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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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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0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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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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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7,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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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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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55. 주인이 바뀐 돈 2

DUMMY

4.


“네, 국장님!”


전화를 받자마자 거친 말이 넘어왔다.


역시나.


좋은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첫마디부터가 이러면 이쪽도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 기자는 꾹 눌러 참고서 억지로 웃어줬다.


“이래저래 바빠서 바로 보고를 못 드렸어요. 비도 오니까 움직이는 것도 더디네요.”


국장은 대뜸 기사가 언제쯤 완성될 것 같냐고 물었다.


아니, 방금 도착해서 이제 취재자료를 넘겨받았는데.


성격 급한 것과 쪼아대는 건 알아줘야 했다.


“최대한 빨리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만 그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지시를 한다.


취재지를 방문할 때마다 사진으로 찍어서 자신에게 전송하라!


그리고 지출내역도 매일 문자로 보고!


전화는 일방적으로 뚝 끊어졌다.


“아니,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지시 내용이 황당한 건 둘째 치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기분이 몹시 나빴다.


“아니, 언제는 미스터리 색션에 메인 기자로 밀어줄 것 같이 말하더니만···.”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스나이퍼 박이 킥킥대며 한마디를 거들었다.


“원래 듣보잡 취재가 농땡이 피우기도 쉽다고 생각해서 통제를 확실하게 하려고들 하지. 나중에 봐! 출장보고서에 전표 처리까지 하라고 할 걸···.”


그 말을 듣고 더 짜증이 난 신 기자는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빗속으로 지리산의 전경이 지나갔다.


택시는 제법 으슥한 산골 동네 구석에 박힌 작은 모텔 앞에 정차했다.


낡아서 금이 간 벽을 타고 담쟁이가 뒤엉켜 자라고 있는 5층 건물.


옥상에 붙은 <산장모텔>이란 간판은 칠이 다 벗겨져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형편없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런 허름하고 으슥한 곳이라야 사람들의 발길과 시선이 닿지 않는다.


두 사람은 방을 하나 잡아 들어가서는 바로 사과박스를 열어 보았다.


세어보니 얼추 이십억이 맞았다.


줄리 한의 사진으로 정 의원의 사건을 덮어주는 대가로 받기로 한 돈, 삼십억.


그중 삼분의 이가 바로 이 앞에 있다.


그런데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고, 사건도 덮어지지 않았다.


돈만 어찌어찌하여 김 지배인을 통해 지금 신 기자와 스나이퍼 박의 앞에 와 있는 거다.


그것도 전부가 아닌 일부가.


정 의원 입장에서 봤을 때, 두 사람은 사기를 쳐서 돈을 갈취해 간 사기꾼.


만약 지금 잡힌다면, 죽은 목숨이다.


하지만 사진이 공개되지 않은 건 두 사람의 의지와는 무관한 불가항력의 그 무언가 때문이었다.


정 의원이 어쩔 수 없이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서게 된 건 안타깝지만, 그걸 어찌 두 사람 때문이라 하겠는가.


두 사람은 지금도 블라인드 인터뷰 소동에 대해서 딱 부러지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하게 됐는지.


혹은, 누군가가 그런 일을 꾸몄는지에 대해서까지 말이다.


‘제대로 꼬였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신 기자와 스나이퍼박의 상황이 딱 그러하다.


어떤 설명도, 어떤 해명도, 어떤 변명도 다 무용지물!


그런데 상대는 겉만 번지르르한 국회의원이지, 실상은 깡패다.


그러니 어설프게 찾아가 이실직고 고하다 목숨이 날아가느니, 그냥 사라지는 게 낫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거다.


물론 돈과 함께.


조용히.


돈뭉치를 다시 차곡차곡 챙겨 넣는 스나이퍼 박은 어제 버스에서 했던 얘기를 다시 꺼냈다.


환전에서부터.


블라디보스토크.


또 중고차 대여사업까지.


허황된 꿈같던 얘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오자 큰돈을 가지고 있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되었다.



5.


산내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땡초의 등골이 서늘했다.


과거에는 항상 붙들려서 끌려 들어가는 곳이었는데.


시간이 흘러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오게 될 줄이야.


“저, 교통사고 건 때문에 서울에서 왔습니다.”


땡초의 험악한 인상 때문이었을까.


흠칫 놀랐던 경찰은 안심한 듯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의 유니폼에서 계급과 이름을 확인했다.


경장.


김인창.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광대뼈가 심하게 튀어나와서 어디서도 눈에 잘 띌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오세요.”


이런저런 서류를 들이밀며 깡수에 관한 신원확인을 한 김 경장이 다시 일어섰다.


“저랑 같이 가시지요.”


땡초를 경찰차에 태운 그는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갔다.


역시 간단한 확인 절차 후에 냉동고에서 깡수의 몸이 나왔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깡수.


여기저기에 상처와 멍이 보였다.


“어쩌면 부검을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 부검을요?”


김 경장이 심각한 얼굴로 땡초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한 땡초가 순간 몸이 굳었다.


“전화 드렸을 때는 사건 수사 초기라 그냥 교통사고라고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 사실 좀 이상한 구석이 많습니다.”

“네? 무슨···?”


김 경장은 땡초를 다시 병원 밖으로 안내했다.


돌계단이 나란히 드러난 병원 정원.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두 사람은 천막이 씌워진 벤치 쪽으로 걸어갔다.


김 경장은 담배를 권하면서 벤치에 앉았다.


“사망자는 앞차를 추돌한 후에 갓길 쪽으로 넘어가 추락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들이받힌 차의 운전자가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요?”

“네, 그런데 그 차, 차량 블랙박스를 떼어간 흔적이 있습니다.”


땡초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럼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란 말인가요?”

“원인 제공을 어느 쪽이 먼저 했는지 아직 밝혀진 게 없습니다. 이 동네가···.”


김 경장은 담배를 길게 한번 빨더니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좀 시골이라, 외곽 국도에는 CCTV가 좀 부족하죠. 게다가 또 당일 그 길에 산사태가 나서 사고 현장이 토사에 쓸려버렸어요.”

“장마··· 때문에 그런 건가요?”

“그렇기도 하고요. 또 얼마 전에 저 위쪽 쇠통바위 근처에 박혀있던 바위 하나가 굴러떨어졌는데··· 그 일 이후로 더 그러는 거 같네요.”


땡초는 담배를 한 모금도 빨지 못하고 눈만 계속 끔뻑거렸다.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위에선 조용한 동네에서 이런 부담스러운 사건으로 세간에 주목받는 거··· 싫어들 한답니다. 아마 조만간 큰 서로 사건을 넘겨버릴 것 같습니다.”


여러 생각이 빠르게 땡초의 머리를 스쳤다.


“혹시··· 사망자가 살해당한 거로 보시는 건가요?”


김 경장의 눈이 하늘로 향했다가 다시 떨어졌다.


“어쩌면요. 그런데 거듭 말씀드리지만, 아직은 뚜렷하게 드러난 게 없습니다.”

“저···.”

“네, 더 물어볼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앞차가 분명 YF 소나타라고 하셨죠?”

“네.”

“그 차 안에서 뭐 발견된 건 없었나요?”

“차량 유지관리 물품··· 뭐, 그런 거 빼고는 특별한 건 없었어요. 왜요? 살해 도구 같은 거라도 나왔을까 봐요?”


땡초는 시선을 피했다.


“네, 그렇기도 하고···. 혹시 트렁크 쪽도 잘 보셨나요?”

“그럼요. 거기도 별다른 건 없었어요. 그런데 한쪽 깜빡이하고 뚜껑이 심하게 훼손되어서···.”


땡초의 호흡이 갑자기 빨라졌다.


얼굴도 붉어졌다 하얘졌다 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계속 보였다.


“저, 괜찮으세요? 어디 불편하신가요?”


땡초는 손사래를 치며 일어섰다.


김 경장은 땡초를 다시 경찰서까지 실어 준 후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혹시 뭐 더 문의하실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경찰서에서 나오는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지배인 놈을 쫓던 깡수가 죽고, 돈까지 사라져 버렸다.


돈은 지배인 놈이 가져간 게 틀림없다.


땡초는 차에 시동을 걸면서 눈을 부릅떴다.


쫓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오히려 깡수를 역으로 공격했을 수 있다.


아무리 전국구 넘버원 칼잡이 깡수라지만, 맨몸으로 맞서는 상황이 아니었다.


차를 탄 채로 쫓고 쫓기는 상황이었다면 변수가 많았을 거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날씨.


갑작스레 전화해서 작업을 하라고 지시를 내렸었다.


다급한 일인 줄 알고 서둘렀을 수 있다.


코너 길을 돌 때 들이받았는데 깡수의 차만 갓길 밖으로 튕겨 나갔다.


놈은 어찌어찌 살고···.


멍하니 초점을 흐린 채 사건 현장을 그려보던 땡초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차를 출발시킨 후 도로를 달리다 서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니다···.”


그러다가 다시 차를 돌린다.



6.


부릉-!

부릉-!


땡초는 굽이치는 길을 조심스레 달리다 간판을 하나 스치고 지나갔다.


무슨 바비큐였나?


식당인 모양이었다.


음식 냄새에 잠시 정신이 팔릴 뻔하다가 전방에 펼쳐진 접근금지 표지에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에서 내려보니 양옆에서 쏟아진 흙더미에 도로가 파묻혀 있었다.


표지판을 넘어 흙더미를 밝으면서 조금 더 걸어가 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 사건 현장이 나왔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 수도권이었으면 벌써 과학수사대가 들이닥쳐 현장을 한번 싹 훑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경찰이 말한 대로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시골의 산 중턱인 데다···.


비까지 내리는 날씨.


또 산사태까지.


모든 게 더디고 늦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기에 사건은 그렇게 한동안 방치되는 모양새였다.


현장보존선을 넘어 차가 추돌한 흔적을 살펴보았다.


먼저 갓길 밖으로 나가떨어진 깡수의 차.


“휴우···!”


차가 처박힌 모양새를 보니 운전자가 살기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리고 YF 소나타.


찌그러졌다는 것보다 구겨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었다.


땡초는 제일 먼저 트렁크에 시선이 갔다.


어쩌면 사과박스가 들어있었을 자리.


심하게 비틀려 열린 뚜껑을 보니 어이없게 꼬여버린 자신의 인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해졌다.


눈길이 차체를 타고 운전석 쪽으로 이동했다.


놈은 블랙박스도 떼어갔다고 했다.


영악하고 주도면밀한 놈!


하긴 그러니 이렇게 큰돈을 들고 튈 생각까지 했겠지.


그런데 그때였다.


운전석으로 향하던 땡초의 시선이 조금 더 앞으로 흘러가서 딱 멈췄다.


“뭐야? 범퍼···!”


땡초는 뒤쪽만큼이나 심하게 파손이 된 전방 범퍼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뒤에서 추돌당했는데 어떻게 앞에까지 저렇게 박살이 날 수가 있지?”


김 경장은 YF 소나타의 파손 부분을 설명할 때 후면만 얘기했었다.


그런데 전방까지 파손이 된 상태라면 지금까지의 가정을 전부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른다.


“뒤에서만 받은 게 아니라, 앞에서도 받았을 수 있잖아!”


땡초는 이마에서 김이 나는지 손부채질을 연신 해댔다.


그러면서 그의 발이 바빠졌다.


YF 소나타의 앞을 따라 흙더미에 덮인 길을 파헤쳐 보았다.


구두에 진흙이 묻고 빗물이 안으로 들어와 양말이 축축이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런 씨발···!”


도로가 드러나자 땡초는 욕설을 내뱉으며 양손을 허리춤에 올렸다.


도로 표면에 흐릿하게 드러난 스키드 마크!


그리고 구석에 떨어져 처박혀 있던 헤드라이트 커버 하나!


틀림없이 또 다른 차의 흔적이었다.


“차가 한 대 더 있었잖아!”


비에 흥건히 젖은 땡초는 자신이 발견한 흔적을 한동안 노려보았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다시 차에 돌아온 땡초는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다.


“쫓기는 걸 알고 공모자를 부른 건가? 같이 합심해서 제거하려고?”


안 될 것도 없었다.


쫓기던 지배인 놈이 급정거를 하면, 깡수가 옆으로 돌아 나오려 했을 테고.


그럼 그때 숨어있던 공모자가 튀어나와 깡수에게 돌진한다.


그런데 빗길에 미끄러졌거나 당황해서 소나타와 깡수의 차를 동시에 받는다.


“어쩌면 깡수는 YF 소나타의 트렁크를 들이받고 튕겨 나간 게 아닐 수 있어.”


사진을 바라보는 땡초의 눈이 점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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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2.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2 24.05.02 9 0 12쪽
101 101. 화살은 정의원에게로 1 24.05.01 6 0 12쪽
100 100. 트레이닝 데이 2 24.04.30 6 0 11쪽
99 099. 트레이닝 데이 1 24.04.29 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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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097. 연결고리 2 24.04.27 9 0 11쪽
96 096. 연결고리 1 24.04.26 8 0 12쪽
95 095. 건우가 필요해 2 24.04.25 7 0 11쪽
94 094. 건우가 필요해 1 24.04.24 10 0 11쪽
93 093. 마주선 두 사람 2 24.04.23 10 0 11쪽
92 092. 마주선 두 사람 1 24.04.22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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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090. 나무아미타불 2 24.04.20 10 0 12쪽
89 089. 나무아미타불 1 24.04.19 12 0 11쪽
88 088. 패스워드 2 24.04.18 12 0 12쪽
87 087. 패스워드 1 24.04.17 15 0 11쪽
86 086. 설경에 갇힌 나찰 2 24.04.16 10 0 11쪽
85 085. 설경에 갇힌 나찰 1 24.04.15 16 0 11쪽
84 084. 미연이의 남자 3 24.04.14 10 0 12쪽
83 083. 미연이의 남자 2 24.04.13 11 0 12쪽
82 082. 미연이의 남자 1 24.04.12 11 0 12쪽
81 081. 대머리가 그놈이다 3 24.04.07 10 0 12쪽
80 080. 대머리가 그놈이다 2 24.04.06 8 0 11쪽
79 079. 대머리가 그놈이다 1 24.04.05 14 0 11쪽
78 078. 기다려라, 나찰 2 24.03.31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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