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단향목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단향목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6 18:50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51,950
추천수 :
3,369
글자수 :
357,178

작성
24.06.04 18:50
조회
686
추천
49
글자
12쪽

22. 몽중시(夢中市)(1)

DUMMY


시현은 은롱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에게 여의주가 있는 것처럼 오래 묵은 여우에겐 여우구슬이 있다는 옛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났다.

삼키면 천문 지리에 통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수명이 길어지고 땅속에 묻힌 재물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아무튼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는 거지.


은롱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고양이는 여우구슬 덕분에 지능이 굉장히 높았고 특별한 것을 볼 수도 있었을 거야. 세월이 흐르면 여우구슬의 힘으로 영물이 됐겠지.”

“그럼 이제 구슬이 없으니까 보통 고양이가 된 거야?”

“그렇긴 하지만.”


은롱은 시현의 소맷자락을 잡으며 생글 웃었다.


“저번에 형도 봤지? 둘 다 아주 행복해 보였어.”

“응, 그렇더라.”


시현은 한과 가게의 안쪽 마루에서 놀고 있던 소녀와 고양이를 떠올렸다.

소녀가 굉장히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고양이는 냥냥거리면서 장단을 맞추고 있었고.

아이와 고양이의 주변에서 몽글몽글하고 포근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게 기억났다.


“여우구슬이 지니고 있던 힘은 없어졌지만, 완전히 보통 고양이라곤 할 수 없지. 그 고양이는 기억을 잃지 않았으니까.”


은롱이 시현을 향해 자주색 몽로를 들어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이 몽로를 먹을래. 형아, 뭐 맛있는 거 좀 해줘.”


시현이 자주색 구슬을 내려다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이야기를 맡기지 않았잖아? 여우구슬과 목소리를 바꿨는데 그런데도 몽로가 있어?”

“아, 이건 그 여우구슬에서 나온 이야기야. 여우구슬은 계속 나미와 미미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우린 사연이 있는 물건도 받는다고. 그런 경우 물건에서 뽑은 이야기로 몽로가 이루어져.”

“아하 그렇구나.”


시현은 잠깐 몽로의 맛을 입속에서 되새겨 본 후 입을 열었다.


“이 몽로의 이야기는 향설고 이야기기도 하니까 향설고로 하자. 고조부님이 만드신 것처럼 치유의 힘은 없지만 송가미록에는 일반 향설고 조리법도 기록되어 있거든. 나도 맛있는 향설고를 만들 자신이 있어.”


당당하게 말했던 시현은 잠시 후 아차 하고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여름이라 좋은 배가 없겠는데. 다른 걸 생각해 봐야겠네.”


향설고가 딱 어울릴 맛이었는데.


아쉬워하는 시현을 보고 은롱이 뭔가 생각하듯 턱을 고였다.


“배라, 음, 형아, 어쩌면 좋은 배를 구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어디서?”

“마침 날이 좋거든. 전에 형아가 나를 시장에 데려갔을 때 내가 몽중시라는 시장 이야기를 했었지?”

“응.”

“오늘이 칠월의 셋째 날이라 마침 몽중시가 열리는 장날이야. 어쩌면 배가 나왔을 수도 있으니까 장도 구경할 겸 이따 형이랑 나랑 배 사러 가자.”

“?”

“배가 없을 수도 있지만 아마 십중팔구는 나왔을 거야. 이따 밤에 같이 가게 오늘은 퇴근하지 말고 손님 방에서 자.”


은롱은 시현을 데리고 이 층에 있는 방문 하나를 열었다.

침대와 책상, 붙박이장이 갖춰진 평범한 방이었다.


“여기가 손님 방이야?”

“응. 드물긴 하지만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손님이 묵고 가는 일이 있거든. 그럴 때를 위해 준비해 두는 방이야.”


***


“형아, 일어나.”


저녁을 먹고 열 시쯤 잠이 들었던 시현은 은롱이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었다.

주위는 고요하고 어두운데 그믐달처럼 은은한 빛이 방 안에 떠돌고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축시 일각(새벽 1시 15분), 이제 출발하면 돼.”

“우리 둘만 가?”

“응. 금손 씨는 다른 볼일이 있어서 어디 좀 가셨고 오늘은 나랑 형이 가니까 세나 누나는 안 가기로 했어.”


방 밖으로 나오자 이 층의 천장에는 달이 떠 있고 구름이 달을 가리듯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대나무숲이 달빛 아래서 고요히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이 세상의 풍경 같지 않게 아름다웠다.


대나무숲 사이에 숨듯이 서 있는 문 중 하나가 은롱이 가까이 가자 마치 등불을 켜듯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초록색이어서 대나무숲에 잠겨 있는 것처럼 눈에 띄지 않던 문이었다.

은롱이 문에 손을 대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자, 가자, 형아.”


은롱이 시현의 손을 잡았다.


***


어둡다.

시현을 맞은 것은 캄캄한 어둠이었다. 발끝에 돌멩이인지 흙덩이인지가 툭툭 차이는 걸 보니 길이 고르지 않았다.


손을 잡고 있는 은롱의 형체가 어슴푸레하게 보일 뿐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는데 은롱은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갔다.


“조금만 천천히, 은롱아, 너무 어두워서 걸을 수가 없어.”

“아 참, 형은 길이 전혀 안 보이겠구나.”


은롱이 멈춰 서더니 시현 쪽을 향해 말했다.


“미안, 세나 누나랑 올 때는 누나가 등불을 가지고 오는데 세나 누나가 없어서 깜빡했어. 나는 여기서도 그냥 잘 보이기 때문에······. 형이 볼 수 있게 주술을 써줄게, 잠깐만.”


은롱이 미안한 듯 말하는 중에 시현의 손바닥이 간질간질하면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 참, 그렇지.”


시현은 손바닥을 위로 올리고 흔들었다.


“봉봉!”


시현이 부르자 손바닥에서 퐁 솟아오른 도깨비불이 마치 왜 빨리 꺼내주지 않았느냐고 앙탈하는 것처럼 몸을 탈탈 흔들었다. 꽃에서 꽃가루가 떨어지는 것처럼 불티 몇 점이 반짝이며 흩어졌다.


“봉봉?”


은롱이 쳐다보자 시현이 조금 쑥스럽게 웃었다.


“응, 이름을 붙였어. 하도 벌새처럼 붕붕 주변을 날아다녀서 붕붕이라고 부르려다가 봉봉이 더 귀여운 것 같아서 봉봉으로.”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도깨비불이 고개를 끄덕이듯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얘도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고. 그치, 봉봉? 자, 길 좀 비춰 줘.”

“아직 크기가 작은데 길은 잘 비출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은롱이 도깨비불을 못 미덥게 보면서 중얼거리자 봉봉은 마치 자존심이 상하기라도 한 듯 밝은 주황빛으로 반짝거리면서 힘껏 몸을 키웠다.


“오, 금방 두 배로 커졌어!”

“그러게, 여태 본 것 중 제일 큰데? 빛도 가장 밝고. 봉봉, 잘했어!”


시현이 칭찬하자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의 크기로 몸을 부풀린 도깨비불은 자랑스럽게 시현의 앞쪽으로 둥둥 떠가면서 길을 비춰 주었다.


“원래 도깨비불은 푸른 빛을 내는 줄 알았는데 봉봉처럼 따뜻한 빛을 낼 수도 있구나.”


시현이 봉봉을 따라 걸어가며 말하자 은롱이 대답했다.


“푸른 불덩이로 나올 때가 많지만 사실은 붉은 계통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대. 주인이랑 도깨비불이랑 마음먹기 나름인가 봐.”


봉봉이 열심히 비춰 주는 길을 따라 시현과 은롱은 타박타박 걸었다. 불빛에 어른거리는 길은 커다란 동굴 속 같았다.

아득히 높아 보이긴 했지만 천장이 있었고 천장에는 종유석이 고드름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둥글게 휘어진 벽에는 이끼가 끼어 있고 군데군데 재질을 알 수 없는 작은 돌 같은 것이 박혀 있어서 봉봉의 불빛을 받으면 색색으로 반짝였다.


“아, 잠깐만!”


은롱이 발을 멈추더니 동굴의 벽으로 가까이 갔다.


“은롱이 왜?”


시현이 은롱을 따라가자 은롱이 벽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형아, 이거 보여?”


은롱이 가리키는 벽 표면에는 이끼 사이로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뭔가가 점점이 박혀 있었다.


“이거 말이야, 요정의 모자라고 불리는 버섯이야. 꿈꾸는 풀 만큼이나 귀한 건데 운 좋다. 좀 캐 가야겠어.”


은롱은 허리에 두르고 있던 주머니 하나를 풀었다. 푸른 바탕에 은실로 곱게 수를 놓은 두루주머니의 입구를 벌린 은롱이 벽으로 손을 내밀었다.

고사리 같은 어린애 손에서 갈고리 같은 발톱이 삐죽 솟아 나오더니 조심스럽게 버섯을 캐서 두루주머니에 넣었다.


맞다. 항상 귀여운 어린애의 모습이라 잊고 있었는데 사실 구미호였지.

갈고리 같은 손톱 끝에 걸려 나오는 버섯을 보니 자그마한 몸통 위에 금빛 고깔처럼 생긴 갓이 반짝거리고 있는 게 정말 요정이나 쓸 앙증맞은 모자처럼 생겼다.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귀엽게 생겼네.


“이 버섯은 요리에도 쓸 수 있지만 덖어서 차로 만드는 게 더 좋아. 세나 누나가 좋아하겠다.”

“특별한 효능이 있어?”

“차로 만들면 향이 굉장히 좋고 진통 효과도 있어. 그리고 꿈꾸는 풀처럼 원하는 것을 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꿈꾸는 풀이랑 같이 먹게 되면 효과가 더 배가되고.”

“은롱이는 꿈꾸는 풀을 더 좋아한다고 했지?”

“응!”

“꿈꾸는 풀이 효능이 더 좋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은롱은 샐쭉 웃었다.


“꿈꾸는 풀이 더 맛있거든.”


***


요정의 모자를 캐서 두루주머니에 넣은 후 한동안 더 걸어가자 앞쪽이 밝아지면서 두런두런 사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동굴 입구가 툭 터지면서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우와!”


시현은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탄성을 발했다.


야시장이다. 야시장인데 꿈속의 풍경처럼 아름답고 몽환적인 게 누군가 몽중시라는 이름을 잘도 지었다.

별이 총총한 검보랏빛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공간은 산속의 분지처럼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낮게 내려앉은 안개가 마치 거대한 병풍처럼 분지의 외곽을 감싸고 있다.


크고 작은 노점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저마다 특색 있는 등롱을 걸어놓아서 희고 노랗고 붉고 푸른 등롱들이 마치 물 위에 떠가는 연등처럼 어우러졌다.

반딧불 같기도 하고 그보다 큰 것 같기도 한 작은 빛 덩어리들이 마치 하늘에서 뿌려진 별 조각들처럼 주변을 떠돌아다녔다.

노점이 많은데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늑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호객하는 상인도 없고 시끄러운 소리도 없이 오가는 손님들의 분위기도 여유로워서 은롱이가 재래 시장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흥미로워한 게 이해가 갔다.

천천히 노점을 살피면서 은롱의 뒤를 따라가는데 시현에게는 낯선 물건들이 많았다.


이국적인 옷차림을 한 상인들이나 동물의 탈을 쓴 상인들도 있어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점들, 옷감이나 모자 등의 의류, 장신구며 가면, 신기해 보이는 공예품 등도 있었지만 시현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식자재였는데 처음 보는 약초나 열매 등이 많았다.


하나하나 은롱에게 물어보기가 미안해서 눈요기만 하면서 따라가는데 은롱은 시현을 청과물 노점이 모여 있는 쪽으로 데려갔다.


“형아, 궁금한 거 많지? 그치만 하나하나 다 설명해 주면 새벽이 되어버릴 거라서, 일단 우리가 필요한 배가 있나 찾아보러 가자.”


이것저것 신기한 식자재를 보느라 시현의 발걸음이 자꾸 느려지는 것을 본 은롱이 어른스럽게 말하며 시현의 손을 끌었다.


“저기, 저 닭 보여?”


시장의 입구 쪽에 높은 장대가 서 있는데 장대 위에 커다란 닭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홍옥을 박은 듯한 눈으로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 닭은 벼슬이 루비처럼 붉고 몸은 하얗게 반짝이는데 꼬리는 금빛인 것이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몽중시는 일 년에 두 번만 열려. 칠월 초와 십이월 초에 하루씩. 축시부터 새벽이 밝을 때까지만 열리는데, 그 기준이 저 은수탉이 우는 시각이야. 저 닭이 세 번째 울기 전까지 시장을 빠져나가야 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여우 전당포의 신비한 요리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23. 향설고 +6 24.06.06 683 53 12쪽
37 22. 몽중시(夢中市)(2) +4 24.06.05 673 51 13쪽
» 22. 몽중시(夢中市)(1) +5 24.06.04 687 49 12쪽
35 21. 나미와 미미(2) +7 24.06.03 685 50 11쪽
34 21. 나미와 미미(1) +5 24.06.02 697 48 12쪽
33 20. 경성 오므라이스(3) +6 24.06.01 705 57 11쪽
32 20. 경성 오므라이스(2) +7 24.05.31 702 52 12쪽
31 20. 경성 오므라이스(1) +5 24.05.30 707 48 12쪽
30 19. 연잎밥 +7 24.05.29 705 54 12쪽
29 18. 연저육찜 +8 24.05.28 733 57 12쪽
28 17. 송가미록 +5 24.05.27 755 46 12쪽
27 16. 삼족구와 송가미록 +7 24.05.26 749 57 12쪽
26 15. 나루서점 +4 24.05.25 765 47 12쪽
25 14. 커피 스콘(2) +5 24.05.24 781 50 12쪽
24 14. 커피 스콘(1) +4 24.05.23 789 48 12쪽
23 13. 수수떡과 메밀전병 +11 24.05.22 797 56 12쪽
22 12. 메밀묵(3) +7 24.05.21 796 51 14쪽
21 12. 메밀묵(2) +6 24.05.21 806 49 12쪽
20 12. 메밀묵(1) +7 24.05.20 841 52 12쪽
19 11. 감투 +5 24.05.19 844 48 12쪽
18 10. 타락죽 +8 24.05.18 860 51 12쪽
17 9. 왕과 숙수와 고양이(3) +4 24.05.17 893 49 12쪽
16 9. 왕과 숙수와 고양이(2) +7 24.05.16 904 53 11쪽
15 9. 왕과 숙수와 고양이(1) +4 24.05.15 935 56 12쪽
14 8. 복숭아정과 +9 24.05.15 986 60 12쪽
13 7. 망정수(忘情水)(4) +5 24.05.14 994 60 13쪽
12 7. 망정수(忘情水)(3) +6 24.05.13 1,027 56 12쪽
11 7. 망정수(忘情水)(2) +3 24.05.12 1,080 53 13쪽
10 7. 망정수(忘情水)(1) +3 24.05.11 1,103 55 12쪽
9 6. 두부달걀채소쌈(2) +8 24.05.10 1,167 6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