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군납비리란 없다 - (1)
“한국의 군납 비리는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요?”
“역시 가장 유명한 건 국민방위군 사건이죠. 양무호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분도 있겠지만, 그건 논란이 있는 영역이니까 제외하겠습니다.”
이곳은 서울의 어느 스튜디오,
나는 카메라 앞에서 군납비리 관련 썰을 풀어냈다.
군납비리는 일어나선 안 되는 사건,
하지만 그 군납비리로 세계 역사가 뒤집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청나라가 무기 회사에서 훈련용 진흙 포탄을 납품 받았다가 일본군에게 대패한 사건도 있고, 중화민국은 장성들이 미국에서 지원받는 물자를 빼돌린 탓에 중원의 패권을 잃었다.
그럼 한국은 그런 일이 없었을까?
국민방위군 사건은 입에 담기도 싫은 군납비리 사건,
당시 한국정부 관계자들은 군대에 책정된 예산 200억 중 70억 이상을 말 그대로 홀랑 해드셨다.
이 사건 때문에 국제 사회가 분노했을 정도, 그 여파로 한국은 부패 국가로 낙인 찍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한국을 지원한 건 오로지 미국 뿐,
미국은 한국에 약 28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그 중 대부분은 군사 비용이나 민간인의 의식주 개선 비용으로 쓰였다.
돈을 지원 받았으면 자체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산업기반을 세워야 되는데, 미국이 떨궈주는 젖만 받아먹는 기생형 경제를 유지했던 것,
침략을 받은 위기 상황에서도 국가를 지키기 위해 민관이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렇게까지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진 않았을 거다.
그래서 한국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건 언제부터인가?
재미있게도 이것 역시 군납비리와 관련이 있다.
‘한국이 뭐 제대로 싸우겠어?’
‘그냥 허수아비로 세워둬야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한국이 제대로 싸울 거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미군이 M – 16 소총을 들고 싸우는데 한국군은 칼빈 소총이나 들고 다녔던 게 그 증거,
그래도 미군을 도우러 온 군대인데 보급은 제대로 해줘야 할 거 아닌가.
이게 한국군이 미국에 소총을 잃어버렸다는 거짓말을 한 이유,
미국이 제대로 보급만 해줬어도 한국군이 소총을 빼돌렸겠나?
물론 전쟁이 길어지고 반전 여론이 강해지자 미국은 한국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그때부터는 보급이 제대로 이뤄졌다.
전쟁특수는 덤,
한국 군인들은 전장에서 노획한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M – 16 소총을 한국으로 밀반출 했다.
여기에 미국군을 따라다니며 배운 기술은 덤,
당시 대베트남 경제활동 수익은 한국 수익의 38%를 차지할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용병 노릇을 하며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는데, 베트남 전쟁 특수가 있었기에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아닌가?
물론 그 과정에서 전문용어로 ‘삥땅’이라는 게 이뤄지긴 했지만 그건 한국이 최빈국이었다는 것도 고려해 줘야 한다.
‘뭐 어때? 미국 콩고물 좀 받아먹겠다는 건데?’
‘우리만 그런 거 아니잖아?’
그리고 따지고 보면 미국의 용병 노릇하면서 경제 발전한 나라는 한국 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소련,
소련의 국력과 생산력으로 나치 독일을 찍어누르는 게 가능했나?
소련의 국력이 어느 정도인지 눈치채고 있던 미국은 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물자를 퍼부었다.
2000대가 넘는 전차는 물론이고 농기구 – 종자까지 지급,
덕분에 소련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온 거지 예전에는 끼니도 챙겨먹기 어려울 정도로 나라가 막장이었다.
소련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키워준 것,
그런데 미국 용병 노릇하면서 베트남과 싸운 역사가 그렇게 부끄럽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미국 VS 추축국의 싸움이었죠. 영국은 당시 국력이 형편없이 떨어져서 2개 사단도 겨우 운영할 정도였는데,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독일과 싸울 수 있었을까요? 소련은 말할 필요도 없죠. 그리고 미국의 지원 덕분에 경제 특수를 누린 것도 사실이고요. 저는 베트남 전쟁이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손톱깎이 하나 못 만들어내던 한국이 오늘 이렇게 성장한 건 그때 미국을 빨아먹은 덕분이니까요. 솔직히 빨아먹을 일이 앞으로도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하하하 ~ 그렇습니까?”
이 인터뷰로 나는 여론의 논란에 휩싸였다.
베트남에서 수많은 전쟁 범죄를 일으킨 한국,
그 역사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는데, 전쟁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거기다 한국이 미국이 떨궈주는 돈을 쪽쪽 빨아먹은 게 그렇게 자랑할 일이냐는 비난도 따라붙었다.
[배가 부른 놈들의 헛소리일 뿐, 굶으면서 정의를 논할 수 있는가?]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경제발전을 이끈 옛 세대와 달리 현 세대는 굶어보지 않았으니 저딴 정의론을 앞세우는 것,
미국이 사방에 떨궈준 지원금이 없었다면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은 다 망했을 거다.
그걸 부정한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도 다 부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쓸데없는 정의론에 빠진 인간들,
우크라이나 전쟁 덕분에 한국이 얼마나 많은 포탄을 수출했나.
유럽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폭탄보다 한국이 지원한 포탄이 더 많을 정도,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군을 몰아내기 위해 매달 9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걸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불할 것 같나?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자금을 지원하면 그걸 한국이 쪽쪽 빨아먹는 것,
그게 현실이다.
“미국이 포탄을 증산해도 목표량의 1/10 밖에 채울 수 없다. 한국에 증산을 더 요구할 예정이다.”
미국도 한국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 중,
한국은 전략물자 수출입고시에 따라 살상 무기를 해외에 수출할 수 없지만, 미국이 허락한 이상 거칠 게 없다.
앞으로도 한국이 생산한 포탄의 최종 사용자는 ‘미국’으로 세탁될 것이고, 그 포탄은 우크라이나에 지원되겠지.
그게 현실이고 국익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다.
이런 나를 괴물이라고 욕 한다면 그것도 본인의 자유, 분명한 건 이 와중에도 포탄 생산은 계속되고 있다는 거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는 미국을 위해 대리전을 치르고, 한국은 그 중간에서 이득을 챙기는 구조,
그게 세상인데 어쩌겠나.
나는 이후에도 외부의 압력과 상관없이 소신을 지켰다.
⁕ ⁕ ⁕
“더러운 놈들!!”
“이것도 급료라고 주는 거냐?!!”
“확 뒤집어 버려!!”
“어? ··· 어?”
이곳은 어디인가.
분명 나는 원고를 쓰다가 책상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흥분한 군인들이 창고지기를 두들겨 패고 있는데, 왜 나는 여기에 멀뚱히 서 있는 건가.
거기다 내가 눈을 뜬 이곳은 미래 사회가 아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일단 상황파악부터 해야겠지, 일단 손에 쥐고 있는 뭔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쌀? 모래?’
뭔가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데 이제야 감이 오기 시작했다.
13개월이나 밀려 있던 군인 급료를 지급한 조선 정부, 그런데 그것도 겨우 한 달 분량이었다.
이런 막장 상황에서도 조정은 군인들의 불만을 다독이기는 커녕, 이 사건의 원흉을 조사관으로 임명하는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제는 이 사건이 단순한 군인들의 소동으로 끝나질 않는다는 것,
구식 군인들은 이제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거나 머릿수를 늘려 왕궁으로 진격하는 엄청난 계획을 세울 거다.
이 과정에서 청나라 – 일본군의 난입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던가.
갑신정변 - 동학 농민 운동 – 갑오사변 – 청일전쟁 – 러일전쟁 – 을사조약으로 이어지는 테크 트리,
따지고 보면 임오군란이 이 막장 전개의 시발점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가?
13달이나 급료를 못 받은 군인들에게 잠시 진정하라는 설득이 먹힐 것 같나.
일단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왔다.
“와 ~ 미치겠네. 이걸 어떻게 하지?”
이미 막장 테크를 타기 시작한 조선,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조선이 군납비리로 망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라는 건가.
일단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선혜청의 관료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전하, 올해는 흉년인데, 나라 곳간이 다 비었습니다. 그래서 13달 동안 월급을 주지 못한 겁니다. 그래도 이번에 한 달 치 급료를 지급하려고 했는데 ··· 그 과정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아니, 급료를 13달이나 주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그 한 달 치가 또 무슨 문제가 된 건가?”
이곳은 경복궁,
고종은 신료들에게 어제 일어난 사건의 보고를 받았다.
구식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창고지기를 폭행했다는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가.
양심이 남은 신료들은 전후관계를 이실직고 했다.
“산지에서 쌀을 수송하다 보면 상하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닌 줄로 아룁니다.”
“그래서 문제가 뭐란 말인가?”
“정말 나라 곳간이 비었다면 구식 군인 뿐만 아니라 신식 군인들도 급료를 받지 못했겠지요. 똑같이 나라를 위해 훈련을 하는데, 누구는 급료를 받고 누구는 급료를 받지 못한다면 불만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하하 ~ 경의 말이 옳군. 지난 13달 동안 구식 군인들이 아무 말 없이 참고 있었던 게 더 기가 막히네.”
고종은 혀를 끌끌 찼다.
하루만 급료를 못 받아도 삶이 팍팍할 텐데, 13달을 참았다니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건가.
고종은 즉시 급료를 지급하라고 명했지만 여기저기서 반발이 쏟아졌다.
“전하, 이번 사건을 주도한 자들에게 엄히 죄를 물으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구식 군인들은 오래 전부터 농사나 상업으로 생계를 이어왔습니다. 딱히 급료를 못 받았다고 그들의 생계가 피폐해진 게 아닙니다.”
“그럼 ··· 경은 구식 군인들이 다른 이유로 소란을 일으켰다는 건가?”
“예, 구식 군인들이 본래 대원군의 수족들입니다. 그들이 대원군의 복권을 주장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대원군의 이름이 나오자 고종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막 친정을 시작했는데 여기서 구식 군인들이 대원군의 복권을 주장하다니, 그럼 이번 사건은 단순한 소란이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거 아닌가?
군주가 흔들리면 잡아주는 게 신하의 도리,
하지만 그들은 반으로 갈려 임금을 흔들었다.
“전하, 구식 군인들이 농업이나 상업으로 생계를 꾸린 건 사실이지만 그건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참작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들 역시 전하의 군대인데 여기서 어찌 대원군의 이름이 나오는지 ···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아닙니다 전하, 그들은 대원군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폭도들입니다. 전하께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잠깐, 잠깐, 다들 그만 좀 하게!!”
고종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외세의 개입으로 나라가 시끄러운데 이럴수록 관민이 합심해서 국난을 극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와중에도 신하들은 서로 이간질을 하고 있으니, 일단 사람을 보내 사건의 원인을 알아내도록 했다.
정말 대원군이 개입했다면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구식 군인들을 다독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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