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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열매 님의 서재입니다.

스틸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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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열매
작품등록일 :
2011.02.2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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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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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1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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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드래곤 (43)

DUMMY

아포칼립스 장르가 보여주는 것처럼 극한 상황에서 사회적 관습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관성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춘추(春秋)시대, 제 양공의 신발 담당이 신발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며 피를 볼 때까지 맞았음에도 자신의 주인을 잡으러 온 군대를 보고 배신하긴커녕 그들을 속이며 양공을 숨겨줬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그것을 인간의 한계로 볼 수도, 어떤 이는 쇠사슬을 사랑한 노예로 볼 수도, 또 다른 이는 직분에 너무 충실한 자의 비극으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를 향하는 세계인 테라에서 이런 관성은 지구보다도 당연한 개념이었다.


이곳은 오래된 것이 진실로 힘을 가지는 세계가 아닌가? 그렇다면 오래된 관습, 예전부터 이어져 온 사회 구조 또한 힘을 가진다고 믿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설령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비록 제대로 된 병사도, 기사도, 군량도 바칠 수 없는 것은 죄이나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우릴 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페스탈로치는 여전히 죽음이 도사리는 통로를 앞에 두고도 협상을 시도했다. 무릇 작정하고 비슷한 체급의 나라끼리 전면전이 벌어지면 문답무용으로 도시마저 사라지고 하는 것이 전쟁이라지만,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거나 사회적으로 허용될만한 이유가 있다면 협상을 통한 항복도 종종 보이는 것이 북대륙의 전쟁문화였다. 상하 간의 계약을 토대로 한 봉건제다 보니 지켜주지 못한 것도 일종의 ‘계약 위반’으로 볼 수도 있어 가능한 이야기였다.


반쪽짜리 귀족으로 살아온 페스탈로치였지만, 그런 문화에서 평생을 살아오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배운 인간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상대방이 먼저 고풍스럽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위력을 보였으니 자신에게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꿈틀댈 권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 순간이 일종의 <명예로운> 항복 협상이라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눈앞의 압도적인 폭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위에 선 자의 의무를 갈구하기 전에 주인 있는 땅에 허락 없이 침입한 근본적인 죄에 대한 속죄를 우선해야 하지 않은가?”


루우는 자신이 만든 흐름을 타서 반격하려는 그를 짓누르지 않았다. 약속된 방식으로 대련을 하는 기사들처럼, 정제된 공격을 받아쳤다. 물론 이건 실전이었다. 정직하게만 맞받아치면 이길 수 없다. 페스탈로치가 귀족으로 살아왔다면 루우는 왕족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루우는 협잡을 부렸다. 그것은 있지도 않은 땅에 대한 권리를 내건 블러핑이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 동토의 영민은 인간뿐이 아니므로 인간이 아닌 자를 함부로 인간의 잣대에 끼워 맞추어 자신의 무지를 자랑하는 불명예를 자초하지 않길 바란다.”


물론 그래 봐야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이 고풍스럽지만 바보 같은 말싸움은 바보짓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테실라가 나설 것도 없었다. 막말로, 이들의 꼴을 보면 베스퍼가 나서 칼춤 한 번 추면 깨끗하게 마무리될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래도 이것이 인간의 방식이었다.


게다가 사소하게나마 실용적인 이점도 없진 않았다. 인간은 규칙을 지키지 않은 자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뒤통수를 후릴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예방 차원에서 이런 요식 행위는 나름 가치를 가졌다.


“그러나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딛는 저희에게 가르침 없이 새로운 잣대를 요구하는 것 또한 갓난아이에게 두 발로 서지 못한다며 타박하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잔혹한 기준은 위의 선 자의 명예를 갉아먹는 폭군의 논리임을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


어쨌든 루우는 이것이 고작 마을 서너 개 수준의 인구를 두고 어이없을 정도로 거창하게 입씨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싸움이 앞으로 나아갈 삶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정치적 싸움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 있었다.


페스탈로치도 그러했다.


그래서 양측은 양보하지 않고 부딪혔다.


“그러니 인간의 잣대로 말하는 것을 용서하시고 고려해 주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주인 없이 떠도는 죄인들에게 감히 권리 있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한미하나마 마법의 길을 걸으며 곁가지로 쌓아온 조그만 지식으로 피어난 의문을 고하오니, 비록 끌려온 처지이나 이 땅이 문명의 손길을 받은 적이 없음을 들었으며 저 어둠 안에서도 공포만을 보았으니 합당한 질서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살아온 잣대로는 실수라 할 수 있어도 죄라고 하기엔 잔혹하니 없는 죄에 대한 속죄를 바라시는 건 정도가 아닌 일이 아닐지요.”


이렇게 부러 고풍스러운(어쩌면 그저 그렇게 느껴지길 바랄 뿐인) 어려운 말을 골라가면서 되지도 않는 말싸움을 하는 것도 한참 전에 유행이 끝났다.


마치 이 시대의 기사도가 껍데기만 남아 죽음을 목전에 둔 것처럼.


그래도 두 사람은 발버둥 쳤다.


루우가 작은 우위라도 잡길 바라서 그리했듯이, 페스탈로치에게도 이런 낡아빠진 말싸움이라고 이겨보려는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든 해야 할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나 거창한 건 아니었다. 그 형태가 남들과 조금 다를지는 몰라도, 속마음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이유.


지금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작은 아이를 위해서였다.


조금이라도 그 아이에게 나은 미래를 쥐여 주고 싶었다. 그저 목숨이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그래, 그러니 이건 바보짓이 아니다.’


만연체로 늘어진 말을 멈추지 않고 내뱉은 늙은 마법사는 깊게 심호흡하며 자신을 다독였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을 받아내면 만족할 수 있으리라. 눈앞의 소녀가 진짜 왕족이라면, 아니 설령 아니라고 해도 그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라도 힘으로 억누르는 대신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래서 그도 -우연이었지만- 루우처럼 블러핑을 걸었다. 적어도 인간의 기준으로는 이 땅에 주인이 없는 건 사실이 아니냐, 하고. 물론 이 대지, 적어도 이 동굴에는 인간의 흔적이 있었다. 조금 전 호수를 건너지 않았는가. 낡기는 해도 인간이 아니고서는 만들 생각도 하지 않을 <다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걸어볼 만하다.’


페스탈로치의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이 불꽃을 튀겼고, 다급함 속에서 잊힌 광경을 끄집어내 조립했다. 쓸만한 패가 하나 생겨났다.


‘분명 그 동굴에 생활감은 없었다.’


다리는 있었지만 불을 피운 흔적도, 취사한 흔적도 없었다. 다리는 그 동굴을 처음 찾아낸 우이데그의 조직원들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면 그 건설자들의 흔적도 없는 건 이상하지만, 그저 더 예전부터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저 이걸 빌미로 삼아 조금이라도 <계약>의 조건을 좋게 하고 싶을 뿐이었다. 테라의 봉건제란 그런 것이었다. 어리석음이나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불리한 계약을 하면 노예가 되거나 야생으로 사는 것보다 비참한 꼴이 되는 것도 흔했다.


‘그런 꼴이 되는 것만은 피해 보겠다. 자, 대답해보시길, 공주를 자처하는 자여.’


-----


오랜만에 알아듣지 못할 말을 들은 테실라는 머리 아픈 언어 퍼즐을 푸는 대신 시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것에 집중했다.


‘생각보다 더하군.’


이미 꽤 시간이 지난 과거에서, 아직 그가 <테실라>이기 이전의 과거에서, 그는 많은 책을 읽었다. 그래서 그는 여러 판타지 문학이나 영화에서 <중세>라고 뭉뚱그려지는 시기가 실제로는 중세라기보다는 근세, 혹은 잘 봐줘야 르네상스 정도라 표현할 시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시기로 따지면 수백 년은 되는 기간이다. 제대로 중세까지 포함하면 100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이다.


‘이 정도면 정말 <중세>라고 우겨도 되겠는데.’


눈앞의 광경은 엉망진창의 모자이크였다. 물론 테라의 역사가 지구의 역사와 깔끔하게 대응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 진화론자, 아니 역사 진화론자라는 모욕을 받아도 할 말 없는 짓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관대한 역사학자라고 해도 눈앞의 광경을 보면 고증 무시를 해도 정도가 있다고 분노를 터뜨렸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꾀죄죄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복장이 박물관도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잡다한 양식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끔찍한 추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천이란 천, 가죽이란 가죽은 다 동원해서 뒤집어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된 물건이 오히려 더 오래갈 수도 있는 세계라고 해도 너무하게 느껴졌다.


‘뭐, 용케 살아남았네.’


그들이 도착한 해안가에서 이 동굴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동토는 없었다. 하지만 툰드라를 비롯한 냉대 기후도 어지간한 문명인의 접근을 불허하는 끔찍한 조건을 가졌다. 현대에도 특별한 자원이나 군사적 필요성이 없다면 굳이 그런 땅에서 살려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진짜 중세> 수준의 물건조차 현역으로 굴리는 세상의 인간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으로 봐도 될 정도다. 그런 사정을 고려하면 무너진 고증에 분노하던 사람도 헛기침을 하며 슬금슬금 도망칠 것이다.


‘그나저나 이게 정말 뭐 하는 짓이냐.’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있을 법한 상황과 대처에 대한 것은 미리 준비하고 연습도 해뒀다. 이 상황은 <시나리오>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루우와 마법사가 나누는 대화를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왜 저러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답답하다고.’


사람들은 뛰어나고, 완전한 초인이 그들을 이끄는 것을 은근히 바란다. 그런 세계를 혐오해야 마땅한 민주주의 체제의 시민들조차 그런 초인의 매력에 저항하기 힘들어한다. 어쩌면 그저 인간의 본성인 걸지도 모른다. 인간의 조상은 알파메일(Alpha male) 스타일의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한 무리생활을 오랫동안 해왔고,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으로 자연에게서 그런 본성이 쓸모 있다고 보증받은 셈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얼마나 깔끔한가? 비효율적이거나 멍청해 보이는 갈등을 모조리 짓밟고 명확한 하나의 의지를 향해 모두 하나 되어 달려가는 모습은 얼마나 찬란한가?


테실라도 딱히 다를 것은 없었다. 특히 지혜는 몰라도, 육체적인 면만 고려하면 그 스스로가 철인(哲人)은 아니더라도 초인-아니 초룡일까?-이라고 할 만한 존재라는 걸 고려하면 그런 유혹에 빠지기 더 쉬웠다.


하지만 그는 지구에서 왔다.


그리고 지구는 그 찬란한 미사여구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경험해봤다.


‘답답하다.’


그래서 테실라는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얌전히 턱을 내려놓았다.


분위기를 보면 여전히 팽팽했다. 오가는 말의 내용은 몰라도 최소한 테실라는 루우와 지낸 시간 덕분에 소녀의 말에 담긴 감정은 대강 느낄 수 있었다. 또박또박한 말투와 달리 내심 떨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위압감을 주기 위해 준비해 둔 소품들이 그런 부족함을 메꿔주는 걸로 보였다.


‘내가 생각해도 원시인 같은 수준으로 잘도 해냈다니까.’


테실라가 쓰고 루우가 탔던 <왕관> 외에도 권위의 상징으로서 만든 것이 더 있었다. 지금 루우가 앉아 있는 의자도 그런 것이었는데, 화산암 계통으로 추정되는 검은 돌을 잘라 만들고, 그 위에 몬스터의 가죽, 뼈와 이빨(사실상 상아였다) 등을 이용해 장식한 물건이었다. 투박하지만 드래곤의 힘이 아니라면 만들기도, 옮기기도 힘든 물건이어서 과시 목적으로는 제격이었다.


거기에 온갖 물건을 담아둔 썰매도 막바지에는 목책처럼 뾰족하게 썰어둔 통나무를 둘러두고 가죽도 여러 종류를 끈처럼 길게 잘라 늘여 뜨려 장식해뒀다. 그러니 마치 아메리카 원주민의 복장에서 볼 수 있는 긴 술장식처럼 보였다.


그 외에도 가능한 대로 허세를 부려놓으니 그것들을 다 합쳐놓으면 꽤 그럴싸했다.


평범한 자들은 들고 다닐 수 없는 거대한 흑색 석좌(石座)와 그것을 장식하는 거칠지만 희귀한 가죽과 상아. 거기에 앉아 있는 자는 비록 소녀지만 그 몸을 감싸고 있는 것 또한 온갖 흉악한 괴물들의 털가죽. 그리고 그 뒤로는 용이 끌고 있는 나무 요새 같은 거대한 썰매.


테실라는 이 정도면 적어도 그 정교함은 비교도 안 될지라도, 위압감만큼은 몽골 칸들이 전쟁터에 끌고 다닌 게르 정도는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자부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현대인조차 감탄하며 상대방이 뭔가 대단한 존재라 생각해 한 수 양보해주지 않을까.


‘그래, 적당히 하고 그 뒤를 보자고.’


테실라는 팽팽한 협상보다 동굴 안에서 느껴지는 꺼림칙한 기운에 신경을 집중했다.


-----


테라의 기사는 살아 있는 전쟁 기계다.


그런 기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소드마스터라는 존재고, 그들의 감각은 평범한 인간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베스퍼도 테실라처럼 동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꺼림칙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공주님,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안쪽이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상대가 란데로스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게 말한다고 해도 상대가 마법사기에 뭔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엿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베스퍼는 가능한 한 애매하게 표현한 귓속말을 건넸다.


마침 루우와 페스탈로치의 <협상>도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서로 오간 끔찍한 미사여구와 왜 이렇게까지 집착했는지 잘 모를 한 가지 조건을 제외하면, 대강 끈 떨어진 신세인 생존자 무리가 정체가 수상한 <얼음 왕국>에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항복한 모양새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답 없는 기존 상전 대신 가장 빠르게 새로운 상전에게 복종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조건으로 항복>한 경우에 가까운 대우였다.


‘정말 별거 없는 결론이지만.’


루우는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삼켰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렇게까지 괴상한 과정을 거쳐 나올 조건은 아니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과도하게 빠르게 결정된 걸지도 모른다. <상식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런 고풍스러운(?) 말싸움 대신 세련된 협상이 계속되는 만찬회와 함께 며칠이고 오가며 결정됐을 것이니까.


어쨌든 루우의 입장에선 이 과정이 그렇게까지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협상이 귀족들만의 사회 안에서 돌기 때문에 그 권위도 그런 귀족들의 사회가 유지되는 한에서 저절로 보장되는 것에 반해, 지금 상황은 정상적인 사회 구조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왕과 백성을 이을 중간 단계가 없다면 백성들이 직접 지배자의 권위를 증명해줘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수백 명 규모의 구성원 전부가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갔는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모두 알고 있는 것이 권위의 증명에 유리하다.


물론 이런 것은 민주주의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저들의 협상은 얄팍한 권위를 통해 임시로 대표가 된 마법사 홀로 한 것이니까. 어떤 이는 대의민주주의라는 것도 단순하게 보면 대표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니 별다를 것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페스탈로치가 대표자가 된 과정부터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새롭게 백성이 된 이들에게 이 사건의 의미는 컸다.


주체적으로 참여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런 과정을 본 것, 그 자체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삶의 여정에서 잊지 못할 엄청난 사건으로 못 박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고 넘겼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이야기로만 전해져 오는 드래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소드마스터의 힘도 보고, 그 둘을 다스리는 것으로 보이는 기이한 소녀를 보았다. 거기에 그런 <당연한 지배자>에 대항해 자신들 편에서 협상해주는 마법사가 있다. 심지어 그 마법사가 원래 자신들을 끌고 온 정체불명의 조직 출신이라니.


어린 시절 마을에서 마을을 떠도는 음유시인들이 들려준 건국 신화 같은 것도 보통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그것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있다.


그들은 변함없는 삶이 이어지는 이 세상에서 곁가지나마 역사의 한 장면이 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비록 비참한 몰골로 주저앉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이 순간의 증인이었다.


그것이 이 사람들을 미래로 달리게 만들 것이리라.


‘정말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그렇게 되길 바라며 루우는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시대에 맞춰 개행 방식을 바꿔봤습니다. 어떨런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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