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중의 상황을 저도 이해하려고 복기하면서 한번 짧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주인공의 원래 의도는 지폐를 도입하면서 지역마다 환율에 차이를 두어 서울경기 지역에 의도적인 인플레이션, 즉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일으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공식환율 상으로 경기지역에선 돈1전이 쌀5승인데 지방에선 돈1전이 쌀 최대 20전, 즉 같은 돈으로 서울보다 지방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 훨씬 많아지게 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지방에서 물건을 사서 서울경기에서 팔아 시세차익을 노린 행위를 하게 하려는거였죠.
근데 주인공이 간과한것은 지방에선 돈으로 살 수 있는게 곡식밖에 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시세차익을 노리려면 지방에서 곡식을 사서 서울경기에서 팔아야 하는데, 당시 조운의 상황이라던지 길의 상태라던지 등등때문에 그 비용이 여간 많이 드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주인공이 정해준대로 최대 4배까지의 공식환율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그 리스크를 감당하고서라도 거래를 해볼만 하지만, 지금 서울에선 찍어낸 지폐의 수가 물리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해서 공식환율 대비 실제환율이 1/3까지 떨어지는 (돈1전 = 쌀 15승), 지폐가치 급상승이 일어난 상황입니다. 이래버리면 상인들이 그 리스크를 가지고 곡식을 경기까지 나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거기서 넘어서 지방에서 돈을 사들여서 서울에서 가볍고 가치 높은 물건으로 바꾼 다음 다시 지방에 내려가는 환장할 전개까지 일어날수도 있다는 거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렇게 서울에 지폐가 쏠리게 되면 디플레가 완화되고 인플레가 일어나야 합니다.(=치솟았던 돈의 가치가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돈이 서울에 흔해지니까요. 근데 지금 작중에선 권력자가 그 돈을 다 자기 창고에 묶어버리고 있으니 서울으로 돈이 몰리고는 있는데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돈의 가치는 미친듯이 올라가고만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쌀의 가치는 계속 바닥으로 꼬라박고 있는거고요.
그래서 상인들도 쌀을 들고와서 돈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만약 그렇게라도 쌀이 풀린다면 디플레이션으로 터져버린 경제는 어쨌건 '경기지역 기근은 해결했잖아 한잔해' 하고 정신승리라도 할텐데, 그 권력자와 그 아래 떨거지가 물리력으로 쌀을 돈이 아니라 다른 잡물건으로 바꿔버리고 자기들 창고에 쳐박아두니 돈 가치는 치솟기만 하고 쌀은 쌀대로 안 풀리고 기근은 그대로고 아주 개판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죠.
그럼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서울의 물건들은 다 지방으로 내려가고 있으니 서울의 물가는 폭등, 지폐가 없으니 지폐가치(그리고 그 지폐로 내야 하는 세금도) 폭등, 쌀이 없으니 굶어죽어가는 백성들은 쌀도 없고 물건도 없어서 완전 길바닥 거지꼴이 될테고요. 게다가 공납은 서울에서 물건을 사서 내는 것으로 하고 있으니 영수증(공납지출비용) 가격도 폭등해서 지방에도 어마어마한 세금폭탄이.
이러니 주인공이 혀를 내두르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금융범죄라고 하는거죠. 국가의 세금이라는 시스템을 자기 환차익에 써먹으려고 하다니 보통 스케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렇게 시스템을 악용한 결과 전국의 백성들이 다 굶어죽거나 세금폭탄에 터져죽거나 할게 뻔히 보이는 상황. 근데 이 흐름을 한번에 알아보는 사람이 조선에 몇이나 될까요. 결국 나쁜짓은 윤은로가 다 했는데 욕은 왕이 쳐먹는 꼬라지가 날 수도 있다는 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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