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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스마
작품등록일 :
2023.05.12 00:35
최근연재일 :
2023.06.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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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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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3,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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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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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세기말

DUMMY

무엇보다 해리슨은 아무도 모르게 눈을 여기저기 굴리며 사방을 꼼꼼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보다 신경 반응이 더 빠른 무웅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실례지만 본명이 어떻게 되십니까? 치노는 중국인이라는 뜻인데 당신은 중국인이 아니라면서요?”


“한국인입니다. 본명은 발음하기 어려워서 그냥 치노라고 부르도록 냅두고 있죠.”


“호! 한국인이 여기까지?! 사연이 길겠군요.”


“인생의 오묘함이라고나 할까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고, 실바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 사업도 하고 있네요.”


실바는 옆에서 무웅의 유창한 영어를 들으며 살짝 놀라고 있었다. 이놈은 도대체 뭘까?


사실 무웅은 50년 전쯤 뇌 신경 강화 작업 때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프랑스어 입력 시술을 받았다.


타임 슬립 후 언어 능력은 대부분 남아 있어서 무웅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에는 많아도 여기서 한국인을 보기는 처음이군요. 이름은 어떻게 되시나요? 하하, 저 사실 미국에는 한국인 친구가 여럿 있답니다.”


해리슨은 다시 한번 이름을 재촉했다.


“무-웅 이라고 합니다.”


“무웡?”


“아니, 무-웅이라고. 엠오오-따블유오오엔쥐”


“아, 무-웅.”


무웅은 해리슨에게 과거 한국 여권의 이름 영어 철자를 가르쳐줬다.


조만간 열심히 조사해보겠지.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무웅은 솔직히 궁금했다.


사실 DEA가 아니고 CIA가 먼저 마을을 방문할 줄은 몰랐다.


DEA가 마약 카르텔을 사냥하는 동안 CIA는 남미에서 공산주의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한 공작을 하고 있었다.


실바의 농장은 마약을 멀리하기 때문에 DEA의 감시망에 들 일은 없는데 CIA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무웅이 중국에서 온 사회주의자라고 의심하는지도 몰랐다. 실바까지 그렇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무웅과 실바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FARC 게릴라 잔존 세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북부의 까바따 카르텔로 갔다.


무웅은 정부와 미국이 당분간 까바따 카르텔에 신경을 집중할 것으로 믿었다. 그사이 조용하게 라 빠스 마을의 경제력과 실력을 더 키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CIA가 예상보다 빨리 접근해왔다.


...


[드르륵]


무웅은 허리춤의 진동을 느끼고 화장실로 갔다.


보고타에서 구입한 삐삐로 메시지가 왔다.


최근에 큰 진전을 보인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사령부와 연락이 아주 조금 수월해진 것이었다.


이제 혼자 몰래 바위산에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휴대폰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이제서야 삐삐라니 좀 어처구니 없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무웅이 해리슨을 만난 이유가 바로 이 삐삐로 받은 메시지였다. 이틀 전 거기에는 해리슨이라는 이름만 달랑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대비]라고 쓰여 있었다.


‘뭘 대비하라는 걸까.’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실바가 물었다.


“어때 보여?”


“전형적인 CIA야.”


“그래? 음···. 해리스가 우리 원두에 브랜드를 붙이고 미국으로 직수출도 생각해 보자는데?”


무웅이 약간 놀라 실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해리슨이 제안이 놀라운게 아니라 실바가 그답지 않게 살짝 흥분한 듯했기 때문이다.


“자네, 사업을 크게 하고 싶은가?”


“이제 우리 주민과 아이들도 버젓이 사람답게 살게 하고 싶어. 지금도 많이 나아졌지만 우리도 남 보란 듯이 살면 안 되는가?”


무웅은 실바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전쟁이 끝나고 조금씩 경제 문제가 해결되면서 마을에는 희망의 분위기가 고조됐다.


주민들은 처음으로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제대로 된 집, 질 좋은 의복과 음식을 누리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커피 농장에서 가녀린 손가락으로 콩을 따는 대신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있다.


‘차라리 빨리 부자가 되게 해 줄까.’


무웅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아 보였다.


무웅은 앞으로 수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충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세기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일반인에게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고 남미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미국의 스타벅스도 콜롬비아 진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원두 수출보다 더 빠른 건 스타벅스 주식을 사는 거야 이 친구야.’


무웅이 이 생각 저 생각하는 사이, 갑자기 무전기에서 경보가 울렸다.


“까삐딴!”


무웅은 이제 주민과 부하들로부터 까삐딴으로 불렸다. 스페인어로 대위라는 뜻인데, 그냥 대장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마을의 가장 외곽 초소에서 보낸 경보였다.


무웅은 부하 둘을 데리고 지프에 올라탔다.


큰 나무 옆에 검은 옷을 입은 한 청년이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초소 저격병이 사살한 것이다.


“수상한 놈들 서너 명이 접근하길래 경고했지만 먼저 총을 쐈어요.”


현장을 둘러보니 사실인 것 같았다.


까바따에서 정찰병이 접근하는 경우는 흔했다.


[부우웅]


이때 하늘에서 경비행기 소리가 울렸다.


무웅이 고개를 들다가 외쳤다.


“엎드려!”


수류탄이 연달아 떨어지며 굉음을 냈다.


부하들이 우지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멈춰!”


탄환 낭비일 뿐이었다. 사거리도 모자라고, 무엇보다 부하들은 대공 전투를 치러본 적이 없었다.


재빨리 마을로 돌아오자 실바와 부하들이 무장한 채 웅성거리고 있었다.


몇몇은 RPG를 창고에서 꺼내고 있었다.


“다시 집어넣어!”


무웅은 이게 본격적인 공격이 아니고 정탐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찔러보고 우리측의 대비 수준과 무장 상태를 보려던 게 틀림 없었다.


하지만 정탐치고는 너무 대담하고 공격적이었다.


“까바따 놈들···. 결국 전쟁은 피할 수 없나.”


실바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무웅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리슨···.’


[부우웅]


사라진 듯했던 경비행기가 다시 다가오는 소리가 울렸다.


모두 피신처를 찾는 동안 무웅은 저격 소총 M-24를 담벼락에 고정시켰다.


사거리가 800미터 이내지만 산의 높이를 고려하면 경비행기는 사정권에 들어올 가능성이 컸다.


신경 정보 전달 속도가 빠른 무웅과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명성이 높은 M-24는 찰떡궁합이었다.


조준경에 경비행기가 들어왔다.


조종석 옆 남자가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무웅의 손가락이 빠르게 방아쇠를 세 번 연속으로 당겼다.


비행기에서 수류탄은 떨어지지 않았다.


경비행기는 서서히 하강하다 마을을 지나 산등성이 위에 추락했고, 곧 거대한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무웅은 자신이 교육한 정보부대원들을 불렀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단서가 될 것은 샅샅이 모아라.”


...


“위험하지 않을까?”


실바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쪽도 할 말이 많을 거야. 당장 무슨 일이 생길 리는 없어. 그리고 이제 대화를 할 때도 됐지.”


무웅은 실바를 안심시키고 혼자 차에 올랐다.


까바따가 통보해 준 비밀 회동 장소로 향했다.


산길을 따라 3시간 정도 운전하자 거대한 벽에 둘러싸인 산성 같은 저택이 나타났다.


까바따 카르텔의 두목 곤살레스의 집이었다.


차에서 내려 몸수색을 마치고 무웅은 뒷좌석의 상자를 가리키며 덩치들에게 말했다.


“박스는 건들지 마. 원격 조종되는 C4인데 자칫하면 터져.”


덩치들이 움찔했다. 그 정도 양이면 저택을 몽땅 날리고도 충분했다.


아름다운 전경이 보이는 테라스에서 곤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두목 곤살레스와 참모 가르시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만나게 되는군.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네.”


회계사처럼 깔끔하게 생긴 곤사가 나름 정중한 태도로 악수를 건넸다.


“나와 실바는 어릴 적부터 아는 사이요. 우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지.”


영리하기로 유명한 참모 가르시아는 의외로 산적같이 생겼다. 고지대에서 자란 사람 특유의 떡 벌어진 가슴을 하고 있었다.


실바는 그를 믿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 약은 넘 때문에 내가 당한 적이 많아.]


...


“먼저, 우린 싸울 이유가 전혀 없네. 각자의 사업을 잘하면 되는 거지. 겹칠 일도 없고.”


무웅은 본차이나 찻잔에 나온 커피를 맛보았다.


‘역시 우리 것보다 맛없군.’


무웅은 탁자에 종이봉투를 던졌다.


곤사는 봉투 안에 있던 불에 일부가 탄 필름을 들어보았다.


까바따와 라 빠스 마을을 공중에서 촬영한 것들이었다.


곤사와 가르시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가르시아가 두목 대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최근 최후통첩을 받았네.”


“누구로부터?”


이번엔 두목 곤사가 대답했다. “정부군과 CIA지. 전멸하기 싫으면 항복하라고 하더군.”


에스꼬바르의 몰락 후 곤사는 정부가 FARC 게릴라를 제압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가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게릴라들과 사이가 매우 나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가 토사구팽을 당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럼 다른 방법이 없잖소. 왜 도망가지 않소?” 무웅이 그건 내 알바 아니고라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물었다.


가르시아가 끼어들었다. “에스꼬바르와 깔리 카르텔 꼴을 못 봤소? 어디로 도망가? 우린 이미 해외 계좌도 다 압류됐소.”


곤사가 그를 제지하며 천천히 물었다.


“우린 병력은 많지만, 무기가 부족해. 알고 보니 자네가 좋은 건 다 쓸어갔더군. 그걸로 뭘 할 텐가? 자네 세력이 우리 뒤를 봐준다면 당분간은 버텨볼 만 할 텐데···.”


“당분간?”


“정부가 현재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많아야 1천 명. 우리 양측이 합치고 참호를 많이 만들어서 산 위에서 막아내면 한동안 충분히 방어는 되지.”


“하지만 시간 문제일 뿐이요. 더욱이 CIA까지 나선다면 경비행기가 아니라 폭격기가 올 수도 있지.”


“그동안 박아둔 뇌물이 있어서 공군은 연말까지는 움직이지 않을걸세.”


“아니, 도대체 연말에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그 때까지 시간을 끌겠다는 거요?”


무웅은 진심으로 궁금해져서 물었다.


가르시아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당신 Y2K 위기라고 못 들어봤소?”


“?”


“2000년이 되는 순간 전 세계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켜서 세상 모든 시스템이 마비될거라는 고급 정보가 있소.”


가르시아가 그것도 몰랐냐는 듯한 표정으로 우쭐대면서 말했다.


“컴퓨터가 00년도 표시를 못 한다나 어쩐다나. 암튼, 그래서 지금 세계 각국의 정보부와 군대 모두 은밀히 비상령을 가동하고 있는 중이오. 미국과 남미 모두 혼란에 빠지면 그 기회를 노려 어딘가로 완전히 도피할 수 있겠지. 당분간 무정부 상태가 될 테니까.”


곤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자네들도 뭔가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야. 내가 이런 초특급 정보를 알려주는 것만 봐도 내 진심을 알 수 있겠지? 우리도 자네들과 전쟁을 하자는게 아니야. 실바와 잘 의논해서 대답을 달라구.”


...


무웅은 차에서 박스를 내려 덩치들에게 던졌다.


덩치들은 진짜 C4 폭약인지 의심했지만,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고품질 원두야. 아껴서 먹어.”


무웅은 배고픔을 느끼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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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쓰러진 갱들 23.05.12 17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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