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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 님의 서재입니다.

망자여, 왕이 되어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bok2705
작품등록일 :
2019.04.01 11:28
최근연재일 :
2021.01.04 19:0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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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33,243

작성
19.04.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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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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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글자
12쪽

5화: 전초전 (2)

*본작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상상의 비중이 더 큰 작품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많은 픽션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DUMMY

<망자여, 왕이 되어라!>

5화: 전초전 (2)


잘못을 가려야 하면 잘못을 가려야 한다.

그리고 잘못했으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실 이런 인생관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긴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외할머니를 거지라고 손가락질하던 애들을 때려줬다가 문제아로 낙인 찍혔고 군대 있을 때는 입바른 소리 한다고 부적응자로 불렸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적어도 양심을 팔아먹지는 않았으니까.


대성은 이번에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20세기 조선인이 아니었다.


“맞서 싸워야지요. 당할 생각을 하지 말고 맞서 싸워야지요.”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이다. 네가 진정 마적과 싸울 수 있느냐? 마적이 널 죽이고, 세진이가 마적 소굴에 끌려가는 걸 막을 수 있느냔 말이다.”


“막을 수 있습니다. 총과 총알만 있으면 됩니다.”


“정말 경솔하기 짝이 없구나.”


죽을 뻔한 자식을 앞에 두고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하나 싶었다. 혹시 태준이란 놈이 망나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내놓은 자식이 아닌 이상, 저런 태도는 나올 수가 없었다.


“내 너에게 총을 쥐여준 적이 한 번도 없거늘, 마치 쏠 줄 아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아버지. 사격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대단한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일도 아닙니다. 하루만 제대로 배워도 백 미터, 아니, 백 보 거리에 있는 표적은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습니다.”


대성의 말에 마을 주민들이 웅성거렸다.


[저것이 참말이여···?]

[당연히 거짓말이지. 총도 만져보지 않은 아가 그걸 어떻게 알어?]

[아니 몇 보인지도 알잖여.]

[백 보가 쉬워 보이냐? 지가 무슨 홍범도 장군이여?]


“멀가중멀가중멀중가중! 일주일이면 백 보에서 이백 보 사이는 충분히 맞춥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설프게 조선인 흉내 내느니 차라리 미친놈 컨셉으로 가는 게 나을 듯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거짓말도 아니었다. 이 사람들 후손 태반은 저 구호를 머릿속에 강제로 새긴 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 이상 연습하면? 더 할 수 있어요.”


“그만하거라! 이 아비가 너에게 혹세무민(惑世誣民)하라고 말과 글을 가르쳤더냐.”


“아버지, 해본 다음에나 그런 얘기를 하십시오. 왜 못합니까? 안 하니까 못하는 겁니다.”


“해 볼 것도 없다. 네 말대로라면 마적들은 그 이상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만 열 명이야.”


“그럼 열다섯 발만 있으면 되겠네요. 저들은 군대가 아니에요. 한낱 폭력배일 뿐이라고요.”


“시끄럽다! 경솔한 언행으로 마을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고 가지 마라!”


이 정도면 거의 소귀에 경을 읽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란 사람은 눈과 귀를 굳게 닫고 어떤 대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두렵길래? 싸우기 두려워서? 보복당할까 두려워서?

대성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그런 조상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럼 싸우지 않으면 뭐가 달라지죠?”


“뭐라고?”


“마적과 싸우지 않으면 뭐가 달라지느냐고요. 제가 도망쳐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습니까?”


“적어도 이 마을 전체가 위험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그만 방으로 들어가라.”


“그걸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저와 분이가 이곳을 떠난다고 해서 마적이 보호세를 걷지 않는답니까? 그저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에요.”


“방으로 들어가라 일렀다.”


“저들은 언젠가 또 다른 여자아이를 끌고 가려 할 것이고.”


“들어가거라!”


“또 다른 남자아이는 그걸 막으려다 죽을 겁니다!”


대성이 주변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마을 사람들, 태준의 어머니, 분이까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 나라를 뺏기고 힘겹게 살아가던 조상들이었다.


같은 민족에게 짓밟히고,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맞이하게 될 가엾은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마적에게 아들을 잃고, 딸을 뺏겼을지도 모를 사람들이었다.


대성은 이들을 보며 어쩌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잘 들으십시오. 도망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

“마을의 미래, 우리들의 미래를 진정으로 생각하신다면! 일어나서 맞서 싸워야 합니다!”

“······”

“무엇이 진정으로 옳은 길인지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대뜸 집안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대성 앞으로 거칠게 던졌다.


“이게 무엇인지 말해보아라.”


“농기구입니다.”


“그래, 이게 우리가 가진 전부다. 이 척박한 땅에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할 물건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한 도구를 갖고 있을 뿐이야.”


아버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은 저마다 손에 들고 있는 괭이와 호미, 낫으로 향했다.


“하지만 저들은 사람을 죽이라고 만든 물건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힘이 좋고, 손재주가 좋다 할지라도, 저들이 가진 물건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그래서 제가 아까 말한-“


“더는 말하지 않겠다. 세진이와 함께 이곳을 떠나 새 터전을 찾거라.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다시 말하는데, 알량한 혈기 갖고 마을 전체를 재앙으로 몰고 가지 마라.”


아버지는 땅에 떨어진 농기구를 주워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도 한두 명씩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지명조차 모르는 척박한 만주 땅 어딘가, 그곳을 살아가던 조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적의 위협도, 조국의 독립도 아니었다.


[에휴~ 밭이나 갈러 가자.]

[저, 저, 부위님 아들 말이여. 물을 많이 먹었더니 정신이 이상해졌나 봐.]

[으이구 이 사람아. 물귀신 안된 것만 해도 다행이지. 뭘 더 바라는 겨.]

[젊은 아가 쯧쯧··· 참 안 됐어··· 분이는 뭔 죄냐 대체.]


[그냥 신경 쓰지 말어. 작물 말라죽지 않게나 신경 쓰라고. 그래야 겨울에 살아남는다.]


그들 역시 먹고사는 문제에 찌들어 있었다.

마치 학습지 하나 못 팔아서 전전긍긍하던 21세기의 대성처럼.


‘휴, 그래, 내가 마적 하나 때려잡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어차피 십여 년만 기다리면 일본은 핵폭탄 맞고 끝장날 것이고. 미국, 소련이 알아서 독립시켜줄 텐데···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지. 아니면···’


아니면 차라리 대충 살다가 광복 전에 죽는 것도 괜찮을 수 있었다. 어차피 독립한 다음에도 두 쪽으로 갈라져 서로 총부리를 겨눌 게 아닌가.


설사 그때 살아남는다 해도 북쪽에 남게 되면 그것대로 지옥을 맛볼 게 분명했다. 남쪽으로 넘어와도 별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봐야 대성의 외할머니가 살았던 불행한 인생만 반복하게 될 뿐이었다.


‘그래, 이럴 거면 차라리 되는대로 살자. 어차피 뭘 해도 결말은 같은데, 뭐하러 머리를-‘


“야, 태준아!”

“태준이! 왜 그러고 서있는겨? 우리 아직 안 갔어!”


그를 부르는 소리에 대성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되는대로··· 되는대로?’


***


“아니, 시방 고것이 참말이여? 우리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고?”


“나도 돌아버릴 노릇이다.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아서.”


처음 보는 친구들을 따라 밭을 갈던 대성이 괴로워하는 척,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서남 방언 비슷한 말을 쓰는 청년의 이름은 신철인(辛鐵人). 그는 21세기의 대성과 가장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었다. 대성이 허물없이 대하자 놀라는 걸 보니, 원래 친한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일주일이면 진짜로 백 보, 이백 보 거리에 있는 놈 대가리도 정확하게 뚫을 수 있는 거냐? 그게 진짜 가능해?”


다소 말이 거친 이 친구의 이름은 김고담(金高談). 본인 말로는 양반집 자손이라는데, 말하는 것만 보면 과연 사서삼경을 갖고 태어났는지 입에 걸레를 물고 태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은 이인영(李麟榮). 결전을 앞두고 충 대신 효를 택했던 의병장과 같은 이름을 지닌 그는 다른 청년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의사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아 자세한 배경은 알기 힘들었다.


이 세 명이 대성의 의견에 동감하며 끝까지 남은 마을 주민이었다.


“태준아, 함 말해봐라. 진짜 일주일이면, 아니 하루면 된다냐?”


철인이 묻자 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과 총알만 있으면. 사실 총알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해. 인당 못해도 20~30발 정도. 그래도 한 번 배우고 몇 번 더 하면 까먹을 일 없을 거야. 몸에 알아서 베니까.”


“근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아는겨? 훈장님이 우리 총 잡는 시늉도 못 하게 했잖여.”


‘훈장님’은 태준의 아버지를 말했다. 정수용(鄭秀勇), 그는 백산(伯山)이란 조그만 조선인 정착촌을 세운, 마을의 대표격인 인물이었다.


또한 식자층 출신이었는지, 젊은이들과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고 했는데, 아들을 죽인 돌쇠가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젊은이 중 하나였다고 했다.


“태준이, 너 혹시 그짓말 하는 거 아니지? 나는 참말로 모르겠당께.”


“기절해있을 동안 꿈에서 배웠다고 하면 믿을 거냐?”


“아니, 그렇게 말하면 누가 믿겄어? 나도 꿈에선 마적이고 일본놈이고 다 때려잡을 수 있어라.”


철인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지금 무엇을 말한다 한들 믿겠는가? 일본의 패전, 한국의 분단, 한강의 기적, 헬조선··· 무슨 말을 해도 헛소리로만 들릴 것이다.


“거봐,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면서. 직접 보여줘야 믿지.”


“너 혹시 총 가진 거 아니제?”


“내가 묻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 이 마을에 총을 가진 사람이 한 명 있다면서? 성씨 아저씨라 그랬나?”


“만식이 아저씨? 그라제. 포수니께.”


‘성만식··· 그래, 어젯밤 방에 들어왔던 사람 중 한 명··· 나와 분이를 밀산에 데려가 준다고 했던 사람. 그 사람이 성씨 아저씨였구나.’


대성은 방 한쪽 구석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남성을 떠올렸다. 대성이 아버지에게 바락바락 대들 때도, 다른 어른들이 떠나라고 종용할 때도, 그는 아무런 동요 없이 대성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철인아, 혹시 성씨 아저씨 총 몇 정 갖고 있는 줄 알아? 한 정 밖에 없으려나?”


“아니, 몇 정 있다 하던디? 권총 찬 것도 봤어. 그래, 총이 많으니 총알도 많을 것이여.”


“그럼 잘됐네. 마적이 열 명이라 했으니까··· 소총 하나 권총 하나면 되겠다. 두 정만 빌리면 되겠어.”


대성이 말했다.


“아, 아마 물어봐도 빌려주지 않을 것이여. 집에 곱게 보내주기만 해도 운이 좋은 걸 테니께."


“나도 물어볼 생각 없어. 몰래 빌릴 거니까.”


“뭐라고? 시방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는 겨? 그러다 걸리기라도 하면 진짜 죽는 거여. 만식이 아저씨가 얼마나 무서운디.”


“그렇다고 마적한테 또 죽을 순 없잖아.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가져와야지. 안 그래?”


대성의 말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두 개 갖고 돼? 상대는 열 명이잖아. 우리가 낫으로 일일이 멱을 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작전 환경을 봐야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아.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최대한 빨리 시작하는 게 좋지. 너희 성씨 아저씨 어디 사는지 알지?”


“알긴 알지.”


“그럼 어딘지 말해줘. 일단 사전조사부터 해야 하니까.”


“그게 어디냐면-“


친구들이 손을 들었다. 그때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6화는 2019년 4월 6일 오후 12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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