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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o 님의 서재입니다.

누리와 함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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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o
작품등록일 :
2024.01.13 16:54
최근연재일 :
2024.05.20 10:10
연재수 :
2 회
조회수 :
116
추천수 :
7
글자수 :
10,983

작성
24.01.14 14:15
조회
84
추천
4
글자
12쪽

1. 신나는 술래잡기

DUMMY

겨울을 지나 꽃이 피는 계절이 왔다.

4월 중순의 선선한 바람을 맞은 벚꽃잎이 사람들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들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고, 나 역시 만개해서 휘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며 공원을 달리고 있었다.


헥헥!


저기 신이 나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누런색의 진돗개.

통칭 인절미, 누리와 함께 말이다.

누리는 숨이 차면서도 뛰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휘날리는 벚꽃이 신기한 듯 연신 폴짝거리고 있었다.


"누리야, 좀만 쉬자. 형 힘들다···."


혈기 왕성한 녀석의 체력을 견디지 못한 나는 그대로 잔디밭에 드러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숨을 크게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자, 비타민을 머금은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자 어느새 누리가 다가와서 내 뺨을 핥았다.


"간지러워."


난 누리를 꼭 껴안은 채 공터를 바라보았다.

향긋한 꽃 냄새를 맡는 아이가 보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중년 남성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고 이윽고 아이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웠다.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꺾은 꽃을 하늘 위로 흔들어 보였다.


"..."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괜스레 마음 한편이 시려온다.

부러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불편한 감정을 머금기 위해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천천히 목을 축였다.


끼잉..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리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길게 늘어진 목줄을 물고 와서 내 손에 얹힌다.

아무래도 한 바퀴 더 뛰자는 신호인 것 같았다.


"그래, 가자 가."


난 피식 웃으며 누리를 쓰다듬고는 무릎을 꿇은 채 신발 끈을 고쳐 맸다.

싱글벙글 한 누리를 보자 다시금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래, 난 누리가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첫발을 내디뎠을 때, 삐익-! 소리와 함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긴급 재난 문자>


[행정안전부]

- 현재 서울 일부 도심에서 소요사태 발생.

소요 상태 진정시까지 안전한 실내에서 대피 요망.


[서울대교]

- 15:00 서울 대교 양방향 전면 통제 실시.

우회 도로를 이용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행정안전부]

- 현재 서울 대부분 도심에서 대규모 소요사태 발생.

소요 상태 진정시까지 안전한 실내에서 대피 요망.


[경찰청]

- 대규모 소요사태로 인한 기동 중대 동원 하여 소요 사태 진압 중.


핸드폰을 열자 재난 경보 문자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시흥에 위치한 한국 공원을 달리는 나에겐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목줄을 손에 걸고 누리와 함께 다시 뛰기 시작했다.


삐익!


"이런, 씨..."


또 한번 울리는 재난경보음에 난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긴급 재난 문자>


[행정안전부]

- 현재 전국 대부분 도심에서 대규모 소요사태 발생.

모든 시민들께서는 안전한 실내로 대피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경찰청]

- 대규모 소요사태로 인한 기동 중대 동원 하여 소요 사태 진압 중.

모든 중심 도로 전면 통제 실시.


[시흥시]

- 도심 곳곳에서 묻지마 살인 범죄 급증.

인적이 드문 곳 출입 자제 및 외출 자제 요망


두 번째로 열어본 재난 문자에서 난 묘한 기분을 느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 불쾌한 느낌은 아킬레스건을 타고 흘러 목덜미를 덮쳤고, 이윽고 내 몸은 부르르 떨려왔다.

서울에서 벌어진 시위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첫 번째 문자가 온 지 몇 초도 안 지났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급변하다니, 애초에 말이 안 되었다.


멍!


누리가 짖는 바람에 보고 있던 핸드폰을 내렸다.

내가 목줄을 잡아당겼음에도 누리는 짖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에는 일절 짖지 않는 녀석이라 당황한 나는 급하게 주변을 의식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는 듯 멈춰서서 중심상가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 두쿵 두쿵 두쿵!


하늘에서 들리는 강렬한 헬기 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고개를 들자 검은 헬기가 중심을 가로지르며 상가 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벌써 헬기만 4번은 본 것 같아.'


누리랑 산책하면서 본 헬기만 세 번, 이번까지 합하면 총 네 번이다.

처음에는 모의 훈련이나 하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내 몸을 엄습해 왔다.


멍! 멍!


누리가 계속 짖는다.

앞을 보자 상가 쪽에서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난 고개를 쭉 내민 채 눈을 크게 떴다.


"저, 저게 뭐야!"


선명하게 보이는 시야 속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도망치는 사람들 중에서 옷에 검붉은 피가 흥건하게 묻은 자들이 뒤섞여있었다.

그 사이로 새까만 녀석들이 사람들을 하나둘 덮치고 있었다.

난 본능적으로 누리의 목끈을 잡아당겼다.


"누리야 가자!"


대체 무슨 일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주변을 연신 둘러보았다.

어느새 도로는 통제 때문인지 차량이 바글바글 했고, 심각한 교통 체증으로 인해 차량은 서로 클락션을 울리기 바빴다.

사이렌은 어디선가 미친 듯이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오토바이를 탄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 역주행하고 있었다.

난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고개만 살짝 돌려 뒤를 보았다.


"경찰입니다! 전부···."


팍!


일순간이었다.

미친 듯이 달려오던 녀석이 오토바이를 탄 경찰을 그대로 덮쳤다.

뒤이어 놈은 사정없이 경찰관을 물어뜯으며 온몸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크, 크헉···!"


경찰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 입안에서 피가 푹 뿜어지더니 이내 고개를 꺾었다.

뒤이어 그의 얼굴은 썩어 문드러지듯 서서히 검게 물들었다.

그러자 놈은 경찰을 더 이상 먹이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또 다른 사냥감을 향해 달려갔다.


난 검게 물들어가는 경찰을 유심히 보았다.

몇초가 지났을까?

죽은 경찰관은 발작을 일으키며 몸을 비틀더니 관절을 기이하게 꺾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녀석처럼 사람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미친···."


무의식적으로 욕과 함께 침이 흘러나왔다.

그 사실을 인지하기 무섭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무리에 섞였다.


도시는 한순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차량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들이박았고, 건물 사이 사이에서는 검은 연기와 함께 화마가 치솟았다.

연분홍을 띄고 있던 벚꽃잎은 시뻘겋게 물들어 바닥을 수놓았으며, 도시는 온통 고통에 휩싸인 비명만이 가득했다.


***


공원에서 십여 분 거리에 위치한 집까지 쉬지 않고 뛰어왔다.

차오르는 숨은 목젖을 치고 들어와 헛구역질을 유발했다.

이마에서 흐른 땀은 볼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셨다.

난 숨을 고르며 거리를 훑어보았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 즐비한 빌라들의 문이 전부 닫혀있다.

평소였다면 귀찮다고 열어 놓은 출입문마저도 굳세게 닫혀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내가 거주하는 빌라 출입문만큼은 어째서인지 박살 나 있었다.


2층으로 설계된 빌라였는데 일 층은 친구 민석이가, 이 층은 내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민석이네 집 현관문이 열려있다.

난 수십번의 고민 끝에 민석이 집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민석아?"


문고리는 반쯤 부러져 있었고, 신발장은 죄다 흐트러져 있다.

거실에 들어서자, 철분 냄새가 코끝을 깊숙히 찌른다.

좋지 않은 예감이 벌써 머릿속을 뒤죽박죽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난 인상을 찡그리며 코를 틀어 막은 채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침대 옆에선 무엇인가 들썩이고 있었고, 그 사이로 시뻘건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난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침대 옆으로 걸어갔다.

허름한 옷차림에 얼굴은 검게 물들었고 입가에 핏자국이 선명한 놈이 보였다.

놈은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었는데 그것은 파란색 파자마를 입고 있는 한 남성이었다.


"흐끅..!"


파자마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민석이었다.

난 너무 놀란 나머지 뒷걸음질 치다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쾅!


'좆댔다.'


녀석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씹는 것을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본다.

온몸이 벌벌 떨렸다.


녀석의 이빨 사이에는 민석이의 살점이 드문드문 붙어 있었고,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짐승에 가까웠다.

피로 가득 채운 듯한 시뻘건 눈은 정확히 날 노려보고 있었고, 검게 변색된 썩은 살덩이가 연신 들썩였다.

이윽고 놈은 괴성을 지르며 나를 노려본 채 몸을 비정상적으로 꺾기 시작했다.


그아아아!


바닥을 적신 흥건한 피에 자세가 흐트러진 놈은 손톱으로 바닥을 연신 긁으며 자세를 고쳐 잡았고 곧바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내 머릿속 사고회로는 완전히 고장 났고 난 멍청하게 녀석을 바라만 보았다.


콰직!


녀석은 반사적으로 들어 올린 내 오른쪽 팔뚝을 세차게 물었다.

그러자 엄청난 압력과 함께 살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큽..!"


너무 아파서 악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놈이 물은 팔뚝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온다.

흐르는 피의 절반은 놈의 입안으로, 절반은 내 상의를 적셨다.

놈은 신선한 피 맛을 느꼈는지 더욱 흥분했고, 순식간에 내 위로 올라탔다.


"으아아아! 민석아!"


미친 듯이 민석이를 불러본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혼이 빠져나간 동태 눈깔이었다.


콰직!


놈은 나를 더 억세게 물었다.

팔뚝에선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가 내 얼굴을 뒤덮는다.

난 필사적으로 놈에게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악!"


놈이 고개를 틀자 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까보다 배가 되는 통증이 팔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팔뚝을 보자 살점이 뜯겨 나간 채 너덜너덜해졌다.


그 사이로 날 노려보는 놈의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이젠 정말 끝이다.

죽고 말 것이다, 놈한테 무참히 잡아먹힐 것이다.


컹!


그때였다.

뒤쪽에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누리가 내 앞으로 달려오더니 녀석을 덮쳤다.

그 덕에 놈이 넘어지면서 자세가 흐트러졌고, 누리는 그 틈에 내 옷깃을 물며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난 뜯긴 팔뚝을 움켜 잡은 채 거실로 다급하게 나갔다.


덜컥!


방문을 닫고 문고리를 악착같이 움켜쥐었다.

녀석이 방 안에서 문을 내려치자 쾅쾅 거리는 소리가 연신 내 귓가를 괴롭혔다.

난 제발 저 놈이 문을 열 수 없기를 바라며 문고리를 더욱 굳세게 잡아 당겼다.

한참이 지났을까, 쿵쾅대는 소리는 줄어들었고 점차 조용해졌다.


난 턱 끌을 덜덜 떨며 현관을 나가자 도심 전체에서 뛰어다니는 놈들이 보였다.

그러다 한 놈이 우리를 발견하고 뛰어오기 시작했다.

난 미친 듯이 계단을 올라간 뒤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덜컥!


"이런 시발!"


평소에도 종종 맛탱이 갔던 현관문이 하필 이럴 때 말썽이다.

난 움켜쥔 문고리를 정신없이 잡아당겼다.

그륵그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틀이 끌리며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누리야, 빨리!"


누리가 없다.

작게 열린 문틈에 누리를 먼저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다.

난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왈 왈!


문이 열리지 않는 걸 안 것일까?

누리는 시간을 끌기 위해 어느새 놈을 향해 용맹하게 짖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그런 누리가 안중에도 없는지 걷어차며 순식간에 계단을 올라왔다.


"누리야!"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열려있는 현관문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문틈에 얼굴이 짓눌리는 고통도 잊은 채 날 향해 다가오는 놈을 보며 악착같이 밀어 넣었다.


쾅!


머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현관문을 닫았다.

그러자 괴이한 괴성과 함께 문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난 힘이 풀린 나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놈의 포효가 멈출 때까지 난 돌이 된 채 숨을 죽였다.


한참이 지나고 세상이 조용해지자 천천히 눈과 귀를 열었다.

녹슨 철문, 피로 붉게 물든 문 손잡이가 보인다.

베란다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오늘 따라 유난히 서늘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암울한 생각이 서서히 내 머릿속에 스며든다.


'난 또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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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나는 술래잡기 24.01.14 8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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