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인도카레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자는 비열하게 살고 싶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인도카레
작품등록일 :
2024.04.22 00:50
최근연재일 :
2024.04.27 07:32
연재수 :
2 회
조회수 :
19
추천수 :
0
글자수 :
8,750

작성
24.04.25 23:33
조회
13
추천
0
글자
10쪽

1. 대마법사(1)

DUMMY

“마법의 출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아주 높아서, 심각한 증상이 아니면 항정신병약 처방은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결국 해 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말이었다.


무능하면서 병원비는 꼬박꼬박 받는 게 아니꼽지만 내야 할 돈을 내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말소리. 자동차 배기음이 시끄럽게 얽혀서 혼잣말을 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죽어서도 따라다닐 거면 차라리 복수를 시키지 그랬어?”


“그럴 걸 그랬나?”


어김없이 윤다빈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물론 그녀는 죽었다. 이 목소리는 내 뇌가 만들어낸 착각이다.


하지만 도저히 가짜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해서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이렇게 형편없이 살 거면 나 대신 찔려 주지 그랬어?”


진짜 윤다빈이었다면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내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청에 불과하다.


그렇게 되뇌이면서도 나는 환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내가 대신 찔리는 게 나았다.


지금으로부터 1년 4개월 전, 정복력 498년 12월 24일에 용산 놀이공원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민간인을 마법사들의 노예로 삼아야 한다는 미치광이들의 소행이었다.


나는 그 테러에서 친구를 잃었다.


어쩌면 잃어버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테러리스트가 마지막에 날린 공격을 막아내기만 했더라면 다빈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피했다.


내 뒤에 무방비한 다빈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랬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서 다빈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뼛속까지 이기주의자다.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틀림없이 내가 살아남는 방향을 고르게 되리라는 확신이 내 안에 있었다.


이런 내가 죽도록 싫다.


나는 버스를 타고 환일 아카데미에 돌아왔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피곤했다.


기숙사에 돌아가서 한숨 자려고 하는데 환청에 만류했다.


“어디 가?”


“기숙사.”


“너 어제 교수님 말 못 들었어? 한 번만 더 출석 빼먹으면 낙제야.”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10분 뒤에 시작되는 수업은 2학년 공통 수강 과목 <전투실습>이었다. 실습이라는 건 말뿐이지만. 시뮬레이션 룸에서 홀로그램 상대로 싸우게 할 거면 강의 이름을 좀 바꿨으면 좋겠다.


별로 유익한 강의는 아니었지만, F를 받는 건 조금 곤란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강의실에서 자야 할 것 같았다.


수업이 시작되기 겨우 몇 초 전에 어기적거리며 강의실에 들어갔더니 험상궃게 생긴 교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수업 시작 직전에 돌아다니지 말고 적어도 5분 전에는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당부하지 않았나?”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구석진 자리는 이미 꽉 차 있었다. 결국 억지로 맨 앞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교수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자리였다.


강의실에서 자기는 글렀다.


<전투실습>은 세 시간 짜리 수업이다.


한 시간은 발표를 맡을 조가 신비종의 공략법을 발표한다.


나머지 두 시간 동안은 발표를 맡은 조가 시뮬레이션 룸에서 공략법대로 신비종을 사냥한 뒤 교수와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받는데, 교수도 학생들도 매우 진지하게 수업에 임한다.


열정이 지나칠 정도로 과해서 정해진 수업 시간을 세네 시간씩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뮬레이션 룸이 만든 허상과 싸운다고는 하지만, 백날 이론서나 허수아비 상대로 마법을 쓰는 수업보다는 훨씬 활동적인 수업이라서 몰입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마법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최악의 강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연단 위에 발표를 할 학생이 없었다.


환일의 학생들은 대개 성실해서 발표 과제를 펑크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름 재미있는 축에 속하는 <전투실습>수업 과제를 빼먹을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오늘이 네 발표인 거 아니야?”


환청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내 발표 차례는 학기말이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건가, 아니면 오늘 발표하기로 한 조가 사이좋게 교통사고라도 당했나? 강의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연단에 선 교수가 싸늘하게 말했다.


“자네는 저번 시간 수업을 아예 안 들었나 보지?”


아예 안 듣지는 않았다. 2시에 시작해서 5시에 끝나기로 정해져 있던 수업이 7시가 되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몰래 기숙사에 돌아갔을 뿐이다.


솔직히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소신껏 말하지 않을 눈치는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투분석학 김형철 교수는 강의실 전체에 들리도록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지난 주에 예고했던 대로, 오늘은 중간고사를 공개한다.”


맨 앞 자리라서 보이지는 않지만 학생들의 눈에는 독기가 잔뜩 올라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로 내가 앞자리에 있었다. 뒤쪽이었으면 흐리멍텅한 놈이 한 명쯤 섞여도 티가 안 났을 텐데, 교수는 기합 빠진 내 모습이 영 거슬리는지 그렇잖아도 괴팍해 보이는 얼굴을 더 구겼다.


......그런데 오늘은 왜 앞자리가 빈 거지?


“이번 중간고사 장소는 솔로몬 탑 7층, 기한은 15일이다.”


강의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만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김형철 교수가 못마땅한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난 주에도 설명했지만,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 몇몇 골빈 놈들을 위해 재차 설명하겠다.

2학년 중간고사 테마는 생존이다. 학생들끼리 최대 10인으로 구성된 조를 짜서 솔로몬 탑 7층에 돌입한다. 시험관의 도움 없이 15일간 생존하면 합격, 생존에 실패할 시에 낙제다. 단 비정상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신비종과 조우하는 등, 돌발사항이 발생하는 경우에 시험관의 도움을 받더라도 시험을 속행한다.”


조별과제라. 나와 같은 조가 될 학생들에게는 미리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생존 중에 더 많은 신비종을 쓰러뜨릴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것 이외의 중간고사 채점 기준은 비공개로 한다.

여러분들이 수강하는 다른 강의에서는 따로 중간고사를 보지 않는다. 전투실습 과목의 중간고사 성적이 전 과목 성적에 반영된다. 2학년부터는 모든 시험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험은 한 학기마다 두 번 치르니까, 일 년에 두 달씩은 솔로몬 탑 고층에서 야영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시험 같은 건 그냥 필기로 할 것이지.


“중간고사는 사고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중간고사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지를 한 번 더 심사한다. 이 심사를 통과한 조만이 중간고사에 응시할 수 있다. 4월 10일 안에 반드시 중간고사 조원 명단을 제출하고 응시자격 검증 시험 일정을 정하도록. 조원 명단을 작성할 용지는 앞에 있으니 알아서 가져가고,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다.”


“오.”


김형철 교수는 수업 종료라는 단어에 반색한 나를 경멸의 눈초리로 응시했다.


“......나도 특강을 들어야 해서 2시 반까지만 강의실에 있을 테니 그 때까지 명단을 제출하도록. 2시 반 이후에 명단을 작성한 조는 오후 7시 이후에 내 연구실로 찾아오도록. 4월 10일까지 마찬가지로 오후 7시 이후 11시 이전까지 명단을 받겠다. 이상.”


교수는 출석을 부른 뒤에 연단 위로 의자를 가져와서 앉았다.


강의실은 곧장 소란에 휩싸였다.


상황을 보자니 강의실에 오기 전에 이미 친하거나 성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조를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이 10명을 다 채우지는 못했는지 다른 무리에서 부족한 인원을 채우거나, 이미 속해 있는 무리에서 다른 무리로 건너가려고 하고 있었다.


맨 앞자리가 비어 있던 이유도 이제 알 수 있었다. 자유롭게 조원을 찾아다니기에 좋은 위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강의실 모습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자니 꽤 재밌었다. 원래 속해 있던 그룹을 떠나려는 학생을 배신자라고 매도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보였다. 조별과제를 진행한다고 일 주일 전에 공지했는데도 수업 전에 열 명을 채운 조는 겨우 둘뿐이었다.


학생 둘이 다 작성한 명단을 교수에게 제출했다. 강의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 같이 조를 짜자는 권유를 받기도 싫었다.


나는 이미 앞에 나가 있던 두 명 뒤에 섰다. 내 앞에 선 사람이 명단을 제출할 때 교수가 말했다.


“......강화 마법 전공 유희진. 자네 조는 정원을 다 채우지 않았는데, 이대로 괜찮나?”


“네.”


“적은 인원으로 시험을 치르더라도 추가 점수는 없다. 상관없어?”


“어중간한 인원이 끼는 것보다 낫습니다.”


“알겠다.”


무조건 정원을 다 채워야 하는 시험이면 귀찮을 뻔 했다.


다음은 내가 명단을 제출할 차례였다.


나는 빈칸 열 개가 있는 용지에 내 이름 하나만을 써서 바로 제출했다. 김형철 교수는 휑하게 비어 있는 내 명단을 죽 찢으며 말했다.


“다시 써 와.”


“제 앞에 있던 학생도 명단을 다 채우지 않았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중간고사 조의 최소 인원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유희진 학생과 학생이 제출한 명단에 기록된 학생들은 적은 인원으로도 중간고사를 치를 만큼 우수한 성적을 냈다. 자네가 그들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제출된 명단에 기록된 학생들 하나하나가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일 것이다.


“1학년 초반에나 자네가 수석이었지, 지금 나채환 학생의 성적은 2학년 최하위권이야. 아직도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나?”


“아닙니다.”


“그러면 정원을 다 채운 명단을 새로 작성해서 가져와.”


나는 책상에 놓인 새 용지를 한 장 꺼내서 내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대로 교수에게 제출했다.


“......뭐 하자는 짓이지?”


“혼자 하겠습니다.”


김형철 교수는 내 얼굴을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말했다.


“좋아, 어디 한 번 마음대로 해 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회귀자는 비열하게 살고 싶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 2. 대마법사(2) 24.04.27 6 0 9쪽
» 1. 대마법사(1) 24.04.25 14 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