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얀새야

The systematizer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얀새야
작품등록일 :
2018.11.13 14:37
최근연재일 :
2018.12.01 19:12
연재수 :
8 회
조회수 :
708
추천수 :
8
글자수 :
40,039

작성
18.11.13 14:45
조회
91
추천
1
글자
12쪽

1.낯선사람

DUMMY

“마일드 세븐 팩 한 갑 주세요.”


건조한 남자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카드 받았습니다. 결제 진행 해드릴게요.”


갓 성인이 됐을 법해 보이는 알바생은 손님 분위기와는 상반된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가벼운 손짓으로 카드를 리더기에 긁었다.


“음?”


밝은 표정이던 알바생 표정이 살짝 난감해졌고, 다시 한 번 카드를 리더기에 긁었다.


“저 지금 빨리 가야하는데. 계산 좀 빨리 좀 해주시죠?”


건조한 목소리엔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


“저.. 잔액부족이라고...”


알바생은 본인 잘못도 아니었지만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살짝 주눅이 들어 대답했다.


“하.. 그럼 이거... 아니다. 여기요.”


남자는 다른 카드를 꺼내려다 말고 지갑 속에 꼬깃꼬깃 접혀있던 오천 원 짜리 지폐를 알바생에게 건넸다.


“오천원 받았습니다. 거스름돈 오백원 여기 있습니다.”


짜증스러운 남자의 말투에도 끝까지 친절함을 잃지 않는 알바생이었다.


“하.. 씨바...”


편의점을 나가는 남자는 조용히 욕지거리를 뱉었고 알바생은 처량해 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


“제발... 그래.. 쫌만 더 버티자.. 제발..”


남자는 긴장감에 손까지 떨며 방금 사온 담배를 뜯고 있었다. 비닐을 벗기고, 종이를 뜯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책상 앞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30초. 30초만 버티면 됐다. 그는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담배 한 가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딩동댕동”


스피커에서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방금 문 담배는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그의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져 있었다. 맑은 소리 후 한참동안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방엔 정적이 감돌았다.


“팍, 빠각, 지이잉”


순식간에 그의 주먹은 앞에 놓여있는 모니터로 향했다. 파열음과 함께 모니터 액정은 산산이 깨져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빛을 잃었다.


“...하... 마..말이 돼? 시...시...십 초 남기고 도..동점이라고? 씨이발!!!!!!!!!”


남자는 미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며 앞에 놓여있던 박살난 모니터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30만원. 그가 갖고 있던 마지막 돈이었다. 아니 마지막 돈은 담배를 사려고 쓴 5천원이 마지막이었지만, 그의 통장에 남아있던 마지막 30만원은 300만원이 되기 직전 0원이 돼 버렸다.

책상에 남아있는 건 재떨이에 수북하게 쌓인 담배꽁초와 가치가 사라져버린 로또용지 수 십장과 토토 용지 몇 장뿐이었다.


정신이 나간 듯 부서져 버린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시선은 그가 갑작스레 고개를 쳐들면서 천장으로 향했다.


‘또륵’


아무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소리가 나는 것처럼 그의 오른쪽 눈에선 한 방울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밖은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차...하... 어이가 없네.. 후...”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 폴 낙.. 아니... 레알이 꼴찌 팀한테 30초 남기고 동점? 하... 말이 돼?”


평소의 그답지 않게 그는 혼잣말을 마구마구 내뱉었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며칠간 잃었던 돈을 복구하고도 약간 남는 돈이 바로 눈앞에 들어 왔었다. 배당이라도 높은 경기였다면 억울하진 않을 것 같았다.

1.18배.

오랫동안 토토를 해온 그였지만 1.18배라는 배당은 거의 질 수 없는 배당이라 생각해왔다. 물론 이보다 낮은 배당도 부러져 버리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 최고의 팀이 너무도 어이없는 시간에 골을 먹혀 버린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흐흐..”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우스워졌다.

퀴퀴한 단칸방에서 도박으로 자신의 통장 잔고를 몇 백 원으로 만들어버린 자신이, 그리고 그런 일로 공부하는데 꼭 필요한 모니터를 한 순간에 박살내버린 자신이.


“휴..”


그리고 죄스러워졌다. 시골에서 농장을 하며 자신이 하는 공부를 힘들게 뒷바라지하는 부모님께 너무도 죄스러워졌다.

사귀는 동안 아무것도 못해줬어도 그의 곁을 묵묵히 지키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못 버티겠다며 눈물로 이별을 고했던 전 여자 친구에게도 너무도 죄스러웠다.


외로웠다. 곁을 지켜주는 이 하나 없는 자신이 너무도 외롭다고 느꼈다. 모든 것은 본인이 자초했지만 그래도 외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칙, 칙”


땅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처량하게 주워 입에 물고는, 힘없는 손으로 불을 붙였다.


“츠츠측...”


담배는 빠르게 타 들어갔고 그는 마우스를 잡았다. 순간 어이없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본인이 모니터를 박살내놓고 다시 컴퓨터를 하려고 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니터를 확인해봤지만, 화면은 완전히 깨져버려 전원마저 들어오지 않았다.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모니터가 하나 보이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 새롭게 모니터를 연결하고 싶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의 손은 스마트폰으로 옮겨갔다.


“...”


표정은 무언가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선 어떠한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속 알림은 사용하지 않는 어플들에서 온 광고성 메시지와 스팸 문자들 뿐. 누군가와 연결되어 신세한탄이라도 하고 싶던 그는 점점 더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랜덤 채팅’


그때 그의 눈에 생소한 어플 하나가 들어왔다. 분명 자신이 설치한 적은 있었지만 몇 번 사용하지 않았던 어플이었다.

욕망과 본능. 그가 이전에 그 어플에 느꼈던 것은 딱 두 가지였다. 몇몇은 자신의 성적 욕망 위해 그 어플을 하는 것 같았고, 또 몇몇은 익명성에 기대어 공격적인 자신을 뽐냈다.


‘랜덤 채팅 연결하기’


그는 본능적으로 누군가와의 연결을 원하고 있었다.


-랜덤한 사람이 대화방에 입장했습니다. 편하게 대화하시길 바랍니다!~

-(상대방 타자중)

-낯선상대: 남자


상대방에게 처음 온 메시지는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여자 아니면 나가라는 건가?”


그는 혼잣말을 하며 타자를 쳤다.


-당신: 나도 남잔데 얘기나 할래?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그는 정중하게 낯선 누군가에게 대화를 제안했다.


-대화가 끝났습니다.

“쳇... 하..”


역시 낯선 상대는 여자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후로 정확하게 9번 낯선 상대와 연결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똑같은 패턴을 보였고, 그는 기계적으로 새 연결 버튼을 눌렀다.


-(상대방 타자중)


분명 ‘남자’, ‘ㄴㅈ’, ‘ㄵ’ 같이 자신의 성별을 알리는 메시지일터였다.


-낯선상대: 10번째. 지루하지? 근데 어떻게 진정은 좀 됐니?


당황스러운 메시지였다. 뭔가를 아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


뭐라고 메시지를 보내야할지 모르겠던 그가 물음표를 하나 전송했다.


-낯선상대: 어떻게 아냐고? 그러게.


“뭐야?”


그가 혼잣말을 내뱉으며 약간 신경질적으로 타자를 입력했다.


-당신: 너 나 알아?

(상대방 타자중)


채팅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몇 초간의 정적이 지나고 채팅창엔 새로운 메시지가 전송됐다.


-낯선상대: 알지. 이름 이재호, 나이 32세, 사는 곳 인천 광역시 연수구 연수 1동 23-... 개인 정보니깐 여기까지. 아! 통장엔 정확하게 506원 남았네? 맞지?


벙찐다는 표현이 이런 상황에 쓰는 표현일까, 순간 재호의 오른손이 살짝 떨려오며 얼굴 근육마저 경직됐다. 잠시 멍하게 있던 그가 창을 끄고 은행 어플에 접속했다.


‘xx은행 110284710683 잔액 506원“


본인도 몇 백 원 남았다는 것만 알았을 뿐, 정확한 금액은 모르고 있었지만 상대방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약간 두려운 느낌이 들었지만 찝찝한 기분을 해소해야만 했다.


-낯선상대: 어때? 정확하지? 아 근데 찝찝해 할 거 없어. 너한테 해를 끼치려는 사람은 아니니깐.


창을 올렸을 땐 이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cctv라도 설치한 것처럼 행동을 모두 읽고 있었다. 순간 재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반 지하방이라 누군가 보고 있나 싶어 창문으로 가서 밖을 내다봤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돌아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


-낯선상대: 에이.. 씨씨티비 같은 건 설치 안했어. 물론 너 주변에 몰래 숨어서 보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나 나눠볼까?


재호가 다시 휴대폰을 봤을 땐 또 다른 메시지가 와있었다. 소름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호기심이 생겼다.


-당신: 어떻게 아는 거야? 나 알아? 아님 뭔데? 너 누구야?


물음표로 가득찬 메시지가 전송되고 곧바로 상대방 메시지가 도착했다.


-낯선사람: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뭐 대충 그쯤이라고 해두지. 벗어나고 싶지 않아? 니가 살고 있는 세계. 아마 지금처럼 구질구질하진 않을텐데. 아? 그 세곈 레알이 30초 남기고 비기는 황당한 상황은 없을 거야^^


평소 같았다면 개소리로 취급하고 말 이야기였지만 상대방은 재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에 그럴 수 없었다. 무엇보다 구질구질하고 절망적인 지금 상황이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당신: 대체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건데? 그리고 다른 세계는 또 뭔데? 그리고 당신을 어떻게 믿지?


궁금증의 연속이었다. 세 가지 질문을 하긴 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것이 궁금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낯선사람: 음.. 처음 두 질문은 같은 대답이야. 니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라는 것. 그리고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현실적으로 믿게 해주지. 오늘 하루는 아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시키는 대로 하게 될 거야. 어때 속는 셈치고 한 번 따라 볼래?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 같았지만 기분 나쁨보다는 호기심이 더 커졌다.


-당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재호가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상대방 메시지가 채 1초도 되지 않아 도착했다.


-낯선사람: 니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오백 원짜리 동전. 그걸로 믿게 해줄게. 아 그전에 플레이 스토어에 들어가서 another world라고 검색해봐. 그리고 그걸 설치한 후에 곧바로 아까 담배 샀던 편의점에 가서 귀엽게 생긴 알바 생한테 그 500원에 맞는 즉석복권을 달라고 해. 그 후엔 아마 니가 먼저 연락을 취하게 될 거야.


황당한 주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자기도 까먹고 있던 담배사고 남은 돈 500원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약간의 믿음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어플을 설치하라고 하는 게 뭔가 찝찝했다.


-낯선사람: 아. 혹시나.. 아니 분명 그런 생각할 거야. 어플 설치하는 걸로 스미싱이나 뭐 그런 건 아닐지.. 근데 잘 생각해봐. 니 휴대폰 스미싱 해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506원 밖에 없어.


이번에도 정확하게 재호가 걱정하는 것을 상대방은 정확하게 찔렀다. 밑져야 500원, 아니 1006원이었다.


‘Another world'


플레이 스토어엔 확실히 낯선 사람이 말한 어플이 있었다. 어플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고 다운로드 숫자도 1000명 남짓에 불과했다.


‘다운로드’


다운로드가 시작됨과 동시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섰다.


“딸랑딸랑”


편의점 문이 열리고 자리에 앉아 졸던 알바생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 어서오세요.”


몇 시간 전 재호에게 담배를 줬던 그 알바생이었다. 다시 보니 굉장히 귀여운 얼굴이었다.


“어... 음.. 500원짜리 복권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출근을 위해 서두르는 시간에 편의점에 500원짜리 복권이나 찾는 자신이 한심했다.


“아? 네. 있어요. 몇 장 드릴까요?”


몇 장이라는 말에 한 장이라고 말하기도 조금 창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주머니에 들어 있는 건 500원짜리 동전 하나 뿐이었고,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내며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한 장이요.”




선작 추천은 다음편을 더 빠르게 올라오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The systematizer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7.어나더홀 18.12.01 59 1 13쪽
7 6.파티원 18.11.19 122 1 12쪽
6 5.사촌형 18.11.15 73 1 13쪽
5 4.독단 18.11.14 62 1 12쪽
4 3.가상화폐 18.11.14 50 1 14쪽
3 2.복권당첨 18.11.13 85 1 13쪽
» 1.낯선사람 18.11.13 92 1 12쪽
1 Prologue 18.11.13 166 1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