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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손형제 님의 서재입니다.

신나는 아포칼립스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은손형제
작품등록일 :
2020.05.11 15:18
최근연재일 :
2020.06.13 14:26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4,763
추천수 :
568
글자수 :
194,349

작성
20.05.24 14:07
조회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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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서울행

DUMMY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아니, 이건 갖다 붙인 핑계일 뿐이다. 사실은 한시라도 빨리 이 도시를 빠져나가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고 싶었다.


에스컬레이터를 걸어내려가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가죽으로 감싸여진 스마트키의 고급스러운 촉감을 느끼며 ‘열림’ 버튼을 눌렀다.


-삐빅!


결코 낙관적으로만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인데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개장수가 애지중지하던 롤스로이스가 내 손아귀에 떨어졌다니. 정말 어른들 말씀대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고급스러운 카시트에 앉아 시동을 걸자.


-으르르릉.


명차의 대명사, 롤스로이스는 낮은 배기음을 토했다. 롤스로이스를 몰고 그림처럼 지하주차장을 나섰다. 이런 죽이는 승차감을 오래 누리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정도였다.

왜냐하면 차단봉에 막힌 지하주차장의 입구 앞에서 시동을 껐으니까.


‘지금쯤 현태도 타고 온 아반떼에 탔겠지?’


별 다른 소요가 없는 걸 보니 현태는 H플러스 빌딩 옆에 세워 둔 차를 확보했을 것이다.


서희주는 자신의 딸과 함께 언제든 뛰쳐나올 수 있도록 빌딩의 1층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도시와 작별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앰뷸런스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앰뷸런스가 다니는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지만, 이런 매복작전을 기획했다.


1시간, 2시간 그리고 3시간이 지나갔다.


점차 감겨오는 눈을 부비며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덧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 시간이 되도록 앰뷸런스는 물론이고,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 한 명 구경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탈출할 생각조차 안하는 건가?’


여러 가설이 떠오른다.

애초에 이곳에 비감염자들 자체가 얼마 남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들이 탈출에 실패하고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현재 있는 안전장소에서 숨죽이고 있던가.


'아니야. 차라리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아.'


지나가는 사람이 혹시나 감염자라면 우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아귀가 맞물려야 하는 계획이 모두 어그러진다.

이렇게 밖을 바라보며 기약없이 기다리다 보면 애써 덮어뒀던 두려움이 땅을 헤집고 나오는 벌레처럼 의식의 밑바닥을 뚫고 기어 나온다.

몇 번이고 잘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 봤지만,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해결할 수 없는 걱정들은 기다리는 사람의 정신과 체력을 갉아먹는다.


‘아니야, 아니야! 반드시 나갈 수 있어. 그렇게 믿어야 해.’


내 안의 두려움과 싸우는 게 가장 힘들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그것은 날 무릎 꿇릴 테니까.


초조하게 앰뷸런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둠 속을 낮게 울리는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렸다. 엔진소리에 겹친 또 다른 모터소리도 들린다.


‘앰뷸런스?’


근데 엔진소리와 함께 들리는 이 모터소리는 대체 뭘까? 적어도 자동차의 엔진소는 아니다.


난 차안에서 최대한 자세를 낮춘 채 고개만 내밀어 전방을 주시했다.


‘현태가 떨지 말고 잘 해내야 할 텐데···.’


위기상황만 닥치면 벌벌 손을 떨어대는 현태는 믿음직스럽지 못 한 파트너였다. 그렇게 기대와 긴장이 뒤범벅된 가슴속 심장을 느끼며 눈 앞으로 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나타난 차는 내 기대를 무참히 부숴버렸다.


‘트럭이라고?’


앰뷸런스가 아닌 1t 트럭이었다. 짐칸에는 기관총처럼 생긴 연막기가 실려있었다. 일명 방구차라고 하는, 옛날에는 종종 볼 수 있었던 방역차다.


‘도시를 소독하는 건가?’


하지만 연막기가 뿜어내는 것은 일반적인 희뿌연 연기가 아니었다. 차의 앞유리창을 가리는 연기는 검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요란한 모터소리와 함께 검붉은 연기가 온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검붉은 연기...?’


트럭의 뒤에 따라붙는 다른 차도 없었다. 현재 자유롭게 다니는 이 트럭은 감염자 측의 차량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과연 저 검붉은 연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종시 도심 지역으로 우리를 몰았고, 나가는 걸 용납하지 않아. 그리고 돌아다니는 방역차량···잠깐만.’


난 저게 왜 방역을 위한 연막기라고만 생각하는 걸까? 방역가스를 뿌리기에 연막기라고 불린다. 실상은 무언가를 살포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난 점퍼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유리병을 꺼냈다.


섬뜩한 상상이 내 뇌리에 똬리를 틀자, 팔뚝에 닭살이 올라왔다.


‘밀접접촉을 했음에도 감염되지 않은 A급이라고 했었지···?’


이 병 안에 들어있는 게 만약 바이러스고, 저 살포기의 통에 들어있는 것도 바이러스라면? 우선적으로 세종시 전체를 감염시키는 게 저들의 목적이라면 이제까지 이유를 몰랐던 행동들이 아귀가 맞는다.


감염자들은 우리를 죽여서 없애고 싶은 게 아니다.


저들은 우리를 감염시키겠다는 목적 아래에 움직이고 있다.


자정이 지났다. 박현태, 서희주와 약속한 시간이다. 자정까지 앰뷸런스 탈취에 실패하면 체력을 비축하고 내일 다시 도모하자고.


난 지하주차장을 통해 건물 안으로 복귀했다. 2층 내과로 돌아가자 박현태와 서희주가 진료실에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비단 이곳이 어둡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상황이 점점 그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망할 새끼들···! 진짜 중환자가 여기있는데···”


그녀의 딸은 오늘 처음으로 눈을 뜨고 있었다.


“엄···마···.”

“그래, 지희야. 엄마 여깄어. 엄마 여깄어.”

“아파···. 누가 내 머릿속에서 떠드는 것 같아···.”

“미안해, 지희야. 삼촌들이랑 엄마가 너무 시끄럽게 했지? 내일이면 치료받을 수 있게 엄마가 해줄게.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우리 딸. 내일까지 잘 참을 수 있지?”

“응···”


서희주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의 딸을 달랬다. 지희가 다시 잠든 걸 확인한 그녀는 가운의 소매를 쓱쓱 문대 눈물을 닦았다. 눈빛에서 딸을 살리겠다는 엄마의 독기가 엿보였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건네든 위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난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독이는데는 별 재주가 없다. 내 대신 박현태가 그녀에게 물었다.


“지희는 어때요?”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먹던 약도 다 떨어졌고···.”


서희주가 나를 바라본다. 답을 원하는 것이다. 탈출에 대한 해답을···.


“일단 오늘은 푹 쉽시다. 이 상태라면 앰뷸런스가 나타났어도 제대로 탈취할 수 있었을지 의문일정도니까요. 내일 아침부터 앰뷸런스를 기다려보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다. 그 어떤 확답도, 희망에 찬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이게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니까.


“알겠어요.”


굳이 감염자들이 바이러스를 살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박현태와 서희주, 둘은 이미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었다. 기약없는 기다림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현실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투하하고 싶지는 않았다.



*****



다음날 해가 뜨기 전부터 우리는 동일한 포지션에서 앰뷸런스를 기다렸다.

세시간쯤 지나자 화장실이 가고 싶었지만, 이럴 줄 알고 준비한 빈 페트병에 소변을 받았다. 화장실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가 앰뷸런스를 놓치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와 같은 불안감을 품고 오전을 꼬박 보냈다.


시간은 오후 1시 20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허기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앰뷸런스였다.

구역을 순찰하듯 천천히 도는 앰뷸런스.


‘저걸 몰고 있는 건 감염자일까, 아니면 이 시국에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구급대원들일까?’


그것을 확인하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


-부우우우우우웅! 끼이이이익!


건물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현태의 아반떼가 앰뷸런스의 진로를 막아섰다.


솔직히 말하자면 박현태가 못미더웠는데, 이 정도로 훌륭히 해낼 줄이야.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것도 아반떼를 내가 대기하고 있는 지하주차장의 입구 앞에 멈춰세운, 계획했던 대로의 완벽한 퍼포먼스였다.


앰뷸런스의 운전석에는 여자가 타고 있었다. 방호복도 입지 않고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은 모습.


왠지 정체가 짐작이 갔다.


그녀는 운전석에서 내려 박현태가 타고 있는 아반떼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부웅! 부우웅!


박현태의 아반떼가 뱀을 보고 놀란 황소처럼 공회전을 했다. 이것은 앰뷸런스의 운전자가 감염자라는 약속된 신호다.


‘결국 감염자였나.’


차곡차곡 계획으로 채워두었던 간결한 머릿속이 한순간에 헝클어지며 생각이 복잡해진다. 앰뷸런스의 운전자가 감염자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면 감염자들과 쫓고 쫓기는 드잡이질을 벌일 필요없이 손쉽게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약한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내 몸은 다음 행동이 예약된 기계처럼 차에 시동을 걸었다.


‘현태, 빨리 내려라.’


-으르르릉!


동시에 박현태가 아반떼에서 내리고, 앰뷸런스에서 내린 감염자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며 나와 눈이 마주친다. 10m는 족히 떨어진 거리에서도 선연하게 보이는 저 새빨간 눈동자는 몇 번을 마주해도 소름이 끼친다.


-끼이익! 부아아앙!


급발진한 롤스로이스가 지하주차장의 차단봉을 박살내고 그대로 감염자를 향해 달려갔다.


-쾅!


손에 핏기가 가실 정도로 꽉 움켜쥔 운전대를 통해 사람을 들이받는 섬짓한 감각이 전해진다.

이번이 두번째인데도 여전히 내 심장을 주저앉힐 정도로 섬뜩하다.


훌훌 날아간 감염자는 아반떼와 충돌하고 땅바닥에 엎어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곤죽이 됐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사고다. 그러나 감염자는 충격은 받았어도 치명적이진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지 비척비척 일어났다.


“그래, 젠장! 당연히 한번으로는 끄덕도 안하겠지!”


계획의 다음 단계를 위해 난 내키지 않지만 그녀가 일어나는 걸 두고볼 수 없었다.

짧게 후진을 했다가 일어서는 감염자를 다시 들이받았다.


-쾅!


감염자를 롤스로이스와 아반떼 사이에 낀 샌드위치처럼 만들어버렸다.


“이러면 우릴 방해하지 못하겠지. 미안합니다.”


난 나무배트를 들고 차에서 내려 아반떼와 롤스로이스 사이에 끼어 있는 감염자를 확인했다. 무표정하게 뜬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희번득 내 쪽을 향한다.


“씨발···.”


이들이 아니라 내가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내게 감상에 젖을 틈 따윌 허락하지 않는다.


밖의 상황이 일단락되자 서희주가 딸을 안고 달려나왔다.

지희를 받아든 박현태가 내게 말했다.


“문 열어줘! 얼른!”


난 그들보다 빨리 앰뷸런스의 이송칸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남자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이미 그는 몸을 날려 날 넘어뜨렸다.


-빠각!


점퍼의 주머니쪽에서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거기에 할애할 신경도, 시간도 없었다.


“큭···!”


그는 무표정하게 내 목을 조르며 반대편 주먹을 높이 치켜드는가 싶더니 내 얼굴을 노리고 벼락처럼 내려쳤다.


작가의말

서울로 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14 척추요정
    작성일
    20.05.24 14:55
    No. 1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선호작, 추천 박고 갑니다.

    조금만 조언을 드리자면 주인공의 생각 부분이 연속적으로 나올때 엔터키를 누르고 한줄을 더 띄어 쓰는 것이 독자들의 몰립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시간 남으시면 제 소설도 한번만 놀러와 주세요.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은손형제
    작성일
    20.05.27 10:03
    No. 2

    조언 귀담아 듣겠습니다. 언제 한 번 날잡고 수정해야겠네요 ㅎㅎ. 놀러가겠습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그라시아S
    작성일
    20.05.24 16:09
    No. 3

    재밌게 읽었어요.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은손형제
    작성일
    20.05.27 10:04
    No. 4

    댓글 감사드려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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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장대철 2 +6 20.06.09 186 8 12쪽
30 장대철(소제목 수정) +4 20.06.08 198 6 16쪽
29 서울공항 4 +6 20.06.07 212 8 12쪽
28 서울공항 3 +7 20.06.06 236 10 13쪽
27 서울공항 2 +6 20.06.05 247 8 13쪽
26 서울공항 +8 20.06.04 269 8 13쪽
25 국정원 2 +8 20.06.03 298 12 15쪽
24 국정원 +8 20.06.02 306 12 14쪽
23 중심병원 3 +10 20.06.01 339 14 13쪽
22 중심병원 2 +6 20.05.31 345 16 14쪽
21 중심병원 +6 20.05.30 373 13 14쪽
20 서울행 6 +4 20.05.29 379 12 13쪽
19 서울행 5 +4 20.05.28 392 14 15쪽
18 서울행 4 +4 20.05.27 392 13 13쪽
17 서울행 3 +6 20.05.26 405 14 15쪽
16 서울행 2 +4 20.05.25 416 9 11쪽
» 서울행 +4 20.05.24 431 14 11쪽
14 도시탈출 9 +4 20.05.23 466 15 12쪽
13 도시탈출 8 +6 20.05.22 464 17 11쪽
12 도시탈출 7 20.05.21 486 21 14쪽
11 도시탈출 6 +2 20.05.20 507 17 11쪽
10 도시탈출 5 +4 20.05.19 538 22 11쪽
9 도시탈출 4 +6 20.05.18 578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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