고한 것이었다.


해달의 깜빡임으로 볼 때 그렇게 다시 몇 달이 지났다. 그동안 얼의 새김으로 알게 된 힘에 쓰임으로 일우는 돌담을 보완하였고, 이렇게 보완된 일우의 고유영역은 돌담에 둘러싸인 나무와 풀로 지어진 집이었다. 일우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왓은 거의 매일 일우를 찾아와 같이 놀았으나, 낭은 두와 다투던 일우의 모습으로 일우를 대함에 있어 거리를 두는 듯했다. 그런데도 낭은 일우의 편안함을 위해 자신의 조각을 보내어 일우의 집을 관리하게 하였다. 뮈는 일우에게 물을 선물하였고, 일우는 물을 돌담 안으로 끌어들여 조그만 연못을 만들었다. 찬은 여전히 한집 밖 우주를 보고 있었다.


일우가 보기에 첫과 두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였다. 이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오랫동안 비웠다면 직장에서 연락이 왔을 것이고 자신의 부재로 인한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곤란함이나 걱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맘의 아주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 자신이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으므로, 옴들이 방법을 찾아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얼의 한집, 태양계에서 일우는 두 번째 삶이었다. 일우의 맘이 완전히 개방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단편적으로 들여다본 첫 번째 삶은 씨족의 어머니인 마마와 씨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번영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마와 씨족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파괴와 살생이 마마에서 비롯된 그의 맘을 오염시켰다. 오염된 맘으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돌마루는 끝내 위대한 맘의 조각들에 의해 제압되어 버려진 땅으로 쫓겨났었다. 그가 죄 값을 치르고 위대한 맘의 조각들의 용서를 받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얼의 조각들이 모든 맘의 조각들의 우위에 있었고, 지구상의 모든 맘의 조각들은 얼의 질서 안에서 다스려지고 어우러져서 나아지고 있었다. 돌마루는 그 안에 함께하고 싶었고, 그렇게 평범한 사람의 틀을 받게 되었다. 돌마루는 만족하였으므로 다시 지구로 돌아갈 때는 찬에 의해 열린 맘을 닫고 일우로 돌아가고 싶었다.


<맘들의 큰 조각은 내가 다른 곳에서 깨어난 것을 알까? 알고 있다면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을까?

그 녀석들이 내 맘이 열린 것을 알면 또 호들갑을 떨지도 모르겠군>


스스로 행한 일이 아니고, 파괴와 살생을 한 것도 아니니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일우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일우가 편하게 나무 의자에 앉아 왓이 선물한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을때, 그의 집을 관리하는, 낭이 자신의 맘을 떼어 창조한 사람인, 바낭이 생각에 잠겨있는 그를 끌어냈다. 옴의 조각들은 피조물의 이름을 지을 때 자신의 이름으로 끝나게 했다. 밖에는 뮈가 뿌리는 기분 좋은 보슬비가 운치 있게 내리고 있었다.


“예, 고귀하신 낭의 심부름을 받고 왔다 합니다.”

“낭의 심부름? 들어오라고 하세요.”


푸른 풀빛의 옷을 입은 소년이 바낭을 따라 그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상큼한 풀 향이 한층 짙어졌다. 소년은 일우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인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옴들이 정한 격식이었다.


“강건한 일우님이시여. 낭에서 비롯된 표낭이 뵙습니다.”

“그래요.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낭께서 일우님에게 직접 전할 뜻이 있으니, 저의 땅으로 걸음 하시기를 바라십니다. 낭께서 찾아뵈어야 함이 예의인 줄은 아나, 아직 영역 밖이 불편하시니 넓은 아량으로 들어주시기를 바라셨나이다.”


낭은 온전한 맘인 옴에서 비롯된 조각이었으므로, 얼의 조각인 마마에서 비롯된 돌마루는 무엇으로 가늠하든 낭의 밑이었다. 그럼에도 배려하는 낭이 고마웠다.


“내가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무슨 일로 부르시는지 알려줄 수는 없습니까?”

“고귀하신 낭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는 없으나, 위대하신 찬에게도 심부름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찬에게도?”

“예, 그리고 고귀한 낭께서 어렵게 부탁하신바, 나대는 뒤에 두고 오시기를 바라셨나이다.”


표낭의 말에 일우는 창가에 세워둔 나대를 힐긋 쳐다보았다. 일우의 생각에 낭은 두를 몰아세우던 일우와 일우의 날붙이에 대해 불편함이 있는 듯했다.


“꼭 알려드려야 하고, 들으시면 큰 도움이 되실 일이라 하셨습니다.”

“음···”


사실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간혹 찾아오는 왓을 상대하거나 경치 구경하며 돌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일우는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습관적으로 회색 운동복 바지를 털었다.


“갑시다. 바낭! 비가 더 거세지면 덧문을 닫도록 해요. 축축한 것은 싫으니까”

“예, 다녀오십시오”


집을 돌보는 바낭의 대답을 들으며 일우는 표낭의 뒤를 따라 나와 보슬비가 내리는 밭과 논 사이의 길을 걸었다. 멀리 보이는 왓에서 비롯된 들왓의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일우의 집 근처까지 밭과 논이 펼쳐져 있다. 왓은 어울려 먹고, 노는 것을 좋아해서 들왓들과 함께 살았다. 왓은 맘을 조금 떼어 논과 밭을 일구는 들왓 무리, 과실 나무를 일구는 흘왓 무리, 산을 돌며 채집, 사냥하고 가축을 치는 뫼왓 무리를 창조하여 다스리며 놀았다. 왓은 땅의 힘과 것을 유용하게 바꾸는 자신의 일을 좋아했다.


옴의 항성계를 뒤덮은 보슬비는 걷고 있는 일우와 표낭의 주위를 뮈의 배려로 침범하지 못하였다.


어느새 들왓의 아이들이 일우 일행을 쫓아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든다. 왓을 닮아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다.

멀리서 밭일을 보던 몇몇 들왓이 손을 흔들어 아는 체한다. 들왓이 경작하는 밭을 지나기 전까지는 천천히 걸을 요량이었다. 빠른 움직임이 밭에 영향을 주어 들왓들이 애써 일궈놓은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이기도 하고, 한가로이 밭둑길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서였다. 도깨비의 처절한 삶이었을 때도 돌마루였던 때가 그리웠던 그였다.


“어이~, 일우임금~”


들왓의 아이들에 둘러싸여 적적하지 않은 마음으로 표낭을 따라 걷던 일우 일행 앞에 밝은 노란 빛의 발판을 타고 내려오는 이가 있었다. 큰 덩치에 들왓의 아이들처럼 두꺼운 껍질에 쌓인 등과 팔뚝을 내놓은 옷차림을 한 왓이였다. 맘이 열린 일우는 그가 왓의 다른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왓은 자주 힘을 다루어 몸의 모습을 바꾸었다. 일우는 반갑게 웃었다.


“헐, 그 모습은 또 무엇입니까? 또 바꿨네요. 그리고, 일우임금은 또 뭡니까?”

“하하하, 힘도 지식도 새김도, 배울 것이 많으니 내게는 큰 조각의 위대한 맘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니 임금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어딜 가는 거요?”

“과찬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대가 원래 모습일 때가 좋습니다만.”

“낭에서 비롯된 표낭이 고귀하신 왓을 뵙습니다.”


왓임을 깨달은 표낭이 놀라 황급히 인사를 하고, 들왓의 아이들의 왓의 발치에 엎드린다.


“우와! 할아버지다.” 떨썩!

“우와!” 떨썩!떨썩!

“우와!” 떨썩!떨썩!떨썩!


몸을 바꾸니 말투도 달라진다.

자유분방한 왓은 표낭의 인사를 손사래로 밀어버리고, 발치에 엎드린 들왓 아이들의 등껍질을 쓰다듬으며 일우에게 말했다.


“그 모습은 내 자식들에게 권위가 서질 않아서요. 하하하. 뮈 누님의 은혜로 풀빛이 싱싱한 날인데 나랑 술이나 하지 않겠소?”

“언제 뮈님이 누님이 되었습니까? 같은 조각이라고 만만히 보시던 것 아니었습니까?”

“아무렴 어떻소. 처음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내가 막내인 것 같아서 말이지··· 하하하”

“쯧! 낭님이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가는 길이라서, 술이 하고 싶다면 제 집에서 기다리십시오”

“낭이? 웬일이요? 무서워서 눈도 못 마주치더니?”

“또···”


왓은 두에게 매타작하던 일우의 모습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놀렸다.


“거기 나도 따라가면 안 되겠소?”


왓의 물음에 일우가 표낭의 눈치를 살핀다. 왓의 땅접기라면 주변에 영향을 주지 않고 쉽게 낭의 고유영역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우는 왓의 동행이 좋았기 때문이다.



“두가 들게 된 경위를 미르에게 듣다가 알게 되었어요.”

“한집이 시간의 골짜기에 든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두가 힘써 밀었던 것이었구려”

“예. 시간의 골짜기에 갇혀 있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닐 거예요. 일우님의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해도 우선은 여기를 벗어나야 할 것 같아요.”

“두가 밀어 넣을 수 있는 것이라지만, 집어넣는 것과 벗어나는 것은 분명 다르오. 시간의 골짜기를 벗어나기도 어려운 데, 내가 둘러본 바에 따르면 이미 여울에 갇힌 듯하오. 쉽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 하더라도, 나아짐을 위해서는 한 곳에서 갇혀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일우님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벗어나야 해요.”

“동감이오. 길을 찾아야겠지요.”


“··· 덕분에, 일우님이 머무는 시간이 늘었으니 어쩌면 저희에게는 잘된 일 일지도···”


낭이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낭은 일우가 무서웠다.

얼의 미미한 조각으로 가진 힘이 미약한 일우가 얼의 조각을 엿본 후 두를 몰아붙일 때 보인 힘의 증폭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또한, 증폭된 힘을 씀에 있어서도 분노라는 감정을 덧씌우고 나대라는 물리적인 도구로 다시 증폭되어 존재감이 없는 얼 조각이 경험 많은 온전한 맘인 두를 애 다루듯 하는 강함은 무서울 정도였다.


만약 태양계에 얼의 큰 조각이 존재한다면 생각하기도 겁나는 강함일 것이다.


낭은 생각했다. 다른 맘과의 교류가 없이 스스로 성장해온 옴은 첫이나 두와 같은 악의적인 다른 맘의 침입이 또다시 생긴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은 일우의 덕을 본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힘을 키워야 하고 힘을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첫과 두의 새김을 읽었지만 경험에 비해 힘을 쓰는 방법은 특별하지 않았다. 첫은 그저 본능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전부였고, 두의 경험은 강한 맘은 피하고 약한 맘을 취하는 것이었다. 일우에게 배워야 한다. 미약한 존재감, 약한 힘으로도 거대한 강함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을···. 그래서 일우가 남아 있을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반가웠다. 겁도 없이 일우와 스스럼 없이 지내는 왓과 곶이 부럽기도 했다.


스스스스승

스슥


낭과 찬이 대화를 끊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벼운 소리와 아지랑이 같은 공간의 일그러짐 후에 표낭과 함께 일우와 왓이 모습을 보였다. 낭이 보기에 왓의 땅접기가 발전했다. 일우와 같이하는 때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도 많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표낭 일행을 중심으로 파란색의 반짝이는 반 투명의 비늘이 나타나더니, 돔 모양으로 그들을 가로막았다.


“미르, 두어라”


낭의 고저가 없는 명령을 들은 미르는 경계를 풀었고, 파란색의 반 투명의 비늘은 힘으로 변하여 벽 한쪽에 난 동굴로 빨려들 듯이 사라졌다.


“고귀한 낭이시여, 모셨습니다.”

“수고했어요. 물러가세요.”

“예”


표낭이 뒷걸음으로 문이 없는 출구를 지나 나간 후에야 낭이 일우와 왓에게 자리를 권했다.


처음 낭의 집을 방문한 일우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바닥에서 시작된 가는 초록색의 줄기는 얼기설기 얽혀서 벽과 높은 지붕을 만들고 있었고, 군데군데 줄기의 틈새로 해달의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공간은 넓었고 천정은 높았다. 넓은 공간의 한쪽에 벽이 살짝 들어가 있는 곳에 낭과 찬이 같은 방향으로 앉아 있었다. 왓과 일우는 낭이 이끄는 대로 그들 앞으로 다가갔고, 왓과 일우가 앉을 수 있도록 바닥에서 올라온 줄기가 의자를 만들었다. 벽의 중간 높이에 파란색의 큰 동굴은 미르의 방인 듯했고 그 반대편에 하얀색의 동굴은 해태의 방인 듯했다. 공기는 쾌적했고, 짙은 풀향은 향기로웠다. 벽을 따라 불규칙적으로 여러 개의 문 없는 출입구가 있었다.


바닥에서 시작된 줄기가 의자를 만든 후에도 계속 자라더니 조그만 차를 위한 탁자를 만들었고, 때를 맞춰 가까운 출입구로 초록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차를 들어와 놓고 나갔다.

입 안에 퍼지는 상쾌함을 즐기며 일우는 고개를 들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

“예. 미르와 이곳에 들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이 모든 일이 미르와 해태의 온전한 맘인 두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았어요.

미르, 네가 직접 이야기하거라.”


낭이 나직하게 미르가 있는 파란 동굴을 향해 미르를 불렀다.


스슥


동굴에서부터 파란빛의 힘이 흘러나오더니 일행의 앞에 와서 형상을 만들어 파란 옷의 소년이 되었다. 미르의 다른 모습이었다. 미르는 일행을 돌아보며 온전했던 자신의 맘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미르의 긴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나서 찬이 일우를 돌아보았다.


“헌데, 일이 좀 곤란하게 되었소이다. 시간의 골짜기에 떨어진 저의 한집이 시간의 여울에 갇혀버렸소. 밀어 넣기는 어렵지 않았겠으나, 짙은 시간의 분탕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소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일우님이 태양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일우님을 그대의 항성계로 돌려보내는 방법을 고민하다 얻은 결론은 그대의 항성계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서 뮈와 낭의 힘을 빌려 그대의 몸과 맘을 묶어 봉인하고 왓이 봉인된 그대를 보내드리는 것이오. 전에도 말했지만, 대략 보아도 그대의 항성계는 삼광년 거리에 있소이다. 헌데, 우리의 힘으로 그대의 몸과 맘이 상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서는 많게 잡아도 이광일 거리 안에는 있어야 하오. 사실 그대가 짙은 시간의 파편에 이끌려 이곳에 오면서 무탈한 것도 커다란 행운이었소.”

“··· 죄송합니다.”


찬의 얘기를 듣던 미르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 낭이 미르의 어깨의 손을 얹고 그를 달랬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일우가 찬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렇게 마음을 써주심에 감사드립니다만. 옴님의 힘으로도 저를 제자리로 돌릴 수 없다는 말이군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오. 어차피, 짙은 시간 안에 있어서 이곳의 십 년이 그대 항성계의 하루 정도와 맞먹소. 그러니까 그대가 여기에 머문 시간은 그대 항성계의 기준으로 볼 때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이오. 그대의 새김에 따르면 그대는 잠든 지 서너 시간 만에 짙은 시간의 파편에 휘말렸고 이곳에서 깨어날 때까지는 찰나였으니 그대가 우려하는 그대의 삶에 영향은 없을 것이오. 짙은 시간을 벗어나면 나머지는 어렵지 않소.”


찬의 말을 듣고 돌마루가 아닌 일우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찬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구는 아직 금요일 밤이라는 말이다. 혼자 있는 원룸을 누가 한밤중에 찾아올 리도 없으니, 자신의 부재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인 것이었다. 그리고,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하면 최소한 이곳의 시간으로 이십 년의 여유가 있는 것이다. 걱정이라면 일요일에 되돌아가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늙은 몸이 이십 년의 시간을 먹어 한층 노쇠하여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우는 돌아갈 때가 되면 옴들에게 몸을 젊게 해달라고 부탁해 볼까 생각했다. 이 거대한 존재감의 맘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이 몸은 돌마루의 몸에 비해 수명이 일 할로 줄어 있었고 대신에 기억기관은 늘어 있었다. 아마도 맘이 직접 몸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면서 선택된 조치인 듯했다.

찬의 말에 이어 낭의 맑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저희와 저희 한집의 소멸을 막아주신 은인이세요. 어떻게든 돌아가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니 계시는 동안이나마 평안하시면 좋겠네요”

“너무 오래 걸리지 않으면 합니다. 저는 상관없지만 제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요.”

“그런 걱정은 마쇼. 땅에 힘을 잔뜩 머금은 약초로 빚은 술을 먹으면 되돌릴 수는 없어도 소모되는 몸의 힘을 보충할 수 있을 거요. 하하하”


왓이 쾌활하게 웃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군요.”

“걱정마쇼. 돌아가실 때는 적어도 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몸일 겁니다.”

“알겠습니다.”


일우는 왓이 장담해 주어 마음이 놓였다.


“짙은 시간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가장 급한 것은 한집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오. 일우님의 태양계와는 달리 저의 항성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아 우주 안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형태이오. 따라서, 비교적 적은 힘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오. 그동안은 별다른 생각 없이 이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에 집중하였지만, 이번 일로 인해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일우님을 되돌리기 위해서도 한집을 뜻한 바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소.”


찬의 말을 낭이 이었다.


“그래서, 곶에게 일러 저의 한집을 이끄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할 생각이예요. 다만, 첫이나 두뿐만 아니라 저희들의 경험이 그대에 비해 미천하여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수 많은 맘이 공존하며 오랫동안 성장해 온 그대의 맘에 새겨진 기록은 곶이 방법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해요.”

“매번 이리 부탁하여 염치없지만, 곶을 도와주셨으며 하오.”


찬이 간절한 눈빛으로 일우를 본다.

돌마루는 이들도 그 짧은 시간에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일우를 온전하게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이 힘을 쓰는 방법이 성장하는 것이고, 심지어 고정된 여타의 항성계와 달리 우주를 유영하는 항성계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얻게 되는 것에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성향이 첫처럼 식탐도, 두처럼 공격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돌아간 후 옴의 재산인 경험의 지식이 이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위대한 얼의 큰 조각들이 알게 되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불안했다. 그렇다고 이를 아껴 이들에게 주지 않는다면, 일우의 평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요원한 듯했다. 벌은 나중에 받더라도 돌마루는 일우의 평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사정을 말하면 정상참작은 되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일우는 돌마루의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기다려 준 옴들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하하하하하! 역시 일우임금이야!”

“고맙소”

“고마워요”


일우는 초조하게 그러나 차분하게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다 호탕하게 웃는 왓이 마음에 들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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