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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화 님의 서재입니다.

우주에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점화
그림/삽화
노벨AI
작품등록일 :
2022.12.13 02:49
최근연재일 :
2023.02.09 18:57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250
추천수 :
51
글자수 :
83,765

작성
23.02.06 18:00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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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11 : 실언

DUMMY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고,

고도로 성장한 재벌은 신과 구분할 수 없다.


사람들은 오닐 가문을 신의 일가라 불렀다.


막대한 돈으로 태양과 땅과 공기를 만드는 이들.

벽화로 사기나 치던 옛 신들과 달리 처음으로 세상을 창조한 자들.


"나왔다! 솔라 님이시다!"

"카메라!"


그 신의 일가에서도 솔라 오닐은 빼어난 용모로 유명한 소녀였다.

이젠 아가씨가 되면서, 어쩌다 한 번 녹화된 영상으로 성협의 네트워크를 달구는 일이 잦았다.


"방금까지 멀쩡해 보였는데, 눈 감기가 무섭게······"


그런 소녀를 이 남자는 손쉽게 놀래켰다.


솔라에게 제 딸을 맡기곤 무서운 속도로 침대와 하나가 된 남자.

누가 보면 전원 스위치라도 내렸나 생각할 정도다.


'어떻게 몸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버텼지?'


솔라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가다듬으며 품속을 내려다봤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자꾸 꼬집게 되는 이 말랑말랑한 볼.

환희 빛나는 살결. 들릴까 말까한 숨소리.


이리도 작고도 천사 같다니. 신족의 영애는 위신도 잊은 채 바보마냥 흐물거리고 있었다.


"헤헤. 말랑말랑해······."

"우으으-"

"엇, 미안. 깼니?"


서아가 하품을 하며 작은 팔을 쭉 뻗었다. 생후 2개월 아기의 주먹만한 얼굴에 오만상이 넉넉하게 자리 잡았다.


이 작은 생물의 상쾌한 기지개가 심장이 아플 정도로 솔라를 때렸다.

볼을 부벼보고 싶다는 충동이 정수리를 쿡쿡 찌를 정도로 차오르고 있었다.


"안 돼······ 남의 아이에게 그런 교양 없는 짓, 실추야."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다잡는데도 그 감당 안 될 욕구가 절정에 다다를 즘,

불행일지 다행일지 드디어 '본 게임'이 시작됐다.


육아란 무엇인가.


"으아아앙!!"

"부, 분유! 분유 어딨지?"

[좌측 찬장 위.]

"도트 씨! 이거 그냥 끓는 물에 바로 타면 되는 거예요?"

[분유가 아닌 차를 끓이는 거라면 그래도 됩니다.]

"우아아앙!"

"미안! 배고파도 조금만 참아! 금방 만들어줄······."

"맙!"

"꺄앗! 거, 거기 깨물면 안 돼, 서아야!"

[젖병처럼 생기긴 했지.]

"무, 무슨 망발을 하시는 거예요!? 애나 좀 말려보라구요, 제발!"


어쩜 저리 무례한 AI가 다 있지!?


울먹이는 목소리는 진짜 신에겐 닿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다음 마경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팔에 느껴지는 축축 묵직한 감각과 함께 코를 찔러오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이게 무슨 냄새야!?"


설마······!

새파란 낯빛으로 서아의 궁둥이를 살핀 서아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과연 사람들이 무어라 생각할까.

오닐 일가의 증손 아가씨가 아기 똥기저귀를 갈고 있다고 한다면, 열 중 하나는 믿을까?

저택의 집사부가 놀라서 뒤집어졌을 거다.


"으에엑······"


결국 단 한 시간만에 소녀는 자신의 오만을 뉘우쳤다.

겨우겨우 기저귀를 갈곤 함교 소파에 쓰러진 채 자신의 과오를 뉘우쳤다.


아기를 꽤 좋아하는 것 같다고?

도대체 어찌 그런 미련한 실언을 해 어리석음을 자아낸 거지?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어······ 저 사람은 어떻게 이런 걸 매일 하고 있는 거야······"


그것도 이 우주에서. 솔라는 초췌한 낯으로 석영 유리창 밖을 바라봤다.


오닐 시로 가는 길엔 언제나 스치던 황갈색의 행성이 속 터지는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다 죽은 눈으로 그 행성을 바라보고 있자, 아래쪽에서 손이 올라와 소녀의 빨간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아야! 그, 그만해······!"


인정 없는 서아의 손짓에 솔라가 울듯 말한다.

이쪽 상태도 모르고 제 무료함만 풀려고 하는 것이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요구의 손길이 뻗친다.


순간 멀거진 솔라는 자신을 향해 펼쳐진 작은 손바닥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응? 어, 얼굴······?"


솔라가 그 갸름한 턱을 조금 츳들이자, 서아가 연홍빛 뺨을 어루만진다.

제 아빠 얼굴만 만져온 건가. 서아는 신기함에 눈을 반짝거렸다.


"우와아- 와아-"


오똑한 코.

고운 살결.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

그 하나하나 멋대로 탐해지던 솔라가 당황한 채 서아를 내려다봤다.

제 맘대로 마구 만지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이쪽을 배려하고 있었다.


"······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겠지만, 왠지 그런 우문을 하게 된다.

눈을 깜빡이던 솔라는 조금의 뜸을 들여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서아의 볼에 자신의 볼을 맞부볐다. 꺄아아-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볼 밑에 눌려 흐드러진다.


그에 물든 채 솔라도 히뭇 웃었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네요. 그간 얼마나 힘드셨을지."


그 힘든 육아를 버텨내며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로 키워내다니.


그는 아마 자신의 모든 걸 전부 바쳐왔을 것이다.


범죄를 저지를 거냐고 물어봤던가? 진짜 실언은 그쪽이었던 모양이다.


*


[알림 : 30분 뒤 오닐 시에 도킹합니다. 비행사, 제로 G에 대비하십시오.]

"······ 으음······"


도트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머리통이 철퇴마냥 늘어져 내렸다.


시간을 보니 누운지 4시간도 안 지났다.

2달 만에 처음으로 취한 숙면인데도 맘껏 자지 못한 건, 어느덧 아빠가 다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 뭐 별 수 없나. 남에게 서아를 맡겨 놓고도 4시간 잔 게 몹쓸 짓인 거지. 흠."

"4시간이 아니라 52시간 동안 주무셨습니다. 48시간하고 4시간요."

"뭐!?"


뺨이라도 맞은 듯 고개를 돌렸다. 방구석 한켠에 인간을 닮은 무언가가 쓰레기마냥 구겨져 있었다.


그 빨간 머리칼과 품 안의 서아를 못 봤다면 아무도 그게 솔라 오닐이란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야, 너······"


헝클어진 머리. 초췌한 인상. 공허한 두 눈.

아니 그보다 52시간?

무엇에 먼저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너······ 괜찮아?"


그 반주검이 응응 조악거렸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몸짓에서부터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웃음소리가 줄줄 흘러내렸다.


"저, 깨달았어요."

"······ 뭘······?"

"아기 같은 거, 함부로 봐주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어요."

"······ 어······ 그래, 수고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고통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52시간. 생전 처음 보는 남에게 자기 딸을 맡겨 놓고 신나게 퍼질러 잔 덕에, 어느덧 콕핏 너머로 오닐 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길이가 도시 1개 직경에 달하는 거대한 원통형 천체.

안에는 수천만 명의 시민들이 고도의 문명을 구가하고 있을 거다.


"멋지죠?"


솔라가 내 곁에 섰다. 그 소녀는 이 도시의 경이로움에 더 없이 익숙한 듯 보였다.


"오닐 시는 원통 모양, 즉 실린더 형태로 설계되었어요. 반경 3.2km, 길이 32km, 총 면적 약 640 제곱킬로미터죠. 6등면으로 나뉘는 내면은 3개 격면이 거주구이고 나머지 세 면은 반사경으로 덮인 거대한 창문이에요."

"반사경······? 거울이라고?"

"네. 항성을 향해 개방되어서 태양빛을 원통 안쪽으로 반사하는 거예요. 각 거주구의 맞은 편에서 햇빛을 쏘는 거죠."

"반사경이 열리면 낮, 닫히면 밤이라는 건가?"


솔라는 신기해하는 내가 재밌다는 듯 입가를 가렸다.

아무리 그래도 도시 크기의 거울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무식하지만 놀라운 발상이다.


"중력은?"

"원심력으로 만들죠. 초당 3.16도로 회전하면서 바깥쪽으로 인공 중력을 생성하고 있어요."

"전력이 장난 아니게 들겠는데······. 저 앞쪽에 달린 고리는? 동그란 유리 구슬 같은 게 다닥다닥 이어져 있는데, 저건 뭐지?"

"경작지예요. 각 구역마다 벼, 밀, 보리, 옥수수 등의 농작물을 하나씩 재배하고 있어요. 그 농작물을 위한 최상의 환경이 별도로 설정되어있죠. 수확물은 가장 신선한 상태로 거주구에 배달되요."

"음······ 하지만, 대기권 같은 게 없으니 운석 충돌엔 취약할 것 같은데."


내 계속된 의심에도 솔라는 여유로운 자세로 척척 대답해냈다.


"대기권 같은 게 없을 만큼 작으니까, 운석과 부딪힐 확률도 낮겠죠?"

"아하······"


괜히 캐물으려 하다 상대와 분야를 잘못 만났다는 생각만 들고 있었다.


솔라는 내게 서아를 안겨주었다. 태없던 아가씨가 왜인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오닐 시를 봐서 가문의 위상을 뒤늦게 실감한 걸까? 솔라는 가슴 밑에 팔짱을 낀 채로 전경을 지켜보았다.


"오닐 시는 작고 가벼워서 도시 자체가 회피 기동을 할 수도 있고, 째로 이주를 할 수도 있어요. 위협이 될만한 규모의 유성체는 먼지 덩어리이거나 얼어 붙은 가스 덩어리에 불과해 파괴하는 것도 쉬워요. 이 우주 요새는 이곳 말고도 성협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죠. 이곳의 인구수는 총 2천만명. 아무나 여길 고향으로 삼을 순 없답니다."


그러더니 그녀가 가늘어진 눈으로 날 바라봤다.


"오닐 시 입국 심사, 꽤 까다로워요. 특히나 부랑자 신분으론 더더욱."

"어, 정말······?"

"왜요? 자신 없으신가요?"


의미 모를 위기감을 얹혀준 채 솔라가 창가를 떠났다.

그 흩날리는 루비빛을 보며 슬쩍 깨닫기 시작했다.

나와 서아가 더 이상 이 소녀를 만날 일은 없을 거란 걸.


오닐 가문의 증손은 일반이라면 살면서 말 한 번 섞어보기도 힘들 존재다.


누군가 보면 영광인 인연이라고 말하겠지만, 유년 시절부터 보고 배운 바론 이 정도 거물과 깊게 엮이는 건 좋지 않았다.


태양과 가까이 날려고 들면 타죽을 지도 모르니까.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 번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공항에 입국하기 전에 헌병대가 에어록에 도킹했고, 솔라는 가벼운 인사를 남긴 채 헌병대의 함정으로 넘어갔다.

나도 결과만 두고 보면 행운이었던 만남에 만족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 쪽도 신세 졌어. 서아를 잘 돌봐줘서 고마워."

"별 것 아닙니다. 저도 행복했으니까요."

"······ 눈을 피하면서 말하는데?"


움찔 떤 소녀가 헤실헤실 웃으며 무마한다. 나도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솔라의 뒤편에 도열한 헌병들이 뒤통수라도 맞은 표정으로 우리 둘을 갈마본다. 이상한 오해가 생기기 전에 서둘러 헤어지는 편이 좋겠다.


"잘 가. 솔라."

"네. 서아야, 잘 지내렴."


솔라가 인사하자 서아가 가지 말라는 듯 손을 뻗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서로 정이 든 건가? 솔라도 잠깐 묽은 시선으로 서아를 바라보더니, 곧 지휘관이 걸쳐준 재킷을 들추며 몸을 돌렸다.


에어록의 해치가 닫힌다.

문틈새가 좁아지면서 오닐 가문과의 다신 없을 인연도 잘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 때까지는, 그리 생각했었다.



"엄청 많잖아······ 한참 걸리겠는데?"


오닐 시 공항.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건지 수만 대의 우주선들이 오닐 시 외벽에 다닥다닥 도킹해있었다.

솔라와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입국 심사가 까다롭다는 말이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게다가 공항 AI는 내 염려를 실현시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오닐 네트워크 미등록 신분입니다. 면접관의 심사를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현 대기 인원 : 59,000명 이상]

[면접까지 약 330시간 남았습니다.]


낭패네.


주위에 도킹해있는 수많은 우주선들도 꽤 오랫동안 면접을 기다려온 것 같다.


인터넷에 연결했더니 이미 저들만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돼있었다.


[내일 50번째. 탈락 시 저금 탕진.] - AO 149/22/14:22:01

[3년째. 내일 탈락, 에어록 점프. 목도!] -AO 149/22/14:22:03

ㄴ [좋은 볼거리. 감사. 보답 팔로우.] - AO 149/22/14:22:07

ㄴ [면접 자료. 양도 가능?] - AO 149/22/14:23:01

[식량 고갈.] - AO 149/22/14:24:51


흠······ 아무래도 한 번만에 면접을 통과한 사례는 얼마 없는 모양인데.


게다가 이 눈먼 채로 난사하는 스팸 메세지들······


[복잡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하면 입국 통과!]

[1타 면접 자료! 합격시 전액 환불!]

[지금 바로 입국 통과시켜드립니다. 연락주세요.]


이런 것들만 봐도 솔라의 말은 퍽 절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까다로운 수준이 아니다.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어쩌면 사례금 대신 이걸 해결해달라고 말했어야 했나?


[대기 인원 수가 재조정됩니다.]

"······ 응?"


촤르륵-

갑자기 공항 AI가 메세지 내용을 조정했다.


대기 인원수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5만 9천명에서 1만명으로.

거기서 천명, 백명, 열명까지.

그 사이 헌병대의 함정들이 몰려와 우리 주변을 에워싼다.


[귀함의 VIP 데이터를 확인하였습니다. 오닐 시를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닐 헌병대가 공항까지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VIP? 무슨 소리지?


혹시 솔라가?


[VIP?] - AO 119/22/14:28:52

[헛소리. 3년 간 본 적 없다.] - AO 149/22/14:28:54

[그러나 진실······. 박탈감] - AO 149/22/14:28:59

[역시. 세상. 불공평.] - AO 149/22/14:29:01


잠깐, 이 녀석 대체 어디까지 해주고 간 거지?


작가의말

 오닐 시에 대한 참고자료가 공지사항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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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 : 소문 23.02.09 52 1 13쪽
13 #12 : 낙원 23.02.07 47 1 15쪽
» #11 : 실언 23.02.06 52 1 14쪽
11 #10 : 사례 23.02.02 59 2 14쪽
10 #9 : 구조 +1 23.01.31 74 3 18쪽
9 #8 : 행렬 +1 23.01.30 72 4 14쪽
8 #7 : 바다 +1 23.01.28 61 4 14쪽
7 #6 : 발전 +1 23.01.27 71 4 17쪽
6 #5 : 유영 +2 23.01.25 77 4 11쪽
5 #4 : 긴축 +1 23.01.21 81 6 11쪽
4 #3 : 알람 +2 23.01.19 92 4 14쪽
3 #2 : 모빌 +1 23.01.17 100 4 12쪽
2 #1 : 미팅 +1 23.01.16 160 7 13쪽
1 #P : 약속 +1 23.01.16 247 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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