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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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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2.10.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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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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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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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예선전 -6-

DUMMY

정신차렸을 때는 낯선 방에 갇힌 뒤였다.

침침한 눈을 깜빡이고 다시 살펴보자, 임시 숙소 건물이었다.


“이름.”


빅터는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다짜고짜 고자세로 이름을 묻는걸 보니까,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금새 파악됐다.


“빅터 루멘.”


“나이.”


“프레지아 감찰과 소속 요원이시죠.”


요원은 힐끔 쳐다보는 척도 안했다.


“나이.”


“그런건 길드원 명부에 다 나와있지 않습니까. 서로 시간낭비 하지 말고, 바로 용건으로 들어가시죠.”


“거기서 뭘 하고 있었지?”


“딱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감찰과 요원은 당연히 듣는 척도 안했다.


“거기서 뭘 하고 있었지?”


“그러니까···.”


“뭘 하고 있었지?”


인형처럼 같은 말을 따박따박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빅터는 무슨 신이 씌였나 잠시 고민했다.


“갑자기 수상한 기운을 느껴서, 한번 찾아가 봤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 보니까, 웬 사람이 있더군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로브를 덮어쓴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뭐라 혼잣말을 중얼거렸습니다.”


그제서야 감찰과 요원의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경이로운 속도로 빅터의 말을 필사했다.


“그 다음은?”


“갑자기 혼자 불타 죽어버렸습니다. 당황스러워 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 때 마침 요원님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감찰과 요원은 필사를 멈추고 빅터를 봤다.


“혼자 있었나?”


맥스와 함께 있었다.


“예. 혼자 있었습니다.”


“싸우지는 않았겠지.”


죽은 이교도는 빅터의 손으로 숨통을 끊었다.


“싸우지 않았습니다.”


“프레지아 길드 규칙을 알고 있나?”


“너무 많아서 전부는 모릅니다.”


“잘 알아두는게 좋을거다. 프레지아는 대륙 최고의 길드. 최고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삐져나온 손톱을 자르는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으니까.”


이상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길드원의 일탈을 삐져나온 손톱 정도로 치부하나?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대답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 줬다.

그러고 나서도 감찰과 요원은 시답잖은 질문들을 퍼부었다.

가끔은 의심스럽다는 기색을 숨긴채, 슬쩍 떠보기도 하고.

유도 심문은 너무 자연스레 섞어서 잘 티도 안났다.

어쨌거나 대륙 최고 길드 감찰과 요원다웠다.


“더이상 물어볼게 남아있습니까?”


“나중에 또 연락할지 모르니, 연락 닿는 장소에서 대기하도록.”


아직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는 뜻.

그렇다고 딱히 불만은 없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찰과 요원이 먼저 자료를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빅터는 수면에 돌을 던져보기로 했다.


“죽은 사람이 누군줄 아십니까?”


“모른다.”


“벌레구름 신의 힘을 쓰더군요.”


찰나였지만, 감찰과의 움직임이 어색했다.


“그렇군.”


“하지만, 이상하지 않습니까. 벌레구름 신은 죽었는데, 어떻게 그 신도가 신의 힘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거냐. 신이 죽었다니?”


알면서 모른척하는게 뻔했다.

하지만 빅터는 잠깐 어울려 주기로 했다.


“모르셨습니까? 노리엄에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대륙 최고 길드의 감찰과 요원이라시길래, 아시는줄 알았습니다.”


“소문 퍼뜨리기 좋아하는 뜨내기들이 퍼뜨린 헛소문이겠지. 그런 헛소문에 휘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충고 감사드립니다.”


감찰과 요원은 수상하다는 눈으로 빅터를 슥 봤다.

그리고 또 그가 방을 나서려고 문턱을 밟는 순간.

빅터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신을 잃어버린 이교도가 프레지아 길드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요원은 대답하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놈은 들어버렸으니까.

한번 겪어버리면, 경험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일단 들어버린 이상, 저놈은 빅터의 말을 신경쓸 것이다.


‘세실리아가 감찰과를 이용해 나를 견제한다면···.’


감찰과 요원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요원이 빅터의 마음을 헤아리는 틈을 타서, 빅터는 낡은 어둠의 권능을 빌려 요원의 기억을 헤집었다.

그 결과. 꽤나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감찰과의 우두머리는 세실리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찰과가 세실리아를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의심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그들은, 자기들의 상관조차 의심하고 있었다.

세실리아가 아는 정보가 전부 감찰과로 흘러간건 아니다.

당장 빅터를 취조했던 그 역시도, 죽은 이가 이교도라는 사실은 몰랐다.


‘그렇다면 나도 감찰과를 이용해 세실리아를 견제한다.’


결국, 불리한건 없었다.

생각만큼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

빅터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감찰과 요원과 몇 시간이나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건물 밖을 나오자마자 뒤에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직진해서 두 거리를 가로지르고. 모퉁이를 두어번 돌았을까.

맥스가 말을 걸어왔다.


“어땠어?”


“의외로 불리한 상황은 아니더군.”


“뭐?”


“감찰과도 세실리아를 의심하고 있어.”


“자기네들 상관을? 왜?”


“세실리아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서. 덕분에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맥스.”


“뭔데?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그냥.”


“감찰과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을것 같아. 그놈들은 지금 이교도가 길드에 숨어든 사실도 몰라.”


“그게 가능해? 감찰과가?”


“세실리아 짓이겠지. 프레지아 길드의 최고 명령권자가 그녀니까.”


“허. 대체 무슨 생각이래?”


“중요한건 그게 아냐 맥스. 감찰과는 이교도가 있는줄도 몰랐는데, 내가 오늘 이교도 이야기를 했어. 그럼 놈들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글쎄. 난 도둑이지, 도둑 잡는 사람은 아니라서.”


“일단 조사에 들어갈거야. 하지만 세실리아는 조사를 방해하겠지. 그 때, 우리가 끼어드는거야. 이교도를 잡아 바쳐서 감찰과와 친해지는거지.”


“쯔쯔즛. 이럴때는 영락없는 기사구만.”


맥스가 한심하다는듯 혀를 찼다.

빅터가 발걸음을 멈추고 맥스를 돌아봤다.


“더 좋은 수가 있나?”


“있지. 야 빅터. 이교도를 찾은 다음에, 간단한 소란을 일으키는게 훨씬 나을걸.”


“무슨 차이지?”


“그럼 감찰과가 직접 이교도를 잡겠지. 우리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어.”


“잠깐만······.”


레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프레지아 길드가 빅터의 적이다.

그는 앞으로 감찰과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감찰과가 대체 어떻게 싸우는지, 어느정도 실력을 가졌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

여기서 맥스의 의견을 따른다면, 빅터는 감찰과가 이교도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과연. 해볼만한데.”


“그렇지? 우리가 나서서 싸울 필요가 없다니까.”


“그럼 맥스. 일단은······.”


퍼펑—!!


멀리 경기장에서 폭죽이 터졌다.

드디어 오늘 경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빅터와 맥스는 떨어지는 불꽃을 보다가, 서로를 마주봤다.


“놀러갈까.”


먼저 맥스가 입을 열었다.

빅터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자는 저벅저벅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



“축제야 축제!”


오스카는 비행선 식당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좋게 말하면 축제 분위기고, 나쁘게 말하면 엉망진창이었다.

천장에 반짝거리는 장식을 달고. 벽에도 달고. 심지어 바닥에도 달았다.


“오스카! 바닥엔 왜 달았어요?!”


루아가 이상한데 달아둔 장식을 휙 떼어냈다.

그 사이에 오스카는 새로운 장식을 턱 붙였고, 결국 루아의 행동은 별 의미도 없었다.

부엌에서는 니나가 야심차게 요리를 한다고 혼자 달그락거렸다.

맥스는 부엌 문간을 계속 기웃거렸는데, 벌써 10분동안 같은 곳을 맴돌았다.

구석에는 레벤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잠깐 눈이라도 붙이는지. 그는 모자를 눈밑까지 푹 눌러썼다.


“레벤. 어땠어. 할만해?”


레벤이 모자를 슬쩍 들고 대답했다.


“이상할만큼 쉬웠다.”


“그래?”


“어제 전투와 비교하면, 오늘은 애들 장난이야. 세실리아가 대진표를 조작한건 틀림없다. 하지만, 목적은 아직 몰라.”


“방심하지 말아야겠는데.”


레벤이 부엌 어귀에서 서성거리는 맥스를 힐끔 째려봤다.


“맥스한테는 내가 전해주지.”


“내버려 둬. 잠깐 꿈에 빠진다고 별 문제는 없을테니까.”


레벤은 의외로 맥스에게 호의적이었다.

전생에는 늘상 티격태격 하던 사이였는데.

이번 생에는, 뭐랄까.

레벤이 맥스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느낌이었다.


“알았어 레벤. 그럼 마저 수고해 줘.”


레벤은 도로 모자를 눌러쓰고 조용히 앉았다.

이제 빅터는 오스카와 루아에게 다가갔다.

오스카의 뒤를 따라다니며 장식을 뜯던 루아도, 이젠 포기했는지 옆에서 같이 장식을 붙이고 있었다.


“오스카. 축배를 드는게 너무 이르지 않아?”


“아! 빅터. 내 친구! 괜찮아. 난 축배가 많거든. 그것보다 오늘 경기 봤어?”


“봤어. 잘 싸우던데.”


“그렇지? 자.”


오스카가 빅터에게도 장식을 떠넘겼다.

얼떨결에 장식을 받은 빅터를 향해 오스카가 미소를 지었다.


“너도 붙여!”


“아니. 사양하지.”


“왜? 재밌는데. 한번 해보기는 하지 그래?”


그대로 돌려주려던 빅터는 결국 식당 벽에 장식을 붙였다.

금박이 반짝거리는 싸구려 별이 벽지에 떠올랐다.


“거 봐. 재밌지?”


“......어쨌든. 오스카. 이번 무투 대회 말인데······.”


“잠깐! 오늘은 더이상 대회 이야기 금지야!”


오스카가 대뜸 빅터에게 고개를 휙 돌리고 명령했다.


“중요한 이야기······.”


“금지야 빅터. 오늘은 푹 쉬자고! 다들 애썼잖아. 안그래?”


“그러니까······.”


그 때. 부엌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다.

달그락거리며 집기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고, 곧 커다란 뭔가가 두둥 나타났다.

초콜릿 케이크였다.

들고있는 니나의 상반신이 전부 가려질만큼 큰 케이크였다.

그래서 맥스가 앞쪽에서 케익을 잡고, 방향을 잡아줬다.


“봐 빅터. 이런 좋은날에 대회 이야기를 해서 뭐하겠어. 오늘은 그냥 쉬자. 응?”


대꾸하려던 빅터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낡은 어둠이 내려준 촉수가 멋대로 오스카의 정신을 건드렸다.

그의 사고와 감정이 빅터의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동안 이어진 긴장감.

언제 어떤 적과 마주칠지 모른다는 긴장감.

예선 통과는 그걸 해소할 핑계였을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언젠가 꼭 해소해야할 긴장감이기도 했다.


“자. 잔을 들까.”


오스카가 웃으며 빅터에게 유리잔을 건넸다.

그의 뜻을 이해한 빅터는 유리잔을 받아들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다들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빅터를 쳐다봤다.


“왜?”


“식전 기도나, 축사나, 뭐 할거 없어? 성기사잖아?”


“어흠. 그러면······.”


빅터가 잔을 높이 들고 말했다.


“우리의 앞날에 축복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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