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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5202_덱빌딩 님의 서재입니다.

대항해시대 식인종 입맛이 까다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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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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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빌딩
작품등록일 :
2024.04.13 00:29
최근연재일 :
2024.06.02 21:02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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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글자수 :
87,025

작성
24.04.13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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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요리사로 살아남기 (2)

DUMMY

“실력에 자신이 없다면 포기해도 좋아. 궁정 요리사로서의 위신은 떨어지겠지만.”


이츠테펙의 말을 들은 틀랄리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었다.

그가 자신의 명예까지 건들면서 요리승부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분명 그는 요리라곤 해본 적도 없는 초보임이 분명했다.

주방이라는 곳을 처음 와본 듯 두리번거리는 태도부터 요리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꼬질꼬질한 손까지.

모든 행동이 그가 요리 초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는 마흔.

25년의 요리경력을 가진 전문가다.


과거 아이도 갖지 못하고 남편과 사별한 이후 더욱 요리에 몰두해 온 그녀였다.

그 때문에 평민인 그녀였지만, 요리 실력만큼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정면에서 부딪혀 왔던 사람이 있었던가?’


‘요리사’도 아닌 ‘전사’가 말이다.

분노를 넘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불쾌감마저 느껴졌다.


최근 들어서야 일하기 시작했지만,

저택의 식구 중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본인을 데려오기 위해 부인께서 얼마나 정성을 쏟으셨던가.

궁정 요리사였다는 과거가 그녀에게는 큰 자랑거리였으며, 하나의 훈장이었다.

무엇보다 그와 자신은 같이 식사하는 사이 아니었던가.

아즈텍에서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그 사람을 신뢰하고 인정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귀족이 아닌 평민이라면 더욱.


‘나를 얕잡아 보는 것이 분명해’


“그··· 혹시 뉘신지?”


일부러 하는 도발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부터 자신을 모르는 사람 취급을 했다.


바쁜 저녁 시간에 와서는 한참 동안 기다리게 했다.

백번 양보해서 그녀 자신을 깔보는 것까진 참아 넘길 수 있었다.


“난 내 실력에 자신이 있어. 증명할 길이 필요할 뿐이야.”


하지만 ‘요리’를 무시하는 행동은 참을 수 없었다.

요리는 초보가 자신만만하게 덤빌정도로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좋습니다. 받아들이지요. 이 승부.”


그녀는 다짐했다.


철저하게 짓밟아 주겠다고.

그래서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요리를 쉽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실 겁니다. 이츠테펙님’


틀랄리의 표정은 여느 때와 같이 차분했지만, 눈빛만큼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



깨끗하게 손을 씻고 오자 승부가 시작되었다.

패배하게 된다면 앞으로 주방에 들어올 수 없게 되겠지만,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다.


어차피 지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태백 시절 요리 짬만 해도 25년이다.

여기서 무너져서야 섭섭하지.


맛으로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요리 승부의 주제는 타코(Tacos)로 정해졌다.


‘타코는 내용물을 토르티야로 싸 먹는 형태의 음식을 지칭하지’


많은 사람이 오해하곤 하지만,

타코의 기원은 스페인인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나우아틀어로 틀라시칼리(Tlaxcalli).

이 단어는 토르티야 자체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싸 먹는 행위. 즉 타코라는 의미도 있다.


말인즉슨 스페인 정복 이전부터 원주민들도 즐겨 먹던 음식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타코는 아즈텍인들에게 친숙한 음식 중 하나이다.

그만큼 기존의 맛과 차별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의 맛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없다.


주방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쓸 만한 식재료가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지?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알고는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식재료가 아직 전파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은 스페인인들이 본토로 들어오지 못한 시점이니까.

기껏해야 카리브해 섬들에 머물고 있겠지.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후추도, 양파도, 마늘도 없다.

돼지, 소, 닭은 물론 레몬이나 라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타코 하면 떠오르는 재료 대부분이 구대륙의 것들이다.


찾을 수 있는 재료는 기껏해야 고추, 토마토, 파인애플 정도가 전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너무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었나?’


단순히 현대의 음식을 재현하는데 매몰되지 말고 유연하게 생각해 보자.


재료가 없는 상황.

현대와 동일한 맛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똑같다고 해서 아즈텍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지도 미지수고.

현대의 타코는 대체로 기름진 음식들이었으니까.


아즈텍에서는 식용유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담백한 식단을 고수했다.

느끼한 음식을 들이밀었다간 매스껍게 느낄 것이 분명할 터.


방법은 하나뿐이다.


로컬라이징.


현지화(Localization)를 해야 한다.

없는 재료는 과감하게 배제하고 가지고 있는 재료로만 조합해서 만든다.


‘마침 이걸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타코가 하나 있지.’


바로


타코스 알 파스토르(Tacos Al Pastor).


직역하면 양치기 스타일의 타코다.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유목민들의 음식 케밥에서 유래한 타코다.

꼬챙이에 겹겹이 쌓은 고기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굽는 케밥 있지 않은가.

겉면이 바싹 익으면 얇게 저며내어 먹는.

그것과 거의 유사한 형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흔히 아는 모습은 세로로 회전하는 되네르 케밥(döner kebap)의 형태이지만,

여러 기술적인 문제도 있고 해서 굽는 방식에 변형을 주기로 했다.


꼬치에 꽂아 가로로 굽는 방식으로 말이다.

양꼬치를 굽는 장면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메뉴도 정해졌으니, 요리를 시작해 볼까.’


일반적인 타코스 알 파스토르(Tacos Al Pastor)에는 돼지고기가 쓰인다.

이는 다른 고기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만큼 칠면조(우에숄로틀) 고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옆에는 주방 하인들이 손질해 놓은 칠면조 두 마리가 있었다.

곧바로 사용하면 좋겠지만 여기서 한 번 더 손질에 들어가야 한다.


뼈를 발라내는 발골 작업.

양념을 골고루 베이게 하기 위해선 필요한 작업이었다.


말은 쉽게 했지만, 사실 발골 작업은 무척이나 까다롭고 고된 공정이었다.

숙련된 요리사가 아니라면 시도하지 않는 편이 좋을 정도로.


“나도 닭은 해봤어도 칠면조 뼈를 발라내는 건 처음인데.”


그래도 하던 게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날카롭게 벼려진 흑요석 돌칼을 집어 들었다.

칠면조 고기에 칼을 박아 넣는다.


으드득 으드득.


칼날이 살과 뼈 사이를 가르면서 소리를 냈다.


“역시 스테인리스 식칼만큼 수월하진 않구나.”


그럼에도 계속 진행되는 작업.

다리뼈를 발라내고, 날개뼈, 가슴뼈까지


섬세하지만 과감한 손놀림.

일련의 과정들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순식간에 전부 발골된 두 마리의 칠면조.

전부 손가락 굵기의 두께로 잘려져 있었다.

꼬치에 꽂기 적당한 크기.

고기는 이만하면 되었다.


“이제 양념을 만들어볼까?”


마른 고추를 종류별로 가져온다. 그리고 끓는 물에 잠시 데쳐서 불린다.

불린 고추와 끊인 물, 토마토와 손질된 파인애플, 소금까지 절구에 넣는다.


“여기서 셰프의 킥(Kick)이 들어간다.”


바로 아치오테.


빅사 오렐라나라고 불리는 관목의 씨앗이다.

붉은색 염료로도 쓰이는 만큼 요리를 하는데 불그스름한 색감을 더해줄 것이다.


현대 멕시코 요리에서 쓰이는 양념을 아치오테 페이스트라고 하지 않던가.

그곳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아주 약간이지만 후추의 풍미를 더해줄 수 있다.

후추가 없는 지금은 아주 유용한 재료지.


아치오테까지 절구에 넣고 열심히 으깨기 시작했다.


드르륵 드르륵


절구의 돌 표면에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조금씩 으스러지며 만들어지는 양념들.


울긋불긋 아름다운 붉은빛이 퍼져 나간다.


완성된 양념들.


곧바로 고기들을 버무려 재워둔다.

고추의 매콤함과 파인애플의 새콤달콤함이 잘 어울릴 거다.


무엇보다 파인애플에는 브로멜라인(bromelin)이라는 효소가 있다.

이는 연육(軟肉) 작용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 질길 수도 있는 칠면조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줄 거다.


나머지는 기다림의 시간.

아직 저녁 식사까지 여유가 있으니,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



비슷한 시각. 틀랄리는 요리를 마무리하는 과정에 있었다.

들어간 재료는 크게 특별할 것 없이 고추와 토마토, 칠면조 등 많지 않았지만

요리 솜씨가 어디를 가진 않는지 벌써부터 군침 도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타코는 재료를 푹 넣고 익힌 일종의 찜과 같은 요리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임과 동시에 그녀의 25년 노하우가 녹아들어 간 방식.


“이 정도면 제대로 익은 거 같네”


틀랄리는 뚜껑을 열어 음식을 확인했다.


물을 따로 넣지 않았기에 굉장히 말라 보이고 건조해 보이는 모습.

그다지 끌리는 비주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맛은 다르다.


“으음”


아틀라코야는 요리를 맛보았다.


고기를 씹자마자 느껴진다.

밀려 나오는 채소즙과 육즙들.

깊고 촉촉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온다.


‘되었다.’


그녀는 확신했다.

이 정도면 자신의 요리 인생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완성도라고.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맘에 안 드는 그의 코를 뭉개줄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여유가 생긴 그녀는 이츠테펙을 살펴보기로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틀랄리의 혼잣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츠테펙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그저 가만히 서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요리를 완성할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초보는 초보인가?’


괜한 기대를 한 것 같았다.


그 순간.


이츠테펙은 움직였다.

흑요석 돌칼을 집어 들었다.


‘부··· 분위기가 달라졌어!’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멍한 표정이었는데, 칼을 집어 들더니 눈빛부터 달라졌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칼질.

과감하고 섬세하게 칠면조의 뼈를 발라내고 있었다.


‘초보자가 아니야?!’


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저건 절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질 것이 아니었으니까.

인정하긴 싫었지만 훌륭했다.


‘흥, 그래도 칼질이 요리의 전부는 아니지. 전사니까 칼질에 익숙할 수도 있어.’


애써 부정해 보지만 그의 손놀림만큼은 숙련된 요리사의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솜씨를 키웠다는 말인가?

저택 내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주방이 있었던가?

의문이 꼬리를 이었지만, 정답을 알 순 없었다.


‘아름답다. 그리고 빨라!’


그의 손은 마치 칠면조의 뼈 구조를 전부 알고 있다는 듯이 움직였다.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는 실력.


으드득 으드득.


어느덧 순살의 고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틀랄리는 홀린 듯이 이츠테펙에게 다가갔다.

일종의 호기심이었다.


고기 손질을 끝마친 그는 고추와 토마토를 이용해서 양념을 만들었다.

평범한 양념인가 싶었던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던 재료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마차틀리(파인애플)라고? 그건 과일 아니었어?’


그녀가 아는 바에 따르면 저건 마야인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었다.

교역품으로 가끔 테노치티틀란에 들어오긴 하지만 재배하는 작물도 아니었고,

요리에 넣어 먹는다는 방식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저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주방에 놔두었던 건데···’


결과물이 상상이 안 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된다.


드르륵 드르륵


재료들이 으깨지면서 만들어지는 양념들.

좋은 향기가 느껴졌다.


스멀스멀 머리 한쪽에 자리 잡는 불길한 상상.

어쩌면 자신이 패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으득.


그녀는 자기 입술을 짓이겼다.


‘인정할 수 없어. 그렇게 되면 요리에 쏟아부은 내 25년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가 따로 요리 연습할 시간은 없었을 터다.

더군다나 이제 갓 성인이 된 18세이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보다 요리를 많이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런 실력을 갖추게 된 거지?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재능의 차이란 말인가?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흔들리는 평정심.

나이를 먹고 경험이 많은 그녀라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울컥 기분 나쁜 감정이 샘솟았다.


열등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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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요리사로 살아남기 (5)(소제목 변경) +1 24.05.14 90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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