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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송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방 식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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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송
작품등록일 :
2021.08.22 12:06
최근연재일 :
2021.08.31 14:0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69
추천수 :
0
글자수 :
70,214

작성
21.08.2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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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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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쪽

들어가는 장.

DUMMY

무진은 담담했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것인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그저 지금 해야 할 일은 묵묵히 검을 휘두르는 것뿐이다.


영기를 두른 칼을 과격하게 찔러 넣었다.


반투명한 기운이 거칠게 일렁였다.


"네 이놈!!"


노기에 찬 음성이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네가 정녕 우리를 배신하겠단 말이냐! 네놈이 감히!"


기세와 달리 일렁이던 기운이 빛을 잃어간다.


"우린 네놈을 증오할 것이다. 이 대륙에 우리의 숨이 닿은 모든 생명들이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바락바락 외치는 소리가 무진의 가슴을 날카롭게 후벼 팠다.


"나는.."


무진이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배신자가 아니다.


내 검은 정령을 수호하는 검이며, 한시라도 그 본분을 망각한 적 없다.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었어도 타협한 적 없다.


정령의 수호자로 매 순간 명예를 지켰다.


지금도 그 명예는 시들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목울대를 넘어오는 말들을 무진은 씹어 삼켰다.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네놈을 거둔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기운이 완전히 시들었다.


무진의 눈이 허망하게 기운이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지독한 악몽이다.


오랜 시간 함께한 친우의 등을 찌르다니.


이 미친 이야기는 언제나 끝이 날까.


몇 년이 걸렸다.


대륙을 들쑤시며 숨어 있던 정령을 끄집어냈다.


그들에게 검을 쑤셔 박았다.


그들을 죽였다.


꺼져가는 그들의 눈을 보며 계속해서 되내였다.


이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정령이 부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은혜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놈이!"


증오에 찬 음성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검에 베여 갈라지던 푸른색 물결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모든 정령이 무로 돌아갔다.


이 숲 속이 너무도 잔인했다.


공기마저 쓴맛이 나고 괴롭다.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하나 남았다.


"정령왕."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이름을 불렀다.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던 모든 기척이 고요해졌다.


"어서 오너라. 무진."


자윽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곳까지 당도하느라 수고했도다."


"정령왕 슬리피우드를 뵙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허리를 숙였다.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노라. 나의 아이야."


울컥했다.


눈앞에 있는 이가 당신의 일족을 멸했사 온데, 분노하시지는 않으시는 겁니까?


따지듯이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 원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느니라. 오히려 그대의 노고를 치하하노라."


차라리 죽일 듯이 꾸짖었으면, 미워했으면.


가슴을 치미는 먹먹함에 참지 못한 침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도 큰일을 맡긴 게 아닌가 싶구나. 짐이 가장 친애했기에, 또 신뢰했기에 그대에게 맡겼을 뿐이니라."


짙은 슬픔이 느껴지는 소리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는 정령을 이끄는 아버지가 짊어져야 할 것이니라. 애초부터 그대가 감당할 일이 아니었노라."


짐이 무능하기에 잠시 그대에게 맡겨졌을 뿐.


"그러니 모두 돌려 받도록 하겠도다. 짐이 네게 맡겼던 짐들을 이제는 돌려주거라."


인계에 현현해 있는 모든 정령을 죽여라.


무진은 그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너의 슬픔도, 죄책감도 내가 이고 길을 가겠노라."


모든 정령을 벴다. 한때는 정령을 수호했던 기사가, 한순간에 정령 척살자가 되었다.


하지만 돌아간다 해도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염됐으니까.


"가혹하지만 한 가지 부탁을 하겠노라."


"왜 명령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의무를 저버린 자는 왕이 아니며, 그러니 그대가 섬겨야 할 필요도 사라졌기 때문이노라."


왕의 의무. 백성을 지키고 영토를 보전하는 것.


"어느 하나도 지킨 것 없이 되려 잃기만 한 짐은 관의 무게를 더는 견딜 수 없는 게야."


진잔한 울분이 서려 있는 한 마디였다.


"새로운 정령왕을 찾아 내 뒤를 잇게 해다오. "


청명한 마나의 울림이 어둠 속에서 퍼졌다.


"자네의 수고로 인해 우리는 겨우 기회를 얻었어. 부디 마지막까지 그대에게 맡기기를 허락해다오."


심장의 박동과 공명하는 울림이 더 가까이서 느껴졌다.


"대답은 듣지 않겠노라. 짐이 앗아간 모든 것들을 돌려주도록 하지. 선택은 오로지 그대의 몫이니라."


어둠 속에서 녹색 섬광이 번뜩였다.


모든 정령이 죽으면 인계에 현현한 정령왕은 단 한번, 제약없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슬리피우드의 그 말을 믿고 지금껏 버텨 왔다.


이것이 모든 판을 뒤엎는 한 수가 되길 바라며 미친 듯 검을 휘둘러 왔다.


폭사되는 빛에 몸이 물들었다.


여기까지 와 버렸다. 더 잃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부탁. 듣도록 하지요."


끝까지 간다.


건조한 목소리로 작게 말하고 무진은 의식을 잃었다.


그 한마디가 무진의 마지막 숨이었다.


정령의 수호자이자 정령 학살자였던 무진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처음 정령 계약을 맺기 전, 정령학관의 입학시험 도중의 순간으로.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정령방 식객으로 독자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첫 작품이라 연재하는데 있어, 설렘보다는 걱정이 많습니다.

꾸준한 연재로 독자님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9월 1일까지 하루 한 번 연재할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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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너지는 세계 21.08.28 10 0 15쪽
6 주교 조련하기 21.08.27 17 0 13쪽
5 다 된 밥에 주교 뿌리기 21.08.26 14 0 15쪽
4 남의 떡 뺏어 먹기 21.08.25 16 0 16쪽
3 남아 있는 흔적 21.08.24 21 0 20쪽
2 무진, 회귀하다. 21.08.23 26 0 16쪽
» 들어가는 장. 21.08.22 42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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