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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님의 서재입니다.

01 잠들고 깨어나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ccamagui
작품등록일 :
2022.08.3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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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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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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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첫

DUMMY

0104 첫


“그러니까, 우선은 다섯 개의 조각으로 나눴어. 나중에는 모두 만나 보겠지만, 내가 땅에서 비롯된 것을 관리하는 ‘곶’과 함께 땅을 관리하는 ‘왓’이고, 모든 것들이 유지되기 위한 힘을 관리하는 ‘찬’ 땅에서 비롯된 것 중 모든 것의 구성에 관여하는 물을 관리하는 ‘뮈’, 그리고 땅에서 비롯되었든 뜻으로 이루어졌든 내 별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채워줄 나무와 풀 같은 틀을 관리하는 ‘낭’, 이렇게···”


옴에서 비롯된 왓이 자신의 형제들을 소개했다. 그의 새김을 읽어 탄생한 것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입장에서는 다소 식상한 분류였다. 하지만 한창 들떠서 우쭐대는 왓의 기분을 생각해서 그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제가 도와줄 것이 뭡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는데···”

“북쪽의 밤하늘로 들어온 첫을 막으려면 아무래도 것에서 비롯되어 것에게 풀어지는 힘이 필요해서, 다섯 조각으로 나눠 놓고 각 조각에 뜻을 부여했지만, 뜻만으로 땅에서 비롯된 것에게 뜻을 펼치는 것은 아무래도 비효율적이고 부족해서···, 그래서 우리의 몸을 땅에서 비롯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가 경험이 없잖아. 그래서 최대한 시행착오 없이 제대로 된 몸을 만들려다 보니까 일우님의 몸에 새겨진 새김이 필요해서···. 물론 읽어서 익히고 구현하면 되겠지만 워낙이 복잡해서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거든. 그리고, 지금은 한시가 급하고, 그래서 괜찮다면 일우님 몸의 씨앗을 좀 얻을까 해서···”

“씨앗?”

“응! 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새김, 뭐 그런 거랑. 나아지는 동안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랑 등등···”


잠시 생각하던 일우는 왓이 얘기하는 것이 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 즉 유전자 정보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유전자 정보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군요. 그러니까 몸을 만드는 코드가 필요한 거네요. 성장 과정에서 발생했던 오류정보도···, 그럼 제 머리카락이라도 떼어 드려야 합니까?


일우는 자기 머리카락 몇 올을 뽑아 내밀었다.


”응. 아무리 내가 일우 아저씨의 새김을 읽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얼의 새김의 겉을 조금밖에 읽은 수 없기 때문에 몸의 모든 경험은 알 수는 없어. 얼의 뜻으로 봉인이 되어 있어서 또 다른 허락이 필요하거든, 그런 깊은 새김을 읽으려면···. 그리고 와서 아저씨가 만든 돌담을 보니까, 씨앗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아저씨 몸의 경험도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왓은 받은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품에 갈무리하며 웅얼거렸다.


”예? 뭐라고요?“

”곶이 첫을 막으려는 곳으로 같이 가자고~.“


왓은 고개를 들어 하늘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일단,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군요, 가 봅시다.“


새로운 존재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여기서 지내는 며칠 동안 위험한 일도 없었기 때문에 다소 안일해진 일우는 따라나서기로 했다. 왓은 일우를 이끌어 냇가로 갔다. 일우가 시내를 가까이서 보니 처음 이곳에서 깨어났을 때 비해 생동감이 넘치고 있었다. 일우가 보기에 새로 생겨나 물속을 헤엄치는 몇 마리의 치어와 벌레들이나 바람과 물결에 따라 살랑이는 물풀들이 처음과 달리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들인 것 같았다. 왓은 산책하듯 천천히 걷고 있는 일우를 재촉하지 않고 앞장서서 내의 상류 쪽으로 걸어갔다.


”일단은 모든 조각이 일우 아저씨처럼 몸을 갖게 해야겠어. 그래야 뭐든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거든···, 남쪽 밤하늘로 들어온 녀석도 그렇고···.“

”아··· 그렇군요. 하나가 더 있다고 했죠.“

”우선 첫부터 내 보내고, 그러고 나서 남쪽 밤하늘로 들어오려는 두를 물리쳐야지. 첫에 비하면 나중에 들어오기도 했고, 고유영역을 확장하지 않고 한 곳에 가만히 있으니까. 아무래도 계속 고유영역을 확장하는 첫이 더 급해···, 우선 몸을 만들려면 나와 낭, 뮈가 같이 있어야 하는데, 낭은 지금 두에게 가 있어서 찬이 대신하기로 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렇게 곶에게 가서 찬과 뮈를 부르는 것보다 내가 찬과 뮈에게 가서 셋이 먼저 몸을 갖고 빠르게 곶에게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걷던 왓이 걸음을 멈추고 일우를 돌아보면 말했다.


”일우 아저씨! 우선 제대로 된 몸을 가져야 하니까 찬이랑 뮈가 있는 곳에 먼저 가자.“

”그래요. 나야 뭐···“

”찬이랑 뮈는 곶이 있는 곳의 반대에 있어, 이 냇물이 흘러 모이는 호수에 말이야.“

”아··· 그럼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겁니까?“

”아니, 아니, 그냥 내가 힘을 쓸게. 몸이 없어서 많이 들겠지만 괜찮아. 어차피 몸을 갖게 되면 어마어마하게 증폭될 테니까···“


왓이 환해지더니 그 빛이 손으로 모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빛무리에서 빛나는 실이 뽑혀 나와 일우와 왓을 누에처럼 감았다. 다 감긴 순간 빛의 누에와 함께 왓과 일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누워 있던 풀이 서서히 몸을 세웠다.


곶은 뜻의 힘으로 겨우겨우 첫의 확산을 막고 있었다.


우주를 떠돌던 첫이 옴이 깃든 별의 충만한 힘에 이끌려 홀린 듯 다가와 북쪽 밤하늘의 가장자리를 통해 끓고 있는 땅의 바다로 기어들어 왔다. 높은 기온으로 인해 그동안 우주를 떠돌면 우주의 먼지들을 흡수하여 만든 몸에 조그만 손실이 있었지만 괜찮았다. 그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욕심을 낼 만큼 충만한 힘이었다. 더불어, 물질도 많았다. 이것은 자신의 별을 갖지 못한 첫의 공허함을 달랠 수 있을 정도였다. 첫은 그렇게 자신의 만족을 위해 옴의 항성계로 들어왔고, 적당한 온도로 용융된 땅의 바다를 삼키며 힘을 얻고 몸을 보강할 수 있었다.


검은 기름처럼 끈적하고 미끈거리는 생김새로 붕괴하지 않을 만큼의 땅을 먹고, 그 주변에 흐르는 뜻을 흡수하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확산하던 첫은 난관에 부딪혔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자신의 몸 안에 꽁꽁 숨은 첫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완고하던 저항은 시간이 지나자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 이렇게 두드리면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저항의 뒤에 있는 먹음직스러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땅에서 비롯된 돌로 담을 쌓아 영역을 만든다고? 미리 알았으면 시도해 보았을 텐데···, 지금은 버티기도 힘들어서 다른 것을 시도할 수가 없어···>


곶은 생각했다. 내가 첫처럼 몸이 있다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뜻을 쓰지 않고도 쉽게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의 옴이 깨달은 바에 따라 왓이 얼의 조각에게 갔으니 얼의 조각이 협조해 준다면 조만간 자신도 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곶의 몸은 새김을 학습하여 급조한 것으로 매우 연약하다. 겨우 나누어진 옴이 깃들어 있을 뿐, 옴의 힘을 쓰는 데도 비효율적인데다 과도하게 힘을 쓰면 견디지 못하고 옴이 흩어질 정도로 약하다. 얼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룬 것이기에 형편없이 작은 조각임에도 그런 몸을 갖게 된 것일까? 강인하며 땅의 힘을 갖고 있고 뜻을 증폭하고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몸을 만들기에 자신의 땅은 충분한 재료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얼의 몸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몸이었다, 이 정도의 재료라면 얼의 몸에 비해 월등한 몸을 갖게 될 것이다.


<잘 됐다. 얼의 조각이 허락해줬군. 조금만 더 막아보자.

···

응? 찬과 뮈에게 간다고? 아씨~, 겨우 막고 있는데···, 자기들이 먼저 갖겠다고··· 흥!>


물론, 곶은 왓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 첫을 막는 게 힘에 부쳐 콧김을 불었다.


옴의 또 하나의 조각, 낭은 남쪽 밤하늘의 침입자인 두의 둘레에 풀과 나무로 벽을 치고 지켜보고 있었다. 가볍게 밤하늘을 날아 용융된 땅의 바다 가장자리에 내려선 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두의 모습은 민들레 씨앗처럼 뜻이 실처럼 방사선 모양으로 반짝이는 생김새였다. 첫처럼 철벽을 친 것 같지는 않았고, 옴의 의사가 분명하게 두에게 전달이 되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무런 반응도 움직임도 없이 그렇게 가만히 있는 두를 옴에서 갈라져 나온 낭은 지켜 보고 있었다. 낭은 두의 맘을 계속 두드리고 있어서 다른 옴의 조각과의 맘이 들어오지 못하게 닫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다른 조각들의 상황은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지금 두와의 대치 상황은 다른 옴의 조각에게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넓은 호수가 바다처럼 펼쳐진 호숫가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다. 어느새 해달은 빛을 잃기 시작했고, 주변에 곧고 키가 큰 나무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에서는 푸르고 촉촉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나무들 사이의 사슴과 토끼 등 온순한 짐승들은 잠자리를 찾아 한가롭게 이동하고 있었다.


옴의 다른 두 조각 찬과 뮈가 모닥불가에 넓은 호수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찬은 검은색 머리카락, 검정 눈을 갖은 각진 얼굴의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모닥불을 단속하는 뮈는 역시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의 젊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빛나는 머리와 하늘빛 눈동자가 아닌 것을 제외하면 최초에 일우가 보았던 옴의 모습이었다. 찬은 검은 서양식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뮈는 하얀 원피스 차림이었다.


옴에서 비롯된 두 조각은 북쪽 밤하늘과 남쪽 밤하늘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모닥불 건너편에 밝은 빛이 빛나고 사그라진 후 왓과 일우가 나타났다.


”안녕, 나 왔어“

”허허, 고생하셨네요. 왓“

”고생은 무슨···“

”어서 오시오. 정일우님, 저는 옴의 첫 번째 조각인 찬이라고 하오.“

”헷? 첫 번째라고, 누가 그래?“


왓이 투덜거린다.


”안녕하세요. 정일웁니다.“

”반가워요. 저는 뮈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옴과 닮으셨네요.“

”아··· 처음에 보셨던 모습이요? 그 모습은 일우님이 가장 동경하는 모습일걸요.“


뮈가 미소를 짓는다. 찬이 팔짱을 끼고 왓의 빈정거림을 무시하며 일우를 보고 말을 이었다.


”저희를 도와주신다니, 정말 고맙소이다.“

”아, 저의 유전자 정보···, 머리카락은 왓님에게 드렸는데··· 더 필요하시면 더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예요. 굳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예요. 일우님의 머리카락에 새겨진 새김을 읽을 뿐이니까요. 저희의 몸은 이 땅에서 비롯된 것으로 만들어질 거예요.“

”그래도, 나중에 필요하면 나아지는 데 새김이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일우 아저씨의 머리카락은 내가 보관할 거야!!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지?“

”그··· 그래요“


왓의 어린아이다움에 일우는 조금 당황했다. 일우의 생각에 왓의 겉모습이 어떻든, 그는 우주가 생길 때 같이 생겨난 의지인 옴의 조각이다. 그가 아무리 늙었다 해도 나이로 따진다면 비빌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찬의 몸에서 하얀빛의 실이 실타래에서 풀어지듯 흘러나왔다.


”일우님, 그대의 몸의 깊은 새김을 읽겠소. 허하겠소?“

”예. 허락합니다.“


일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찬의 빛나는 실은 점점 굵어지더니 그 끝이 밧줄만큼 굵어졌다. 굵은 밧줄의 끝이 다시 수백 가닥의 가는 빛줄기로 갈라지더니, 그 끝이 일우의 신체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닿았다. 찬이 눈을 감는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눈을 떴을 때, 찬의 눈동자는 무지개 빛으로 일렁거렸다.


”왓이여, 그대의 힘으로 땅 풀어주시오. 뮈여, 물로써 풀어진 땅을 녹여 주시오“


일우는 흥미로웠다.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평생 별다른 특별함이 없는 평이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꾸역꾸역 이어온 그에게 이보다 흥미롭고 재밌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편안함과 평안함으로 채워진 이곳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외로움도 슬픔도 없이 아름답고 풍성한 숲과 맑고 청량한 물이 흐르는 냇물을 보며 휴가 아닌 휴가를 즐긴다. 더불어 이런 마법 같은 일을 구경하게 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잠깐, 잠깐···“


성스럽고 신비한 순간을 기대하던 그의 귀를 왓의 목소리가 때렸다. 산통이 깨진 느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 왓을 돌아보는 찬의 눈이 원래의 검은 색으로 돌아와 있다.


”어찌 그러시는가?“

”···“

”···“


모두들 왓을 보았다.


”··· 그러니까··· 일우님과 함께 여기로 오느라 힘을 너무 썼나 봐요. 아무래도 땅의 것으로 만들어진 몸을 흘리지 않고 잡아 와야 해서···“

”아, 하긴 전에 없던 일이고, 맘을 나눈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무리긴 하겠네요. 그럼 잠깐 쉬었다가 준비되며 하시죠.“


뮈가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온화한 미소와 함께 찬에게 말했다. 찬은 뮈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북쪽과 남쪽으로 들어온 침입자에 대응하려면 한시가 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최초의 몸을 만드는 일인데 서둘러서도 안 될 일이니. 왓이여, 내가 피워놓은 힘의 모닥불을 쬐면 더욱 빨리 회복될 것입니다.“


왓은 찬이 일러주는 데로 피워놓은 모닥불로 다가가 손바닥을 펴고 불을 쬐었다. 그런 왓과 함께 찬과 뮈도 불을 바라보면 멍해져 갔다. 다만, 일우는 뭔가 놓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고 원래의 몸 그대로이다. 온전한 옴이 말하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침입자와 같이 물리적인 몸을 갖고 옴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침입자와 달리 들어온 경로와 방법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일우는 스스로가 무엇인가 대단하고,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 보았다. 일우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지만, 옷이 만들어진 것은 옴의 권능이었다. 이 세계는 옴의 것이었고, 옴의 감각과 영향력이 전체에 끼치고 있었으므로, 발가벗은 일우의 당혹감이 옴에게 닿았던 것이었다.


해달이 서서히 어두워 갈 무렵, 찬이 피워놓은 힘의 모닥불 빚이 더욱 진해질 때쯤, 왓의 멍했던 하늘빛의 눈망울이 빠르게 그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왓을 중심으로 주변의 땅에서 까만 먼지같은 것들이 표면으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땅을 이루고 있던 물질의 근원이었다. 어느 순간 왓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물질의 근원이 왓을 주변을 채웠다.


”다시 한번 그대의 새김을 읽겠습니다.“


찬은 한 번 읽은 내 몸의 유전자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다시 일우에게 양해를 구했다. 일우의 짧은 끄덕임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찬의 눈동자가 다시 무지개 색깔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 찬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뮈는 하얀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게 폈다. 그러자, 주변의 허공에서 무수한 투명한 알갱이들이 생겨났다. 물질의 근원에서 비롯된 물의 근원이었다. 물은 모든 물질을 품을 수 있었고, 그것은 물질 중에 물이 중요한 이유였다.


허공에서 생겨난 물의 알갱이들은 뮈의 손바닥 위를 스치듯 지나 왓이 땅으로부터 만들어낸 물질의 근원으로 날아가 서로 엉키고 어울리며, 따로 흩어져 있는 물질의 근원을 서로 뭉치게 하였다. 찬의 몸에서 새어 나온 굵은 빛줄기가 여러 가닥으로 나뉘어 생긴 가느다란 줄기들이 물에 의해서 뭉쳐진 물질의 근원 하나, 하나를 인도하여 왓의 발밑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채우듯이 쌓여갔다.

왓을 처음으로 뮈와 찬, 본인까지 뜻으로 만들어진 형태 그대로 차근차근 물질적인 몸을 만들었다.


”이렇게 편안한 거였네. 흩어질 염려가 없으니 내가 가진 뜻을 모두 힘으로 사용할 수 있겠는데 그것도 몸에서 증폭되기도 하고, 거기다가 덤으로 몸이 가진 힘은 힘대로 쓸 수 있고···.“

”그러게요. 기대 이상으로 좋네요.“

”···.“


옴의 조각들은 몸을 갖고 나서 원래 보유하고 있던 뜻을 몸의 물리적인 작용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해 수천, 수만 배의 물리적인 외력을 발생시킬 수 있음을 알고 놀랐다. 이러한 몸은 얼이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누어져 많은 시간 동안 많은 새로운 몸을 갈아타며 윤회하여 얻은 지식과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귀하의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언젠가 그대의 은혜에 보답할 일이 있을 것이오.“


찬은 일우를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왓은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고, 뮈가 보여주는 온화한 미소에도 감사의 뜻이 담겨 있었다.


”자 이제 북쪽 밤하늘에서 고생하고 있는 곶에게 가자.“

”북쪽 밤하늘?“


왓의 말에 찬이 의문을 표했다.


”응! 일우 아저씨가 저것의 이름을 밤하늘이라고 지어 주었어.“


왓은 일우를 비롯하여 찬과 뮈를 둘러보았다. 순간 왓의 몸에서 전보다 훨씬 밝은 빛으로 반짝이는 빛줄기가 쏟아져 나와 일행을 한꺼번에 감싸며 빛의 고치를 만들더니 일행들과 함께 사라졌다. 남아 있던 힘의 모닥불이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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