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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화 님의 서재입니다.

우주에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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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화
그림/삽화
노벨AI
작품등록일 :
2022.12.13 02:49
최근연재일 :
2023.02.09 18:57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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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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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글자수 :
83,765

작성
23.02.0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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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3 : 소문

DUMMY

#13 : 소문


오닐시 제2자치구.

고급 아파트에 입주한 지도 어느덧 두어 달이 지났다.

나는 성공적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사실 오닐 시에서 그러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법하다. 이곳은 일자리가 넘쳐나니까.


처음엔 제2자치구의 살인적인 물가에 조금 주눅이 들었지만, 이곳에서의 연봉은 그보다 훨씬 경이로웠다. 상대적 물가가 제3자치구와도 별반 차이 없이 느껴졌다.


"아무 경력이 없다고요?"

"게다가 신원 생성도 얼마 전······ 흠."


그렇게 물으며 긴가민가하던 면접관들은,


"아, 그 아파트에 사세요?"


왜인지 내 집과 차를 보더니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재산이 스펙이라도 되는 건가? 결과 별볼일 없는 자리나마 구할 수 있었다.


난 어느 신문사 기획실의 말단사원이 되었다. 이곳은 오닐 시뿐 아니라 성협 전체를 겨냥해 메타버스 사업을 하는 곳이었다. 제시한 연봉은 총 6만 크레딧. 도대체 아무 경력도 없는 내가 어떻게 이런 번듯한 직장을 얻을 수 있었을까 고민해봤지만, 답은 간단했다.


제2자치구 시민이니까다.


"2구 시민이시니까 이 정돈 하실 수 있죠?"

"에이, 2구 사람인데 뭐."

"2구잖아. 똑똑하겠네."


좋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이 똑똑하다는 것, 유능하다는 것, 돈 잘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양이다.


처음엔 이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서아를 생각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난 서투르거나 남보다 뒤쳐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일을 배워나갔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2구에 아파트를 사길 잘했다.


"서아, 아빠 왔다."

"아. 고객님 오셨어요?"


아주머니가 오셔서 날 반겼다. 아니나 다를까 인상이 초췌하다. 오늘도 꽤 격무를 보신 모양.


이곳 2구에서는 환경미화를 비롯한 다른 단순노동직들이 모두 로봇으로 교체되었지만, 시터를 비롯해 사람의 손길이 더 나아보이는 소수 직업은 살아남은 것 같았다.


덕분에 서아가 다른 아이들보다도 더 키우기 힘든 아기란 걸 깨달았다. 벌써 3번째 시터를 바꿨으니까.


"오늘은 보너스를 좀 드릴게요."

"정말요?"

"네. 돈이라도 많이 받으셔야죠."

"아유 감사합니다!"


이분은 좀 오래 계시길 바라는 맘에 주머니를 챙겨드렸다. 오닐 시 사람들답게 돈 준다는 말은 절대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격하게 감사하며 날 어디 왕 보듯 봐왔다.


누구든 돈 받는 쪽은 다들 공손했다. 조금 분쟁이 일다가도 돈이 오가면 순식간에 그 관계가 정리됐다.


부로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도시. 부 앞에 모두가 공평한 도시.

잠깐 바깥 노을을 바라보던 난 슬며시 서아를 안아 들었다.

하늘의 반사경이 완전히 닫히고 있었다.


"서아. 오늘 하루도 잘 지냈니?"


생후 118일.

서아는 무사히 100일을 지났다.

이제 아기는 통잠을 잔다. 끊임없이 자던 예전과 달리 단숨에 대여섯 시간을 잔다. 덕분에 나도 밤에 잠이 끊기는 일 없이 숙면을 취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이것.


"······ 바아!"


잠에서 깬 그 아이가 날 보며 생긋 눈웃음을 짓는다.

옹알이 또한 조금은 달라졌다. 이 아파트의 회화 학습 플랜이 정말로 먹히는 건지 점점 소리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아! 다! 부!"

"아, 빠, 해봐. 아, 빠."

"바아!"

"아, 빠."

"바아아!"

"아, 빠."

"······ 빠아아!"

"푸흡."


아직은 무린가. 털털 웃었더니 서아도 날 따라 웃었다. 시터 아주머니는 하루 내내 울다가도 나만 보면 온순해진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조금씩 몸을 뒤집으려 하고 있어요."

"정말요?"

"네. 이제 곧 바닥을 기게 될 거예요. 그럴 때 고객님께서 잘 북돋아주시면 아이가 더 빨리 학습하게 될 거예요. 물론 안전을 위해서라도 계속 곁에 계시는게 좋구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난 진심으로 전했으나 시터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내게 인사해보였다. 오닐 시에선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 모양이다. 나도 다음부턴 자제해야겠다.


그나저나 이제 서아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려 하는구나.


예전부터 이런 생각하긴 했지만, 아이가 자라고 발달하는 매 순간들을 이젠 옆에서 지켜보지 못한다는 게 퍽 아쉬운 일이다.


정원의 홀로그램엔 7살 서아가 뛰어다니고 있다. 이 애가 언제까지고 퇴근하고 돌아온 날 반겨줄까?

시터들과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나보다는 시터들과 더 가까워지겠지.


"어쩔 수 없네. 돈은 벌어야 하니까."


왠지 조금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그거 들으셨어요? 솔라 오닐에게 정부가 생겼다던데."


오닐 시 곳곳에서 펼쳐진 뜬 소문.

다름 아닌 솔라 오닐의 정부 소식. 그녀가 최근 우주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서 연인을 사귀었다는 소문이었다.


"오닐 시에 들어오기 전에 되게 애틋하게 헤어지는 걸 봤대요. 근데 놀랍게도 아이가 있었다고······!"

"예!?"

"잠깐, 솔라 아가씨가 이번 여행을 얼마나 길게 다녀오셨죠?"

"1년이에요."

"어머나······"


설마 솔라 오닐의 딸?

소문은 무성하게 퍼져 오닐 시 곳곳으로 번졌다. 그 정부가 2구의 고급 아파트에 산다는둥. 솔라 아가씨가 그를 위해 고급 세단을 선물했다는둥. 둘 사이에 반년도 안 된 아기가 있다는둥 잡설이 그칠 줄을 몰랐다.


그것이 1구 오닐 저택의 집사부까지 번졌으니 본인 귀에 닿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잘 들으세요. 집사부에서까지 그런 악소문이 번지도록 가만히 안 둘 겁니다."


젊고 유능한 뉴튼 집사장은 모든 집사와 하녀들을 불러모아 으름을 놓았다.


"솔라 아가씨께 그따위 잡설이 닿지 않도록 다들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짧은 호령과 대답으로 모두가 본직에 돌아갔다. 특히 오늘은 중요한 날인지라 조금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됐다.


평화로운 저녁.

홀 안에서 솔라 오닐이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기품 있게 차려 입은 검은 드레스. 성숙한 화장. 사치스런 목걸이에 꽃모양으로 땋은 뒷머리가 상대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했다.


집사부는 전원이 긴장 상태다. 오늘 올 손님이 여간 중객이 아닌지라 한 치의 실수조차 용납이 안 됐다.


특히 1구의 반사경을 수리하려면 어떻게든 오늘 만찬을 성공적으로 끝내야 했다.


"오십니다."


집사장 뉴튼의 한 마디에 솔라가 숨을 삼킨다. 이브닝 글러브 속 손가락이 떨리는 채 깍지를 꼈다.


곧 저택의 정문이 열리고, 앙증맞은 연홍빛 소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솔라!"


그 소녀는 높게 딴 양갈래 머리를 꼬리처럼 휘날리며 솔라에게 뛰어왔다.

귀여운 미소가 와락 달려들자 솔라도 간신히 웃으며 사촌동생을 반겼다.


"에, 엘라! 오래간만이······"


철썩!

순식간에 뺨을 맞았다.

동공이 쪼그라든 솔라가 식은땀을 흘리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집사부 전원이 빠르게 고개를 숙인다.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었다. 엘라 오닐, 한 살 터울의 사촌 동생은 언제나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솔라를 반기고 있었다.


"여태 어디 갔었어? 보고 싶었잖아!"

"······ 어, 응······ 그게······"

"간만에 보니 정말 좋다! 역시 가족보다 나은 게 없나 봐."

"응······ 나도 정말 보고 싶었어, 엘라."

"그치? 아! 소개할 사람들이 있어. 솔라가 없는 동안 많이 바빴거든. 이쪽은 잭 보위야, 보위 가문의 장남. 소행성 채굴 기업 알지?"

"응. 아, 알고 있어. 안녕하세요, 잭."


엘라는 그 소년을 시작으로 주위 사람들을 하나둘씩 소개해나갔다. 솔라도 미소로 응대하며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허나 그동안에도 입 안엔 피맛이 그치질 않았다.


"아 그리고 이쪽은 린튼 가. 린튼 가문 차남 다니엘 린튼이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솔라 아가씨."


린튼이란 단어에 솔라는 꿀꺽 핏물을 삼켰다.

이곳은 앞으로 솔라의 시댁이 될 예정이었다.


다니엘. 그는 구불구불한 금발이 잘 어울리는 사내다. 키가 퍽 크고 품위도 있었지만, 얼핏 봐도 나이가 서른은 넘었다. 혼담을 나누기엔 이제 18살인 솔라와 나이차가 많았다.


"린튼 가문은 막강한 성간 군벌가야. 이번에도 식민지 하나를 늘렸대. 솔라 덕에 오닐과 린튼은 좋은 관계를 쌓게 될 거야!"

"미리 감사드립니다."


다니엘은 솔라의 손을 부드럽게 채어가 그 손등 위로 입을 맞췄다.

솔라는 웃으면서도 남몰래 부어오른 뺨을 감췄다.


"물론 둘은 좀 기묘한 관계긴 하지만······ 뭐, 상관 없죠, 다니엘? 당신보다 나이가 적은 엄마라도."

"네.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전 솔라 님을 진심 다해 공경할 겁니다. 제 어머니가 되실 분으로서."

"역시!"


들러리가 우아하게 감탄했다. 솔라도 그 물결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웃어 보였다.

솔라의 결혼 상대는 이 남자가 아닌 그의 아버지. 이미 80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게 조건.

반사경을 고칠 자금과 2,3구 공간 협의는 모두 이 혼담 한 번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


"엄마가 아들보다 나이가 적은 건 뭐······ 오히려 좋은 게 아닐까? 새롭고 멋지잖아!"


엘라가 까르르 웃자 주위가 더할 나위 없이 공감한다. 솔라도 억지로 뺨을 밀어 올리려다 그만 맞은 부위를 감싸고 신음을 삼켰다.


그 모습에 순간 엘라의 웃음이 끊겼다.

주위가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


"······ 뭐야, 솔라. 어디 아파?"

"응? 아, 아냐, 엘라! 난 괜찮아!"

"정말이야?"

"응! 나 건강해!"


말하면서도 말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엘라 오닐은 송곳 같은 안광으로 솔라를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소리 내면 죽는다. 집사부 전원은 제 목숨을 걸고 숨통을 틀어 막았다.


"······ 하여간 칠칠치 못하다니까, 솔라도."

"하, 하하······"

"몸 조리 잘하고 다녀. 이제 신부가 될 사람이잖아."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자, 안으로 들어올래?"


솔라가 서둘러 길을 텄다. 엘라는 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저택의 살롱으로 향했다.


두 오닐과 귀빈들이 사라지자, 홀 안의 사람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구사일생의 숨을 뱉었다.



"근데 왜 하필 1구로 우릴 부른 거야? 2구로 솔라가 와도 되잖아."

"아. 그건······"

"얼어 죽는 줄 알았다구? 이런 데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는 거람."


불평하던 엘라가 슬쩍 솔라를 모로 보았다.


"아니면 우리한테 알려주고 싶었던 건가. 1구의 환경이 이렇게 처참하니 너희도 신경 좀 써달라, 라고."

"······."

"아니지?"

"······ 으, 응. 아냐. 그냥 내 불찰이었어."

"그래? 괜찮아! 용서해줄게!"


엘라는 방긋 웃었다. 솔라는 식은땀을 흘리며 뉴튼 집사장의 눈치를 보았다.


사실 엘라의 말이 맞았다.

엘라 오닐의 아버지 존 오닐은 현재 오닐 시 전체의 주인이라고 봐도 무방한 존재이나, 1구의 반사경 수리는 절대 도와주지 않았다.

그의 일가가 1구 시민들이 얼마나 처참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깨우쳤으면 했는데······


'먹히지 않는 건가.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엘라 오닐이란 소녀에겐 괜한 걸 기대한 듯하다.


"근데 그 소문은 사실인가요?"

"무슨 소문요?"

"솔라 아가씨. 아기 생기셨다고."

"······ 예?"


순간 솔라의 얼굴이 파래졌다.

당연히 아기는 없으나, 그 소문의 원천이 어디인지는 쉽사리 파악이 가능했다.



"솔라. 진짜야?"


엘라 오닐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솔라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냐! 절대 아니야."

"하하하! 뭘 그렇게 놀라. 있지, 사실 솔라가 진짜 아기가 있든 없든 상관 없어. 진짜 있는 거라면 축하해줘야지."


엘라는 손가락으로 가위표를 새겼다.

솔라가 얼어붙은 채로 엘라를 바라봤다.


"근데 소문이 번지는 건 안 돼. 결혼식에 잡음이 생기잖아. 만약 진짜로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든 숨겨."


엘라 오닐은 까르르 웃으며 나이프를 모로 세웠다.


"안 그럼 내가 그 아기 죽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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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 : 낙원 23.02.07 47 1 15쪽
12 #11 : 실언 23.02.06 52 1 14쪽
11 #10 : 사례 23.02.02 59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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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8 : 행렬 +1 23.01.30 72 4 14쪽
8 #7 : 바다 +1 23.01.28 61 4 14쪽
7 #6 : 발전 +1 23.01.27 71 4 17쪽
6 #5 : 유영 +2 23.01.25 77 4 11쪽
5 #4 : 긴축 +1 23.01.21 81 6 11쪽
4 #3 : 알람 +2 23.01.19 92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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