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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카레 님의 서재입니다.

기억상실 걸렸는데 아카데미 1등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인도카레
작품등록일 :
2022.07.18 13:53
최근연재일 :
2022.08.26 07:07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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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47,175

작성
22.07.3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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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프롤로그

DUMMY

***



“두 부모님께서는 제가 어릴 적에, 제 눈앞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저를 납치한 강령술사의 소행이었죠. 자기 몸을 난도질하는 강령술사에게 부디 아이의 목숨만은 빼앗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습니다.”


머리를 짧게 기른 수녀가 말했다. 그녀는 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주먹은 다소곳이 붙인 무릎 위에 올라가 있었고, 허리는 곧게 폈고, 시선은 정면을 향했다.


이상적인 수녀의 행동거지를 그려 놓은 듯한 정자세였다. 바늘로 몸을 찌르더라도 저 올곧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저런 완벽한 자세로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부모의 죽음과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서 소녀의 말이 모두 거짓말인 것처럼 들렸다.


“강령술사의 목적은 영생이었습니다. 육체가 죽은 뒤에 자신의 혼을 다른 신체로 이식시켜 그 비원을 이룰 계획이었지요. 강령술사는 제 몸을 노리고 저를 납치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육체의 고통으로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던 수녀의 자세가 잠깐 흐트러졌다. 그녀의 손등 위에 푸른 힘줄이 돋는 것이 보였다.


다빈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를 납치한 강령술사는 제 이웃이었습니다. 아버지와는 함께 낚시를 다니기도 했고, 저에게도 종종 호의를 베풀어 주시곤 했었던 사람이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아마, 제가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그 때의 영향을 받아서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다니던 게 그거 때문이었구나.”


“대주교님께서는 제가 과거의 일을 잊고 성직자의 길을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겠더군요. 강령술사로부터 저를 구해 주셨던 대주교님 이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열면 등을 찔릴 것 같았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상대를 만날 때마다 철저히 관찰하고, 경계하고, 약점을 찾으며 내 약점을 밝히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 합니다. 그런 관계를 맺을 바에는 혼자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수녀는 자신의 응어리진 과거를 모두 털어놓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그녀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묵은 숨을 모두 털어낸 소녀는, 처음으로 무표정을 지우고 미소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너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맹세할게.”


그녀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강령술사로부터 널 지키겠다고.”


아마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맹세컨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내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었더라면 그녀가 내민 손을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과는 할 수 없다. 다빈에게 전하는 사과는 나를 위한 변호가 될 뿐이다. 그녀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닌, 죄책감으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한 비겁한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나라를 지워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졌는데도 나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 우습다.


다만 내가 이제 와서 그 날 놀이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빈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


내가 말하려는 건 세계가 멸망할 뻔 했던 사건에 대해서다.


우리의 졸업여행을 망친 테러는 소용돌이였다. 겨우 낙엽이나 들어 올릴 만큼 작았던, 그러나 세상을 집어삼킬 만큼 큰 태풍을 만들어낸 소용돌이.


그렇기에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



2132년 12월 17일. 오전 9시.


나는 놀이공원 입구에 모인 인원을 체크했다. 3학년 2반의 학생 수는 분명 31명이고, 초대장도 31명 분을 만들어서 전달했다. 그러나 전원이 참석할 줄은 몰랐는데.


내 옆에 서 있던, 곰처럼 덩치가 큰 동급생 찬우가 말했다.


"쟤가 왜 왔을까?"


"낸들 알겠냐."


찬우와 내 시선은 2반 일행 끄트머리에 있는 수녀, 다빈에게 꽂혔다.


그녀는 수업 일수를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겨우 유급을 면했으며, 지난 3년 동안 학교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 수학여행이나 체육대회 등 -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빈에게 졸업여행에 참여할 것인지 물었던 건 거절당할 줄 알면서도 예의상 했던 질문이었다. 정말 이 자리에 나타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뭐, 오늘은 고등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수녀도 하루쯤은 변덕을 부릴 수 있는 법이겠지.


놀이공원의 개장은 앞으로 5분 정도 남았다. 나는 대기열에 서 있는 2반 친구들에게 말했다.


"잠시만 주목! 입장 전에 할 말이 있어."


나는 옆에 서 있던 남학생의 어깨 위에 팔을 얹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우리 안찬우 마술사님의 환일 입학이 확정됐어. 미리 듣고 갠톡으로 축하한 사람도 있겠지만, 한 번만 더 수고해. 일동 박수!"


2반 일동이 환호와 박수소리를 냈다.


"좀 더! 더 크게!"


내가 어깨를 걸치고 있는 소년이 지휘자라도 된 것처럼 팔을 흔들며 박수를 부추겼다. 아마 이 반에 다른 마술사가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익살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느린 박자로 손뼉을 치는 수녀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교의 수녀 중에는 신앙계 마술을 배워서 신비종과의 전선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녀가 마술사와 성직자 중 어느 쪽 수녀에 가까운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혹시 그녀도 환일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을까. 언짢해하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언제나처럼 무표정이었다. 아마 괜찮은 거겠지.


나는 동급생 수녀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박수가 잦아들 때쯤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전선에서 싸우다가 이름 좀 날리는 현역한테 추천서를 받았다고 하는데, 진짜 중요한 건 뭣 때문에 추천서를 받았느냐야. 운 좋게 A랭크 신비종 막타를 먹었다더라고."


"운 좋게가 아니지. 실력. only 실력으로."


"아무튼. 그렇게 처리한 신비종이 드랍한 《아티팩트》가 본인한테는 쓸모 없는 물건이었어서 팔아치웠대. 그렇게 번 돈으로......."


마지막 말은 주인공의 차지가 됐다.


"그렇게 번 돈으로 오늘 너희 경비 전부 내가 대신 내기로 했다."


너희 경비. 까지 말했을 때 이미 전보다 두 배는 큰 함성이 터졌다. 찬우는 다시 한 번 지휘자가 되어 박수를 독촉했다.


예약해 뒀던 객실 등급을 올리는 걸 넘어서, 아예 호텔 한 층을 통째로 빌렸다는 부분에서는 다들 실성한 것처럼 물주의 이름을 복창하고 있었다.


"저희는 평소부터 찬우 형님이 위대한 마술사가 될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안찬우 존나 사랑해!"


"아. 마술사 한 보람 있네."


그렇게 비명처럼 물주를 칭송하던 중에 개장 시간이 됐다. 대기열이 점점 앞으로 움직이자 나는 친구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저녁까지 마음대로 놀다가 9시 퍼레이드 때 광장으로! 경비는 전부 반송했으니까 맛있는 거 사먹는 데 써. 이상!"


나는 2반 선두로 찬우와 같이 손목에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밴드를 찼다.


멋모르고 반장선거에 나갔다가 떠맡겨진 일거리들도 호텔과 놀이공원 예약으로 완전히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시원섭섭한 기분이었다.


"내가 찍기는 진짜 잘한다니까."


2반의 물주로 거듭난 사기꾼이 내 어깨에 팔을 걸며 말했다.


"그 때 반장 하길 잘하지 않았냐."


"잘하긴. 사기꾼이."


나는 이를 갈며 녀석을 째려봤다. 반장선거 날에 이 자식이 옆자리에서 바람을 넣지만 않았어도 온갖 잡일을 떠맡지는 않았을 텐데.


반장이란 교사들에게 사랑을,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는 신성한 직책이라던 찬우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몸으로 체감한 뒤로 나는 안찬우를 영원토록 사기꾼이라고 부르겠다고 마음먹었다.


"어허. 사기꾼이 뭐냐. 따라해 봅시다. 붸스트 프뤤드."


"퍼킹 스윈들러.(사기꾼)"


"붸에스트......."


"쿠소 사기시. 퍼킹 빗치."


"그건 아니지 임마."


말은 이렇게 하지만 찬우 덕분에 학교에 쉽게 적응하긴 했다. 반장이 되고 맡은 잡일거리들도 귀찮고 번거로운 게 문제였지 그렇게 어려운 것들은 아니었다. 다만 속았다는 사실 자체에 괘씸할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여친이랑 돌아다닐 거냐?"


"엉. 환일에 들어가면 방학 때 잠깐씩 만나는 것밖에 안 되니까 오늘 같은 때 놀아야지. 그런 고로 오늘은 너랑 안 논다. 나 없어도 혼자서 잘 놀 수 있지?"


"너나 개드립 치다 차이지 마라. 승연이 나왔으니까 얼른 저리로 꺼져."


"오냐."


찬우는 막 티켓을 차고 놀이공원에 들어온 여학생 옆에 다가가더니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남의 연애사에는 별로 관심없다. 찬우 대신 같이 돌아다닐 남학생 무리를 찾으려고 입장문 쪽을 보는데 마침 수녀 한 명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같이 다닐 일행을 구한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 교회 친구들이라도 불러서 같이 놀려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녀가 수업이나 성적 확인 이외의 이유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장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가끔 다른 친구들이 말을 걸 때도 있었지만 사적인 느낌으로 흘러가는 대화는 바로 차단하고 자리를 뜨는 모습을 봤다.


내가 말을 걸어 봤자 비슷하겠지 싶었는데. 수녀복 차림의 소녀가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내 뒤에 그녀의 일행이 기다리고 있나 싶어서 뒤를 돌아봤지만, 수녀복, 혹은 사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정면을 바라보자 어느새 과묵한 수녀── 윤다빈이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는.


"형제님께 드릴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


혹시 교회에 나오라는 권유일까. 나는 어떻게 하면 동급생의 마음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완강히 거절의 의사를 드러낼 수 있을지 생각했다.


"갑자기 뭔데?"


딱 한 번만 교회에 출석했다가 다음부터는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들어 거절하기로 하자.


그러나 다빈은 내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기괴한 제안을 했다.


"오늘 밤에 저와 같은 객실에 머물러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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