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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손형제 님의 서재입니다.

신나는 아포칼립스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은손형제
작품등록일 :
2020.05.11 15:18
최근연재일 :
2020.06.13 14:26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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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1
추천수 :
568
글자수 :
194,349

작성
20.05.25 11:01
조회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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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서울행 2

DUMMY

난 고개를 틀어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피했다.


-콱!


맨주먹이 아스팔트에 꽂히며 으깨지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맞았으면 한 방에 리타이어했을 것이다. 다시 치켜진 그의 주먹은 피떡이 되어있었다. 고통에 못이겨 바닥을 구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감염자다. 상처따윈 아랑곳없이 다시 주먹을 내지른다.


더 이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난 다가올 고통을 상상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으아아아아!”


-퍽! 퍼억! 퍽!


다행히 악을 쓰며 달려든 박현태가 약간 더 빨랐다. 그는 감염자의 뒤통수를 나무배트로 있는 힘껏 내려쳤다. 내게 올라타있던 감염자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어! 죽어!”


박현태는 감염자에게 몇 번이고 나무배트를 내려쳤다. 팔뼈마저 부러진 감염자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지만, 박현태의 안에서 터진 둑을 넘어 공포가 범람하고 있었다.


감염자의 살갗이 찢기고 피가 튀었다.

난 박현태를 뒤에서 말렸다.


“그만, 그만해.”

“놔! 이거 놓으라고···!”


돌아보는 박현태의 표정에서 공포에 기인한 광기가 일렁였다.


“그만해! 안 갈 거야?! 이제 가야 한다고.”

“헉, 헉, 헉, 헉···.”


그제야 진정됐는지 박현태는 숨을 몰아쉬었다.


‘뭐지?’


손바닥에서 마치 비눗물처럼 미끌거리면서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리를 통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너무 놀라서 지린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한쪽 허벅지를, 그것도 바깥쪽만 타고 흐르는 건 이상하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유리병이 퍼뜩 떠올랐다.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윽···!”


깨진 유리조각에 찔린 손가락 끝에 따끔함이 스쳤다. 손을 빼서 보니 핏방울이 고인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유리병이 산산히 깨진 것이다.

난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 호흡 멈춰요!”


내 갑작스런 외침에 이송칸에 딸을 실은 서희주와 박현태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뭐?”

“갑자기 왜요? 무슨 일이에요?!”

“아무래도 내 점퍼에 들어있던 유리병이 깨진 것 같아요.”


영문을 모르는 서희주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유리병이 왜요?”


하지만 유리병이 무엇인지 떠올린 박현태는 눈을 부릅뜬다.


“그게 깨졌다고?!”

“그래.···”


앰뷸런스를 타지 말고 저들과 따로 가야하나?


그때, 이송칸 안에 알코올병이 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아직 늦지 않았다. 호흡기를 통해 직접 들여마신 것도 아니고, 그저 바지와 걸치고 있는 점퍼가 좀 젖었을 뿐이다. 손가락을 끝을 찔린 게 찝찝했지만, 소독용 알코올이라면 늦기 전에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희주 씨, 앰뷸런스 이송칸 안에 알코올이 있는지 좀 봐주세요.”

“알코올은 갑자기 왜요? 유리병이 뭔데 그래요?”

“어서요!”


내 성화에 서희주가 알코올병을 가지고 나왔다.


“있는 대로 다 주세요!”


그녀는 두 병의 알코올을 더 찾아왔다. 난 그것들을 내 몸에 부었다. 유리병에 베인 손가락도 마찬가지로 소독했다. 부디 효과가 있기를 바라면서.


박현태가 불안에 떨었다.


“이걸로···정말 괜찮을까?”


유리병 안에 바이러스가 들었을 거라고 한 건 나였다. 그가 겁먹은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괜찮을지 어떨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우우우우웅···


적막한 도시의 저편에서 자동차들이 대거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감염자들이 벌써 알아챈 것이다. 확실히 저들의 의사소통은 통신 따위로 하는 게 아닐 것 같다.


“모르겠어. 얼른 타자.”


박현태는 자연스럽게 보조석에 탑승하려고 했다.


“아니야. 희주 씨랑 같이 이송칸에 타.”

“왜?”

“일일이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유리병 안에 든 게 바이러스라면 내 옆에 있는 건 위험하다. 특별히 A급 비감염자를 위해 준비한 거라고 했으니, 더더군다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얼떨떨한 얼굴로 이송칸에 가려하는 박현태를 붙잡았다.


“나무배트 하나는 주고 가.”

“여기.”


박현태는 챙겨 둔 두 자루의 나무배트 중 한 자루를 내게 넘겼다.


-부아아앙! 부웅! 끼익! 끽! 끽!


앰뷸런스에 올라타자 한 줄로 된 도로의 양끝으로부터 감염자들이 탄 수십 여대의 차가 달려온다. 난 운전석에 앉은 채 질끈 눈을 감았다.


‘아무리 통빡을 굴려봐도 이건 도박이야.’


저들이 아직 우리를 해칠 의도까지는 없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아직 감염시키고 싶은 비감염자여야만 한다. 난 거기에 배팅했다.


그들이 타고 온 차에서 내려 앰뷸런스를 향해 뛰어올 때,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박이 성공했다.


그리고 감염자들의 뒤로 수십 여대에 달하는 차가 멀리서 꼬리를 물고 달려왔다.

우리를 포위한 채 다가오는 감염자들을 바라볼 때, 계기판 옆에 달린 이송칸과 소통할 수 있는 인터폰을 통해 박현태가 외쳤다.


[얼른 출발 안하고 뭐해?!]


“기다려.”


아직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감염자들을 이쪽 도로로 끌어들여야 한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버틴다.


-쿠쿵! 쿠쿵! 쿠쿵!


궁지에 몰린 심장이 점점 더 빠르고 거세게 혈류를 쥐어짠다.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엑셀을 밟고 싶다고 꿈틀거리는 발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 사이 앰뷸런스로 다가온 감염자들이 앰뷸런스의 유리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콱! 콰직! 콱!


[안 서두르고 뭐하냐고!]


박현태의 절규와 함께 난 이를 악물고 후진기어를 넣었다.


-부우웅.


후진우회전을 하자 앰뷸런스의 정면으로 세종정부청사 건물이 보인다.


직선으로 난 도로의 양 옆이 감염자들의 차량에 의해 막힌 지금, 유일한 탈출구는 정부청사 뿐이다. 정부청사의 벽면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있지 않았다면, 이런 탈출계획은 꿈도 꾸지 못 했을 것이다.


“꽉 잡아!”


주행에 기어를 놓고 엑셀을 밟았다.


-부우우우우우웅!


앰뷸런스를 앞에 보이는 정부청사 건물의 현관을 향해 몰았다.

이것이 내가 세종시 도심 지역을 빠져나가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다.


-콰창창창!


앰뷸런스가 유리창을 박살내고 정부청사건물의 현관에 진입하자 박현태가 비명을 질렀다.


[역시 너무 무모하잖아!]


‘그만 입 닫아라, 혀 깨문다.’


일일이 인터폰을 집어들고 대꾸할 시간이 없었다. 집중해야 한다. 기둥을 피해서 달려야 했고, 무엇보다 정부청사 안에 있던 감염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쿠쿵! 쿵! 퍼걱!


한순간이라도 조작을 잘못해서 멈춰서게 되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부아아아아앙! 키기기기긱!


앰뷸런스는 휘황한 대리석이 깔린 청사의 현관을 내달렸다. 대리석은 마찰력이 부족한 탓에 바퀴가 곧잘 미끄러졌기에 더 집중해서 차를 몰아야 했다.

이윽고, 반대편으로 통하는 입구가 뚫리게 될 유리창이 나타났다.


-콰장창!


망설일 것 없다. 엑셀을 꾹 즈려밟은 채 유리창을 박살내고 통과했다. 계기판 옆에 있는 인터폰에서 당황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엔 서희주였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지희나 침대에 단단히 고정시켜요! 희주 씨도 안전벨트 매고요!”


‘앰뷸런스 이송칸에 안전벨트가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디 무사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유리창을 깨고 나오니 예상대로 도로는 비어 있었다.

조치원이 있는 방향을 향해 운전대를 힘껏 틀었다.


-끼이이이익!


앰뷸런스가 기우뚱 할 때는 나도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차체는 제자리를 찾았고, 난 비어있는 도로를 내질러 세종로에 올라탔다. 그러자 탈출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감염자들이 따라붙었다.

앰뷸런스의 백미러로 새까맣게 따라붙은 감염자들의 차가 비쳤다.


기분 탓인지 두통이 머리를 옥죄기 시작했고, 눈동자의 초점이 한번씩 어그러졌다.


“젠장맞을. 끈질긴 새끼들.”


난 고개를 털어 눈동자의 초점을 바로잡았다.


평소라면 내 앞에서 차들이 달리고 있어야 할 세종로 또한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부아아아아아앙!


어찌나 정신나간 가속을 했는지, 앰뷸런스는 차체가 곧 부숴질 것처럼 덜컹거렸다.


그래도 이대로 깨끗하게 뚫려있는 도로를 달리기만 하면 된다. 세종로는 조치원까지 뚫린 가장 빠른 길이기에 이 속도라면 앞으로 2~3분안에는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철로 된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어 반대편 차선에서 진입한 차가 우리의 진로를 막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법이 있다면 하나뿐이다.


‘조치원에서부터 역행해서 오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조치원은 아직까지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주행 해 올 차량도 없다!


‘···라는 건 헛된 망상이었나···’


도저히 뚫고 지나갈 수 없는 거대한 트럭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조치원인데, 조치원역이 멀지 않은 곳에서 난 멈춰서야만 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차들이 늑대무리처럼 우리를 포위했다. 차에서 내린 감염자들이 하나, 둘 씩 다가온다. 그들이 다가올수록 내 머리통을 옥죄는 두통도 빠르게 심해졌다.


“씨발···”


욕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막힌단 말인가?

보조석에 놓아둔 나무배트를 움켜쥐었다.


“그래, 끝장을 보자.”


이를 갈아붙였다.

할 수 있는데까지 저항하고, 손발이 움직이는 한 몸부림 칠 것이다.


-왜애애애애애앵! 왜애애애애앵!


무언가를 잘못 건드렸는지 앰뷸런스의 싸이렌이 울렸다. 싸이렌 소리가 마치 내 안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아우성같았다. 여기서 잡히면 저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거나, 더 한 꼴이 될 것이다.


[어떻게 된 거예요? 도착했어요? 왜 멈췄어요?]


인터폰으로 묻는 서희주에게 차마 실패했다고 말 할 수가 없었다.


[왜 멈췄냐고, 새끼야!]


서희주가 절규를 뒤로하고 난 차에서 내렸다.


이제 백여 명에 달하는 감염자들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될 수 있는대로 몸부림치려 했건만.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자, 내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심장박동에 맞춰 머리가 욱씬거리더니 내 앞에 펼쳐진 시야가 핑하고 돌았다. 아스팔트 바닥이 내 쪽으로 솟구쳤다. 아니, 내가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졌다.

차디찬 아스팔트의 냉기를 느끼며 난 체념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이대로, 이대로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 같은 나 자신을 속이는 말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그저 살고 싶다. 일분 일초라도 더 나 자신으로서 살고 싶다.


생에 대한 절박함으로 다시 일어나려던 그때, 새카맣게 몰려든 감염자들의 등 뒤에서 투박한 엔진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확성기를 통해 증폭된 경고음이 들렸다.


[경고합니다. 감염자들은 물러서십시오. 물러서지 않으면 발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물러서십시오. 물러서지 않으면···]


마치 호숫물에 잠기듯 소리가 멀어진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작가의말
과연 서문혁은 세종시를 벗어나 조치원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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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서울행 4 +4 20.05.27 392 13 13쪽
17 서울행 3 +6 20.05.26 405 14 15쪽
» 서울행 2 +4 20.05.25 416 9 11쪽
15 서울행 +4 20.05.24 430 14 11쪽
14 도시탈출 9 +4 20.05.23 466 15 12쪽
13 도시탈출 8 +6 20.05.22 464 17 11쪽
12 도시탈출 7 20.05.21 486 21 14쪽
11 도시탈출 6 +2 20.05.20 507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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