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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고대신에게 선택받은 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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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2.10.29 18:19
최근연재일 :
2023.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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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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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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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만난 동료 -3-

DUMMY

리카르도의 외침이 경기장에 침묵을 가져왔다.

그가 뱉은 말의 뜻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까지 이해 못한 몇몇을 제외한 사람들은, 그말의 무게에 경악했다.


“나는 심록의 관을 죽이러 왔습니다!!”


놀란 사람들을 향해 리카르도가 재차 퍼부었다.

관중석에서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터졌다.

신을 죽인다는 것은 어불성설.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조용!”


세실리아가 마법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강제로 침묵을 끌고와 경기장에 들이부었다.

관중석의 뜨거운 불씨가 쉬이 가라앉은 뒤.

세실리아는 못마땅한 눈으로 리카르도를 쳐다봤다.


“너. 소란을 피울 생각이면, 즉시 실격시켜 주겠어.”


“그럴리가요. 저는 정당한 몫을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세실리아의 한쪽 눈썹이 꿈틀했다.


“정당한 몫?”


“심록의 관이 우리들 드루이드들에게서 훔쳐간 힘을 돌려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힘만으론 부족해서요.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이걸 봤죠!”


리카르도가 주섬주섬 꾸깃한 종이를 꺼내보였다.

프레지아 길드에서 대량으로 인쇄한 무투대회 홍보 포스터였다.

리카르도는 종이 한 군데를 손가락으로 푹 찔렀다.


“보세요. 여기 적혀있죠? 1등 상품으로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


“그렇게 쓰긴 했어. 하지만···.”


“계약은 절대적이에요.”


계약 이야기를 듣고 빅터가 흠칫했다.


“소원 하나. 제가 1등하면 들어줘야 한다고요.”


“막무가내로 그래봤자 소용없어. 심록의 관을 죽인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당연히 알죠. 왜냐하면···!”


그 때.

서늘한 한기가 리카르도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파리 쫓듯 손을 휘젓자, 따스한 온기를 품은 바람이 한기를 치워버렸지만, 세실리아의 뜻은 전해졌다.

리카르도는 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자,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다시 대회를 속행하겠다.”


세실리아는 그걸로 소동을 일축했다.

그녀는 말 한마디로, 리카르도가 내뱉은 무시무시한 선언을 잠깐의 소란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리고 너. 리카르도. 만약 이번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내 사무실로 찾아오도록.”


“절 입막음하려고요?”


“그런 시대는 지났어. 그렇게 만만한 일도 아니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그런거야.”


“좋아요. 이야기쯤이야.”


리카르도는 만족한듯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세실리아는 그런 리카르도를 보고 살짝 웃었다.


“너무 여유부리지 않는게 좋을걸.”


“충고 고맙네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네 상대,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요? 보통 사람이 아니면 특수한 사람인가요?”


“신이랑 맞먹어.”


“그건 확실히, 보통은 아니네요.”


빅터가 의아하다는듯 세실을 봤다.

왜 갑자기 띄워주는거지?

하지만, 금새 그녀의 속셈을 눈치챘다.


‘날 이용해서 리카르도의 실력을 보려는건가.’


결국 세실 입장에서는 빅터든 리카르도든 불편한 손님이다.

여기서 크게 한판 붙어 하나를 떨구면 그녀는 이득이다.

살아남은 한명도 멀쩡하진 않을테니,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처리할수도 있을테고.


‘일부러 대진표를 그렇게 짰군.’


세실리아도 참 빈틈없는 사람이었다.


“자. 1분이 지났다. 그럼 지금부터 경기를 속행한다. 둘 다 위치로.”


빅터와 리카르도가 양 반대편에서 서로를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결투를 앞둔 사람들처럼 일정한 간격에서 멈춰섰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본 리카르도의 얼굴은, 전생과 마찬가지로 보기 좋았다.

나뭇결처럼 살짝 갈색빛으로 그을린 얼굴은 생기가 넘쳐흘렀으며, 잿빛 머리카락은 새벽 이슬을 머금은 안개꽃 같았다.

풀과 나무와 꽃의 향기도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숲이 사람의 형상을 한다면, 리카르도와 같은 모습일까.


“잘 부탁해요.”


리카르도가 선뜻 웃으며 말했다.

빅터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검을 보고 리카르도가 고개를 갸웃했다.


“쇠로 만든 검이 아니군요?”


“알아보겠나?”


“돌을 깎아 만들었어요? 독특한데요.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칼처럼 보이진 않네요.”


“그런것도 알아보나?”


리카르도가 싱긋 웃었다.


“자주 봤거든요.”


리카르도의 말에서 미묘한 적의가 느껴졌다.

칼든 인간들을 자주 만나봤지만, 나는 멀쩡히 살아있다.

그들 전부 내 손으로 죽이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런 저의가 웃음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교도들을 수도없이 죽였다. 벌레구름 이교도들은 거의 나 혼자서 전멸시켰지.”


그래서 빅터도 충고를 가장한 경고를 해 줬다.

받았으면 돌려주는게 예의니까.

리카르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그래. 항복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거야.”


“글쎄요. 도둑놈 발밑에 빌붙은 파리떼를 암만 죽여봤자 자랑거리인줄 모르겠는데요.”


“뭐?”


“아홉 신들은 도둑이에요.”


리카르도가 손을 들어올렸다.


“우리들의 것을 훔쳐갔죠. 당신은 뭘 빼앗겼죠?”


“뭐···.”


콰드드득—!!


리카르도의 소매에서 나무뿌리가 튀어나왔다.

흡혈귀를 잡을때 쓰는 말뚝처럼 날카로운 뿌리가 빅터의 귓가를 스쳤다.

뒤로 물러서 피하자, 뿌리가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대며 재차 날아들었다.


휘리릭! 휘릭! 휘익!


뿌리가 깨무는 뱀처럼 마구잡이로 찔러왔다.

빅터는 공격을 피하다가 검을 뽑아 휘둘렀다.


서걱!


정신사납게 펄떡거리던 나무 뿌리가 잘려나가 툭 떨어졌다.

빅터는 검을 내리고 리카르도를 봤다.

그의 옷소매가 꿈틀꿈을 부풀더니, 아까와 같은 뿌리가 다섯갈래 뻗어왔다.


콰드드득!!!


한 뭉치로 엮여서 날아오던 뿌리가 갑자기 다섯갈래로 쩍 갈라져 빅터를 동시에 공격했다.

머리와 두 팔, 두 다리를 단번에 낚아챌 기세였다.

베어내려고 해도 제멋대로 요동치는 탓에 제대로 공격하기도 어려웠다.

두 다리가 급류에 휩쓸린 것처럼 균형을 잃었고, 거의 동시에 머리와 팔을 향해 뿌리가 날아들었다.

칼을 휘두를 여유도 없어서, 빅터도 촉수를 뻗어 대응했다.

반투명한 촉수의 다발들이 뿌리를 휘감아 우드득 으스러뜨렸다.

찢어진 나뭇조각들이 후두둑 덩어리져 떨어졌다.


“방금 그건 뭐였죠?”


리카르도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빅터는 아직도 꿈틀대는 뿌리를 발로 콱 밟으며 대꾸했다.


“내 힘.”


“마법사에요?”


“아니.”


“그럼 성기사?”


“비슷하지.”


“성기사는 신을 모시죠?”


리카르도의 목소리 저변에 적의가 서려있었다.


“그럼 똑같은 도둑의 노예네요?”


콰드드득 우지지지직—


바닥을 가르며 나무가 솟아올랐다.

메이의 일행을 일격에 날려버렸던 거대한 나무기둥이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자라난 나무에 열매가 뭉텅이로 맺히더니, 리카르도의 지휘에 맞춰 돌풍이 불어닥쳤다.

반투명한 껍데기 안에 산성 액체가 찰랑거리는 기괴한 열매가 퍼부었다.


퍽! 퍽! 퍽! 퍼억!


치이이익—


터져나온 산성액이 대지를 늪처럼 녹였다.

아니, 산성액이 녹인게 아니었다.

리카르도가 마른 흙을 늪처럼 변질시켰다.

두 다리가 무릎까지 늪에 빠져버렸고, 머리위에는 산성 열매가 퍼부었다.

빅터는 늪 바깥 멀리로 촉수를 뻗어, 마른 땅을 짚고 몸을 힘껏 끌어당겼다.


퍼퍼퍼퍼퍽!!


무시무시한 기세로 열매의 비가 쏟아졌다.

리카르도의 지휘에 맞춰 바람이 방향을 틀었다.

바닥에 울렁거리는 늪이 해수면 가까이 올라온 상어처럼 빅터를 쫓아왔고, 바람을 타고 날아온 열매가···

폭발했다.


콰앙!


빨간 불꽃이 열매에서 터져나왔다.

방금전까지 맺혔던 것과 다른 열매였다.

폭발의 충격 때문에 잠깐 귀가 먹고 눈앞이 어질한 찰나.

다시 발밑이 늪에 푹 빠져버렸고, 커다란 대지의 아가리가 빅터의 양 옆에서 솟아나와 그를 깨물었다.


까앙—!


양 옆에서 조여드는 아가리 사이에 칼날을 끼워넣었다.

바위 이빨을 가진 턱이 빠직빠직 금이 갈라져 부서졌다.

바위턱을 부순 빅터는 다리를 끌어올려 늪을 벗어났다.

그런 다음 반격하려고 검을 들려다가,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공기가 건조했고, 머리카락이 저절로 떠올랐다.


번쩍—! 번쩍번쩍번쩍번쩍!!!


콰르르릉—!!!


번개가 빅터에게 내리쳤다.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에서 서서히 소용돌이쳤다.

리카르도의 마법을 눈치채고 미리 촉수로 온 몸을 감싸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번갯불에 그대로 타죽을뻔 했다.


“방금 공격은 막기 힘들었을텐데요.”


리카르도가 신기하다는듯 물어왔다.


“아슬아슬하게 버텼어.”


“어떻게요?”


빅터가 간단히 대꾸했다.


“신의 힘으로.”


리카르도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도둑들이 그런 힘을 빌려줄리 없어요.”


“신들을 아나?”


“도둑이라는건 알아요. 우릴 속여, 우리들의 것을 훔쳐갔죠.”


리카르도가 손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그의 손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금빛 태양이 하사하던 금빛 불이 아니라, 숲과 산을 불태우는 무시무시한 붉은 불꽃이었다.

살아있는 짐승처럼 거칠고, 굶주렸으며,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졌다.


화르르륵!!


장밋빛 불꽃이 굶주린 늑대처럼 온 사방을 덮쳐왔다.

빅터는 검에 신성력을 입혀 크게 휘둘렀다.

오로라를 닮은 신성력의 장막이 불길을 파도처럼 밀어냈다.


이정도 싸웠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카르도.”


또 뭔가 공격하려던 리카르도가 멈칫했다.

새삼 보니, 그는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왜요?”


“심록의 관을 죽이겠다고 했지?”


“그래요. 날 막을 거에요? 그 성녀처럼?”


“아니.”


메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죽은 노튼이 내뱉은 말도 기억났다.

더이상 신들을 죽이리 마라.

아홉 신들이 서로 전쟁을 벌일 것이다.

그건 빅터가 이미 겪은 미래보다 더 끔찍할 것이다.


‘그건 겪어보지 못한 놈들의 무책임한 충고다.’


빅터는 결정했다.

그는 리카르도에게 들리도록 분명히 말했다.


“나는 이미 두 명의 신을 죽였다.”


리카르도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리고 앞으로 더 죽일 생각도 있어. 리카르도. 심록의 관을 죽이는걸 도와줄테니까.”


빅터가 칼끝을 내리고 손을 뻗었다.


“내 동료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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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가을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1- +1 23.03.17 2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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