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길드 회의 (1)
오성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이자, 하이랭커 폭풍검 이재학을 형이라고 부르는 남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진호에게 쏠렸다.
이재학은 당황스러운 나머지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 녀석은?’
오성 길드 회의 당시, 레드헨 꼬치의 음식 버프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었다.
뒤늦게 몽타주를 받아들고서야, 한양의 외곽에서 마주쳤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했던가. 그 뒤로 직접 차원 엘리베이터 옆 공터를 찾았으나, 진호 일행이 더는 장사를 하지 않는 바람에 헛걸음만 했었다.
황건 길드에게 끌려갔다는 짐작만 하고, 대책을 강구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몸도 풀 겸 가벼운 원정을 나선 것이었는데 이렇게 마주친 것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이 나를 형이라고 불러?’
새파랗게 어린 진호의 친근한 호칭에 이재학이 막 입을 떼려는 참이었다.
“뭐······.”
“아니, 조용하고. 재학이 형, 나랑 일단 이야기 좀 하자. 따라와바.”
다짜고짜 따라오라는 듯이 손을 까딱거리는 진호에게 화를 내려 했으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재학은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조용히 하라는 말에 입을 다물게 되었고, 따라오라는 말에 어느새 진호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남겨진 장자오를 비롯한 황건 길드원들과 사신 길드 주작 당주 이수진을 비롯한 십대 길드의 길드원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골목으로 들어가는 진호와 이재학을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철수한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장자오였다. 이재학의 등장과 함께 그는 이곳에서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장자오의 명령에 황건 길드원들은 무기를 다시 집어 넣었다. 그들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영감. 이 일은 마스터 님께 그대로 보고할 거에요.”
장자오도 사신 길드의 마스터는 신경 쓰였는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기분 나빴다면, 정말 미안하네. 내가 설마 진짜로 자네들을 공격했겠는가? 그저 늙은이의 농이었다고 생각하게.”
장자오는 포권을 하고는 자리를 잽싸게 벗어났다.
***
진호와 이재학이 도착한 곳은 차원 엘리베이터 근처의 작은 골목길이었다.
진호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던 길을 멈추고 말했다.
“재학이 형, 이제 말해도 돼. 당황했지?”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왜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네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거지?”
진호는 이재학에게 윙크를 하면서 말했다.
“형, 노예잖아? 노예는 말을 잘 들어야지.”
노예라는 단어에 이재학의 눈이 급격하게 커졌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던 비밀을 진호가 언급하자 이재학은 저도 모르게 살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치부. 그 치부를 알고 있는 진호를 살인멸구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오성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이자, 탑 티어의 하이랭커였다.
그는 간신히 살심을 억누르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지금 형이 누구 덕분에 살아있는데?”
진호의 말에 이재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키아드리안 님께 죽을 뻔했잖아. 내가 형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설득해주지 않았다면, 형은 아마 42층의 이름 모를 분지에 묻혀있을걸?”
“너도 그 자리에 있었나?”
“그럼 잡일꾼으로 따라갔었지.”
진호는 이재학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다 들은 이재학의 살심은 완전히 누그러들었다. 상대는 단순히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비밀을 공유하는 동지였다.
키아드리안의 노예 동지.
“좋다. 일단 나를 구해준 것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비록 죽는 것만도 못한 노예 신세이지만.”
오성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이자, 하이랭커인 이재학이 한낱 잡상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진호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됐어, 어차피 나도 나 살자고 한 일이었으니까.”
이재학은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런데, 왜 내가 너의 명령을 듣고 있는 것이지?”
“나는 그냥 노예가 아니거든.”
“그냥 노예가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나는 키아드리안 님의 노예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수석 노예라고. 형이 키아드리안 님의 노예인 이상 내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어.”
진호의 말에 이재학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레드 드래곤의 노예가 된 것으로도 부족해, 새파랗게 어린 낙오자 상관을 모시게 되다니.
이재학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진호가 이상한 명령을 내리거나, 오성 길드에 해가 되는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드를 나와야 하나?’
이재학은 오성 길드에 진심이었다. 오성 길드는 길드 마스터와 함께 그의 두 손으로 직접 일구어낸 길드였다.
“길드에 해가 되는 명령을 내리면, 나는 길드를 탈퇴하거나, 자결할 것이다. 그것을 명심하도록 해라.”
이재학이 비장한 말투로 말했다. 진호는 두 손을 들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우, 형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해? 누가 잡아먹는데? 나도 오성 길드를 그냥 이용할 생각은 없어.”
“그냥 이용할 생각은 없다?”
결국은 이용한다는 뜻이었다. 이재학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졌다.
“진정하고, 일단 이것부터 살펴봐.”
진호는 레드헨 스튜 한 그릇을 이재학에게 내밀었다.
레드헨 스튜를 살펴본 이재학의 동공이 급격하게 커졌다.
“이, 이것은?”
“형이니까 특별히 알려줄게. 형도 노예 계약 맺으면서 골드 기프트 박스 얻었겠지?”
진호의 말이 사실이었다. 레드 드레곤과의 계약으로 이재학도 골드 기프트 박스를 얻었다.
거기서 얻은 기프트는 엄청난 기프트였다.
이재학은 기존에도 검귀라는 기프트를 가지고 있었다. 검술 마스터리의 상위 호환인 기프트.
그러나 이번에 골드 기프트 박스에서 얻은 기프트는 차원이 달랐다.
심안(心眼).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기프트였다.
비록 아직 기프트 사용에 능숙하지 않아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이를 전투에 활용하면,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원정도 심안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서 가볍게 다녀온 것이었다.
“그렇다. 아주 훌륭한 기프트를 얻었지.”
“그래, 골드 기프트 박스에서 나온 기프트라면 분명히 좋은 기프트일 거야. 자, 그럼 문제. 최초로 드래곤과 계약을 맺은 나는 무슨 기프트 박스를 얻었을까?”
그제야 이재학은 아차 했는지 무릎을 탁 쳤다. 어떤 업적이든지 최초가 중요했다. 최초의 프리미엄.
“이 요리는 플래티넘 기프트 박스에서 나온 기프트의 결과물인가?”
“땡.”
“그럼 도대체 이 요리를 어떻게 만든 거지?”
“반만 맞았어. 플래티넘 기프트 박스가 아니라 다이아 기프트 박스야.”
다이아 기프트 박스라는 말에 레드헨 스튜의 사기적인 능력치가 단숨에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얻은 골드 기프트 박스에서 나온 기프트도 어마어마할진대, 하물며 플래티넘 기프트 박스도 아니고, 다이아 기프트 박스에서 나온 기프트라면 사기적인 것이 당연했다.
“그렇군. 모든 것이 다 설명이 되는군. 그런데 나한테 이렇게 다 털어놓는 이유는 무엇이지?”
“이 요리 갖고 싶어?”
이재학은 레드헨 스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금 오성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흔들리는 오성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원정을 성공시켜야 했다. 절대저인 랭커의 숫자가 부족한 지금, 길드원들의 스펙을 올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이 요리는 너무 탐이 났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오성에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 길드에 가입하겠는가? 간부 자리를 내어 주도록 하겠다.”
진호는 문득 오성 길드 신입 공채 면접이 생각났다. 그 자리에서 이재학과 나누었던 대화는 아직도 잊히지 않고,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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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오성 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제 기프트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네. 자네는 탈락이네. 신기하기는 하지만 우리 오성은 최고의 정예만 모집한다네. 애초에 자네 같은 어중이떠중이 각성자가 들어올 곳이 아니지. 이해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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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괜찮겠어? 나 같은 낙오자 어중이떠중이를 간부로 앉혀도?”
진호의 말에 이재학이 속으로 뜨끔했는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그때, 일은 정말 미안하게 되었네. 기분 나빴다면 정중히 사과하겠네.”
이재학은 진심을 담아서 사과를 건네었다. 진호는 이재학의 진심 어린 사과에 머쓱해졌다.
“아니, 뭐. 장난이야. 가입 제안에 대한 내 대답은 거절이야.”
길드 가입 제안을 거절한다는 말에 이재학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비즈니스라면 이야기는 또 다르지.”
진호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비즈니스? 그게 무슨 뜻이지?”
“쉽게 설명해주도록 하지. 오성도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고, 나도 오성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지. 굳이 꼭 내가 길드에 소속될 필요가 있겠어?”
진호의 제안에 이재학의 머리는 바쁘게 굴러갔다. 사실 아무런 전투능력이 없는 진호를 길드의 간부로 앉히는 것에 반발이 없을 수는 없었다. 오성을 철저히 강자지존의 실력을 원칙으로 삼은 길드였으니까.
진호의 요리가 오성 길드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맞았으나, 진호를 간부에 앉히는 것은 원칙을 깨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반발은 있겠지만, 이재학은 그것을 실행할 만한 능력과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오로지 길드를 위한 일이었다.
그런데 진호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재학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좋았다. 원칙을 깰 필요도 없고,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었다.
‘오성 길드 혼자 요리를 독점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요리를 꾸준히 공급받을 수는 있겠지.’
바쁘게 계산을 마친 이재학이 물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들어보고 이야기하지.”
진호가 손가락 두 개를 펴면서 말했다.
“두 가지있어. 첫째는 안전의 보장. 길드의 실력자들을 경비로 배치하고, 경비 시스템을 갖추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줘. 보다시피 달콤한 냄새가 진동해서 그런지, 파리 떼가 많이 꼬이고 있거든”
크게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 꾸준히 음식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진호 일행의 안전은 오히려 오성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진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음식을 공급받기 힘들어질 터였으니.
“별로 어렵지 않군. 두 번째는?”
이재학은 고개를 흔쾌하다는 듯이 끄덕이며 물었다.
“십대 길드의 회의를 주최해 줘. 그리고 나를 그 회의에 참석시켜 줘.”
안녕하세요! 글국밥입니다. 스토리 아레나 참가해서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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