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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이 나에게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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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초롱
작품등록일 :
2023.05.06 10:42
최근연재일 :
2023.05.28 19:43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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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45

작성
23.05.0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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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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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1장. 내가 토끼라고?

DUMMY

002


“아, 아까 뵌 분이시죠? 반가워요.”


원래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했다. 얼굴이라도 터 놓으면 설마 장기적출은 당하지 않겠지? 하지만 세빈 옆의 별주부라는 인간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어허, 토끼, 어서 너의 배를 갈라 간을 바치지 못할까?”


얘도 좀 잘생기기는 했다. 나름 귀여운 외모로 잘난 척 하는 게 꼭 내 남동생 같다. 하지만!! 말 안 통하는 것도 똑같다. 하아, 진짜 한 대 때리고 싶네. 세빈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딜 봐서 내가 토끼야? 니 안구는 바둑알이냐?”

“아니! 이런 불량스러운 토끼가 있나? 네 머리에 달린 그 길쭉한 귀만 봐도 토끼가 맞지 않느냐!!”


오히려 별주부라는 남자는 침을 튀기며 세빈에게 대들었다. 응? 그런데 나한테 길쭉한 귀가 있다고? 그러고 보니 할로윈 파티에서 착용한 머리띠를 그대로 차고 있었나보다. 세빈이가 당황해하면서 머리띠를 만지자 별주부라는 남자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내 추리에 따르면 넌 토끼가 확실해!!”


어이구, 명탐정 나셨네. 세빈은 명탐정님을 혼내주기 위해 머리에 쓰고 있던 토끼귀 머리띠를 빼내었다. 그러자 갑자기 별주부라는 남자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어, 음, 토끼 비겁하다. 이런 식으로 회피하다니!!”

“이제 알겠냐? 난 사람이야!!”


그 말에 별주부는 울상이 된 채 세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입술을 깨물더니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분명 토끼는 귀가 탈부착이 가능한 동물일 것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살아서 들어본 X소리 중에 탑 쓰리에 들 것만 같은 헛소리를 들었다. 별주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 같았다.


“역시 육지 동물은 범상치 않군.”

“와, 이걸 초장에 찍어먹을 수도 없고 와!!”


세빈이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고 있자 별주부는 다시금 용왕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용왕 폐하, 이 간악한 토끼의 말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어서 저것의 배를 갈라 간을 드시고 쾌차하소서!!”


그 말에 용왕이 이곳을 지그시 바라본다. 날카롭지만 아름다운 눈매가 세빈을 스치자 세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용왕의 눈은 다시금 권태로 물들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차갑게 한 마디를 던졌다.


“필요 없다. 별주부. 나의 병은 저런 것으로 나을 수 없는 것!”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긴 장죽대를 쥐더니 서서히 입가로 가져간다.


“그러니 어서 저것을 치우거라.”


아니, 저것이라니!! 엄연히 존엄한 인격과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나한테 저것이라니? 마치 밀렵동물이라도 보는 듯한 눈초리에 세빈은 자신도 모르게 발끈하고 말았다.


“저기요! 전 저것이 아니라 이세빈이거든요?”


하지만 세빈의 반항에도 용왕은 만사가 귀찮다는 듯 긴 장죽대를 물고 몸을 비스듬히 기댈 뿐이었다. 오히려 세빈의 옆에 있는 별주부라는 인간이 안타까운 듯 머리를 조아렸다.


“허나, 용왕 폐하, 분명 마고할망께서는 토끼 간을 드셔야 병이 나을 거라 예언하셨습니다.”


그 말에 용왕은 장죽대를 떼더니 아름답지만 퇴폐적인 눈으로 세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저런 이상한 것을 먹어야 내 몸이 낫는다니, 마고할망도 이젠 믿을 수가 없다.”


아니? 세빈은 다시금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나보고 이상한 거라고 한 거야? 와, 나 성질 많이 죽었네? 이럴 때 팩트 폭력을 꽂아주지 않으면 바둑 마녀, 아니 나의 바둑 왕후라는 별명이 울고 가지.


“혹시 이상한 거라면 이쪽 별주부 이야긴가요?”


생김새는 별주부라는 남자가 더 이상하다. 얼굴은 귀엽고 잘생긴 편이지만 남동생을 닮아 폭력을 부르는 상이다. 거기다 시대 착오적인 저 사모관대에, 등에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걸 짊어지고 있다. 아니, 지가 캡틴 아X리카야?


하지만 별주부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어디서 요망한 입을 놀리느냐! 육지 동물은 하나같이 요사스럽기 짝이 없구나.”

“뭐래? 등에 메고 다니는 거나 좀 내려놓고 다녀. 학원 가방이냐?”


세빈이도 지지 않고 별주부에게 쏘아붙였다. 그 말에 별주부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변했다.


“용왕 폐하, 어서 결단을 내리소서. 제가 이 자의 배를 갈라 따끈한 간을 대령하겠나이다.”


아니, 지가 외과의사야? 왜 툭하면 남의 배를 가르려고 그래? 살아남으려고 하는 세빈이와 가르려고 하는 별주부가 대치하고 있는 동안 문득 용왕의 권태로운 눈에 자그마한 흥미가 떠올렸다.


“정말 활발한 짐승이구나.”


아니, 짐승? 세빈이가 후두부를 강타하는 것 같은 단어 선정에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은 별주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습니다. 이 활발한 토끼를 드신다면 그 기운으로 반드시 건강을 되찾을 것입니다.”


원래 자라탕이 정력엔 더 좋지 않냐? 세빈이도 물귀신 작전으로 별주부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보다 자라탕 한 번 끓여 드셔보세요. 정력에 그렇게 좋대요.”


그 말에 별주부가 세빈을 흘겨본다. 아니, 그러니까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냐고? 그리고 세빈은 확실히 해야할 것은 확실히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저 토끼 아닙니다. 저 취미가 육식이에요.”


그 말에 별주부라는 남자는 황급히 말을 꺼냈다.


“원래 토끼는 육식입니다!!”

“!!!”


뭐래? 아니 무식해도 왜 이리 무식해? 소싯적에 동물원 한번 안 가봤어? 무슨 토끼가 육식이야? 답답함으로 속이 터지려고 하는 이때 용왕이 긴 장죽대를 가볍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냉소적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찌 됐든 별주부가 이리 힘을 써 데려왔으니 버릴 수는 없겠구나.”


그러더니 차갑게 명령을 내뱉는다.


“저 동물의 배를 갈라 대령해 보거라!!”


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의 바다 생물 중 몇몇이 몸을 흔들어 변화시킨다. 특히 두 마리의 상어가 몸을 흔들자 흉악한 외모의 인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세빈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뭐, 이런 판타지같은...”


하지만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두 거한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온몸에 비늘갑옷을 두르고 손에는 커다란 거치도를 든 채 서서히 다가오는 병사들. 그들이 들고 있는 날카로운 이빨이 서 있는 칼날에서는 금방이라도 핏물이 떨어질 듯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세빈은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 이거 진짜 잘못하면 죽겠구나!!’


세빈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다가오는 용궁의 병사들을 보다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잠깐!! 바둑! 바둑 두는 토끼 봤어요?”


그 말에 다가오는 두 용궁 병사가 멈칫하고 선다. 그 모습에 일말의 희망을 느낀 세빈은 더 커다랗게 외쳤다.


“나는 사람이라고! 바둑도 둘 줄 안다고!! 세상에 바둑을 두는 토끼가 어딨어? 그게 내가 사람이라는 증거야!”


그 모습에 권태로운 눈빛을 띠고 있던 용왕이 눈에 이채를 띤다. 그러더니 장죽대를 가만히 입에 물더니 물어본다.


“네가 바둑을 둘 줄 아느냐?”


그 말에 세빈은 이를 악물고 노려보았다. 지금 나에게 바둑을 둘 줄 아냐고 했어? 하, 아마추어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바둑을 둘 줄 아냐고요?”


프로의 자부심에 스크래치가 난다. 그 어떤 바둑 명인도 나에게 면전에서 이렇게 묻지 못했었는데.


“제 실력은 가히 천하제일이지요!!”


맞겠지? 국제대회 우승이 여러 번이니까? 하지만 이런 세빈의 말에 별주부는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용왕 폐하, 저 토끼의 요사스러운 주둥이를 당장 꿰메도록 허락해주소서.”

“너야말로 매운탕 끓이기 전에 조용히 해라?”


딱 미나리 넣고 같이 끓이면 매콤할 것 같이 생긴 주제에. 세빈과 별주부의 치열한 신경전에 용궁 병사가 머뭇거리고 있자, 용왕은 아름다운 눈동자에 흥미로운 빛을 띠었다.


“제법 재미있구나.”


그 말에 별주부는 놀란 낯빛을 띠었다. 그동안 병을 얻고 모든 일에 흥미를 잃었던 용왕이었는데 이렇게 심경의 변화를 보이다니! 용왕은 차갑고도 도도한 얼굴로 세빈을 내려다 보았다.


“좋다! 너에게도 네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허하도록 하마.”


용왕은 긴 장죽대를 옆에 내려놓더니 별주부에게 명을 내렸다.


“별주부는 지금 대국을 벌여 이 자가 토끼인지 진실 여부를 묻도록 하라!”


그 말에 별주부는 황공하다는 듯 머리를 조아렸다.


“신 별주부, 용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 이 자의 허풍이 낱낱이 드러나도록 하겠사옵나이다.”


허풍? 지금 프로인 나에게 허풍이라고? 와, 이걸 어떻게 살살 쥐어 패지? 아마추어가 바둑 좀 둔다고 나대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세빈은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이런 건 참교육을 통해 인생을 깨닫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근데 너 바둑은 둘 줄 아냐?”


눈살을 찌푸린 세빈의 비아냥에 별주부는 그 잘생긴 아미를 찡그리며 세빈을 바라보았다.


“나의 등을 보아라. 나는 태초에 바둑판을 이고 태어난 자로써 이 용궁엔 용왕님을 제외하고 적수가 없느니라.”

“혹시 알까기를 잘못 안 거 아니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후, 우매한 육지동물이로다.”


눈을 잠시 감았던 별주부가 눈을 뜨며 벼락같이 소리친다.


“이번 한판으로 이 별주부가 바둑의 근본임을 알게 하겠노라!”


* * *


“어, 음, 저기 한 수만 물리면 안 되나요?”


별주부가 구차하게 세빈에게 매달리며 물어본다. 세빈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바둑의 근본이라매?”


그렇다. 5분도 안되어 세빈에게 참교육을 받고 있는 별주부는 쩔쩔매며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빈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쩐지 바둑 3초 컷처럼 생겼더라.”


슬슬 신경을 건드리는 세빈의 말에 별주부의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 물들었지만 별 수 없었다. 내 별명이 바둑 마녀인 걸 벌써 잊었니? 아, 얘는 모르겠구나.


“나 여기서 한숨 자다 일어나도 돼?”


세빈의 거친 도발에 별주부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아이씨! 안 해!!”


결국 바둑판을 엎어버리고 마는 별주부였다. 그 모습에 세빈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용왕을 돌아보았다.


“자, 이제 증명이 됐죠?”


그런데 내가 바라본 용왕의 표정은 무섭도록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세빈은 잠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행마(行馬: 일정한 방식으로 바둑돌을 놓는 방법)로군.”


용왕은 날카로운 눈으로 세빈을 바라보았다. 그 강렬한 눈빛에 세빈은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별주부 녀석이 끼어든다.


“용왕 폐하, 사악한 수법을 쓰는 토끼입니다. 저 수법으로 수없이 많은 무고한 양민들을 울린 게 분명합니다.”


혹시 니가 양민이었니? 세빈은 기가 막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별주부는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애였다.


“그러니 어서 저 토끼의 배를 갈라 그 뱃속에 있는 사악한 것을 끄집어 내소서.”


우리 옹졸한 별주부님 말에 따르면 나는 수많은 양민을 울리고, 뱃속에 알 수 없는 악마를 잉태한 암흑 토끼가 된지 오래였다. 하지만 용왕도 상식은 있었는지 그 말에 호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눈매가 번갯불처럼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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