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꺔냥꺔냥 님의 서재입니다.

몬스터 숲에서 귀농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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꺔냥꺔냥
작품등록일 :
2021.05.21 21:47
최근연재일 :
2021.06.16 19:0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30,568
추천수 :
1,239
글자수 :
172,739

작성
21.05.25 22:56
조회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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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
9쪽

9화

DUMMY

지후는 오우거에게 원하는 만큼 고구마를 고르라고 했다. 오우거는 정말 신중하게 고구마를 하나하나 보며 골라내고 있었다. 무슨 기준으로 고르는지는 알 수 없다. 지후의 눈엔 크고 못생긴 얘들만 고르는 것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후는 이 기회에 오우거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고자 했다. 이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근데 여기 숲은 어디에 있는 거야? 따로 부르는 이름이나 그런 건 없어?"


"그냥 숲이다. 모두의 집이다."


고구마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오우거는 대답했다. 숲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우거지만 한 번도 숲의 이름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 답은 나도 할 수 있을 건 같은데... 지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혹시 이 숲에 살고 있는 인간은 없어?"


오우거는 고구마 탑 사이에서 가장 커다란 고구마를 찾기 위해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인간 없다. 인간 숲 와서 죽었다."


무서운 대답에 지후는 움찔 놀랐다.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인 것 같은데.... 일단 내 생명이 위험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자. 자세한 설명을 듣는 건 피하고 지후는 다른 화제를 선택해 물었다.


"그럼 숲에 너 말고 다른 녀석들은 없어?"


"난 혼자 산다."


동문서답이었다. 사실 오우거는 다른 몬스터들을 알아도 자신이 일일이 설명하긴 힘들어서 대답을 피한 것이다. 그리고 대답하는 게 귀찮았다. 고구마 고르는데 집중하고 싶은데 지후가 계속 말을 걸어서 말이다.


그런 사정은 모르고 지후는 오우거의 답이 이상하다 생각해 고개를 갸웃하며 실망했다.


"다른 건 아는 거 없어? 아니다, 그냥 나한테 숲 안내 한 번 해주지 않을래?"


이 넓은 숲에 뭐가 있을지 몰라 무작정 공터에 자리 잡았는데, 여기서 살고 있는 오우거라면 좋은 길 안내자가 되어 줄 테니까. 이 기회에 숲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후는 오우거를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은인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갑자기 오우거 주변으로 후광이 보이는 것 같다.


이번엔 고구마를 보고 있던 눈을 떼고 오우거는 지후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오우거는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못한다. 여긴 엄청 넓다. 나도 한 번씩 길을 잃는다."


이제 말 걸지 말라는 듯 쌩하니 고개를 돌린다.

오우거의 칼 같은 거절에 지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기 살고 있는 녀석이 그렇게 말하면 자신은 어쩌란 거냐. 괜히 더 돌아다닐 생각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후는 문득 든 생각에 오우거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녀석, 혹시 귀찮아서 이러는 거 아냐?' 오우거가 뜨끔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른 유혹에도 같은 대답이 나올지 확인할 겸 다시 물었다.


"그래. 그럼 고구마 일주일 분을 준다 해도 안내 못 해주겠네?"


오우거의 뾰족한 귀가 움찔 움직였다. 무척 고민하는 기색을 보인다.

그리고 결심한 듯 지후를 향해 말했다.


"숲 어렵지만, 같이 다녀보자."


빠른 태세 전환이다. 그게 오우거로선 최선의 대답이었다. 정말 자기 영역에서도 길을 잃어버린 게 부지기수인 그에게 숲 안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됐어."


믿음이 안 가는 대답에 지후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녀석에겐 의지하면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은 동행을 구하는 게 아니었다.

오우거에게서 얻을 정보가 없다고 결론 내린 지후는 씁쓸히 뒤로 물러났다.


그후 고구마 탑 사이에서 제일 커다란 고구마 하나를 더 찾은 오우거는 만족스레 날카로운 이를 보이고 있다. 아마 웃는 거 같다.


지후는 속 시원한 답 하나 해주지 않는 녀석이지만 고구마 하나 들고 기뻐하는 오우거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벌써 이 세계에 맞춰져 자신의 귀여움의 기준점이 이상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오우거와 같이 일할 생각을 하며 지후는 문득 오우거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넌 이름이 뭐야?"


"이름? 그게 뭐지."


오우거의 생각지 못한 되물음에 지후는 당황했다. 기본 개념이 아예 없을 줄은 몰랐다. 지후는 다시 이해되기 쉬운 말을 찾아 설명했다.


"음.. 널 부를 때 뭐라고 하면 돼?"


"나? 아무렇게나 불러도 된다. 날 부르는 말은 없다."


몬스터 입장에선 서로 친근하게 이름 부르는 일이 없었으니 이름 없는 게 특별한 건 아니었다.


오우거에게 왠지 모르게 정이 가서 지후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된 이름 하나 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가만히 오우거를 바라보다가 지후는 보자마자 생각나는 단어를 말했다.


"그럼 초록이라고 불러도 돼?"


지후의 말에 오우거는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한 번 되뇌어 본다.


"초록? 싫다. 왠지 마음에 안 든다."


"그래? 딱 맞다 했는데..."


생긴 거랑 다르게 까다롭네... 초록색 피부니까 초록이. 단순한 게 원래 제일 좋은 건데, 입에 붙어 부르기도 편하고 말이다. 가만히 오우거를 바라보다가 하나 더 떠오르는 게 있었다.


"흠... 그럼 오거. 오거는 어때?"


오우거는 되뇌어보고 이번엔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오거. 좋다. 내 이름 오거다."


오거는 양손 가득 고구마를 챙겨들고 일어났다. 이제 볼일은 끝났다.


"난 인간 말고..."


지후는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려고 했지만, 오거는 지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구마를 소중히 품에 안고 숲으로 뛰어갔다. 고구마를 다 고른 시점에 바로 돌아가지 않고 참은 게 오거 최대의 인내심이었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지후는 오거의 뒷모습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눈 깜박할 새에 사라지는 오거를 보며 새삼 그 빠른 달리기에 감탄했다.

두 번 당하니 이젠 아쉽지도 않다. 다음엔 인사하는 법을 알려줘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차로 걸어가는 지후였다.



다음 날, 지후는 밭으로 향했다. 방울토마토가 심어진 밭이 다 초록색이다. 작은 방울토마토 모종이 생각대로 무럭무럭 잘 자라 있었다.


밭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지후 키만 하게 자라난 방울토마토 줄기엔 열매가 열려있다. 방울토마토가 아니라 토마토 같다. 아니 토마토보다 더 커다란 열매가 줄기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방울토마토도 고구마처럼 거대화되어 있었다. 확실하게 이곳 땅이 농작물을 비정상적으로 잘 자라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후는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의 방울토마토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빨갛게 익을 것 같았다. 저녁은 고구마와 방울토마토를 같이 먹을 수 있을지도. 다 익은 방울토마토의 맛을 어떨지 벌써 기대감에 두근두근했다.

상황에 빠르게 적응한 지후였다.


방울토마토가 익는 걸 기다리는 동안 지후는 옆에 고구마 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제 캐다 남은 고구마 밭에 풍성한 초록 잎이 가득히 펼쳐져 있다. 오늘 할 일은 남은 고구마를 마저 캐고, 심었던 밭은 깨끗이 정리할 계획이다.


어제 한 두둑을 캐는 것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려서 남은 고구마를 다 캐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지후는 비장하게 호미를 들어 올리며 먼저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가. 호미질을 아무리 해도 고구마가 나오지 않는다. 어제보다 고구마가 땅에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겨우 캐어낸 고구마는 어제보다 크기가 더 커져 있었다. 실제로 하루 만에 더 커진 것이다.


땅속에 가만히 놔두면 끝없이 커버리는 건 아닐까. 가만히 내버려 둬 볼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이렇게 큰 고구마는 필요하지 않다. 지금도 커다란 고구마를 캐는 것부터 힘든데 더 커진 건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옆에 캐어놓은 고구마를 보았다. 커다란 수박보다 더 크다. 그리고 고구마 밭을 바라보았다. 다섯 두둑은 남아있다. 이 커다란 게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다.


지후는 뒤늦게 아차 싶었다. '오거와 만날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아침에 오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이러다가 오후 늦게 오면 오늘 일은 혼자 독박하는 거다. 먹튀는 아니겠지. 왠지 초조한 마음으로 지후는 다시 고구마 줄기를 잘랐다.


지후가 한 줄기에 고구마를 거의 캐어날 때쯤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숲에서 오거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오거의 등장에 지후는 기쁘게 손을 흔들었다. 소중한 일꾼이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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