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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선생님 님의 서재입니다.

태양을 가린 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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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선생님
작품등록일 :
2020.09.17 00:09
최근연재일 :
2020.09.23 12:0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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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추천수 :
23
글자수 :
75,216

작성
20.09.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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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면담(2) - 예상대로의 남자

DUMMY

호한 백작과의 면담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는 예언의 아이라는 구설수에 어지간히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도에서의 연회도 제쳐놓고 이렇게 빨리 저택으로 날아오지도 않았으리라.

노집사가 응접실의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노쇠한 40대 남성쯤으로 되어 보이는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들어오게.”


응접실은 한쪽 면에는 거대한 책장으로 벽이 메워져 있었고, 바깥쪽 테라스에는 거대한 채광창이 밖으로부터 은은한 달빛을 들여오고 있었다.

늦은 저녁에 다 되어 가지는 만남이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운치가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죠스타 자작 각하.”


노집사가 우사현에게 자리를 권했다.

우사현은 그의 안내에 따라 방 중앙으로 걸어가며 응접실을 좀 더 자세히 둘러보았다.

최대한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방안의 물건들을 훑었다.

그의 행동은 당연히 의도된 것이었다.


‘이런 것도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귀족이란 놈들은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단 말이지.’


벽에는 사자 머리로 된 박제 장식이 있었고, 8단 장식장에는 술과 보석이 가득했다.

실크로된 벽지가 은은한 달빛에 반사되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온갖 진귀한 물건으로 가득한 공간.

우사현의 평가는 단조로웠다.


‘딱 배부른 귀족의 저택다운 응접실이군.’


그러나 그러한 평가를 그대로 내뱉을 수는 없기에 우사현은 차분히 중앙으로 걸어가며 감탄스러운 눈빛을 흘려주었다.

그러자 자신이 응접실 내부의 물건에 넋이 나갔다고 생각했는지, 호한 백작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이 저택의 물건이 마음에 드는가?”


우사현은 그의 질문에 당황했다는 것처럼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헛, 흠. 이거 실례했습니다.”

“됐네. 됐어. 이만한 보물을 보게 된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겠지. 흐허허허!”


귀족답지 않게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남성.

호한 백작이었다.

그는 코밑까지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터프해 보이는 성격의 남자였다.

귀족이라기보다는 거친 뱃사람 같은 분위기가 풍겨왔다.


‘보고로 들었던 대로군.’


우사현은 이미 숙지한 정보를 토대로 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지금 그는 한 나라의 요직에 앉은 남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거였으니까.

호한 백작은 껄껄 웃으며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어서 오시게, 죠스타 자작. 반가운 얼굴이로군, 그래. 내 보물에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니 나도 기쁘네.”


마주 손을 잡자 묵직한 무게의 손아귀 힘이 느껴졌다.

이어서 표정이 바뀌고, 동시에 기세가 바뀌었다.


“하지만 오늘 눈 호강을 해야 할 건 자네가 아니라 나지 않은가? 그렇지?”


갑작스런 돌발 제스쳐에 우사현은 느낄 수 있었다.


‘듣던 대로의 남자로군.’


그가 예상대로의 남자라는 걸.

호한 백작은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 허리를 앞으로 굽혔다.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듯이 소곤거리며 말한다.


“초면에 실례인줄은 알고 있네만, 더 기다릴 수가 없군. 자네도 알다시피 내 그분의 용안을 뵐 날을 손꼽아 기다려오지 않았는가 말이야.”


그가 말하는 ‘그분’이란.

당연히 운명의 아이인 모리아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다소 귀족답지 않게 거친 모습이었지만, 우사현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분이라면 지금 문 밖에 있으니 너무 그렇게 재촉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정하시지요.”

“오오! 그런가!”


그 대답을 들은 호한 백작이 눈을 빛냈다.

우사현이 문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춰 말했다.


“들어오시지요, 폐하.”


그러자 아이언 테일이 그 소리를 듣고 모리아나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모리아나가 모습을 드러내니.

호한 백작의 눈이 한층 더 부릅떠졌다.


“허어! 과연 소문대로 아름다우시군, 그래!”


어린 아이에 불과한 그녀에게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 그저 귀족들 사이의 허례허식에 불과하니까.

호한 백작을 마주한 모리아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 숙여 예의를 갖췄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따라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고분고분한 모습.

도리어 그 모습에서 위화감을 지울 수 없는 우사현이었지만, 곧 속으로 불안을 가라앉혔다.


‘뭐, 어차피 만약의 상황에 대한 준비는 충분하니 상관없나. 게다가 다른 왕국으로 망명을 했더라도 이런 상황과 마주했을 테니. 미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겠지.’


운명의 아이를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는 호한 백작은 스스로가 한 말에 걸맞게 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호한 백작이 모리아나에게 무릎을 꿇은 것은 신하의 예우가 아닌 그저 귀족 영애에게 바치는 예우였다.

그가 타국의 귀족에게 충성을 맹세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귀국의 동맹인 펠키아의 대귀족이자 우라토리아 변경 백작 령의 영주인 호한 하크리마나 울포라 합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모리아나를 상당히 높여 예우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호한 백작의 인사를 받은 모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긴장을 했거나.

아니면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해두지 않았거나.

어쨌거나 다소 귀족의 예의에 어긋나는 태도였지만, 호한 백작은 그녀의 그런 태도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즉시 허리를 곧추 세우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갖춰야 할 예의만 치르면 되는 거니까.

귀족의 세계란 어떤 면에선 효율적이기도 했다.


“자, 그럼.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아무래도 호한 백작의 호탕해 보이는 이미지는 그저 이미지만이 아닌 성격인 것 같군.

모리아나를 자리로 안내하는 호한 백작의 뒤를 노집사가 따라 들어와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소 늦은 저녁이어서 간소하게 차려보았습니다.”


노집사가 상이 부러질 정도로 음식들을 올려놓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것도 귀족의 식탁치고는 간소한 거지, 뭐.’


음식이 차려지는 동안, 호한 백작은 상석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모리아나는 그의 오른쪽 자리로.

그리고 우사현에게는 왼쪽 자리가 배정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 착석하자.

호한 백작의 입이 열렸다.


“자, 자. 그럼 딱딱한 인사는 이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그래도 괜찮겠나? 죠스타 자작?”


예의를 갖추자면 그가 아닌 모리아나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었지만, 호한 백작은 그러지 않았다.

이 중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황족임에도 불구하고.


‘하긴, 딱 봐도 풋내기에 불과하다는 걸 모를 리 없으니.’


게다가 모리아나에 대한 펠키아 귀족의 입장은 단 하나.

훗날 시히리카의 우방국으로써 오토벨 왕성을 되찾고 제국을 내쫓는 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꼭두각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때문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그녀를 어르고 달래는 것보다.

대변인인 우사현을 설득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대놓고 날 압박해올 줄은 몰랐는걸. 듣던 대로 앞뒤 재지 않고 물고 본다는 후문이 헛소문이 아니었어.’


호한 백작은 펠키아의 변경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 중에서도 거침없기로 소문이 난 인사.

주위 국가와 분쟁이 있을 때, 손속에 자비가 없기로 유명했다.

동시에 영지를 개방적으로 운영한다는 특징도 있었지만.


‘그런 걸 보면 호한 백작은 양날의 칼 같은 사람이지. 도움을 받으려면 내 팔도 같이 그일 각오도 해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대할 때는 앞에 방패막이 하나라도 두고 싸우는 편이 이득이이라.

우사현은 그가 무시한 모리아나를 향해 황망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호한 합하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폐하. 결코 폐하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을 것입니다.”

“응? 어? 어······ 응.”


갑작스런 행동에 호한 백작과 모리아나.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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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오프리츠니나 여제(2) 20.09.23 33 1 7쪽
19 오프리츠니나 여제(1) 20.09.23 15 1 7쪽
18 동전에는 뒷면이 있다 20.09.22 17 1 9쪽
17 축배를 들어...라? 20.09.22 20 1 8쪽
16 면담 (6) - 역설득 20.09.22 24 1 7쪽
15 면담 (5) - 설득 20.09.21 13 1 7쪽
14 면담(4) - 천일교 20.09.21 14 1 7쪽
13 면담(3) - 세인트 호샤나 20.09.21 23 1 9쪽
» 면담(2) - 예상대로의 남자 20.09.20 20 1 8쪽
11 면담(1) - 준비 완료 20.09.20 26 1 8쪽
10 망명은 기세다 (3) 20.09.20 23 1 10쪽
9 망명은 기세다 (2) 20.09.19 31 1 7쪽
8 망명은 기세다 (1) 20.09.19 37 1 7쪽
7 이것이 나의 도주 경로다! (4) 20.09.19 31 1 9쪽
6 이것이 나의 도주 경로다! (3) 20.09.18 36 1 7쪽
5 이것이 나의 도주 경로다! (2) 20.09.18 44 1 8쪽
4 이것이 나의 도주 경로다! (1) 20.09.18 61 1 7쪽
3 10년 후 20.09.17 95 1 9쪽
2 좀도둑(2) 20.09.17 138 2 10쪽
1 좀도둑(1) 20.09.17 189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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