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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카레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는 비열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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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카레
작품등록일 :
2024.04.22 00:50
최근연재일 :
2024.04.27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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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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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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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 대마법사(2)

DUMMY

이번에는 환청의 충고를 듣기를 잘 했다. 명단을 제출하고 나니 2시 15분이었다.


겨우 15분을 더 쉬려고 했다가 출결 때문에 낙제당하고 중간고사와 관련된 정보도 얻지 못했으면 억울할 뻔 했다.


<전투 실습>다음에는 수업이 없었다. 이제는 마음 놓고 자러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돌연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제자리에 멈췄다.


도복을 입은 노인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흰 수염을 멋들어지게 늘어뜨린 노인의 모습은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산신령의 삽화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았다.


노인의 인자한 분위기에 폭력의 조짐은 없다.


그러나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반경 2m가 저 노인의 사정권이다.


무방비하게 저 안에 들어가면 대응할 틈도 없이 베인다. 분명 환일 아카데미에는 이런 인간이 없었는데.


“거기 청년, 길 좀 물어볼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여기 지리를 잘 몰라서요.”


노인에게 나를 향한 적의는 없다.


하지만 나를 해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어두운 밤중에 전기톱을 든 사람을 마주친다면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눈에 노인이 그렇게 보였다.


“지리를 잘 모를 리가 있나. 자네는 일 년도 넘게 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나?”


하지만 노인은 나를 알고 있었다.


“내가 점찍어둔 학생이라서 얼굴을 외우고 있지. 싸우자는 것은 아니야. 단순히 길을 물어보려는 것일세.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길눈이 어두워.”


엉터리 같은 핑계였다.


“나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 환일에 초빙된 특별 강사라네. 자꾸 도망가려 하지 마.”


“다른 학생한테 부탁하시는 건 어떨까요? 제가 좀 급한데.”


“그럴 거였으면 여기에서 자네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겠지.”


......나를 노리고 있었다고 대놓고 말했다.


노인의 기세는 거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호하다.


시험 삼아 도망칠 길을 찾아 봤는데, 노인은 아주 미세한 무게 중심의 변화만 가지고 내 의도를 눈치 챘다.


“혹시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니? 자네에게 내 강의를 들려 주고 싶을 뿐이라네.”


“전 듣기 싫은데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가 보겠다고? 그래, 가 보게.”


어디 도망갈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듯이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을 보고, 오늘은 운이 안 좋은 날이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안 가나?”


“......어디로 가시는데요?”


“무공을 가르치는 건물로 안내하게. A-8관이라고 적혀 있군. 건물들이 죄다 비슷비슷해서 통 모르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강의실에 조금 더 오래 앉아 있었을 텐데.


###


“서력 2018년 12월 24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 일어난 날이면서 마법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라네.”


노인은 환일이 초빙한 무당파의 무인이었다. 노인의 특강에는 거의 수백 명이 넘는 청중이 몰렸다. 의자가 부족해서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노인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관심도 없었는데, 노인의 억지에 휘둘려서 강의실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날 일어난 사건을 요약하자면 이렇지. 12월 24일 0시에 대한민국 서울시의 200m상공에, 지금은 솔로몬 탑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탑이 나타났고, 그로부터 2분 뒤에 최초의 신비종이 서울에 나타났네.

총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외피와, 코끼리보다 더한 근력을 가진 몸길이 2.5m, 어깨높이 100cm짜리 사족보행형 신비종이 수천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고, 이와 같은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네. 전성기를 누리던 인류 문명은 그로부터 이 주일 뒤에 완전히 몰락했어.”


사람을 납치했으면 하다못해 유익한 이야기라도 들려줄 것인지, 노인은 고리타분한 역사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반전시킨 것이 과학자 미나의 발명품 <망원경>이지. 인류는 망원경을 통해 영혼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영혼의 힘을 다루는 무공을....... 이곳에서는 마법이 더 보편적인 표현이었던가? 하여튼 그런 기술을 발전시켜서 신비종과 싸울 수 있게 되었지.”


노인이 도복 허리띠에 매어 놓았던 장검을 뽑았다.


“인간의 영혼에는 자신의 육체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 있지. 평범한 인간의 영혼은 자기의 몸을 움직이는 데서 그치지만, 간혹 강력한 영혼의 힘은 육체의 그릇 밖으로 흘러넘치지. 밖으로 삐쳐 나온 영혼의 힘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인 마력이 된다.”


노인이 부드럽게 손목을 돌리자 장검이 올곧은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먼 과거에 무당산에 살았던 도사들은 <망원경>을 통해 영혼의 힘을 알게 되었고, 태극의 원리를 통해 마력을 다스렸다. 음과 양의 조화, 강한 것을 이기는 부드러움.”


원을 그리는 노인의 검에 새까만 마력이 깃들었다.


검이 아니라, 검을 닮은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무당파의 도인들은 태극의 묘리를 담아 힘 없는 자들을 지키고, 문파를 세워 가르침을 전했네.”


노인의 검이 흑백의 태극을 그렸다. 완성된 태극의 정중앙을 향해 노인이 손을 뻗자 태극 문양이 소용돌이치며 압축되었다.


노인이 손아귀를 쥐어 기의 태극을 터트리자 거센 바람이 강의실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부끄러운 이름을 소개하겠네. 빈도는 무당파의 청겸자라 하네. 대 무당파의 예순 세 번째 장문인일세.”


강의실이 술렁거렸다. 환일이 초청했다는 무당파의 무인이 무당파의 수장이었을 줄은 몰랐다는 눈치다.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었나 보군. 당연한 일이야. 빈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검술 훈련에만 집중해 왔거든. 문파를 대표하는 장문인인치고는 제법 무책임하게 살아 왔어.”


청겸자는 즐겁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뭐 어쩌겠나, 무공 실력만 보고 장문인을 뽑은 내 스승의 잘못이지. 지금까지 무책임하게 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 온 김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무책임한 짓을 하러 왔네. 빈도가 오늘 환일 아카데미에서 설법을 연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 보잘것없는 깨달음을 전할 후인을 찾기 위함이라네.”


폭탄 같은 발언이었다.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청겸자가 질문을 허락하자 말총머리 여학생이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보다 먼저 명단을 제출하고 밖에 나왔던 학생이다.


“강화 마법 전공 유희진입니다.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장문인께서는 제자를 찾기 위해 환일 아카데미에 방문하신 건가요?”


“그렇다네.”


“......왜 장문인의 제자를 무당파 제자가 아닌 환일 재학생 중에서 찾으시는 건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것은 빈도의 보잘것없는 깨달음이 무당의 무공이 아니기 때문이야.”


노인은 손을 들고 일어난 학생에게 좋은 질문이었다고 칭찬한 뒤에 말을 이었다.


“나는 무당의 가르침을 받고 정진했으나 검의 끝은 태극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네. 나의 오성으로 선조들이 수백 년간 쌓아올린 무공의 역사를 뛰어넘을 수 있다 여기고 만용을 부렸지. 그렇게 아집을 부려서 도달한 경지가 이것일세.”


검집에 꽂혀 있던 청겸자의 검이 저절로 뽑혀서 허공에 떠올랐다.


나는 청겸자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도 검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무당의 장문인쯤 되는 인간이 어설픈 속임수를 썼을 리는 없다.


저 검은 아무런 외부의 간섭 없이 저절로 부유하는 것이다.


“이기어검. 육체의 제약을 벗어난 검법이야말로 내가 생각한 검의 끝이었지.”


물리법칙으로는 구현 불가능한 현상일 것. 혹은 물리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는 현상일 것.


이 조건을 하나라도 충족하는 마법은 <대마법>으로 분류되며, 대마법을 구사하는 <대마법사>의 칭호야말로 마법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다.


“이기어검의 봉우리 위에 오르고 나서야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었지. 내가 검의 끝이라고 믿었던 경지는 무수히 많은 봉우리 중에 하나일 뿐이었어. 그리고 무당의 태극은 내가 오른 곳보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더군.”


허공을 부유하던 검이 검집 안으로 되돌아갔다. 허겸자는 쑥쓰러운 듯이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말이지. 이게 또 버리기에는 아까운 무공이 아닌가. 하지만 무당의 제자에게는 이것을 전할 수 없네. 그들이 익혀야 할 것은 무당의 태극검이지 청겸자의 이기어검이 아니야.”


처음 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던 여학생이 꿈에 취한 것처럼 말했다.


“그 말은....... 장문인께서는 무당의 태극검이 아니라, 청겸자의 대마법을 물려줄 제자를 구하러 환일 아카데미에 오신 건가요?”


늙은 검사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최고의 천재들이 모이는 곳이 이곳 환일 아카데미 아닌가? 여기에서 뛰어난 자질을 지닌 제자를 찾아 내 이기어검을 남김없이 전수하고 떠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군.”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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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대마법사(1) 24.04.25 1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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